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 실태조사·차별 금지 지침 필요..인권위 조치 절실
(서울=뉴스1) 최현만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은 후 첫 출근날, 동료들한테 나눠주려고 대추를 가져왔어요. 그런데 동료들이 보균자가 음식을 나눠주면 어떡하냐고 욕을 하더라고요."
서울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던 김명순씨(가명·여)에게 코로나19 감염병보다 무서운 건 주변 동료들의 인격 모독성 발언과 차별이었다. '너 때문에 동일집단(코호트) 격리됐다', '2주 더 있다가 오지 불안하게 왜 벌써 왔냐' 업무에 복귀한 요양보호사 김씨가 들은 말이다.
9월 초 생활치료시설에 입소해 약 17일간 코로나19 치료를 받고 완치 후에도 2주가량 집에 머물렀지만 동료들에게 그는 어느새 '기피대상 1호'가 돼 있었다. 그가 최초로 코로나19를 전파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데도 그는 코로나19 확산 '가해자'라고 낙인찍혔다.
지난 20일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은 김씨를 만났다. 그는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후 요양원이 어느새 지옥이 돼 있었다고 고백했다.
◇"너가 어머니 장례식 가지 말았어야" 비난까지
요양원에서 지난 8월 30일 최초로 확진자가 나와 보건소는 입소자와 근무자를 대상으로 검사를 진행했고 김씨 역시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는 확진 받은 날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라며 충격에 휩싸였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확진 소식보다 더 충격적인 건 주변 동료들의 반응이었다.
동료들은 "너가 너희 어머니 장례식에 가지 말았어야지. 거기서 확진된 것 아니냐"라고 김씨를 비난했다. 장례식은 지난 7월 31일이었고 김씨가 최초로 증상이 발현한 날은 8월 31일로 2주 잠복기를 고려했을 때 다소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김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애도 기간도 충분히 갖지 못해 저는 심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말도 안되는 비난을 들으니까 말문이 막혔다"고 목소리를 떨었다. 치매로 아픈 어머니를 직접 돌봐드리고 싶어 기존 직업을 그만두고 요양보호사가 됐던 김씨가 이렇게 서러웠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공개된 김씨의 동선도 비난의 이유가 됐다. 김씨는 보건소에 지난 8월31일 처음으로 증상이 나타났다고 보고했지만 8월 28일부터의 동선이 공개됐다. 보통 증상이 발현하기 이틀 전부터의 동선이 홈페이지 공개되는데 증상 발현일이 잘못 기재돼 하루 치 동선이 더 공개된 것.
김씨는 "오피스텔 분양을 받아서 잔금 처리를 위해 대출을 받으려고 은행을 이곳저곳 돌아다녔는데 그게 하필이면 8월 28일이었다"며 "보건소의 착오로 하루 치가 더 공개돼 왜 이렇게 많이 돌아다녔냐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고 밝혔다.
요양원에 복귀해 평소처럼 일하고 싶다는 김씨의 소박한 꿈은 산산조각나고 있었다. 김씨는 "언젠가는 동료들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었는데 기대가 짓밟히고 있다"며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상담 전화도 무용지물"…차별 금지 지침 있어야
그는 완치 판정을 받고 정부로부터 상담 전화가 두 차례 와 그가 겪고 있는 차별에 대해 토로했지만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한다.
김씨는 "상담 전화가 왔지만 내 얘기를 들어주는 데서 그치고 피드백이 전혀 없었다"며 "심리적으로 더 힘들면 어디 병원에 가라고 안내한다거나 회사에 확진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실태조사를 통해 확진자가 겪는 차별 정도를 파악하고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직장에는 '차별 금지 지침'을 마련해 안내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으나 국가인권위원회는 관련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차별과 혐오를 줄이는 건 국가의 중요한 책무"라며 "병에 걸린 사람들이 사회적 지탄이 아닌 배려와 보호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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