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배우 옥자연은 <경이로운 소문>의 악귀 백향희를 “좀 귀엽다”고 생각했다.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남편에게 땅콩버터를 넣어 만든 주스를 건네고, 목걸이가 탐난다며 백화점 직원의 목을 할퀴어버리는 인물이지만 그의 눈엔 “악한 허당”으로 보였다고. “자신보다 강한 지청신(이홍내)한테 대들다가 맞고, 일을 저질러도 다 허술하게 처리하지 않나. 그래도 향희가 약간 멋있는 건 지청신에게 꿀리지 않고 자기 기분대로 군다는 거다.”
빌런으로 승화하기 이전에 형사(<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 독립군(<이몽>), 특전사(<백두산>)를 거치며 “중성적이고 강단 있는 이미지”를 연기해온 옥자연은 <경이로운 소문>에서만큼은 “캐릭터의 일관성 때문에 하면 안될 것들이 없었다”고 전했다.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시크하게 ‘잘 타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아이처럼 좋아할 수도 있는 거다.” 끔찍과 깜찍의 경계에서 여러 가면을 바꿔 쓰는 와중에 강도 높은 액션 신도 소화해야 했다. 그러면서 발톱 절반이 날아갔지만 피도 안 났고 아무렇지 않았다고 웃어 보이던 옥자연은 “크지 않은 비중에도 시청자들의 꾸준한 관심에 기분 좋고 감사하다”는 인사로 아픔보다 강렬한 기쁨을 이야기했다.
그를 웃게 만드는 또 다른 작품은 바로 올해 상반기 방영 예정인 드라마 <마인>. 배우 김서형, 이보영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신나 있다”는 그는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프라이빗 튜터 자경 역을 맡아 준비 중이다. “최근 본 영화 <운디네> 속 파울라 베어 선생님에게 감명받았다”며 <마인>에서 그런 기운을 뿜어보고 싶다는 그의 출발은 연극 무대였다. 영화계 일을 한다면 누구보다 먼저 많은 영화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을 정도로 영화를 좋아한 배우 옥자연은 “고 장민호 선생님이 연기한 <3월의 눈>과 독일 샤우뷔네 극단이 내한해서 공연한 <햄릿>을 보고 연기를 배우려면 연극을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무대에 서보니 너무 재밌어서 영화를 잊고 있었다”.
이제 그는 연극은 물론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캐릭터를 계속 생각하고, 사랑하고, 붙들고 있”다. 그러다보면 “배우도 관객도 캐릭터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연극 무대에서 리얼 타임으로 관객을 자신의 세계로 데려갔던 것처럼, “빠르면 3, 4개월, 늦으면 1, 2년 후에 영화 또는 드라마를 볼 관객을 인물의 시간으로 싹 데려갈 수 있는 배우가 되기를” 꿈꾼다는 옥자연 배우가 설득해낼 다음 시공간으로 기꺼이 동행하고 싶다.
BEST MOMENT
남편을 살해한 향희가 화장실 거울에 비친 악귀를 마주보고 대화하는 장면
“돈을 밝혀 남자를 이용하는 백향희가 부정적인 이미지의 여자에게 덧씌워지는 클리셰들로 인해 뻔해 보이지 않을까 고민했다. 흥미를 더하기 위해 향희 안의 악귀를 마초적이고 변태적인, 짐승 같은 존재라고 상상했다. 목소리 톤을 걸걸하게 꾸미다가 바보 같은 아이처럼 구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경이로운 소문>에서 본인 역할을 제외하고 가장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
=사이다 신이 많은 장물아비. 연기하며 속 시원할 것 같다.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논쟁적인 내용의 연극을 한 적이 있다. 극을 쓴 작가이자 연출을 맡은 분의 페르소나와 같은 역할을 연기해야 했는데, 나와 완전히 일치할 수 없는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캐릭터를 사랑하게 되고, 연출님을 애정하게 되면서 이성적인 사고와 상관없이 인물에 몰입돼 눈물이 막 났다. 내가 어떤 사람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돼버리는 그 순간이 연기의 정수가 아닐까 싶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
=<마인>에서 맡은 캐릭터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었는데 잘 준비해보겠다. (웃음)
필모그래피
영화 2019 <백두산> 2019 <속물들> 2019 <비스트> 2018 <걸캅스> 2018 <인랑> 2018 <버닝> 2017 <안시성> 2016 <사랑하기 때문에> 2016 <밀정>
드라마 2020 <경이로운 소문> 2019 <이몽> 2018 <드라마 스테이지- 내 연적의 모든 것> 2018 <기름진 멜로> 2017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 2017 <투깝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