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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파친코 완독 후기 (강ㅅㅍ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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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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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오디오북으로 듣고 읽기 시작해서 완독함

읽는 재미는 1부 여운이 남는 건 2부 의미있게 다가온 건 3부였어

몇 세대에 걸쳐 한 여성과 가족, 외지인들의 삶, 정체성,딜레마를

두 권 안에 잘 녹여냈다고 생각했어

마침 올해 공연한 연극 이카이노 바이크의 기억이 생생했던 터라

(재일조선인 작가가 쓴 극본이고 여기도 2대에 걸친 이야기야)

더 재밌게 마음에 꾹꾹 눌러담으며 읽었어


1.선자, 고한수,백이삭

선자는 시대를 그대로 품은 캐릭터였어 

사고방식이 마냥 옛스럽지 않고 소신도 있지만 

말과 행동에 분명 한계가 있는 인물이었음

그녀의 인생에서 고한수는 모든 것의 '시작'이었고

그렇기에 그의 존재를 평생 지울 수는 없었지만

마음이나 몸은 결코 첫 이별 이후 곁을 내준 적 없이 단호했어


선자와 고한수의 관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착취'였음

어린 시절 선자가 그에게 이성적 호감을 느낀 건 사실이지만

성적으로 자유롭고 주체적이진 않았음

고한수 혼자 묻지도 않고 만졌을 때 선자는 분명 당황했고

처음 성관계를 맞이한 시점부터 임신 직전까지 

고한수가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욕망을 받는 입장이었음

이삭이 처음 선자에게 스킨십을 시도했을 때 

선자는 한수의 행위가 배려 없이 숲에서,돌 틈 등에서

늘 급하게 제 욕망을 해치우는 식이었다고 회상함

특히 이삭이 죽고 한수가 찾아왔을 때

"어릴 때 사랑한 남자는 자기 마음 속으로 만든 

허상인 사실을 확인했다.

증명되지않은 감정일 뿐이었다" 라는 서술이

한수에 대한 선자의 감정을 정확히 정의한 것 같음


고한수는 청년부터 노년시절까지 변함없는 인간이었음

겉은 반듯하지만 기회주의적이고 권력지향적이면서

제 뜻대로 사람을 휘두르기 위해 거짓말도 서슴치않는 캐릭터

내가 가장 싫었던 고한수의 대사는 "영리하게 굴어"였는데

일제가 조선인에게 늘 말하던 그 패턴에 우위를 가르는 모양새가 별로였음

좋게 말하면 자신감이 넘치는 거지만 사실상 오만하게

약자를 바라보듯 늘 선자를 바라보고 끌고가려는데

그 언행이 사랑이라 말할 수는 없다고 느꼈어

"내 말이 틀리지않았잖아 나도 네가 잘되길 바라니까 이러는거야"

이런 대사만 봐도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의 형태라고 느꼈어 

혼인사실을 숨기고도 오히려 제 말을 따르지않는 어린 선자에 당황하고

노년의 마지막 순간까지 저랑 혼인하고 싶었을 거라 믿는 

그 태도가 참 어이없었음

(요셉도 창호도 결함은 있지만

결국 선을 넘지 않고 가족을, 사랑하는 이를 

지키고자 했다는 점에서 훨씬 나았음)


아들 노아에게도 제 욕망을 투영했을 뿐

선자와 노아를 진정 애정했다면

선자와 노아 대학등록금때문에 부딪혔을 때

출비를 폭로하겠다고 내 방식을 따르라고 협박하지 않았겠지

한참 후에도 저 죽는다는 거짓말로 선자가 머무는 모자수 집에 

들어서는 방식도 딱 고한수다웠음

  

고한수가 선자를 사랑한 건 맞지만 

그건 순수한 애정보다 제 손에 쥐기 쉬운 상대를 향한 

소유욕,욕망에 가까웠다고 생각함 

선자는 매 순간 한수의 면면에 질려하고 분노하며 

제 나름의 방법대로 맞서싸우는데 

그런 여자는 고한수 인생에 없었으니 

더욱 안달냈던 거라고 봄 


선자가 노아에게 말했듯

"어릴 때 중한 실수를 할 수 있고

잘못된 사람을 믿을 수 있다

오래 전에 알던 사람이다"

선자에게 고한수는 언제나 과거일 뿐,

현재이자 미래였던 적은 없었다고 읽는내내 느꼈어


이삭과 선자가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그의 존재는 선자가 미래를 그리게끔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며 결국 모든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해준 사람같음

어린날 종교에 무지했던 선자의 신앙심조차 

이삭이 남겨주고 간 삶의 희망이라고 느낌


마지막에 한수가 나온 꿈에 부끄러워하고 

이삭이 죽고난 후 그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말하며

이삭의 묘에서 두런두런 얘기하는 선자 모습이

쓸쓸하기보다 무척 편안해보였음

결말에서 노아와 모자수 사진을 땅에 묻고 일어나는데 

마치 이삭이 선물하고 서로 다독이며 함께 만든 가족을 

선자 스스로 완성하고 담담하게 미래로 걸어나가는 모습같아서 뭉클했음


+선자가 한수 앞에서 매력적인, 여자이고 싶었던 이유는

저를 처음 취하고 또 버린 첫 정인 앞에서 

약자가 아닌, 당당한 한사람으로 마주 서고 싶어서 였다고 생각함

그가 그립거나 여전히 사랑해서가 아니라

굽히거나 무너지고싶지았아서 


2.백노아,백모세(모자수) 


노아는 여러모로 복잡다단한 인물이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백이삭과 선자의 아들이었다는 거야


친부 고한수의 기질은 갖고 태어났지만 

평생에 걸친 삶에 대한 태도와 방향성, 성품은

아버지 이삭을 그대로 빼닮았다고 생각함

배움에 대한 가치를 강조한 건 둘 다였으나

결국 노아를 이끈 건 이삭이 죽기 전 

어린 노아에게 한 말들이었다고 생각했음


노아의 애인이었던 아키코는 고한수와 같은 결의 인물이었음

매력적이지만 제멋대로였고 

한수가 선자에게 그랬듯 

노아를 '영리하고 훌륭한 조선인'에 가두려했지

그런 아키코에게 왜 네가 늘 옳다고 생각하냐고

나라면 널 존중했을 거라는 노아의 말(이별통보)은 

선자의 강단, 이삭의 부드러움이 모두 깃든 대사였다고 생각함


결국 출비를 알고 스스로 대학 그만두고

자립하면서 고한수를 차단했던 모습도,

편지에서 엄마의 아들 노아라고 쓴 표헌이나

가족들을 떠난 뒤 죽기 직전까지도

이삭의 묘를 찾았던 모습까지 모두

노아가 누구의 아들로 살고자했는지 알 수 있었음

노아가 리사와 결혼한 후 첫날밤에

무서워하는 부인을 달래던 말만 봐도

고한수와 노아의 차이가 확실히 보임


후반부 노아의 자살 분명 충격적이고 슬프지만

난 이게 단순히 일본인,훌륭한 조선인이 

되지 못한 슬픔으로 인한 절망처럼 느껴치지는 않았어

경계에 있으면서도 고한수와 같이 

비겁하게 스스로를 포장하고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는 인간으로 살고싶지않은, 

그 나름의 저항 의식을 드러내는 행동이라 읽힘

조선인인게 싫냐는 선자의 물음에 고개 젓고

나로 돌아가는 게 무섭다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음


이 책에서 아들 세대의 이야기는 모두 

작가가 그리는 이상적인 인간상, 가족의 그림을 보여준 느낌 

노아-리사/모자수-유미

모두 이삭,선자 부부의 모습과 결이 같았음

유미가 죽고 아들과 단 둘이 남은

모자수가 에스코와 만나 함께하게 된 모습도

한수와 헤어지고 노아를 품은 채

이삭과 결혼했던 선자를 떠올리게 함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끈끈하게 이어지는

모자수와 선자의 모자 관계가 참 좋았어

와세다대를 간 노아와 파친코에서 일하는 모자수

서로 위치도 사회적인 신분도 사는 공간이나 성격

모두 다른데 결국 아버지 이삭의 뿌리 아래

흐르고있다는 생각이 강력했음


3.백솔로몬


손자 솔로몬의 존재가 이 책이 말하고싶은 

가장 궁극적인 메세지의 총합체라고 느낌  

조선인의 피를 이어받았으나 일본에서 나고 자랐고 

미국식의 교육을 받은 사람

다양한 문화와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이 마주하는 사람들과 일상,편견과 차별

그 사이에서 자기 중심을 찾고 잡아가는 인물이니까 


어쩌면 이 3부의 내용이 곧 우리가 재일조선인을, 또 다른 동포 

아니면 어떤 타인을, 내 자신을 바라보고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길잡이가 되는 것 아닐까 생각했음


일본인도 미국인도 아닌 

떠밀리듯 선택한 파친코가 아니라

남들이 뭐라하든 스스로 제 길을 선택하는 

솔로몬이 참 좋더라


두 권동안 걸어온 이 가족의 길이 

결코 순탄치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웃음짓게 하는 결말이라 좋았음

로맨스가 겉들어진 역사소설이나 가족 소설보다도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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