施薪若一(시신야일) : 나무는 똑같이 널어 놓아도
火就燥也(화취조야) : 불은 마른 쪽으로 타들어가고
平地若一(평지야일) : 땅은 평평하게 골라도
水就溼也(수취습야) : 물은 습한 데로 스며들 것이다.
草木疇生(초목주생) : 초목도 같은 것끼리 자라고
禽獸群焉(금수군언) : 금수도 같은 것끼리 무리지을 것이니
物各從其類也(물각종기류야) : 만물이 다 끼리끼리 모이는 것이다.
是故質的張而弓矢至焉(시고질적장이궁시지언) : 그러므로 과녁이 세워져야 화살이 꽂히고
林木茂而斧斤至焉(림목무이부근지언) : 나무가 무성해야 도끼도 내닫고
樹成蔭而衆鳥息焉(수성음이중조식언) : 그늘이 짙어야 새가 날아들고
(순자의 권학 중)
온 궐이 다 내려다 보이는 그 성곽은
휘가 연못에 뿌린 연씨와 함께
지운에게 그저 버티는 것 이상의 목적, 휘의 옆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 심겨진 이후 첫 서연에서
함께 올라 휘가 외롭질 않길 바라며 다독였던 그 곳이었다.
더 이상은 곁에 있을 수 없는 그 마지막 시간
지운은 다시 한번 그 곳을 선택했다.
-
휘는 지운에게 다른 자리를 권하였지만,
사실 궐은 지운에게 다시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의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수많은 나무들 사이에 불이 마른 나무를 찾고
고른 땅 사이에도 물이 습한 곳을 찾듯
멀리선 궐의 어느 곳이든 다를 것 없어 보여도
넓은 궐 안에서 지운이 흐를 수 있는 곳은 휘의 곁 뿐이기에
.
초목이며 금수며
모든 만물이 끼리끼리 모이듯
그토록 회피하고 멀리했던 궐이지만
지운이 마음을 더해 있을 수 있는 곳도 휘의 곁 뿐이기에
.
화살이 꽂히려면 과녁이 있어야 하고
도끼질을 하려면 나무가 있어야 하며
새가 날아들도록 하려면 그늘이 짙어야 하듯
지운이 움직일 수 있고, 움직일 이유
지운의 과녁, 나무, 그늘 역시 오로지 휘 뿐이었기에
그 곳에 있기를 소망하였다.
내 마음의 이치대로 행할 수 없다면,
그리 하면 안되는 것이라면,
불 붙지 않도록 아예 나무가 없는 곳으로 가야 했고
물에 젖지 않게 아예 땅에서 떨어져야 했다.
자석처럼 어느 순간 휘 곁으로 향할 스스로를 알기에
과녁, 나무, 그늘이 없는 곳으로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만 남아있을 사람이 외로울 것은 여전히 염려되었다.
어렸던 담이와 지운이 헤어졌던 그날,
휘의 이름을 빌린 담이는 지운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며
곁을 따를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하여 마음을 담은 윤목을 전했다.
고단했을 담이의 인생에서
불안했던 모든 순간,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던 모든 순간에
마음의 길에 하나의 빛을 주던 유일한 제 물건이었다.
지금의 휘와 지운이 이별을 말하는 이 순간,
지운은 남은 휘가 부디 외롭지 않길 바라며
곁에 남을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하여 마음을 담은 꽃가지를 남겼다.
꿈도 희망도 없던 지운의 인생에서
불의로 얼룩져버린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던 그 아이조차 잃었을때
지운에게 유일한 행복이었던 사람, 휘의 단 하루의 행복을 담아
곁을 지킬 순 없으나,
남겨둔 꽃가지와 함께 매일 행복이 머무르길 바라며
-
서연의 끝에
지운은 책을 덮고 제 나름의 방법대로 휘를 떠났다.
책을 덮지 못하고 지운이 남긴 꽃가지를 쥐고 있는 휘는
어쩌면 다시 물이 흐르길, 다시 새가 찾아들길 기다리고 싶은 마음을 덮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