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규는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잘생기고, 촉망받는 수영선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없었다.
그런 현규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멋진 자신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었고, 그걸 사랑하는 지나에겐 절대 보여서는 안될 것이었다.
사실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그 모습이 드러나고 난 뒤 뒤따를 지나의 경멸섞인 시선이나 외면이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현규는 해서는 안될 선택을 했다. 지나를 버려두고, 도망친다는 선택.
2. 멸망은 수억만년동안 두려움과 원망의 대상이었다.
대부분의 멸망은 불행이라는 이름과 함께 동행했고, 그것은 대부분 소중한 무언가의 종말을 의미했으니까.
멸망도 그런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지만, 동경은 멸망에게 희미한 가능성을 선물했다.
그러나 그 빛은 너무 미약했고, 편집되었을 지언정 현실은 비정했다.
특히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을 최초의 인간의 불행도 자신에게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말에 결국 멸망은 무너진다.
그리고 동경에게서 도망친다. 쫓겨나지 않기위해 쫓아낸다.
그리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내가 던진 돌에 내가 맞았다고.
3. 겁쟁이들의 선택지란 별 게 없다. 그저 주변을 맴돌거나, 기회가 되었을 때 얼굴이라도 보는 것.
현규는 지나가 왔을 지 모르는 동창회를 간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지나의 분노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얼어붙는다.
밀어내는 지나 앞에서 그저 억지로 웃을 수밖에 없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뒤돌리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멸망은 동경이 볼 수 없는 곳에 머물며 그녀가 잠든 순간에만 나타난다.
동경을 괴롭히던 작가의 꿈에 나타나 항복선언을 받아주거나, 아프지 않게 손을 잡고, 불편하게 자는 동경의 머리맡에 쿠션을 대준다.
새어나오는 웃음을 갈무리하며, 그녀를 바라본다.
4. 다행히 둘다 영 운이 없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멸망은 용기있게 팔찌를 끊어낸 동경 덕에 동경에 앞에 설 수 있었다.
환자복을 입고 니가 나타날 줄 알았다, 내 소원 들어주기 전까지 못빠져나간다고 용맹하게 소리지르는 동경을 안고나서야
멸망은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깨닫고, 그녀의 곁에 머물기로 결심한다.
아마 현규에게 한 번정도는 더 기회가 갈 것 같다. 부디 그 기회를 잘 잡아,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난날의 앙금을 해소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