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open.spotify.com/episode/2FZksoSDcxYR37Kc240ta6
번역은 담캅펌 https://m.cafe.daum.net/chajunhwan/sVyl/32
제목은 Are You Chasing the Wrong Olympic Gold? 인데 준환이 쇼트를 보고 감명받아서 이걸 주제로 팟캐를 올리셨네 25분 분량인데 못본 백성들 있으면 같이 보자 감동적이야
문학에는 올림픽 금메달이 없습니다. 작가가 운동선수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라고 해서 운동선수인 것은 아닙니다. 타자 빨리 치기 대회나 초고 완주 레이스 같은 것도 없죠. 하지만 제가 함께 일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저마다의 올림픽 금메달을 쫓고 있습니다. 에이전트와 계약하고, 출판 계약을 맺고, Barnes and Noble 서점 매대 끝 명당에 책이 진열되고, 어쩌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것과 같은 원대한 성취를 갈망합니다. 여러분의 글쓰기가 여러분을 올림픽으로 데려다 주지는 않겠지만, 자신 그리고 다른 작가들과 경쟁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환상적인 일입니다. 창의적 잠재력의 한계를 밀어붙이고, 높은 기준을 세운 뒤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만족스럽고 보람찬 일이니까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숨겨진 함정입니다. 우리가 경쟁해서 얻으려는 성취들은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것의 대역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에이전트, 계약,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는 탁월함과 인정, 그리고 우리가 쓴 글을 사랑해 주는 독자와의 교감을 대신하는 상징일 뿐입니다. 즉, 탁월함에 도달하지 못하고 독자와 연결되지 않아도 에이전트와 계약을 따내는 것이 가능하며 반대로 에이전트나 성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가장 원하는 탁월함과 독자와의 교감을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한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선수에 대해 열변을 토해보려 합니다. 아마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선수는 아닐 겁니다. 그는 경기 끝에 시상대에 서 있던 선수도 아니고, 시상대에 설 것으로 기대됐으나 그러지 못해서 화제가 된 선수도 아닙니다. 이번 밀라노 코르티나 올림픽 남자 피겨 스케이팅에는 많은 드라마가 있었지만, 이 스케이터는 그 어떤 드라마의 중심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그곳에서 멋진 스케이팅을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의 스케이팅은 제가 가장 많이 반복해서 본 장면이며, 이번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장면입니다. 왜 그런지, 그리고 제가 올림픽 금메달이 아닌 어떤 기준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저는 기획 편집자이자 북 코치인 앨리스 서들로입니다. 저는 수정 과정의 모든 순간을 사랑합니다. 편집은 우리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하는 창의적인 용광로입니다. 그리고 글쓰기 여정에서 가장 도전적인 순간들을 선사하기도 하죠. 만약 여러분이 초고를 한두 번, 혹은 세 번까지 썼지만 여전히 이야기의 미개발된 잠재력을 찾고 있다면, 이 팟캐스트는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함께 다음 원고를 편집하는 어렵고도 즐거운 작업을 파헤쳐 봅시다.)
저는 차준환 선수의 쇼트 프로그램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저는 피겨 스케이팅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에만 스포츠에 관심을 가졌다가 다시 2년 동안 잊어버리는 보통의 팬들처럼, 저 역시 피겨 스케이팅을 아주 즐기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도 남자 피겨 스케이팅을 보고 계셨다면, 제가 여러분이 예상하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건 일리야 말리닌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남자 프리 스케이팅에 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을 2026년 2월 10일 화요일, 남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이 열렸던 날로 데려가려 합니다.
저는 피겨 스케이팅에 있어서는 완벽한 외부인입니다. 아는 것이 전혀 없죠. 제게는 모든 스케이트 경기가 보는 것만으로 즐거웠습니다 모든 스케이터가 믿을 수 없는 기술과 운동 신경을 너무나 쉽게 보여주었거든요. 누군가 대놓고 넘어지지 않는 이상, 저는 누가 실수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제 눈엔 그저 환상적이었죠. 대개 저는 타라 리핀스키와 조니 위어의 해설에 의존해 무엇이 훌륭하고 무엇이 그저 그런지를 이해해야 했습니다. 어떤 트리플 악셀이 4분의 1바퀴 덜 돌아갔는지, 혹은 스케이터가 날의 양쪽 중 어느 한쪽에 무게를 단단히 싣지 못했는지 같은 것들 말이죠. 그게 무슨 뜻인지는 묻지 마세요. 피겨 스케이트 날의 사진과 도표를 찾아봤는데도 여전히 모르겠고, 아마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선수가 기술 점수를 잃었다는 건 알고, 그게 안타까운 일이라는 정도는 압니다.
한 연기 도중 조니는 선수가 자신이 선택한 노래를 듣는 것은 좋아할지 몰라도, 그의 스케이팅이 음악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그 노래가 선수의 개성이나 빙판 위에서의 자기표현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언급했습니다. 조니가 말하기 전까지 저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남은 연기 동안 아주 주의 깊게 지켜보았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동작들은 기술적으로 정확했고 음악의 리듬과도 맞았지만, 그 스케이터는 형언하기 힘든 미묘한 방식으로 노래에 어울릴 만큼 장악력있게 스케이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스케이팅을 깊이 연구한 사람만이 식별할 수 있는 아주 미세한 차이였습니다. 하지만 조니가 말하기 전에도 저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준환이 나타났습니다. 차준환은 24살의 한국을 대표하는 스케이터입니다. 그는 에지오 보소의 "Rain in Your Black Eyes"에 맞춰 스케이트를 탔습니다. 공교롭게도 저는 지난주 내내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엄청나게 아름다운(epically beautiful) 쇼트 프로그램입니다." 준환이 스케이팅을 시작하자 조니가 말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예술적인 스케이터 중 한 명이고, 때로는 최고의 점퍼이기도 하지만 기복이 있을 때가 있죠. 그가 이 쿼드 살코를 성공시킨다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보세요.”
그는 해냈습니다. 너무나 우아하게 해내서 아무것도 모르는 저조차도 그것이 탁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거장의 손안에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화면에 기술 점수가 떴을 때 그 느낌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는 그 점프를 너무 잘 수행하여서 3점 이상의 가산점을 받았습니다. 연기는 계속되었습니다. 점프, 점프, 스핀, 점프.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피겨 스케이터분들이 제 이런 단순한 설명을 들으신다면 아마 실소를 터트리시겠죠. 하지만 저는 그가 모든 요소를 하나하나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을 경외감 속에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완성형(complete) 스케이터입니다." 그가 마지막 점프를 마치고 스텝 시퀀스에 들어가자 타라가 말했습니다. "그의 스핀과 스텝에서 볼 수 있죠. 그는 그저 미끄러지듯 움직여요, 얼음 위를 마치 우유처럼 부드럽게 움직입니다." 저 역시 그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스텝 시퀀스 시작 부분에서 내딛는 두 걸음, 말 그대로 그냥 걷는 것 같은 동작인데, 이 얼마나 우아하고 부드럽고 음악적인지 감탄하며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았습니다. 아마 프로그램 전체에서 가장 쉬운 동작 중 하나였겠지만, 그 동작조차 그의 전문성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음악이 고조되자 그의 스텝 시퀀스도 함께 고조되었습니다. 그는 완벽한 음악성과 함께 공중으로 뛰어올랐습니다. 템포가 빨라지자 그는 걷고, 달리고, 빙판 위를 질주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스핀을 돌았고, 음악과 그의 자세는 똑같이 승리감에 차 있었습니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스핀에서 그의 오른다리와 팔은 별처럼 펼쳐졌지만, 저는 하늘을 향해 천천히 뻗는 그의 왼손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피아노 건반의 강한 음과 함께 그는 무릎을 빙판에 꿇으며 프로그램을 끝마쳤습니다. 환상적이었습니다. 저는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조니와 타라가 의견을 나누기도 전에 저는 몇 번이고 다시 보기 위해 영상을 뒤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해설자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도록 영상을 계속 틀어두었습니다. "세상에, 정말 좋은(good) 쇼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수준 높은 스케이팅이었습니다. 기술 점수와 구성 점수, 즉 예술 점수가 섞여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는데, 그는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완성된 패키지입니다. 그것이 그가 지난 올림픽에서 5위를 한 이유이죠." 타라가 말했습니다. "이 스포츠에서 진정으로 도전하려면 두 가지를 모두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쿼드러플 점프가 너무 과한 것은 아닌지, 우리 스포츠를 특별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앗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대화가 항상 있죠. 하지만 높은 수준에서 경쟁하는 모든 선수는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니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다음 코멘트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준환은 아름답고 분위기 있는 스케이터입니다. 그의 연기는 정말로 당신을 하나의 여정으로 데려가죠. 그리고 당신이 그 연기에 몰입되어 있다고 느낄 때, 그것은 훨씬 더 특별해집니다. 심판들은 선수들의 미래와 메달 같은 것들을 결정하고는 있지만, 결국 그들도 객석 맨 앞줄의 관객일 뿐이고 그들도 그런 연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저를 책 이야기로 다시 데려옵니다. 지금 제 머리 속에는 네 가지 생각이 떠다니고 있습니다.
첫째, "세상에, 정말 좋은(good) 쇼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좋은’? ‘좋은’이라고요? 운동 실력과 예술성이 결합된 그 놀라운 연기는 아주 높은 점수로 이어졌고, 준환은 단숨에 쇼트 프로그램 1위로 뛰어올랐습니다. 타라가 그 연기를 묘사하기 위해 찾아낸 최선의 말이 고작 “좋았어요”였다니요. '좋은'이라는 단어는 너무 불충분하고,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그것은 무시하는 듯하고, 흔해 빠졌으며, 평범하고, 기본 중의 기본이자 최소한의 필요 조건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대회에서든, 하물며 올림픽이라면 더더욱, '좋은' 수준이 되는 것은 경쟁에 참여하기 위한 기본 입장료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타라가 느꼈을 언어의 한계를 똑같이 느낍니다. 저는 지난 몇 달, 혹은 몇 년, 어쩌면 10년 동안 제가 작가들을 도와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하려고 애써왔습니다. 저는 특정 장르를 전문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장르라면 분류하기 쉽거나 적어도 더 쉬웠겠죠. 저는 '좋은 책'을 전문으로 합니다. 괜찮은 것을 가져다가 좋게 만들거나, 좋은 것을 가져다가 훌륭하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그게 대체 무엇일까요? 무엇이 기본과 탁월함을 가르는 것일까요? 그것은 너무나 분명하게 실재하는 동시에 정의를 거부할 만큼 거품처럼 흩어져 버려서 우리에게 '좋은'과 같은 진부한 단어만을 남깁니다. 그래서 타라, 당신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것은 '좋은' 쇼트 프로그램이었고, 저는 작가들이 '좋은' 책을 정교하게 다듬는 것을 돕습니다.
둘째, 그것은 기술 점수와 구성 점수, 즉 예술 점수가 혼합된 것입니다. 기술 점수는 제가 이해하기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연기의 모든 요소에는 난이도를 반영하는 기본 점수가 있습니다. 스케이터는 요소를 매우 잘 수행하면 기본 점수에 추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잘 수행하지 못하면 감점을 당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미리 정해진 객관적이고 측정 가능한 기준에 따라 동작을 잘 수행하면 점수를 얻습니다. 점프를 한 후 완전히 회전하지 못한 채 몇 도 모자라게 착지하면 점수를 잃게 됩니다. 그러면 TV 화면에는 착지 장면의 정지 화면과 함께 놓친 각도를 정확히 보여주는 선과 화살표 주석이 나타날 것입니다. 매우 측정 가능하죠.
하지만 프로그램 구성 점수(PCS)는 더 모호합니다. 그것을 수치화하기 위해 화면에 그릴 각도 같은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국제빙상연맹이 이것조차 객관적이고 측정 가능하게 만들려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수는 세 가지 측면을 평가합니다. 첫째는 구성(composition), 즉 음악과 관련하여 프로그램이 어떻게 설계되었는 가입니다. 둘째는 표현(presentation), 즉 프로그램이 어떻게 수행되었는 가입니다. 셋째는 스케이팅 기술입니다. 각 항목 안에는 수많은 기준이 있습니다. 요소 간의 연결성, 표현력, 흐름, 신체 컨트롤 같은 것들 말이죠. 네, 우리는 누군가가 신체 컨트롤을 하며 움직이는지 아닌지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분법적인 형태인 '있다/없다'는 명확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표현력의 단계를 측정할까요? 어떻게 흐름을 수치화할까요?
저는 인터넷에 구성 점수가 주관적인지 물어보았고, 이 레딧 스레드를 찾았습니다. 한 사용자가 묻습니다. "그들은 그냥 프로그램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로 순위를 매기는 건가요, 아니면 구성 점수에 영향을 미치는 무언가가 있나요?" 그러자 다른 사용자가 대답합니다. "하하하하하, 그건 아주 긴 논쟁거리죠. 스케이터, 심판, 스케이터의 국적, 대회 등에 따라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옛날 글들을 검색해 보면 구성 점수의 세부 사항과 왜 그것이 까다로운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댓글에 링크된 IJS 규정을 읽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게 되어 있는지 이해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더 깊이 조사하는 것이 조금 두렵습니다. 질문을 던지거나 '주관성'이라는 단어를 속삭이는 것만으로도 벌집을 건드리는 것과 같을까 봐요. 저는 결코 피겨 스케이팅 채점 시스템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럴 만큼 아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정말이지, 저는 피겨 스케이팅이 책을 포함한 모든 창의적인 매체와 동일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관찰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예술성을 어떻게 측정할까요? 타라가 말한 '좋은'을 어떻게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정의 가능한 것으로 정제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좋은' 것이란 무엇일까요? 결국 우리는 무엇을 측정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엄청난 기술적 요소가 있습니다. 각도와 선과 회전으로 측정 가능한 진정한 객관적이고 수치화할 수 있는 기술이 있습니다. 쿼드러플 악셀은 싱글 토룹보다 훨씬 도전적입니다. 완전한 회전을 마치는 것은 4분의 1바퀴 모자라게 착지하는 것보다 기술적으로 탁월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부드럽고, 거의 영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무언가도 있습니다. 준환이 음악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타이밍에 공중으로 뛰어올랐을 때 저는 숨이 턱 막혔습니다. 그것은 타이밍의 정밀함 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특정한 밝은 피아노 박자가 홉(hop)을 요구한다거나, 몇 순간 전의 부드럽고 긴 음표들에는 두 번의 매끄러운 활주와 팔의 당김이 필요하다고 결정한 예술적 선택이기도 합니다. 어떤 동작을 수행할지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특정 경험을 창조하기 위해 그것들을 어떻게 수행할지에 대한 아주 작은 디테일, 즉 뉘앙스입니다.
제가 보기에 노래 선택이 어긋났던 스케이터는 기술적으로는 훌륭하게 스케이팅했습니다. 그는 기준에 따라 복잡한 동작들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 노래에 대해 내린 예술적 선택은 그가 움직이는 방식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완벽하게 합법적인 노래 선택이었고, 그는 노래 안에서 논리적인 방식으로 연기의 구성 요소들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어떠한 생동감, 우아함, 조화가 빠져 있었습니다. 그의 기술 점수는 완벽했을지 몰라도, 그 연기에는 여전히 마음(heart)이 조금 부족했을 것입니다.
저는 책도 이와 같다고 믿습니다. 훌륭한 이야기를 정말, 정말 잘 들려주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기술적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술적인 것들만 측정한다면, 우리는 그 마음을 간과하게 됩니다. 조니가 말했듯, "이 스포츠에서 진정으로 도전하려면 두 가지를 모두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쿼드러플 점프가 너무 과한 것은 아닌지, 그것들이 우리 스포츠를 특별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앗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대화가 항상 있죠. 하지만 높은 수준에서 경쟁하는 모든 선수는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쿼드러플 악셀과 음악적 감수성 및 표현력. 기술적으로 훌륭한 이야기 구조와 예술적인 마음까지 말이죠.
셋째, 준환은 당신을 그와 함께 하나의 여정으로 데려갑니다. 당신은 그 연기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느꼈습니다. 준환의 첫 번째 점프부터 느꼈죠. 어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이전의 그 어떤 스케이터에게서도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의 연기에 몰입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가 지금까지 본 나머지 경기들에서도 그런 경험은 다시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단순히 옆에서 그의 점프가 성공하기를 응원하며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를 그 순간, 그 자리에 있게 한 모든 개인적, 정치적 맥락이나 그가 이기고 지는 것이 그에게 무엇을 의미할지 따위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보는 걸 좋아하지 않고 그들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계속 스트레스 받는 게 싫어서 스포츠를 진정으로 즐겨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는 걸 보지 않으려고 미식축구를 할 때는 아예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슈퍼볼 기간에는 올림픽 컬링을 보며 시간을 보냈죠. 피겨 스케이팅이나 체조, 스키 점프 선수가 넘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아예 보지 않기로 선택한 적도 있습니다. 린지 본의 활강 스키 추락 사고 영상도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연기 동안 저는 준환이 넘어질지 말지 걱정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의 첫 움직임부터 저는 그를 운동선수이자 예술가로서 깊이 신뢰하게 되었고, 그가 다음에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 경외감 속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다른 모든 스케이터의 연기 동안에는 그들의 상황 때문에 감정적인 고조와 저하를 느꼈습니다. 결국 부모님을 기리며 스케이팅하는 막심 나우모프의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의 작은 흔들림에도 심장이 조마조마해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며, 그가 성공시킨 모든 점프를 축하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준환의 연기에서 제가 느낀 감정의 고조와 저하는 연기 그 자체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마치 나를 하나의 이야기로 초대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승리라는 결말로 향하는 마법에 걸린 숲속의 신비로운 여행 같았습니다. 연기 자체가 서사를 가진 것처럼 느껴졌고, 저는 그것에 참여하고 경험하며 그 반대편으로 나왔을 때 조금 달라진 사람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바로 좋은 책을 만드는 우리 같은 장인들이 독자들을 위해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정서적 경험, 즉 참여하는 여정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독자들을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여 우리가 설계한 감정의 고저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따라오며,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그들도 똑같이 깊게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을 정말, 정말 잘 해냈을 때, 독자들은 우리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잊습니다. 작가인 당신을 신경쓰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을 너무나 깊이 신뢰하기 때문에 당신이 만든 여정에 완전히 빠져드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신이 구축한 대체 현실이 그들이 앉아 있는 의자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지도록 자신을 맡깁니다.
좋은 것이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그것을 측정할까요? 진정으로 탁월한 것과 단지 기술적으로 정확한 것을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질문을 고민하며 수년을 보냈습니다. 바로 지금, 2026년 2월의 이 순간, 저는 그것이 이것이라고 믿습니다. 탁월하고, 정교하며, 가장 강력하고도 위대한 '좋음'은 관객에게 정서적 경험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어떤 정서적 경험을 선사하고 싶은지 선택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아주 작은 기술적 정밀함 하나하나, 모든 예술적 감각, 살아있는 마음의 모든 고동을 쏟아부어 다른 한 인간을 그 정서적 경험 속으로 안내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을 빚어냅니다. 그리고 올바른 관객이 올바른 예술 작품을 만났을 때, 그들은 그 정서적 경험에 너무나 깊이 몰입하여 자신이 그 안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그것이 우리가 책을 읽으러 오는 이유 아닌가요? 그것이 우리가 독자들을 위해 만들고 싶은 것 아닌가요?
그리고 넷째, 준환은 이곳에 혼자 온 것이 아닙니다. 올림픽은 코칭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무대입니다. 빙판 위에서 각 스케이터는 혼자 경쟁합니다. 오직 선수뿐이죠. 올림픽 규격 경기장의 정중앙, 심판과 관객의 모든 시선이 집중된 그곳에 선 유일한 형체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스케이터도 링크에 혼자 오지 않으며, 혼자 떠나지도 않습니다. 빙판에서 내려오자마자 그들은 코치를 만납니다. 그리고 코치와 선수는 함께 키스 앤 크라이 구역에 앉아 결과를 기다립니다. 준환이 어떻게 노래를 골랐는지, 어떻게 안무를 만들었는 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도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해낸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압니다. 저는 그가 코칭 안무가, 즉 그의 독특한 강점을 보여줄 수 있도록 기술과 예술성을 혼합하는 데 도움을 줄 전문가들의 지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그 일을 해냈을 것이라 상상합니다. 저는 그가 거실에서, 혹은 빙판에서조차 혼자 유튜브 영상을 보며 트리플 악셀을 독학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훈련 세션마다 그가 외부의 피드백 없이 어디가 잘못되고 있는지 혼자 퍼즐을 맞추며 자아비판의 늪에 빠져 앉아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모든 단계, 모든 과정에서 그의 코치인 지현정 코치는 바로 그곳에서 그와 함께하며, 무엇이 잘 작동하고 있고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미세한 조정을 해야 하는지 짚어줄 것 입니다.
그가 올림픽 빙판에 발을 딛기 직전, 그녀는 그에게 마지막 격려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그가 빙판을 내려오자마자 그녀는 다시 그의 곁에서 그를 껴안고 키스 앤 크라이 구역으로 함께 걸어가며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습니다. 그의 코치는 그가 결과를 해석하고 그 결과로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을 도울 것입니다. 코치는 그의 연기 매 순간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 다음 대회를 위해 그를 한 단계 끌어올릴 맞춤형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다른 어떤 종목으로 채널을 돌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올림픽 선수 뒤에는 그들을 위대함으로 인도하는 코치가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이라고 해서 왜 달라야 할까요?
어떤 기술에서든 탁월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마스터 코칭이 필요합니다. 길을 보여주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미세한 뉘앙스에 대해 정확한 피드백을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고칠 수 없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통해 기초적인 기술을 쌓는 것이 우리를 꽤 멀리 데려다줄 수는 있지만, 결국 우리는 무엇을 조정하고 다듬어야 할지 알려줄 전문가가 필요한 정체기에 도달하게 됩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이 모든 한국 이름들의 발음을 배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마스터 코칭 없이 유튜브로만 배운 사람의 발음이 어떤 지 듣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피드백을 주는 대상이 "그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부분은 정말 중요합니다. 이번 주에 피겨 스케이팅에 대해 아는 체하며 떠드는 사람이 저뿐만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차준환이 이 말을 들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고, 그건 적절한 일입니다. 그는 제 피드백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저의 아마추어 같은 관찰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에게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말할 수는 있지만, 좋은 피겨 스케이팅을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무엇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저 배경지식 없이 제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것만 알 뿐이죠.
글쓰기에도 아마추어 피드백은 넘쳐납니다. 작가 그룹과 베타 리딩은 그런 피드백으로 가득하죠. 하지만 만약 여러분의 책이 독자들에게 제가 차준환의 연기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을 느끼게 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옆에서 아는 체하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지현정이나 타라 리핀스키 같은 전문가가 그 이유를 알려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제 이 이야기의 끝에 도달했습니다. 2026 밀라노 코르티나 올림픽 남자 피겨 스케이팅 경기가 끝났습니다. 결과가 나왔죠. 결국 차준환은 쇼트 프로그램에서 6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잠시 동안 1위 자리를 지켰지만, 다른 다섯 명의 스케이터가 그를 추월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프리 스케이팅에서 넘어져 빙판을 미끄러지며 펜스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상적으로 회복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 조니 위어도 그렇게 말했는데, 회복이 인상적인 것을 알아보는 제 능력에 대해 확신을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는 연기을 마쳤지만 최종 4위에 머물렀습니다. 시상대에는 오르지 못했죠. 그날 밤의 주요 이야기는 금메달 후보였던 일리야 말리닌이 여러 번의 낙상과 회전 실수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8위라는 성적은 미하일 샤이도로프의 금메달 획득을 가려버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요점은 차준환이 메달을 땄는지, 혹은 대신 누가 땄는지가 아닙니다. 요점은 그가 쇼트 프로그램 이후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오늘 저의 가장 큰 목표는 스케이팅을 즐기고 마음으로 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하고, 정말 저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특히 오늘 경기장에서 관객분들이 스케이터들을 정말 많이 응원해 주셨습니다. 그 에너지를 받아 다시 돌려드릴 수 있다는 것이 저희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여기서 스케이팅을 할 수 있어서 매우 행복했습니다." 요점은 제가 그의 쇼트 프로그램에 매료되었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는 것입니다. 요점은 그의 연기가 제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저를 정서적 카타르시스와 경외감으로 귀결되는 여정, 이야기, 변화로 초대했습니다. 그것은 기술적 숙련도와 예술적인 마음, 그리고 영혼의 결합이었습니다. 타라 리핀스키가 말했듯, "그것은 좋았습니다 (It was good)."
저는 차준환 선수의 피겨 스케이팅 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독자들이 여러분의 책에 매료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다음 시간까지, 즐거운 편집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