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블로그 뒤지다가 옛날에 번역해둔 레포가 있더라고.
다시 읽었더니 이렇게 깊은 생각을 지닌 사람이구나.....싶어서 새삼 뭉클했네.
마바타키의 가사에 관한 이야기인데 어째서 곡에 그런 표현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고 있어.
2013년 10월 5일자 패뮤 레포야.
쯔요시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
bayfm을 들어주시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도모토 쯔요시와 「Fashion & Music Book」이 시작했습니다. 10월에 이제 접어들었는데요, 정말 눈 깜짝할 사이군요. 그래서 더 무섭네요. 한 순간 한 순간을 새겨두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잘 굴러가지 않아요, 여러가지가.
그런 와중에 미즈호짱이라는 18살인 아이가 보내왔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부터 쯔요시군의 팬이 된 고3입니다. 전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음악이라곤 유행가나 친구의 추천으로 들을 뿐이었는데, 쯔요시군을 좋아하게 되면서 음악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아티스트도 듣게 되어 제 안의 음악도 폭이 넓어졌습니다. 가사 하나 하나가 지닌 언어의 힘, 멜로디의 힘을 느끼며 음악은 이렇게 좋은 거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최근에도 힘들 때나 힘내고 싶을 때 쯔요시군의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쯔요시군 음악의 즐거움을 가르쳐줘서 고마워요.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 정말 좋아해요.」
라고 말해주셨네요.
신기하네요. 제가 서른넷이 된 때에 18살인 여자아이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인생을 살고있다고 별로 상상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더 확실히 말하자면 서른을 넘겨 이 사무소에서 이러한 일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 적이 없어요. 역시 아이돌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은 서른이 지나면 그렇게 되지 않아? 라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굉장한 선배분들의 다양한 성과의 힘에 의해 상당히 인상이 달라진 거겠죠.
정말 고심하면서 생활하는 속에서 이렇게 18살인 아이가, 이번에 팬이 되었다며 그 입구가 음악이라니 더 기뻐지네요.
제가 쟈니즈 사무소에 들어와 사장님이 싱어송라이터를 해보지 않겠냐고 말해주셔서 처음 곡을 쓰고, 이런 남자다운 거 쓰지 말라고 혼나고, 하지만 그런 가사밖에 쓰지 못해서 쓰고, 그럼 여자애들이 두근거릴 가사를 쓰자 싶어서 써도 나는 전혀 그럴 기분이 안 드니까, 스테이지에 서는 게 실례라는 마음이 들 정도여서, 역시 이러한 생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해서 쓰고 노래하며, 근데 어려운 노래네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기도 하구요.
생명의 기로에 서지 않으면 이 노래의 의미를 알아주지 못하려나? 라고 여러가지로 고민하기도 하면서 오늘까지 왔네요. 그런 속에서 젊은 세대인 분에게 음악을 통해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어 정말 기쁘다고 생각해 메일을 읽었습니다.
우선은 도모토 쯔요시의 「きみがいま」 들어주세요.
여기서부턴 리스너 여러분께 받은 메일을 소개합니다. 아히루상이네요.
「안녕하세요. 「瞬き」를 들었습니다. 멋진 멜로디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 하나의 언령이 마음을 붙들고 놓지 않습니다. 저는 3년 전에 빛을 잃었어요. 몇번이고 아침을 맞이해도 어둠이 이어져서 마음이 꺾일 것 같았습니다. 음악도 거의 듣지 않았었는데, 어느날 더듬대며 CD를 정리하던 중에 손이 멈췄습니다. 쯔요시상의 노랫소리가 마음에 뛰어들어왔어요. 그리고 이 라디오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 눈은 무엇도 비출 수가 없지만, 이제까지 새겨온 소중한 사진을 수많은 추억들과 함께 끌어안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마음으로부터 감사드려요.」
라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이 메일을 읽은 것은, 제가 「瞬き」라는 타이틀로 하는 걸 정말 고민했고 「瞬き」라는 말을 선택하는 걸 고민했기 때문에 골랐는데요.
이 노래를 완성하면서 레이블 분들께 여러 이야기를 드리고, 저희도 스탭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바뀔 때마다 "나는 이런 마음으로 곡을 만들고 있어.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하며 곡을 만들어 왔어. 이런 부분을 이해받지 못하면 팬분들께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던가,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라고 처음에 여러가지 이야길 하는데요.
그런 대화 속에서 「瞬き」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이 있었는데 "쯔요시는 좀 지나치게 상냥한 거 아냐?" 라는 말을 들었어요.
"무슨 말이에요?" 하고 물으니 이제까지 써온 곡은 무척 언어 선택에 신중한 경향이 있는데, 그건 상당히 중요한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언어는 고르면 고를수록, 상냥하면 상냥할수록 말이란 건 넓은 의미를 지니게 돼. 일본어는 원래 그러한 것이고 쯔요시의 테마에서 벗어나진 않지만, 좀더 스피드감이 있는 언어를 고르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해. 너무 조심해서 쓰고있지 않아? 라고요.
사실 진짜 그러한데 제 눈에 비춰지는 지금을, 다양한 스스로의 지금이란 걸 공유한달까 상냥하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 제가 무슨 노래를 하는지 어떤 음을 내는지 모르니까 벽에 손을 대고 '쯔요시군은 분명 이런 걸 노래하고 있겠지'라는 식으로 라이브를 즐기며 눈에 새겨넣고 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거나, 라디오를 통해 여러 메일을 받기 때문에, 다양한 인생을요.
원래 여동생과 갈 예정이었는데 여동생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그 마음을 제대로 잇기 위해 오셨다는 이야기라던지. 여러 메일을 받기 때문에, 여러 인생을 받기 때문에 저는 눈을 깜박이며 몇몇의 사진을, 눈에 풍경을 새겨넣을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무슨 얘기가 하고 싶냐면 그렇지 않은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 제가 살고있는 시간이 아닌 시간을 체감하며 경험하고 있는 분들에게 던진다면 '마음의 눈에 새겨넣어'라던가 '가슴이 깜박일 때마다'라는 어떤 언어를 사용해 여러 사람들의 지금을, 여러 분들의 지금에 대해 너무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달까, 그곳에 살며시 다가서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그 스피드감이나 엣지감이 있는 언어라는 걸 그만뒀던 거예요. 그렇게 하면 '눈을 깜박일 때마다 소중한 것이 사라져가는' 스피드감을 '마음의 눈이 깜박일 때마다 소중한 것이 사라지는' 라는 걸로는 의미도 바뀌게 되고 소리로 나왔을 때에 시간이 걸려요.
이번에 제가 멋대로 한달까, 저번주에도 말했습니다만 저 스스로의 각오라는 걸 쓰고 싶었기 때문에, 저는 역시 깜박일 때마다 소중한 것이 사라져가는 무상함을 살아가고 싶다는 스스로와의 맹세랄까 각오가 있어서 여분의 언어를 덧붙이는 걸 관둔 거예요.
그런 얘기도 있었고 '이 가사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주위에 보여드리자 "아주 좋은 가사라고 생각해" 라고 하시며 "앞으로 쯔요시의 팬은 쯔요시가 어떤 걸 쓰든 알아줄 테니까 그렇게 너무 상냥하게 말을 골라 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 라는 대화도 하면서 이 곡이 완성되었네요.
'나 엄청 상냥하지?'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지금 저의 살아가는 각오, 느낀 것들 전부를 「瞬き」에 싣는다는 느낌으로 곡을 쓰자 그런 마음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덥거나 추운 날 지붕이 있는 상자 속에서, 집안에서 기타를 들고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행복. 거기에 서 있을 때 그렇지 않은 지금을 살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걸 밥을 먹고 있을 때조차 생각하곤 해요. 여러가지를.
올해도 무척 더웠잖아요. 무더위에 돌아가신 분들도 정말 많이 계시고, 스스로가 무심코 살고 있는 순간이란 건 무척 아름다운 거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걸 생각하면 쉽사리 언어를 쓸 수 없게 돼요, 언제나. 펜이 멈추기도 하고 악기를 놔버리기도 하고.
저는 동북 지진이 있고나서, 이럴 때야말로 무언가 곡을 쓰자고 생각했지만 전혀 말이 나오지 않았던 스스로와 대면했어요. 노래따위 쓰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음악을 하기 전에 가족을 지키거나 팬 여러분께 안부를 전하기 위해 회사에 전화를 하는 등, 그런 쪽이 첫번째 조건인 그런 중대한 때에 "음악 하겠습니다" 하고 툭 가는 그런 음악보다도 식료품이나 의류같은 게 먼저란 걸 상상하거나 음악의 힘이란 걸 조금 의심한 순간도 있었어요.
하지만 분명 시간이 지나면 음악을 울리길 원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겠지. 그때 필요한 건 무엇인가. 그런 걸 여러가지 느꼈어요. 그러한 것도 있어서 언어를 고르는 데에 신중해져버렸네요.
그런 속에서 「瞬き」라는 곡을 쓰는 타이밍이 와서 레이블 사람과 그런 이야기를 하며 어쨌든 내 안에 있는 상냥함을 깎아내어 쓴 곡입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딘가 '달갑지 않은 친절'이란 말을 들을 듯한 느낌도 받으면서 그렇더라도 제 안에 있는 상냥함을 모두 쓰고 싶었으니까 썼어요. 가사라던지.
이런 메일을 받으면 제가 오히려 구원받아서, 이 메일을 받았기에 지금 이 이야기를 팬들께 제대로 전할 수 있어요. 저는 앞으로 그러한 상냥함이란 감정을 깎아낸 상태로 가사를 쓰는 곡이 나오는 경우도 많아질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결코 그러한 걸 잊은 게 아니란 걸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사가 "그런 걸 말하면 가사 못 쓰게 돼, 너" 같이 되지만요, 상냥함을 버리지 못하면. 한명이라도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집약된 말을 고르고 싶지 않아진다던가 스스로의 제멋대로를 쓰고싶다고 별로 생각하지 않게 되는 등 말이죠.
그래서 「きみがいま」라는 곡이 만들어졌는데 「네가 지금 바라보는 걸 믿어줄게」라고 마음으로 바라보고 안구로 바라보고 몸으로 바라보는, 무척 큰 의미로 「지금 네가 바라보고 있는 걸 내가 믿어줄게」라는 말로 바꾸거나 하면서요. 제 안에서는 고민을 거듭해서 쓴 곡이 잔뜩 있어요.
그런 고민을 조금 해소해서 써나가는 걸 앞으로 조금씩 할지도 모르니까, 그걸 했을 때에 제가 상처입히게 된다면 싫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모든 사람을 상처입히지 않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호소하며 던진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죠.
하지만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이런 메일을 받고 나는 앞으로 그런 커다란 의미를 지닌 말을 줄이고 스트레이트하게 써나가는 일도 많아질 거라 생각하는데,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그런 감정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메일을 읽었습니다.
첫번째는 지금 본인이 살아가고 계신 지금의 자신이 비춰지는 지금이란 걸 확실히 전달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이렇게 엮어주신 점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이나 지금 살아가는 풍경을, 더 언어를 공부해서 눈을 감고 있어도 전해질 수 있도록 제대로 언어를 엮어 그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소리를 더 공부해서, 가사와 링크시키며 소리를 울리는. 음의 강약을 표현하거나 그런 걸 더욱 해나가는 것과 깎아낸 말이라는 것도 엮어나가야겠구나 싶네요.
그래서 아히루상이 보내주신 메일이 제 음악인생을 무척 안정되게 해주면서 새로운 스테이지에 가져갈 수 있게 해주는 메일을 받았구나 생각해요. 이렇게 올곧게 써주신 아히루상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이 라디오를 계속 들어주시는 팬 여러분께도 지금 여러 마음으로 듣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제가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걸 마주하며 들어주신다는 걸, 마이크 저편에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숨김없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계신 팬 여러분께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정말로 언제나 고마워요. 앞으로도 여러가지를 제 나름대로 고민에 고민하며 벽에 부딪히면 라디오에서 조금 말을 흘리고 모두가 들어주셔서 격려을 받으며 많은 작품을 만들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오늘도 다시금 강하게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이대로 엔딩에 돌입하려 하는데, 여러분께 여러 마음을 바로 전달받을 수 있는 라디오를, 몇번이고 말하는 거지만 스스로의 인생 속에 준비된 시간이란 정말 소중한 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제 음악을 들어주시고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고 말해주시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여기는 스스로를 믿어도 된다거나, 여기선 어리광부려선 안되겠다고 깨닫거나 하니까요.
언제나 저를 좋은 미래로 이끌어주시는 메일들뿐이라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메일은 어떤 거라도 상관없으니 앞으로도 이 라디오에 던져주시길 바라고 있어요.
그럼 오늘은 「瞬き」를 들으며 헤어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