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이 뭐냐면 나한테는 할머니의 유품같은거야.
초등학교 2학년때인가 3학년때 감기 걸려서 너무 아파하니까 학교에서 집에 전화 해 줘는데
엄마아빠는 일 가시고 할머니가 계셔서, 할머니가 나 데리러 왔었거든.
할머니 손잡고 병원갔다가 할머니가 우리 애기 할머니가 책이라도 사줄까? 해서 할머니랑 서점에 갔는데
그 때 아동 청소년 도서 쪽에서 어린이 소설 있었거든
그 때 할머니가 나한테 이 책이 예쁘다면서 사줬어. 파란색 표지였거든. 내용을 다 읽어 볼 순 없으니까 표지 보고 골랐음..ㅋㅋㅋㅋ
근데 그러고 몇 달 있다가 할머니가 뇌출혈로 돌아가셨거든. (어릴때라 돌아가신것만 알고 나중에 뇌출혈이라는 걸 알게 됨..)
그래서 뭔가 할머니가 나한테만 사 준 유일한 물건이라는 생각에 엄청 소중히 대한 책이었는데,
내가 고등학교를 기숙학교로 가게 되면서 그 책을 집에 놔두고 왔고~ 대학도 타지방으로 가면서 또 집이랑 멀어졌는데
대학 졸업하고 본가 와서 보는데 엄마가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게 어릴때 보던 동화책이나 장난감들 정리하면서 그 책도 같이 버렸더라고...
당연히 정리해야 맞다는걸 알면서도 왜 말도 없이 정리했냐고ㅠㅠ 짜증도 내고 그랬는데도 갑자기 생각하려니까 책 제목이 생각이 안 나는거야
그럴만도 한게 초등학교 2,3학년때 읽은 책이고 그 때 나는 20대 중반이었으니까.... 그냥 할머니의 추억이 있는 책이었을 뿐이고.. 반복해서 읽은 건 아니었거든.
아무리 생각을 하려고 해도 책 내용은 좀 기억이 나는데 표지의 그림도 기억이 나는데 제목이 기억이 안 나는거야. 제목이 좀 길었거든.
그래서 중고로도 구할 수 없겠는거야. 중고서점에 물어봐도 어린이소설인데다가 유명하지도 않은거라 모르고 있어서...
할머니와의 소중한 추억이 없어졌어ㅠㅠ 하고 살고 있었어. 최근의 거의 모든 날에서는 그 책의 존재도 의미도 잊고 있었어.
근데 며칠전에 아파트 단지 분리수거쪽에 누가 옛날 책을 우르르르 버린거야.
그 사이에서 주황색 표지의 책을 보는 순간 갑자기 그 파란색 표지의 책이 생각이 났어.
왜냐면 그 책이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때에 만들어진 책이었거든. 책 날개에 보면 뫄뫄 출판사의 다른 책들 하면서 소개되어 있는 그런 책.
책 제목이 독특해서 기억하고 있었고(생각을 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 책 제목을 보자마자 어 저거? 저거????? 싶더라.
그래서 그 책을 꺼내서 먼지를 털고 책 날개를 보는데 정말 거기에 내가 잊고 있었던 할머니가 사 준 책이 있더라.
아 제목이 이랬으니까 내가 기억을 못 했지 싶고...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중고로 판매하는 게 줄줄이 뜨더라고ㅠㅠ
그래서 바로 주문했고, 어제 도착했어.
택배상자를 열어서 책을 꺼냈는데, 누렇게 빛바래진 종이, 약간 탁해진 표지의 파란색 이런게 왜 이렇게 반가워? 그냥 눈물이 났음.
구어체로 되어 있는 것 같은 문장들이 요즘 소설들이랑 너무 달라서 와 고전소설 같아 싶긴 했고, 다시 읽으니까 어릴때 읽었던 것 만큼 당연히 재밌지도 않고 유치했는데 그래도 너무너무 좋더라고.
그리고서 자는데 꿈에 할머니 나왔어.
나 아파서 병원갔다가 책 산 그 날이더라. 나는 거실 바닥에 이불 펴고 누워 있고, 할머니는 그 옆에서 내 손 잡고 내 머리카락 쓸어주시더라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할머니가 너무너무 보고싶더라.... 나 어릴때 돌아가셔서 잘 기억도 나지 않는 할머니인데도..
마침 또 다음달이 할머니 기일인데 할머니랑 있던 소중한 추억 하나를 찾게 되서 너무 기분이 좋아
너무 기분이 좋아서 도서방에 한번 써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