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대작사극의 한가운데 있다는 건 달리기 중에서도 마라톤을 하는 것과 비슷할것 같다. 무술 장면이 많아서 체력적으로도 만만치 않을 텐데 몸 상태는 어떤가?
- 그러잖아도 촬영하는 동안 신체 나이가 50은 된 것 같다고 농담을 했다. 그렇게는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가 은근히 즐기는 것 같기도 한데, 성장하고 있다는 실감이 들어서다. 이걸 넘길 수 있을 까 하다가 넘길때의 짜릿함이 있다.
Q : 원래 스스로를 극한 상황에 놓는 걸 즐기나?
-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겁이 많은 편이라 50부작 드라마 도전을 마음먹었을 때는 힘들겠지, 내가 할 수 있을까, 쓰러지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많이 했다. 그리고 하루하루 지나면서 내가 가진 두려움을 구체적으로 대면할 수 있었다. 아, 내가 걱정한게 바로 이런 상황이었구나 파악한 다음 그렇다면 내가 이걸 한번 넘겨보자고 마음 먹는다. 생존본능이 작동하는거 같다.
Q : 드라마 시작 즈음의 인터뷰에서 " 50부작이니까 분명 흔들리는 때가 올 거다 " 라고 이야기 한 걸 봤다. 흔들리는 그 시기가 온 것 같나?
- 이미 넘은 것 같다. 처음 시작부터 흔들렸기 때문이다(웃음). 하지만 그런 매 순간을 넘어서다 보니 단단하게 버티는 노하우도 생긴 것 같다.
Q : 그 노하우는 어떤 건가?
- 절대 혼자 가면 안되겠다는 깨달음이다. 예전에는 현장에서 다른 배우나 스태프들과 친해지려는 내 자신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내가 지금 친목을 하려는 건가, 인맥을 쌓으려는 건가 싶은 경계심이 들었다. 하지만 캐릭터는 배우 혼자만의 생각이나 힘이 아니라 상대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행히 배우, 스태프들이 다 좋은 분들이라 혼자 죽진 않겠구나 싶다.
Q : 드라마 <미생> 이전에는 작은 규모의 독립영화를 주로 찍었다. 공중파 대작 드라마는 스케일이 다른 게임일 것 같은데.
- 별반 다를게 없다. 나는 독립영화를 찍을 때도 큰 무대라고 느꼈고, 버거웠던 시기도 많았다. 물리적인 사이즈보다는 동료 배우들, 감독님과 스태프들의 간절함의 크기에 비례하는 무게감이 있다. 늘 겁먹었고, 한순간도 무섭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다행히 내가 사람 복이 많아서, 만나는 선배님들이나 동료 배우들이 너무 좋았다. 사람들 덕분에 하나하나 배움의 연속이었다. 그런 경험치가 내게는 의미 있는 귀한 자산이다.
Q : 김영현 작가는 당신의 캐스팅에 대해 "진중하기도 하고 코믹하기도 한 이미지가 이방지와 잘 맞다" 는 코멘트를 했는데, 스스로는 어떤면이 비슷하다고 느꼈나?
- 여동생이 있다는 거(웃음). 그리고 겁이 많다는 점도 나랑 비슷하다. 땅새는 두려움을 어떻게든 극복을 하고 소중한 뭔가를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나에게도 그런 면이 있다.
Q : 작가의 이야기처럼 양면성이 땅새의 중요한 특질이라면, 실제 당신의 모습은 두 가지 중 어느 쪽에 가깝나?
- 둘 다 나다. 배우는 자기에게 존재하지 않는 모습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보고, 다양한 상황속에서의 나의 모습을 관찰했다가 끄집어 내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Q : 액션연기는 처음인데 능숙해 보인다.
- 다행히 운동신경이 좋은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구기 종목을 다 좋아하고, 태권도나 유도, 권투도 배웠는데 그런것들이 도움을 준 것 같다. 이렇게 활용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부모님께 감사하다(웃음).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배우는 언제 쓰일지 모를 다양한 경험들을 쌓고 많이 느끼는게 재산 같다.
Q : <미생>때도 한석율이라는 캐릭터의 특징을 과장된 몸짓과 동적인 제스처로 보여줬다. 액션 연기는 아니지만, 몸으로 하는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느꼈다.
- 학교(한예종 연극원) 다닐 때 '화술', '움직임' 등의 수업을 들었다. 없는 것을 만들고 있는 것을 비우면서 내 것이 무엇일까 연습하고 고민했던 것 같다. 물론 움직임을 통해 한석율 캐릭터를 구축해나간 데는 나 혼자의 공이 아니라 <미생>촬영 감독님의 도움이 컸다. 그런 것을 믿으면서 봐주는 동료 배우들, 스태프들 덕분에 캐릭터가 만들어 지는 것 같다.
Q : 배우는 학위가 필요한 직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물네 살에 뒤늦게 진학한 이유가 있나?
- 부모님께 가능성과 믿음을 드리고 싶었다. 학교를 다닌다고 연기가 엄청나게 는다거나 반드시 배우가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경쟁을 뚫고 어떤 울타리 안에 들어간 모습을 보여드려야 연기를 반대하신 부모님께 믿음을 드리지 않을까 했다. 세상의 어떤 시험 이전에 아버지의 시험을 통과하고 싶었다. 지나고 나니 아버지가 나에게 간절함을 계속 갖도록 훈련을 시킨 것 같다. 그렇게 허투루하지 않는 자세는 지금도 크게 작용한다. 학교에 다니면서 소속사를 찾아 바로 계약하지 않고 작은 인디 영화들을 찍으며 훈련하라는 것도 부모님의 의견이었다.
Q : 연극원에 가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뭔가?
- 연기 하는 사람들은 많이 외롭다. 고민, 외로움, 불확실함 같은 것을 늘 안고 가는데 학교 다닐때가 그 시작이었다. 작은 신을 연습해서 발표하거나 친구들과 같이 무대에 올리는 공연 같은 걸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여전히 기억난다. 진짜 힘들 때는 아무도 없는 빈 연습실에 들어갔다가 소리 한번 지르고 나오는 일도 있었다. 그런 울타리 속 에서 비슷한 고민을 함께 나눈 동료들이 있었던 점도 감사하다. 학교는 내 마음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좌표같은 곳이다. 물론 실제로도 연기의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이는 훈련을 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 기초를 기억하려고 하고.
Q : <씨네21>에서 2015년의 신인배우로 뽑혔더라. 엄밀히 말해 신인은 아니지 않나?
- 신인, 맞다. 젊게 느껴져서 좋다(웃음)
Q : 충분히 젊지 않나. 남들보다 늦게 진학하고, 단숨에 유명해진 경우는 아니지만 말이다. 불안한 시기의 중간에 있을 때 당신을 붙들어준 힘은 무엇인가.
- 사람이다. 사람 관계가 마음대로 안 된다는 걸 아는데, 같이 고민하고 아파하고 기뻐해준 단단한 친구들이 있어줘서 버틸 수 있었던 거 같다. 지금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힘들고 괴롭고, 또 해내면 즐겁다가 다시 또 막연하고 앞이 안 보인다. 오래 이 길을 걷는 굉장한 선배들을 보면서 내가 연기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마 하는 동안은 계속 이런 과정을 반복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해나가면서 받는 기쁨이야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Q : 이를테면 어떤 선배들을 바라보며 나아가나?
- 이경영, 이성민, 김명민, 황정민, 한석규, 송강호 선배님들 다 대단하고 신기하고 존경스럽다. 그분들에게는 넘치는 생명력, 원동력이 느껴진다, 배우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고 표현해야 하는 직업이니까 한 가지에 머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때는 막연하게 할 수 있고 잘될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만 머릿속에 있었다면 지금은 두려움이 더 커진것 같다. 하지만 안전한 데만 머무르고 싶지는 않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늘 있기 때문에, 잘 하는 것도 좋지만, 어려운 걸 하고 싶다. 도전하고 해내면서 오래 할 수 있는 자신감과 힘이 생겨날 것 같다.
Q : 지난해 초 상상마당 씨네마에서 당신이 출연한 단편영화를 묶어 '변요한전'을 열었다. 어린 배우로서 갖기 쉽지 않은 경험이었을 것 같다.
- 그때 했던 인터뷰,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눈 이야기 같은 걸 아직도 기억한다. 누군가 나의 흔적들을 다 끄집어내는 느낌이 감사하면서도 부끄러웠다. 나는 젊은 배우고 나한테 자연스러운 작품을 만나서 연기했을뿐인데 특별하게 봐주셔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미생>이 계기가 되었는데, 미생이나 독립영화 때나 내가 임하는 마음가짐은 똑같았다.
Q : 배우로서 자신의 감정은 뭐라고 생각하나?
- 부족함이 크다. 부족하기 때문에 늘 믿을 거리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 자존감이라는게 딜레마 같다. 연기할 때는 자신감 있게 그 순간의 반짝거림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그러고 나면 이게 잘한 걸까 계속 의심하고 질문한다. 이렇게 평생 갈 거 같기도 하다.
Q : 그런 질문이 너무 없어지면 자기 세계에 갇히게 되는거 아닐까. 당신은 어떤 때 가장 행복한가.
- 재밌는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때
Q : 혼자서는 심심하거나 외롭거나 하나?
- 확실히 누가 옆에 있는 편을 좋아한다.
Q : 그렇다면 연기를 해서 다행이겠다.
- 늘 누군가와의 공동작업이니까. 지금은 그렇게 믿어야 하는 거 같다. 의심을 하면서도 내가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고 믿어야 할 수 있는 것 같다.
Q : 당장 3일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
- 친구들 서너명이랑 제주도에 가고 싶다. 바람 쐬고, 같이 걷고 술도 많이 마시고, 노래도 엄청 크게 부르고, 난장부리고...
Q : 노래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뮤지컬 <헤드윅>에 캐스팅 되었다.
- 입시 준비 때부터 꿈꾼 작품이었는데 막상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을때는 두렵더라. 못하겠다고 다섯 번 정도 거절했는데, 거절하면서도 내가 그럴 자격이 되나 죄송스러웠다. 무대란 신성한곳이고 많은 준비가 필요하니까, 조금이라도 기스를 내거나 누를 끼친다면 누구에게보다 스스로가 힘들고 괴로울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이 변했다. '한번 해보지 뭐' 가 아니라 '그래 사력을 다해서 해보자' 하는 마음이다. 이 무대를 피해버리면 나는 말뿐인 사람 밖에는 안 된다.
Q :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 같다.
- 요즘 차에서도 <헤드윅> 음악을 틀어놓고 듣는데, 여전히 무섭다. 두려움을 매 순간 직면하고 극복해야 하는게 배우 같다. 여장을 하고 무대에 선 나를 그려보는 건 쉽지 않은 상상이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는 것만 할 거야?'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진다. 어려운 작품이지만, 좋은 경험과 도전만으로 끝내진 않을 거다. 1년에 한편씩은 연극을 하고 싶다.
Q : <소셜포비아>홍석재 감독은 함께 출연한 이주승 배우가 음이라면, 당신은 뜨겁게 발산하는 양의 배우라고 했다. 동의하나?
- 작품따라 다른 거 같다. 어떤 배우와의 조합에서는 또 내가 음이 되기도 한다. 현장 분위기나 감독님 지휘에 따라 밸런스를 따라 가는데, 내가 갖고 싶은 걸 계속 가지라고 하기 보다 놔야하는 순간이 있는 거 같다. 다행히 나는 좋은 지휘자들을 만나온거 같다.
Q : 당신의 지난 한해는 어땠나?
- 뭘 하는지도 모르게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많이 부지런했던 해였던거 같다.
Q : 그렇다면 2016년은 어떻게 지나가고 있나?
- 별 생각이 없다. 원래 계획을 안짠다. 단 한가지 <육룡이 나르샤>를 잘 마치고 싶은 생각이다. 얼마전에 촬영하다가 유아인, 윤균상 씨랑 "두 달 밖에 안 남았네, 아쉽다" 아쉽다." 하는 얘기를 나눴다.
Q : 어서 마쳤으면 하는 게 아니라?
- 물론 빨리 끝나면 좋겠다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사는데.....(웃음). 마치고 나면 이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문듣 들때, 눈앞에 있어도 아쉽다.
Q : 로맨틱 하다는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 편하고 쉬워서가 아니라, 힘들기 때문에 더 그런 거 같다.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들이 많아지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데도 현장에 하루 더 머물고 거기서의 재미를 찾는거다. 하루하루가 애틋하다.
에디터 : 황선우
헉헉... 타이핑 하기 넘나 힘들어 ㄷㄷㄷ ㅠㅠ
하면서 느낀거지만 배우로서의 마인드가 너무 좋아-
앞으로 이 배우 덬질은 오래 할거 같아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