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읽는 중에도 좋아서 글을 썼는데, 책 주인공이 늙은 게이고, 그래서 남성한테 여성적 표현을 쓰는 장면도 나오고, '년'이라는 여성혐오적 욕도 계속 나오고 (애초에 주인공 별명이 '앞집 미친년'이야) 그래서 괜히 추천하면 안될 것 같아서 글 바로 지웠거든.
근데 다 읽고 나니까 꼭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배경은 1986년 칠레야. 당시는 피노체트라는 독재자가 군사 쿠테타를 일으키고 독재를 하고 있던 시기였고, 많은 사람들이 독재에 반대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던 시대야. 우리나라 현대사와 너무 비슷하지. 주인공인 로카는 '마누엘 로디르게스 애국전선'이라는 좌파 무장조직에서 활동하는 '카롤로스'라는 젊은 대학생을 사랑하게 돼. 카롤로스가 로카의 집에 여러 물건들(걸리면 큰일나는), 심지어는 무기까지도 맡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위에도 썼듯이 시대상황이 너무 우리 군사독재 시절과 비슷해서 공감이 갔어.
나는 다른 사람이 조롱하고 비웃고 하찮다고 생각하는 힘없는 사람이지만 굴하지 않고 긍정적이고 밝게 가끔은 푼수같이 행동하는 캐릭터를 정말 좋아하는데 로카가 그런 스타일이라서 읽는 내내 뭔가 찡한 감정도 들었고.
작가가 독재자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방식도 너무 마음에 들었고, 소설 장면 중에 로카가 여성들과 연대하는 장면도 있는데 정말 좋았어.
다 읽고나서 뒤에 옮긴이의 말을 읽다 책을 쓴 작가가 실제 동성애자이고 평생 칠레의 독재에 저항하고 동성애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삶을 살았다는걸 알게 됐는데, 작가의 생애가 참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로카와 카롤로스 모두가 작가의 삶을 어느정도 반영한 인물인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고.
작가도 글을 잘 썼겠지만, 번역가 분도 번역을 정말 잘하셔서 읽는데 술술 읽혔어.
오랜만에 좋은 독서였다.
옮긴이의 말에 나왔던 작가의 일화를 하나 덧붙일게
269p. [옮긴이의 말 중] 작가는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글을 쓰며 피아 바로스, 라켈 올레아, 디아멜라 엘티트, 넬리 리처드 등 페미니스트 좌파 작가들과 교루했지만, 남성중심적이었던 당시의 좌파 운동 내에서는 배제당했다. 그러자 그는 1986년 마포초역에서 열린 좌파 정당 집회에 하이힐을 신고 얼굴엔 낫과 망치를 그린채 참가하여 선언문 <나는 나의 다름으로부터 말한다.>를 낭독했다. 그는 선언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변하지 않겠다 / 나를 숱하게 거부했던 마르크시즘 때문이라면 / 나는 변할 필요가 없다 / 왜냐하면 내가 당신보다 더 불온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