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멜로로 고요함을 지켜온 '오월의 청춘'이 시대의 비극 앞에선 전혀 다른 연출로 변주를 감행했다. TV 드라마로 오랜만에 마주한 5.18 민주항쟁의 참상, 생각보다 적나라했던 극적인 묘사들은 거대한 파동을 일으키며 시청자들을 과거로 회귀하게 했다.
KBS2 월화드라마 '오월의 청춘'(극본 이강, 연출 송민엽)은 1980년 5월의 광주를 배경으로 두 남녀의 로맨스를 그리는 드라마다. 전면에 멜로를 내세웠던 지난 8회간의 방송분은 희태(이도현)와 명희(고민시)의 절절한 로맨스가 그려졌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선 지난 9회부터는 애닳은 로맨스만큼이나 참혹했던 당시의 시대 배경을 전면으로 배치하며 시선의 사유를 넓혔다.
지난 31일 방송된 9회에서는 폭력과 피가 얼룩진 장면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희태와 명희 역시 피해가지 못한 그날의 폭력은, 희태가 명희를 구하기 위해 대신 군인과 대척하는 장면으로 불운의 전조를 시작했다. 두 사람이 사랑의 도피를 위해 떠나기로 결심한 날은 우연찮게도 1980년 5월 18일. 광주 일원에서 군부에 의한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던 바로 그날이다. 많은 이들이 신음했고, 또 목숨을 잃었던 그날의 참상은 '오월의 청춘'을 통해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사랑의 도피를 앞두고 군인과의 싸움에서 머리를 다친 희태는 결국 명희와 함께 병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하지만 자신들 외에도 수많은 부상자로 진을 친 병원을 목격한 명희는 간호사로서 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희태는 서둘러 광주를 벗어나자고 설득하지만, 명희의 사명감은 피흘리는 환자들 앞에서 더욱 뜨거워진다. 희태 역시 그런 명희를 보며 의대생으로서 의사 가운을 입고 결국 치료를 돕는다. 두 사람은 그날의 참상 속 피해자이자 조력자로서 자리했다.
두 주인공 외의 인물들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맨 몸으로 부딪힌다. 명희의 하숙집 주인 딸이자 희태의 과외 학생인 진아(박세현)는 학교까지 탄압에 나선 군인에게 맞서다 머리를 크게 맞는다. 하지만 자신의 상태를 가벼이 여겼던 진아는 결국 코피를 흘린 후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이를 희태가 목격하게 함으로써 단순한 상황 묘사가 아닌 주변인의 상실로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수찬(이상이)과 수련(금새록)도 마찬가지다. 수찬은 퇴근길에 군인에게 붙잡힌 여학생을 구하려다 도리어 변을 당하고, 수련은 늦은 밤까지 길거리 부상자들을 돕다 낮에 군인들로부터 자신을 빼내 준 순경 정행(정욱진)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한다. 하나 같이 충격적으로 묘사되는 이 장면들은, 결코 과장이 아닌 사실적 연출이 기반돼 더욱 뼈져리게 다가온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서사가 급물살을 탄 만큼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오월의 청춘'의 후반 변화는 당연하고도 반가운 지점이다. 로맨스로 너무 어렵지 않게 시대에 대한 몰입을 서서히 이끈 '오월의 청춘'은 적당한 시점에 가장 무거운 주제를 드러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에게 시대의 아픔을 전했다. 특히 영화로는 자주 접했지만 드라마로는 오랜만인 만큼 제작진의 접근은 꽤나 영리하다. 처음부터 탄압의 장면을 그렸다면 오히려 와닿지 않을 수 있던 이야기는 각 주인공의 서사와 사연이 그려진 후 덧입혀지면서 인류애적인 성질을 띠웠다. 희태와 명희의 사랑에 이입하던 시청자들에게 탄압이 만든 안타까운 상황들은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무지하거나 관심없던 사람들에게 '도대체 당시에 어땠기에'라는 물음과 함께 그날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3회분이 남아있는 드라마는 더욱 가파르게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비출 것으로 보인다. 10회 예고분 역시 9회만큼이나 격정적인 장면들을 보여줬다. 겨우 초등학생인 명희의 동생 명수(조이현)마저도 폭력의 한 가운데 놓였고, 신음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짧지만 강렬하게 그려졌다. 드라마의 자극이 시청률을 위한 장치가 된 요즘, '오월의 청춘'의 자극적 변주는 위의 예시처럼 단순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폭력의 실체가 드러난 지금, 그날의 참상을 더하거나 덜하는 것 없이 목도할 수 있음에 안도할 따름이다.
한수진 기자 han199131@ize.co.kr
https://www.ize.co.kr/articleView.html?no=2021060113237230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