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단한 신뢰를 얻는 방법, 2025 베스트 시리즈 신인 남자배우 추영우를 만나다
1999년생, 데뷔 5년차. 이름에 가을을 품은 추영우에게 2025년은 수확의 계절이었다. 올해 공개된 작품은 <옥씨부인전><중증외상센터><광장><견우와 선녀>로 총 네편. 출연작이 한해에 몰리는 일은 흔한 풍경이지만 이를 예사롭지 않은 결과로 만든 건 분명 그의 역량이다. 사극(<옥씨부인전>), 메디컬 드라마(<중증외상센터>), 누아르(<광장>), 청춘물과 오컬트(<견우와 선녀>)까지 매번 다른 장르에서 주연급 역할을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추영우는 자신의 신뢰성과 활용력을 또렷이 증명해 보였다. <씨네21>이 2025년에 진행한 ‘올해의 베스트 시리즈’에서 그를 올해의 신인 남자배우로 선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추영우의 2025년 마지막 작품이자 첫 장편영화 데뷔작인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의 개봉을 앞둔 어느 겨울 낮, 그를 만나 상징적인 한해를 짚어봤다. 마르지 않는 호기심을 가지고 다종다양한 취미를 즐기며 현재에 집중한다는 추영우는 이미 다음 계절을 향한 씨앗을 성실히 심고 있었다.

- 첫 아시아 팬미팅 투어 ‘Who (is) Choo?’가 현재진행형이다. 9월 서울을 시작으로 방콕·타이베이·오사카까지 4개 도시를 찾아 팬들을 만났다. 각 도시의 객석 분위기가 어떻게 달랐나.
서울은 시작이라 설렜다. 눈앞에서 팬들을 마주하니 사랑이 실체를 가진 무언가처럼 느껴져 감격스러우면서도 겸허해졌다. 집에 돌아와서도 떨림이 가라앉지 않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방콕의 분위기는 그곳의 날씨처럼 뜨거웠다. 팬들의 리액션이 다채로워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타이베이는 세 번째 도시라 진행이 몸에 익기도 했고 앞뒤로 여행하며 쉬는 시간을 가진 덕분에 편안했다. 오사카는 예상 밖이었다. 일본 팬들은 수줍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영우! 영우!”라는 큰 환호 덕분에 흥이 났다. 이제 남은 건 12월 말 도쿄다. 새로운 무대를 보여드리기 위해 틈틈이 준비하고 있다.
- 출연작 네 편이 2025년에 연달아 공개되며 고르게 사랑받았다. 의미를 두지 않고 넘기기 어려운 해일 것 같은데.
얼떨떨하다. <중증외상센터>는 2023년, <옥씨부인전>은 2024년에 촬영해 사실 시간차가 꽤 있다. 정작 2025년은 촬영으로 빡빡하게 보낸 해는 아니라 너무 여유 부리는 게 아닐까 하는 조바심도 있었는데 열심히 한다고,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그동안 넘치게 받은 격려를 2026년의 에너지로 쓰면서 기대에 보답하고 싶다.
- 공개순으로 작품을 돌아보며 추영우의 한해를 돌아보고 싶다. 1월 말 종영한 <옥씨부인전>에서는 1인2역을 맡았다. 성정체성과 단주로 있는 애심단을 숨긴 성윤겸이 비밀스러운 은둔자였다면, 천승휘는 다정하고 순정적인 로맨티스트에 가까웠다. 또렷하게 구별되는 두 인물을 만들기까지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나.
접근법은 심플했다. 작품을 두 편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윤겸과 승휘를 어떻게 다르게 보이게 할지에만 집중했는데 그럴수록 인물의 주변부를 맴돌고 있다는 답답함이 있었다. 그래서 둘을 딱 떼어놓고 개별 관찰하는 걸로 방법을 바꿨다. 그러니까 스스로 느끼기에도, 감독님이 보시기에도 두 인물의 차이가 생겨났다. 1인2역이라는 난도 높은 과제를 하면서 크게 느낀 바가 있다. 나는 늘 촬영이 끝나갈 무렵에야 내가 맡은 캐릭터를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연애처럼 말이다. 왜 연애도 헤어질 때쯤 ‘우리는 이런 사이였고 그 사람은 내게 이런 존재였구나’라고 깨닫지 않나. 깨달음의 시점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려고 늘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다만 위안이 되는 건 이런 고민을 선배님들에게 털어놓을 때마다 “나도 그래”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는 점이다.
- 16회에서 윤겸이 승휘에게 “나 대신 행복하게 살아달라”라며 희생하는 감옥 신은 두 남자가 마주하는 정점이었다. 마지막 회다보니 이 장면의 비하인드가 충분히 알려지지 못했는데 어떻게 임했나.
승휘를 연기할 때는 윤겸을 향한 큰 분노를 숨기지 않으려고 했다. 윤겸은 아내 태영과 가족이 그토록 찾았는데도 너무 늦게 모습을 드러낸 거니까. 윤겸의 핵심 감정은 염치없음과 절박함이었다. 잘못한 걸 잘 알면서도 가족을 위해 승휘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잘 전달됐으면 했다. 사실 이 신은 잘했다는 칭찬을 꽤 들은 신이었는데 스스로는 아쉬움이 남았다. 준비한 걸 다 할 수는 없는 곳이 현장이라는 걸 알면서도 욕심을 버리는 게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러려고 한다. 동료들을 믿고 다음 신으로 빠르게 넘어갈 줄 아는 것이 배우의 중요한 태도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대신 신 들어가기 전까지 감독님에게 질문한다. 세상 모든 게 궁금한 아이처럼 말이다. 귀찮게 해드려 죄송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즉흥의 아이디어가 많아 어쩔 수가 없다.

- 1월24일에 공개된 <중증외상센터>는 설 연휴 시청자를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호응까지 얻었다. 구성원으로서 작품의 폭넓은 인기 요인을 무엇이라고 보나.
나 역시 그 점이 궁금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은 점을 좋아해주신 것 같다. 선배, 동료 배우들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장에서 모든 배우의 연기가 맛깔나서 지켜보는 재미가 컸다. ‘사이다 장면’이 많고 속도감이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는 점도 한몫했고. 흥미로운 건 촬영할 때는 특별히 대사를 빠르게 치거나 빠르게 움직인 게 아닌데 편집을 통해 작품에 속도감이 생겼다는 점이다. 촬영 이후에도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돼 한 작품이 완성된다는 걸 실감했다.
- 오디션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그 캐릭터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합격의 비결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중증외상센터> 오디션장에 준비해간 ‘양재원다움’이 있었다면.
보통 깐깐하게 준비하는 편인데 이 작품은 예외였다. 재원이와 내가 성격이 비슷해서 평소 내 모습을 보여드리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닮은 점이 많아도 내가 될 거라는 자신감은 없었다. 어떤 캐릭터든 나보다 더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늘 하는데 재원이는 그 걱정이 꽤 컸다. 불안은 촬영 중간중간, 나를 선택해준 이도윤 감독님의 신뢰를 느낄 때마다 희미해졌다.
- 재원이 백강혁을 수술하기로 결정하는 마지막 회 후반부 장면에서는 어느새 스승을 닮은 제자의 얼굴이 보였다. 어리벙벙하던 초반의 모습은 사라지고 줏대 있는 의사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장면에서 감독님이 최대한 백강혁의 색깔을 내달라고 주문하셨다. 재원에게 분기점이 되는 지점이라 신경을 많이 썼던 기억이 난다. 감독님이 항상 해준 말씀이 떠오른다. “<중증외상센터>는 양재원의 성장 스토리다. 그러니 진심을 다해라.” 그 말이 내겐 일종의 지표였고 나를 책임감 있게 행동하게 했다.
- 백강혁 색깔을 찾기 위해 ㅈㅈㅎ 배우를 관찰하는 시간도 꽤 길었겠다.
관찰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다. 좋아하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 (웃음) 현장에서 선배님만 쳐다보고 따라다니며 질문을 수없이 했다.

- 조직의 후계자인 금손 역을 맡은 <광장>을 통해 본격 누아르에 입문했다. 누아르는 젊은 남성배우들에게 동경의 장르로 불리곤 하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어땠나.
그래서 재밌었다. 어릴 적에 아버지랑 <두사부일체>나 <우아한 세계>같은 영화를 TV로 보며 돈가스를 먹던 기억이 나기도 했다. 누아르 세계에 입성할 기회가 이르게 찾아왔다는 점에서 영광이었다. 동시에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누아르는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고 원숙해졌을 때 해야 하는 장르더라. 지금의 내가 욕심낼 게 아니다.
- 기준과 일대일로 맞서는 7회 회장실 시퀀스는 총과 피가 오가는 금손의 최종장이자 클라이맥스다. 카타르시스와 부담감도 컸을 것 같다.
ㅅㅈㅅ 선배님을 압도해야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역부족이기도 하고 금손에겐 그럴 만한 깜냥도 없다. 여기서 기준을 맞이하는 금손을, 허락 없이 방문을 열어버린 엄마에게 짜증을 내는 아이처럼 준비해갔는데 그걸 표현하는 순간에 쾌감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금손에게서 느꼈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감각을 끝까지 가져가고 싶었다.

- 반면 <견우와 선녀>의 고등학생 견우는 떨어지지 않는 불운을 제 탓으로 여기며 감정을 속으로 삭이는 유형인데 여기서 오는 고충도 컸겠다.
견우의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는 게 매번 어려웠다. 견우에게 빙의한 악귀 봉수는 견우와 정반대라 즐기면서 연기했다. 다른 분들 눈에도 그게 보였는지 작가님이 봉수 분량을 늘리셨고 현장에서는 카메라감독님이 “나는 네가 봉수 연기할 때가 좋다”며 엄지를 올리셨다.
- 배우의 아이디어가 많이 반영된 현장이었다고.
친구 지호와 함께하는 액션신들은 강윤이와 상의해 거의 직접 짰다. 봉수의 자잘한 움직임도 그때그때 다양하게 만들었다.
- 연극영화과를 준비하며 독하게 배운 애크러배틱과 현대무용이 신체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준 걸까.
‘배우는 무조건 몸을 잘 써야 한다’는 주의라 지금도 계속 훈련하고 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볼 때도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다. 신체 연기에 더 집중하는 이유는 화술이나 대사 연기가 훨씬 더 긴 시간과 내공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가끔 선배들의 연극을 보면 무대 위에서 30분 내내 대사만 주고받는데도 그렇게 몰입될 수가 없다. 내가 그 경지에 오르는 건 아득해 보여서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려고 한다. 캐릭터마다 걸음걸이를 만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견우가 몸을 살짝 뒤로 기울인 채 걸었다면, 봉수는 상체를 앞으로 조금 빼서 걸었다. 재원이는 가운 포켓에 손을 넣고 걷는 게 기본이었고. 윤겸은 성격처럼 꼿꼿하게, 승휘는 보폭을 크게 잡고 건들거리며 걸었다, 금손은 거만하게 걷는데 여기서 포인트는 어른인 척하는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거였다.
- 2025년 추영우의 캐릭터들을 돌아보면 투박하게나마 ‘수련하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을 수 있다. 예인 승휘와 무인 윤겸, 의사 재원과 후계자 금손, 양궁 유망주 견우까지 모두 목표를 위해 긴 시간을 들이는, 끈기와 집념을 지닌 인물들이다. 스스로에게도 이런 면모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무언가에 확 불타올랐다가 금세 식는 편이 아니다. 시작하면 일단 곁에 두고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취미도 많다. 그림 그리기와 영화 보기, 춤과 노래, 옷 쇼핑과 패션 공부, 요리, 복싱, 헬스…. 시간 날 때마다 그때그때 끌리는 것들을 골라서 한다.

- 차기작 이야기를 해보자. 12월24일에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가 개봉한다. 기억상실증인 여고생과 그의 하루를 지키고 싶은 남고생의 러브 스토리인데, 연말 관객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일까.
보면서 ‘내게도 저렇게 풋풋하던 때가 있었지, 저런 식의 사랑을 했던 적이 있었지’ 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많은 관객이 함께 보고 각자의 추억을 나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 이 작품에서 맡은 캐릭터의 이름이 김재원이다. <중증외상센터>의 양재원과 같은데, 김재원을 양재원과 비교해보자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진 친구라 양재원보다 훨씬 조심스럽다. 더 섬세한 감정연기가 필요한 역할이기도 했다.
- 개봉일을 보니 좋아하는 크리스마스영화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고전적이다. 크리스마스면 <러브 액츄얼리>와 <패밀리 맨>이 보고 싶어진다. 크리스마스영화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영화를 말하자면 애덤 샌들러와 짐 캐리의 코미디를 빼놓을 수 없다. 뉴욕이 배경인 영화도!
- 새로 들어가는 드라마 <연애박사>의 연출자가 안판석 감독이다. 이 작품에서 맡은 박사과정생 민재는 병으로 수영선수의 꿈을 접고 어렵게 로봇공학이라는 새 진로를 찾는다. 견우만큼이나 아픔을 지닌 인물이 아닐까 짐작한다.
잔잔한 견우에 비하면 민재는 감정 기복이 훨씬 크다. 내 생각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진정한 질풍노도의 시기 같다. 성인이 되어 이것저것 시도해보면서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하고, 하고 싶은 걸 해보려 하면 경제적인 부분이 발목을 잡아 자신을 컨트롤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민재는 그 한가운데에 있는 인물이다.
- 2026년이면 20대 후반에 접어든다. 이 시기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으로 장르의 스펙트럼을 넓혔고 공유와 현빈 배우는 각각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과 <시크릿 가든>이라는 대표작을 만들었다. 남은 20대를 어떤 작품으로 기록하고 싶나.
예시가 쟁쟁한데. (웃음) 정통 멜로를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연애박사>로 그 꿈을 이루고 있지만 기회가 또 와도 좋겠다. 사극을 한번 더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옥씨부인전>을 통해 경험을 쌓았으니 다음에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백하자면 ‘앞으로 이런 배우가 돼야지, 이런 이미지를 내세워야지’ 하는 큰 그림이나 전략이 없다. 현실에 충실하자는 쪽이다. 지금을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나 역시 앞의 예시와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인터뷰가 끝나면 <연애박사> 대본을 한번이라도 더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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