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많은 생각이 듦
그 생각을 글로 표현할 재주는 없지만...
꼭 원곡에 담긴 원래 스토리를 생각하지 않아도 가무 안무를 보고 있으면 지금 이 주인공은 뭔가 바깥에 드러낼 수 없는 괴로움을 안고 있다는 게 느껴지잖아? 개인적으로 하얀 의상은 그런 모습이 전혀 티나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화사하다는 양면성 때문에 끌리고, 검은 옷은 바짝바짝 타들어간 괴로운 마음, 상하고 망가진 내면이 찢겨지고 불에 그을린 듯한 장식들로 반영되었다는 점 때문에 좋아하는 편인데...
막 왈츠를 추기 시작할 때 주인공은 이렇게나 청초하고 아련함
아마도 이 사람의 진짜 원래 모습은 이게 맞을 거야
파티에 함께 참석한 이들도 모두 그를 이런 모습으로 기억할 것 같고
하지만 지금 그의 눈은 새까맣게 죽어있음
분위기는 냉랭하니 싸늘하고
선율이 빨라지면 주인공도 미치광이처럼 폭주하면서 춤추는데, 그렇게라도 몸을 움직여 스스로를 소진시키지 않으면 속내를 도무지 가라앉힐 수가 없음 타인은 당연히 어떻게도 못함 그가 안 좋은 상태인 걸 옆에 있는 누군가가 눈치채고나 있는지 의문임 초반에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에서 사뿐사뿐 나비처럼 춤추는 것 같았던 그의 진짜 감정은 한없이 마이너스로 치달아가고 있건만, 실제 무도회장에 있는 사람들은 이걸 모를 수도 있음 스텝에서 우리는 무도회가 열리고 있는 실제 장소가 아닌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https://twitter.com/Prince_Cha1021/status/1753045618384359755
심판을 정면으로 쳐다볼 때 즐거워서 미소짓는 게 아니라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분노에 사로잡혀 섬뜩한 웃음을 짓고 있다는 건 그와 관객인 우리만 아는 거지
엔딩은 스핀이 아니라 휘몰아치는 스텝이 제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타오르다 한순간에 거세게 폭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됨
https://x.com/juna__juna__/status/1709185973933027713
https://x.com/1by1_jun/status/1718006646839115979
처음에는 너무 급박하게 끝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했을 테고 엔딩 지점을 정확히 맞추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은 것도 맞음
근데 지금은 이 엔딩 말고 다른 엔딩을 생각할 수가 없음
실제로 가무 주인공은 자기 자신의 상황도 감정도 스스로 제어할 여력이 없음
그는 자기 몸을, 마음을 가누지 못해 휩쓸려가며 춤추는 빨간구두의 주인공 같음
그는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까지 춤을 추고 끝나는 순간엔 언뜻 다시금 초반의 그 멀쩡하고 아름다운 귀공자로 되돌아온 것처럼 보임
그렇지만 그의 진짜 속내가 얼마나 엉망진창인지는 바로 직전 온 사방에 튀어오르는 눈꽃 같은 얼음들이 보여주고 있음
준환이가 엣지로 호를 그릴 때 눈안개처럼 퍼지는 하얀 빛들이 정말 얼음일까? 타고 남은 마음의 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멈출 수도 자제할 수도 없이 이성과 통제력을 잃어가는 인물 심리를 정교하게 묘사하되
실제 경기를 수행 중인 선수는 음악의 끝맺음 타이밍에 맞춰 완벽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
연기하는 인물은 극한에 몰려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마는 허망한 상황에 가까울 수도 있지만
선수는 바짝 긴장한 채 정확한 엔딩 지점을 잡아야만 함
준환이 신체 컨트롤 능력을 믿지 않고서는 절대로 저런 엔딩 동작을 짤 수 없음
빙상종목 특유의 이점을 살려 극적인 느낌을 배가시키는 폭탄 같은 눈보라는 덤이고...
오늘 뜬 사진들에서 검은 연습복 하나 걸치고 있을 뿐이고 다른 어떤 장식도 없는데 화려하기 짝이 없어서 새삼 참 많은 생각이 든다
화려한 선수고 화려한 프로그램인데 허무한 절망감이나 번뜩이는 살기 같은 것도 담겨있고...
준환이의 마지막 가무가 어떤 모습일지 정말 기다려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