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밀로라드 파비치의 '하자르 사전' (1984)
9세기, 하자르 제국의 군주는 어느 날 기이한 꿈을 꾼다. 그는 곧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세 현자를 불러 그 꿈을 해몽하도록 한다. 그는 가장 적절하게 꿈을 풀이하는 사람의 종교로 민족과 함께 개종하기로 한다.
17세기, 기독교인 아브람은 꿈속에서 유대인 코헨이 된다. 그리고 코헨은 거꾸로 꿈속에서 아브람이 된다. 다른 이의 꿈속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마수디는 서로가 되는 꿈을 꾸는 두 사람 중 하나가 죽는 순간을 포착해 죽음의 비밀을 알고자 그 둘을 추적한다. 세 사람은 모두 갑자기 멸망한 하자르 민족을 연구하고 있다.
20세기, 이스탄불의 한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피살자와 살인자는 모두 슬라브학을 전공한 박사로 하자르 민족의 개종과 멸망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갑자기 사라진 하자르 민족의 개종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꿈과 현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펼쳐진다.
실제 역사에서는 유대교 유목제국으로 유명했던 하자르 제국의 개종과 멸망, 민족사를 둘러싼 미스터리에 대한 이야기를 '사전'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표제어를 A부터 순서대로 나열하면서 전개하는 방식의 포스트모던 소설이야
작중 하자르 제국이 멸망하기 전에 어떤 종교로 개종했는지가 밝혀지지 않았고 세 종교 쪽에서는 각자 자기네로 개종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17세기 말에는 이런 각 종교의 서로 다른 문헌을 모은 하자르 사전이 출판되었다는 설정. 이 사전의 여러 판본이 다 유실되고 파괴되는 와중에 하나 남은 판본을 바탕으로 20세기 현대에 이르러 하자르 사전의 개정판이 나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임!
소설 구성이 기독교 문헌 사전 / 이슬람교 문헌 사전 / 유대교 문헌 사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각 종교마다 고유한 내용을 담고 있는 표제어도 있고, 세 버전의 사전에서 모두 등장하지만 그 내용은 판이하게 다른 표제어도 있고 그래서 앞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읽어나가면서도 왔다갔다 책 앞뒤로 넘겨가면서 비교, 대조해가면서 읽는 맛이 있어서 재미있었어 ㅋㅋㅋ
라쇼몽이라든지 패솔로직 시리즈처럼 서로 다른 신뢰할 수 없는 내래이터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의 구조를 짜맞춰가는 그런 종류의 지적 유희라고 해야하나?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여서 추천! 움베르토 에코나 이탈로 칼비노 같은 작가 좋아하면 읽어봐도 좋을 것 같아

2. 나오미 미치슨의 'Travel Light' (1952)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책이었는데,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에서 언급된 거 보고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야
1950년대에 나온 동화풍 판타지이고, 호빗이나 나니아 연대기 같은 그런 느낌?
왕의 딸로 태어났지만 곧 버려지고 처음엔 곰들 사이에서, 그리곤 용들에게서 양육되는 바람에 자신을 일종의 용이라 생각하고, 용처럼 보물 모으기를 좋아하고, 용을 무찌르기 위해 찾아오는 영웅들을 사악하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할라가 어떤 사건 이후로 북유럽 신 오딘의 조언을 받아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가볍게 여행'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 ㅋㅋㅋ 흥미롭게 들리지 않아?
단순한 우화로 출발하는 것 같지만(비범한 출생, 여정으로의 부름 등등) 전통적 우화의 서사를 따르지 않고, 어린 소녀이자 공주인 주인공 할라가 여정을 통해 독립적 여성으로서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고 좋았어. 영어가 어려운 표현도 별로 없고 소설 길이도 짧은 편이라 (150쪽 안팎) 관심 있으면 읽어봐도 좋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