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하자면 두서도 없고 길어. (꽥)
아날로그와 앤티크에 환장하는 원덬이는 올해 처음으로 불렛저널을 쓰기 시작한 상태.
원래도 다이어리는 좋아했는데, 템플릿 마음에 드는 게 정말 없어서 6공과 일반 다이어리를 사기만 하다가 흥미를 잃고(반복)
빈칸이 많아지면 채울 기력을 잃고(반복) 그러다 결국 일기도 기록도 다 놓게 되었었는데 불렛저널을 알게 되었지 뭐야.
그래서 여기저기 컬렉션들을 엄청 뒤져보고 처음으로 브이로그라는 것도 보고 불렛저널을 무려 3개월째 성실하게 썼어. 인벤타리오는 29cm가 알람을 보내 줬고 입장료가 저렴하길래 아무 생각 없이 구입했는데 돌이켜보면 아주 잘 한 선택이었다 ㅋㅋㅋㅋ
실은 다이어리 다시 쓰면서 스티커도 마테도 엄청 구경하고 편집샵도 엄청 자주 가보고 그랬는데 늘 구경 세시간 하고 한장 겨우 사는 사태가 반복되고 막상 그렇게 신중하게 사온 스티커는 바인더에서 나오질 않음ㅋㅋㅋㅋㅋㅋ 날짜 스티커와 검은 글씨만 빽빽한 불렛저널이 되. 아 나는 다꾸용품에 돈 쓸 일은 없겠다^^ 펜만 몇 개 더 사구 형광펜 정도나 사면 되겠다^^ 근데 다른 덬들도 그렇겠지만 보통 이 바닥이... 하나 시작하면 옆 부스 만년필이 신경쓰이고 만년필 만지작거리다 보면 만년필이 잘 써지는 종이 어쩌구가 신경쓰이고 불렛저널을 막 쓰다 보면 엥 잘만 쓰던 펜이 뭔가 손에서 헛도는 것 같고 그러면 또 오프라인 서점을 찾아가서 이펜저펜 너도검은펜얘도검은펜 다 나의 필통안으로. 가 되는 그... 그럴 때가 오잖아? 그 시점에서 불행히도 페어가 딱 열렸지.
나의 성향
1) 사람 많은 맛집이나 인기 스팟에 절대 줄 서지 않음
2) 쇼핑을 백시간 하고 빈손으로 나온 전적 다수
3) 디자인과 실용성 모두 충족하지 않으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안 삼 (예쁜 쓰레기를 사는 빈도가 낮음)
4) 3)의 조건이 충족되어도 비슷한 게 있으면 구매하지 않음 나의 모토는 있잘쓰 쟁여봐야 똥된다
그러다 보니 이게... 후기를 몇 개 봤더니 이걸 가는 게 맞나? 가야 하나? 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 거지..
입장도 빡센데 구경도 힘들고 사람은 바글바글하고 공간은 좁대고 엥 행사장 안에서 단내나는 향도 맡아진대고 여러모로 피곤할 것 같은 거야. 그치만 문제는 불행히도 내가 정확하게 이것도저것도요것도조것도 다 궁금하고 만져보고 싶고 사보고 싶은 입문자의 드릉드릉 상태였던 거지. 성향을 흐린눈하고 한번쯤은 페어에서 실컷 구경하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고생할 각오 완. 하고 금요일 오픈런을 결정하다.
10시에 도착했는데 앞에 50-60명 정도 서 있었어. 한 시간 대기하고 입장하고 MD는 됐고 냅다 포인트오브뷰 스탬프 대기 QR로 돌진함. 30분 뜨길래 옆 부스 스탬프를 구경하면서... 탄핵 방송을 보고 아자 주먹을 불끈 쥐니 웬걸 오라길래 가서 줄 섰지. 엽서 안 사는 사람인데 다들 이것부터 하길래 뭔지도 모르고 했는데 뭐야 너무 예쁘잖아 그렇게 엽서 바인더를 생각하는 인간이 되다(...) 그리고 쭉 걸어다니면서 구경하다가 리틀템포 디자인에서 스탬프 두 개를 샀어. 맥주잔도 탐나고 여기부터 저기까지 다 주세요 하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내가 쓸 법한 디자인(스트레칭/물 세잔)의 스탬프만 구매. 라이브워크 엽서 체험은 줄 서기 싫어서 ㅋㅋㅋㅋㅋ 디피만 구경하고 금방 나왔고 그 옆 부스 하우키즈풀 여기에서 한참 구경했어. 나는 육아인인데, 여기부터 저기까지 다 주세요를 또 외치고 싶었음... 그치만 아직 미취학 아동이고 막상 또 이걸 얼마나 활용할까 싶어서 부스 이름만 찍어두고 다음을 기약함.
그리고 이제 눈앞에 등장한 부스, 파이롯트(효과음 두둥).
나는 아빠가 만년필 덕후라서 어릴 때부터 몽블랑을 만져봤는데, 영 내 취향이 아니고(나는 세필이 좋은데 울 아부지는 세필을 극혐하심) 관리도 어려워 보이고 맨날 아부지는 뭘 씻고 넣고 있고 게으른 나는 평생 저거 만져볼 일 없겠다~ 했는데 이제 막 문구인이 되었죠? 그럼 당연히 알고리즘에 만년필이 뜨죠? 탐나죠? 이 상태였음... 입문자 버프를 받은 내향형 인간은 돌진해서 두 종류 다 시필을 해 봤는데 의외로 데시모보다 프레라 쪽이 마음에 들었고 근데 이건 EF닙이 없길래... 일단 물러남. (그렇게 나는 파이롯트 부스를 세 번 방문하게 된다) 한번 용기를 얻으니 이제 체험이 두렵지 않고 ㅋㅋㅋㅋㅋ 부스 분위기가 내 취향이었던 도미넌트 인더스트리에서 멈춤.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테이블 끄트머리에 달라붙어서 자리 나길 기다리고 있으니 친절한 스태프 분이 잉크 샘플북(?) 같은 걸 가져다 주시고 잉크도 몇 개 가져다 주시고... 머들러 같은 것도 집어 주시면서 해 보라구 권해 주시고... 둠트로쉬 / 얼그레이 티 / 팀버 소네트 / 에트르타 절벽 / 페리윙클 블루 칠해(?) 봤는데 처음 문질렀을 땐 펄잉크가 너무너무너무 예뻐서 까마귀의 마음을 저격했지만 바짝 말리고 나니 둠트로쉬의 그 미묘한 회색빛과 탁한 분홍 느낌이 예쁘고 팀버 소네트의 그... 앤티크 덕후가 환장할 법한 우?드? 느낌이... 너무 좋아서 잉크를 살 때는 꼭 문질문질 발색도 해 보고 글씨로도 써 보고 바짝 마른 것도 보고 구매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됨. 아니 근데 잉크 원래 이렇게 천천히 마르는 거야...? 하도 안 말라서 시필지 계속 들고 다녔음 ㅠㅠ
언급했듯이 나는 육아인이라 색연필 같은 것도 열심히 봤어. 아마 어린이(피는 못 속인다고 스티커와 색종이, 패턴지를 겁나 좋아함)를 데리고 왔으면 거하게 뜯겼을 것... K라인 부스 쪽이 다 그런 느낌이어서 이것저것 써 보면서 즐겁게 구경함. 중간중간 인스타 팔로우 이벤트는 발견하면 참가했는데, 이건 이벤트에 참여하고 뭔가를 받는다< 보다는 이제 막 이 세계에 입문했으니 내 알고리즘을 위한 인스타 팔로우용< 에 가까워서 ㅋㅋㅋㅋ 근데 예스24 부스에서 스탬프를 주지 뭐야(스탬프인 것도 집에 와서 알았음;). 신난다!
이제 크게 한 바퀴 돌았으니 중간 라인을 돌 차례. A10 프란츠... 클래식 좋아하는 인간은 음악에 관련된 무언가를 보면 걸음을 멈추고 일단 다 구경하는 버릇이 있어. MBTI와 음악가를 매칭한 지류 책갈피 비스무리한 걸 줬는데, INTJ는 베토벤을 보고 잠깐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베토벤 좋아 그치만... ㅋㅋㅋㅋㅋㅋ) 뱃지도 탐나고 악보 일부가 그려진 안경닦이도 탐나긴 했는데, 아직 못 본 부스가 많아서 일단 마음 속에 저장해 놓고 지나감. 이 쪽 라인이 종이류가 많더라고. 두성종이에서 라이팅북을 한참 쓰다듬고... (안 산 이유는 내가 안 쓸 것 같았음. 실용성의 문제 X 아끼느라 모셔둘 것 같아서 O) 유명한 미도리 종이도 한참 문질문질하고 써 보고 도장도 찍어 보고 지나감. 내년에는 아마도 사게 될 것 같아. 나는 목적이 정해지지 않으면 노트를 사지 않는데, 짧은 문장 필사하기 좋을 것 같더라고. + 캘리 연습
그리고 건너편의 B3 공예가 부스... 나는 미싱을 하고 있어서 북커버엔 관심이 없었고, 공예가 도구집이 탐나더라. 와 이거 하나 사서 트롤리에 올려 두면 참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렇게 저벅저벅 보이는 모든 부스에 들어가서 만져보고 구경하고 뭔가 주시면 받아오고(ㅋㅋㅋㅋ) 그러다 보니 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난 패턴지 부스. 이름이 가위였던가? 처음에는 원단같이 생겨서 우왓 하고 갔었는데 종이였고 아 그냥 지나갈 부스 아닌 것 같아서 이따 다시 와야지 했었거든. 나는 예전부터 선물을 사면 포장해주는 곳에 가서 선물값만큼 포장 비용을 쓰던 사람......... 여기 팜플렛? 도 너무 예쁘고 패턴지도 다 너무 좋았어. 그리고 활용법을 무료로 다 배포하시길래 와인병 포장하는 법, 남은종이 활용하기, 사탕봉투 만들기, 북커버 만들기를 집어 옴. 올해 크리스마스 파티에 와인병 꼭 포장해서 예쁘게 들고 가야지. 그렇게 그 외에 보든 부스를 다 보고.... A라인 쪽인가 B라인 쪽에 내 마음에 쏙 드는 이벤트 아카이빙용 노트? 바인더? 다이어리? 같은 무언가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나... 사진도 없어... 바보멍청이슈. ㅠㅠㅠㅠ 부스명 보면서 하나하나 찾아봐야지. 흑심에서도 까렌다쉬에서도 이거 예쁘다 흑흑 다 가지고 싶다 그치만 이것저것 다 사 봐야 쓰는 것만 쓰는 내 승질머리를 잘 알아서 눈물을 머금고 패스. 그러다 보니 또 보이게 된다 파이롯트. 어쩌지? 사? 말아? 사? 말아? 어차피 3만원대인데? 잉크까지 사도 5만원 정도인데? 근데 저 잉크 내가 넣어야 하는데 찍먹한다고 샀던 다이소 만년필 2주에 한 번 겨우 꺼내서 쓰는데 으으으음 하면서 누군가가 만년필 구매하시는 걸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보다가 ㅋㅋㅋㅋ 아 한바퀴 더 돌고도 생각나면 와야지. 하고 다시 구경의 늪으로 감.
뱃지 주는 이벤트 어쩌다 보니 3개 도장을 이미 찍어서 나머지 하나 찾느라 두 바퀴를 더 돌고 B18콜렉토그라프에서 나무 좋아 나무 너무 좋아 다 가지고 싶다 선생님 팜플렛 좀 주세요.... 하면서 미래를 기약하고(로또 되게 해 주라) 문구인 뱃지도 받고 어라 그러다 보니 파이롯트가 또 보이잖아 또 생각나잖아 삼세번인데 세 번째잖아 사야 하잖아. 그래서 프레라 핑크랑 산머루 잉크를 샀어. 잉크도 사실 무채색과 산머루 사이에서 좀 고민했는데 내가 이걸 데일리로 쓸 거냐 아니면 특별한 한두 문장을 필사할 때 쓸 거냐 중에 아무래도 후자에 가까울 것 같아서... 그렇다면 굳이 무채색을 고집할 필요 없을 것 같았고 첫 만년필인데 블랙으로 안 사고 싶어서 ㅋㅋㅋㅋㅋ 그럼 비슷하게 맞춰서 사지 뭐 하구 결정함. 신난다! 나도 만년필 있다! 그리고 귀가길에 도미넌트 인더스트리에서 잉크를 안 사온 걸 후회하게 된다... 시필지 볼 때마다 아른거리는 내 잉크들(사온 잉크나 넣으세요)... 다음 행사 언제죠? 제가 또 갈게요...
세 시간 정도 둘러봤는데 배고픈 줄도 목마른 줄도 힘들 줄도 몰랐고 각오했던 것보다는 구경하기도 그럭저럭이라 괜찮았어. 내년에 또 한다 그럼 또 와야지 생각할 정도로? 다양한 걸 한 공간에서 구경하니까 신나고 좋더라고. 이번엔 비록 10만원도 안 쓰고 왔지만 다음에는 예산을 좀 크게 잡아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내 취향에는 서일페 같은 쪽보다 인벤타리오 쪽이 더 맞는 것 같아. 그리고 잉크가 계속 생각나는 걸 보니 음 큰일났군 같은 생각도 들고... 만년필 씻어가면서 잉크 바꿔넣는 건 귀찮아서 안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만년필을 더 사게 되겠지...
너무 행복한 하루였고 나는 이제 미싱용품 및 부자재들과 문구류를 이고지고 살아야 하게 생겼고 이 와중에 원목 잉크 보관함과 만년필거치대가 탐이 나고 내일은 글입다 팝업에 갈 거야(?) 잉크 너무 좋아 사랑해 앞으로 잘 부탁해(?) 거 참 만년필 요망한 자식 같으니 세필이 좋아서 당연히 세일러 쪽을 첫 만년필로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사각사각보다 슈우웅이 좋았다니 나도 나를 모르겠네... 다음엔 더 두꺼운 닙도 도전해봐야지.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