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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리뷰) 슬의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우리 처음 만난 그날에[익송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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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5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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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우리 처음 만난 그날에



익준과 송화는 열아홉의 끝에서 만났다. 19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을 치를 대학 입학 면접장이었다. 화장실에서 주워들은 면접 키포인트를 친구에게 알려주는 남자애와 옆자리에 앉아 다급하게 머리를 묶던 여자애로 만났다. 전갈 말고 정갈. 남자애는 사투리를 썼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 사이에서 면접 키포인트를 듣기 위해 송화는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깔끔! 깔끔한 거 본다고

올해 면접 키포인트가 깔끔한 거라고? 송화는 단정히 풀고 있던 긴 머리를 쓸어올리며 다급하게 머리끈을 찾았고, 익준에게는 잔돈을 만들기 위해 길거리 노점상에서 구매한 머리끈이 있었다. 

고마워.

아니다.

떡볶이 코트 주머니에서 그냥 머리끈도 아니고 곱창 끈을 가지고 다니는 신기한 남자애.

처음부터 눈길이 가던, 자꾸만 보고 싶어지는 귀여운 여자애.

처음 만난 그날 알았다.

시선이 자꾸 왔다, 갔다.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우리 처음 만난 그날에

1년을 불태울 첫사랑의 시작이었다.

서울대학교 의예과 99학번 총 모꼬지. 한 명씩 불려나가 장기를 뽐내야 했던 그때 그들은 같은 곳에 있었다. 한숨을 푹 쉬며 벽에 붙어 늘어져있던 남자애와 세상 지루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던 여자애. 송화는 남자애가 친구와 함께 강당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비장한 눈빛으로 겉옷을 걸쳤다.

한 놈 더 안 오는 게 어디고

익준이 비좁은 창고에 친구들과 다닥다닥 붙어 앉아 사람이 더 오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고 있을 때, 송화는 그 남자애를 찾기 위해 낡아빠진 창고의 문을 열었다. 

‘탁쿠당탕탕당탕’

찾았다. 떡볶이 코트. 처음 본 사람에게 대뜸 곱창 끈을 건네줬던 남자애. 송화는 남자애의 옆에 앉았다. 익준은 옆에 앉은 여자애를 쳐다보지 못했다. 가까이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잔뜩 긴장했고 시선이 아주 잠깐씩 여자애를 스쳤다. 

여자애가 웃으면 남자애의 시선이 흔들렸다.

이익준

나는 채송화 

이름이 익준이었구나. 이름이 채송화였구나. 익준은 기념사진을 찍자는 송화의 느닷없는 제안에 냅다 대답했다. 그라지, 뭐.

그날은 인생을 함께 걸어갈 소중한 친구들이 생긴 날이었고, 익준과 송화가 남자와 여자로 다시 만난 날이었다. 

-

송화 사기 잘 쳐. 

원하는 게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무조건 얻고야 마는 스타일

송화는 사기를 잘 쳤다.

나 노래 엄청 잘해. 내가 보컬 할게!

그럼 보컬은 송화가 하고...

사기를 엄청 잘 쳤다. 노래 부르는 걸 엄청 좋아하긴 하지만 잘하진... 익준과 준완이 밴드를 한다는 소식에 송화는 노래를 엄청 잘 한다는 사기를 치고 밴드에 들어갔다. 

스무 살의 봄날. 익준은 일렉으로 캐논 변주곡을 연주했고 송화의 마음은 설렘으로 물들었다. 꽃들이 만개하는 계절에, 온 마음에 네가 번졌다.

익준은 절대 음치에 절대 박치인 송화에게 열심히 베이스 치는 법을 가르쳤다. 마주 보고 선 두 사람의 귓가에는 계속 베이스 소리가 울렸을 것이다. 둥, 둥, 둥, 심장 박동을 닮은 낮은 베이스 소리가, 둥, 둥, 둥, 손가락을 따라 귓가에 계속해서, 계속해서 울렸을 것이다.

-

1999년 4월, 송화의 생일.

송화는 웃었다. 여러 번의 생일을 지나왔지만 유난히도 특별한 오늘이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에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자신을 위해 친구들이 준비해 준 케이크도 좋았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사람, 첫사랑과 함께 보내는 생일이었다. 송화는 익준을 바라봤다. 오늘 생일이 유난히도 특별한 이유인, 너를.

익준은 케이크를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송화를 보며 웃었다. 나만 아는 비밀에 마음이 간질거린다. 익준은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입술을 꾹 눌렀다. 

송화는 모르고, 익준은 아는 비밀

오늘 송화를 웃게 할 선물은 저 케이크만이 아니라는 것

심플한 거.. 이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익준은 심플한 반지를 하나 골랐다. 송화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반지였다. 깔끔하고 귀여운 송화에게 잘 어울리는..... 여자친구가 깔끔하고 귀여운 편이라... 송화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잠깐 볼 수 있을까? 줄 게 있어.

오늘을 기다려왔다.

너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던 날

우리 처음 만난 그날, 사랑하게 될 줄 알았던 너와 나의 시작

잠깐 보자고? 그래. 어디로 가? 

너의 문자 한 통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됐던 날

송화는 들뜬 마음을 가다듬으며 꾹꾹 답장을 썼다. 

옛날에 석형이가 너 많이 좋아했는데

그리고 알게 된 무거운 마음

익준은 석형의 앞에서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미안. 갑자기 일이 생겼다. 다음에 보자.

익준은 술을 삼켰고, 송화는 혼자 울었다.

오늘따라 술이 왜 이렇게 아릴까

오늘따라 다음에란 말이 왜 이렇게 아플까

전하지 못한 반지, 전하지 못한 고백, 전하지 못한 마음

다음에도

전하지 못할 반지. 전하지 못할 고백. 전하지 못할...

송화는 모르고, 익준은 아는 비밀

오늘은 

우리 처음 만난 그날, 

사랑하게 될 줄 알았던 너와 나의 끝

1년을 불태울 첫사랑의 끝이었다. 

-

1999년 5월, 익준의 생일.

밥 먹자. 오늘 너 생일이잖아. 

이따 저녁에 약속 없으면 나랑 밥 먹어.

내가 같이 먹어 줄게.

송화는 자신의 첫사랑이 끝난 줄도 몰랐다. 익준이 피아노 연주곡인 슬픈 바다를 계속해서 기타로 연주하는 이유도 몰랐다. 그래서 익준의 생일을 기다렸다. 익준을 위해 선물을 고르고 예쁘게 리본도 묶었다. 익준이가 자주 쓰고 좋아하는 것. 모자가 담긴 쇼핑백을 들고 긴 숨을 훅 내쉬었다. 

약속 있다.

소개팅하기로 했다. 

익준은 자신에게로 향하는 송화의 마음을 알았다. 송화가 왜 익준의 생일날 같이 밥을 먹자고 하는지, 왜 저렇게 해사하게 웃는지, 왜 목소리가 잔뜩 들떠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날, 송화의 생일날. 송화를 바라보던 익준도 그랬으니까

모르는 척해야 하는 너의 마음. 끝나버린 나의 첫사랑

아 그래? 오늘 꼭 해야 하는 거지?

송화는 익준에게 물었다. 다음에 하면 안 돼?

내가 소개해달라고 해서 하는 건데

못 미뤄. 다음에, 다음에 먹자. 

송화의 생일날 송화를 울게 했던 말, 

다음에

나는 너에게 다음으로 미룰 수 있는 사람인데

그 사람은 너에게 다음으로 미룰 수 없는 사람이구나

그래, 알았어. 

나는 너한테 그냥, 진짜 친구구나

소개팅 잘해. 간다.

익준은 송화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점점 멀어져 가는 송화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두 눈에 담았다.

있잖아, 송화야

소개팅 같은 거 없었어

그런 건 없었어

같이 밥 먹고 싶었어

네 고운 손에 든 그 쇼핑백 속엔 뭐가 들었을까

내게 줄 생일 선물은 아니었을까

그게 맞다면 그건 뭐였을까

처음으로 내가 먼저 좋아했던 사람

그날 그 술집에서 너를 위한 반지도, 고백도 버렸는데

그대로 남은 이 마음은 대체 어디에 버려야 하는 건지

처음 만난 그날 

너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나는

우리가 사랑하게 될 줄만 알고

끝이 있다는 건 몰랐던 나는

이 마음이 너무 벅차다. 

너 1학년 내내 슬픈 바다 기타로 연습하고 그랬는데

피아노 곡인데 굳이 기타로

이 마음을 완전히 불태우는 법을 송화는 알았고, 익준은 몰랐다. 

너에게 내가 그냥 친구일 뿐이라고 해도, 넌 한 번도 나를 이성으로 느끼지 않았다고 해도, 그래도 나는 네가 좋아. 송화는 익준을 계속 좋아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익준을, 언제나 선을 긋고 친구로 대하는 익준을 바라보며 스무 살, 한 해의 청춘을 사랑으로 불태웠다.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을 만큼 순수하게 타올랐던 마음. 

언젠가 먼 훗날 지금의 너를, 너를 좋아했던 나를 떠올리며 웃을 수 있을 만큼

익준은 이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아니 몰랐던 게 아니라 모르는 채로 있었다. 그래서 1학년 내내 슬픈 바다를 연주했다. 익준의 눈에 너무나 뚜렷한 송화의 마음이었다. 자신에게로 향하는 감정, 시선, 발걸음에 눈을 감으며 익준은 계속해서 슬픈 바다를 연주했다. 그대로 고여버린 마음이 속에 가득 들어차서 어쩌지 못하고 

그대 떠나간 조금은 슬픈 추억 때문에

나만이 홀로 쓸쓸히 느껴지는가

자신의 말에 눈이 붉어지는 송화를

마음이 저리게 울컥거리는 목소리를

축 처지는 가녀린 어깨를

모르는 척 제 눈에 담다가

그렇게 홀로 남아

점점 멀어져 가는 송화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번에도 고백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고 


평생, 그 말의 무게를 아는 건 익준뿐이다. 

그때 익준이 얼마나 후회했는지, 

홀로 얼마나 쓸쓸했는지, 

타오르지도, 버려지지도 않는 마음에 얼마나 아팠는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너 알고 있었네? 

왜 모르는 척했어?

이건 나만 아는 비밀. 나는 알았고, 너는 몰랐던 

우리의 비밀. 

그래도, 그럼에도 익준은 슬픈 바다 연주를 멈출 수 있었다. 버리지 못했던 마음이, 불태우지 못한 마음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그건 정말 다행이었다. 익준이 한 해를 지냈던 슬픈 바다에서는 이 마음을 버릴 수도, 불태울 수도 없었다. 

그때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던 마음은 

언젠가 먼 훗날 추억을 헤집고 나와 송화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익준을 다시 쓸쓸하게 만들었다. 

송화는 첫사랑을 불태웠고, 익준은 첫사랑을 잃었다.

처음 만난 그날 사랑하게 될 줄 알았던 두 사람은

그렇게 친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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