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UNTOLD
2020년 <구미호뎐>은 전래 동화의 재생산이 아니라 어쩌면 아직 그 누구에게도 들려준 적 없는 이야기.
지극히 현재, 이동욱과 조보아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분 모두 <데이즈드>와는 첫 만남이시지요?
동욱 그러니까요. 저도 놀랐어요. 그동안 참 많은 화보를 찍었는데 <데이즈드>는 처음이라니. 보아 네, 저도 처음이에요.
두 분은 어떠세요? <구미호던>을 통해서 처음 만나신 건가요?
동욱 네. 그전에는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고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됐는데, 보아가 굉장히 의젓하고 생각이 깊어요. 오히려 제가 동생처럼 보일 때가 있을 만큼 현장에서 의지하게 되는 면도 있고, 참 든든합니다. 보아 저보다 한참 선배님이신데도 정말 편한 오빠처럼 친근하게 대해주시고, 대화나 코드를 참 잘 맞춰주세요. 오늘도 그렇고, 촬영할 때도 그렇고 저 역시 많이 의지하고 있어요.
보아 씨가 아니라 동욱 씨가 구미호 역할로 나오죠?
동욱 네, 제가 구미호이고, 천년을 넘게 살고 있어요. 과거엔 백두대간을 다스리던 산신이었는데, 지금은 망자들을 잡아 저승으로 보내는, 심판자 역할을 하는 캐릭터죠. 보아 저는 '남지아' 역을 맡았는데, 극 중에서 '도시 괴담'이라는 장르를 연출하는 프로그램의 PD에요. 어릴 때 부모님이 실종돼 평생 부모님을 찾아야겠다는 일념으로 공부하고 PD가 되었죠. 늘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확신을 하고, 부모님을 데려간 알 수 없는 존재를 찾아다니다가 결국엔 만나요.
보아 씨는 남지아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읽었어요? 조보아와 남지아의 교집합이 있나요?
보아 최대한 저와 남지아의 간극을 좁히려고 노력했어요. 남지아는 제가 이제껏 표현해온 캐릭터와는 사뭇 느낌이 달라요. 그 다른 결을 잘 살리고 싶어서 감독님, 선배님들과 많이 상의하면서 진행해요.
보아 씨가 그동안 연기했던 인물과 남지아가 어떻게 달라요?
보아 그동안은 뭐랄까, 여리여리하고 수동적인 느낌의 인물이었다면, 이번엔 굉장히 주체적이고 강인한, 씩씩한 캐릭터예요. 동욱 그렇죠. 그게 남지아의 가장 큰 매력이죠. 기존 드라마 작법에선 남자 캐릭터가 나서서 일을 해결하고, 여자캐릭터는 거기에 만족하는 식의 그림이 대부분이었는데, 남지아는 달라요. 발벗고 나서서 사건을 해결하고 상황을 주도하죠.
동욱 씨가 연기하는 구미호는 어때요? 동욱 씨가 구미호라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잘 어울려요.
동욱 그러니까요. 남자 구미호는 본 사람이 아무도 없을 덴데. 보아 (웃음) 정말 그러네요, 생각해보니, 동욱 근데 '이동욱' 하면 '어, 구미호랑 잘 어울려요'라는 반응을 기대할 수 있는, 어쨌든 좋은 베이스를 가지고 시작한다는 건 저희 작품에 유리한 부분이에요. 다만 그 기대감을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는지가 제 개인적 숙제가 될 것 같고요.
다른 출연진과 합이나 호흡도 궁금해요.
동욱 제 동생 역할로 김범 씨가 나와요. 범이는 저와 같은 소속사에 있어요. 전역후 오랜만의 복귀작이라 굉장히 의욕적이고 열심히 임하고 있죠. 호흡도 물론 잘 맞고요. 그리고 수의사인 '신주' 역할로 등장하는 황희라는 배우가 있어요. 발성이나, 신체 조건 등 가지고 있는 틀이 참 좋은 배우예요. 보아 '유리' 역에 배우 김용지가 출연하는데, 같은 여자가 봐도 마스크가 정말 신비롭고 매력적이에요. 용지가 맡은 유리라는 역도 구미호인데, 그 역할에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동욱 오빠가 이렇게 구미호와 분위기가 맞는 것처럼요.
동욱 씨는 연기하기 전에 그야말로 대본이 닮아 없어질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해야 캐릭터에 대한 어떤 '답'이 도출된다,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동욱 제가 <타인은 지옥이다> 때부턴 그렇게 안 해요. <도깨비>의 저승사자 역도 그렇고, <타인은 지옥이다>의 '서문조'도 그렇고, 지금 <구미호던>의 '이연'도 그래요. 실존하지 않는 인물들이거든요. 그러니 무작정 대본을 들이파는 게 능사가 아니더라고요. 대본에 깊이 빠질수록 자꾸만 틀에 갇히는 느낌이랄까. 더 자유로워야 하는데, 작가님이 정해주신 프레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위험이 있는거죠.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나오는 감정과 액션이 더 자유롭고 호소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미호던>의 이연 역시 어딘가 얽매여 있는 인물이 전혀 아니에요. 보아 현장에서 동욱 오빠를 보면 지문이랑 대사를 다 숙지하시고, 대사 말미 같은 간단한 걸 확인할 때 외에는 종처럼 대본을 보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리고 그야말로 현장에서는 정말 자유로워 보여서 부럽고 멋있어요.
그런데 보아 씨도 못지않다고 들었어요. 대본이랑 배역을 파고드는 거요.
보아 어떤 습관, 버릇 같은 건데, 대본을 항상 손에 쥐고 있어야만, 그게 아니면 눈에 보여야만 마음이 편해요. 동욱 자석인 줄 알았어요, 저는, 대본이 손에 그냥 붙어 있어요. 보아 (웃음) 저는 아직 대본의 틀 밖으로 자유롭게 나가는 건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에 손에 들고 있어야만 안심되더라고요. 동욱 그만큼 열심히하는 거지. 촬영하는 순서가 스토리라인을 따르지 않고 제각각이잖아요. 그래서 이를테면 지금 어느 막의 일곱 번째 신scene을 촬영 중이라면 제가 물어봐요. "이 신의 직전 상황이 뭐지?" 그러면 보아가 “에이, 다 아시면서 지금 저 시험하시는 거죠?"라면서 속속들이 내용 전개를 꿰뚫고 있어요.
저는 난생처음 하는 이 짧은 대화에서도 느끼지만, 동욱 씨만의 표현 방식이 있는 것 같아요. 보아 씨를 대할 때도 그렇고, 팬들을 대할 때도 격의 없고 편한 와중에 군데군데 곱씹을수록 잔정이 묻어 있는 화법이랄까.
동욱 그런 제 성격을 그 친구들도 아는 것 같아요. 오래 봐온 친구들이니까. 제가 타박하듯이 말을 해도 그게 결코 진심은 아니니까요. 늘 그렇듯 애정을 담은 농담이죠. 어느 날 이른 아침부터 공항에 팬들이 사진을 찍으러 왔길래 "야, 너흰 일이 없냐?" 그러면 팬들도 짜증 조로 말해요. "아, 반차 쓰고 왔어요!" 그래서 피차일반이지 않나. (웃음) 보아 그야말로 '츤데레'예요, 완전. 무심한 듯하지만 다정한 말을 툭툭 내뱉는.
아까 보니 촬영 대기실에 팬들이 보아 씨 생일 축하한다며 풍선이랑 이것저것 해서 공간 전체를 예쁘게 꾸며주신 걸 봤어요. 그게 다 무슨 일이에요?
보아 팬 분들도 그렇고 함께 일하는 스태프 언니, 오빠들이 또 크게 챙겨주세요. 예정된 생일 파티가 있었는데 시국 때문에 취소되는 바람에 준비한 것을 못 해줬다며 새벽부터 촬영장까지 오셔서 이렇게 해주셨어요. 정말 완전 복받은 거죠. 너무 좋은 팀과 사람들을 만나서 동욱 (옆에 계신 팀장님을 보며 농담 조로) 팀장님, 제 생일날 문자 하셨어요? 안 하셨죠? 보아 (웃음) 번호 모르시는 거 아니에요? 동욱 번호는 알 텐데…. 난 문자메시지도 안 와.(웃음)
오늘 이렇게 만나 뵙고 이야기 나누기 전부터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탈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준 보아 씨가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어요. 실제 보아 씨도 크게 다르지 않죠?
보아 네, 그냥 제 모습인 것 같아요.(웃음) 예능 프로그램에선 사실 꾸미려야 꾸밀 수가 없어요. 이를테면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경우 종일 카메라를 켜놓는 관찰 예능이니까 자연스럽게 제 모습이 나오죠. 동욱 제가 옆에서 봤는데, 보아씨는 기본적으로 밝고 선한 사람이에요. '재는 화를 낼 때가 있나?' 싶을 만큼 평온하고 맑은 모습이 촬영장에서 큰 에너지가 되죠. 보아 씨가 있는 날과 없는 날 촬영장 분위기가 좀 다르달까요.
두 분께 마무리 질문을 드리려 해요. 매일 무언가를 읽고 공부하는 인풋의 할당량을 정해두실 만큼 부지런하신 동욱씨께는 '비대면 시대의 배우'라는 주제에 대해 듣고 싶어요.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실 것 같아요. 앞으로를 어떻게 대비하세요?
동욱 또 다른 촬영 때는 AI 시대에 지금 몸담은 분야가 어떻게 변할 것 같은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도 있는데, 이 질문은 또 새롭네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저희는 애초부터 '언택트'이긴 했지요. 사실 'untact'도 표준 영어는 아니고 콩글리시에요. 영어로는 'no contact'라고 하죠. 공연 문화가 점점 위축되는 것 같아 조금 걱정이에요. 그것들이 사실 TV와 영화 크리에이티브의 자양분이 되기도 하니까요.
보아 씨에겐 이립려, 그러니까 서른에 대해 묻고 싶어요. 이제 막 서른이 됐는데, 이후에 조보아라는 배우의 앞에는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동욱 왜 질문 난이도가 이렇게 다르죠? 보아에겐 개인적인 거 물어보시고 저에겐 '언택트' 물어보시고, 보아 (웃음) 20대 땐 막연히 나이 먹는 게 싫다고 생각했는데, 한 살씩 더 먹을수록 그런 생각이 오히려 없어지더라고요. 지금까지 제가 걸어온 길이 대견하기도 하고요. 제가 맡을 수 있는 역할도 달라질 거고, 제가 사람으로서 연기자로서 가지는 감정의 폭도 달라질 것 같아서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서른을 맞이하고 있어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