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우리에게 아기가 찾아왔다. 지아에게 아이를 갖자는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은 어렴풋한 기대감이었다. 삼신을 만나고 태몽을 꾸었을 때 설렘은 좀 더 선명해졌다.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했을 때는 정신없이 쿵쾅대는 심장소리가 귀에서 울렸다. 어떻게 병원엘 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콩알보다도 작은 아기의 심장소리. 그 박자에 맞춰 함께 뛰는 내 심장소리. 깊은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 것처럼 모든 게 먹먹했다. 그래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꿈속을 헤매는 양 자꾸 헛젓가락질을 하는 나를 보고 지아가 웃었다.
그래, 지아, 우리 지아의 뱃속에 새 생명이 자리 잡았다. 이미 하나인 우리를 더욱 결속시켜주는 신비롭고도 귀한 생명이.
지아는 말했다. 우리가 함께 걷는 길 위 너와 나의 나란한 발자국이 오늘, 하나로 포개어진 것 같다고.
지아는 웃었고, 나는 울었다.
- 지아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자꾸 내 사진을 찍고 내 목소리를 녹음하기에 왜냐고 물었다. 태교에는 좋은 것만 보고 들어야 해서 제일 귀여운 걸 찍는 거라고 답하는 이 사랑스러운 여자라니. 틈나는 대로 지아가 좋아하는 세계문학전집 읽는 목소리를 녹음해 주어야겠다. 듣고 싶을 때마다 아무 데서라도 들을 수 있게.
- 입덧이 심한 임산부는 밥 냄새도 못 맡는다던데 지아는 다행히 갓 지은 밥 냄새를 여전히 좋아한다. 이전보다 과일을 유난히 더 찾을 뿐 입맛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 다만 표현에 솔직한 것과는 별개로 늘 분명하고 담백하던 감정이 시시각각 요동치는 것에 지아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무 이유 없이 불쑥 솟아오르는 눈물 때문에 귀를 막는 일이 잦아졌다. 방금 전에도 코미디 영화를 보다가 느닷없이 귀를 막는 지아의 손을 가만히 잡아 내렸다.
그냥 눈물 나면 울어. 내 앞에선 안 참아도 돼. 웃고 싶음 웃고 울고 싶음 울고 나 보는 데서 너 하고 싶은 거 마음 가는대로 다 해. 그래도 돼.
내 가슴에 얼굴을 묻는 지아의 머리칼과 등을 가만가만 쓸어내렸다. 흐느끼던 지아의 숨소리가 금세 편안해졌다. 잠든 지아의 고른 숨소리. 어제보다 더 따스하고, 더 폭신한 밤이 지나고 있다.
- 우리 아가는 참 좋겠다. 지아와 스물네 시간 감정과 생체리듬을 공유할 수 있어서. 나도 지아랑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데, 굳이 묻거나 말하지 않아도 어떤 상태인지 바로바로 알고 싶은데, 할 수만 있다면 아기를 품은 지아처럼 나는 지아를 업고 안고 다니고 싶은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한테 벌써부터 질투하시는 거예요. 임산부도 적정한 체중 유지와 건강을 위해 필요한 운동량이란 게 있어요.
시끄러, 인마.
그럼 뭐 업고 다니기 편하시라고 포대기 하나 사드려요.
어지간히 유난이라며 신주가 킬킬거린다. 요즘 날 놀리는 재미로 사는 녀석이다.
- 점점 불러오는 배 때문에 지아 혼자서 못하는 일이 하나 둘 늘어간다. 짓누르는 무게에 끙끙거리는 걸 볼 때면 모든 것을 대신해 줄 수 없어 안달하면서도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순간들에 뿌듯해지는 이 모순된 감정. 숙면하지 못하고 뒤척이는 몸을 한껏 안아줄 수 있기는커녕 오히려 얼마쯤 떨어져 자야 하는 대신 머리를 감겨주고 옷을 입혀주고 신을 신겨줄 수 있는, 지아가 유일하게 안심하고 나의 손길에 몸을 맡기는 시간들. 우리 둘만의 소소한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지아와 나의 아가를 만날 날이 가까워오고 있다.
- 스무 시간 가까운 진통이었다. 안절부절 못하는 나보다 침칙하게 굴던 지아가 끝내 하늘이 뒤집히고 몸이 반으로 쪼개지는 고통에 사지를 덜덜 떨었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분만실에서 밀려났던가. 이러다 잘못 될까 아득해지려는 그때, 그 지독한 산고 끝에 제 존재를 알리는 울음소리와 함께 우리 아기가 태어났다. 사실 지쳐 늘어진 지아 걱정에 아이가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누군가의 재촉에 탯줄을 자르고 아이를 품에 안은 지아의 눈물을 보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만물의 나고 자람을 천년 넘게 보아왔건만 겨우 2kg 조금 넘는 이 조그만 생명 하나가 나와 지아의 세상을 천둥벼락처럼 뒤흔들 줄이야. 내 양손바닥만한 아기를 조심스레 받쳐 안는데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의 삶이, 지나온 시간의 무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지아가 긴 전구 줄을 커다란 트리에 두르기 시작했다. 높이 들린 손목을 붙들고 뒤따라가면서 이연은 몇 번이고 지아를 돌려세워 입을 맞췄다. 12월 초, 크리스마스는 3주도 더 남았건만 단지 입구부터 가는 곳곳마다 일찌감치 색색의 전구를 휘감은 모습을 본 딸아이의 성화에 이연과 지아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아이는 발밑에 앉아 마음에 드는 장식을 고르고 있었다.
“지아야, 이연, 얘두라. 뽑뽀 그만 하고 이거 좀 같이 할래?”
제 엄마 아빠의 종아리를 손가락으로 번갈아 찔러대는 아이의 얼굴은 제법 엄했다. 이연의 품에 안겨있던 지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얘들아? 지금 자기랑 나한테 얘들아 그런 거야? 이번엔 또 누구야?”
“유치원 선생님. 며칠 됐어.”
놀란 지아와는 달리 이연은 그러려니 했다. 얼마 전 장모님 댁에 갔을 때도, 신주네와 점심을 먹을 때도 아이는 ‘얘들아’를 찾았다.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불러 모아 이목을 집중시킬 때 부르는 호칭을 그대로 따라하는 거였다. 제 말에 집중해 달라는 뜻이었다.
“엄마, 아빠. 나랑 같이 해요, 해야지.”
쪼그리고 앉아 조곤조곤 타이르는 지아에게 아이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엄마, 아빠, 나랑 이거 하자요. 아라찌, 얘두라?”
제 딴에 나름 진지하게 두 사람을 훈계한 아이는 다시금 트리 장식에 골몰했다. 지아의 입에서 어이없는 웃음이 터졌다. 누구보다 어른이면서 때때로 철없는 이연, 누구보다 아기이면서 때때로 어른인 체하는 딸아이. 남편인지 아들인지, 딸인지 친구인지 모를 그 모호한 경계 속에서 지아는 행복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제 삶의 전부인 두 사람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