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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밤의 징조와 연인들, 우다영(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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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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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두개로 쪼개졌는데 이렇게 올려도 되는거니..?

혹시 문제되는거면 댓글로 알려줘...


전편: https://theqoo.net/1453851768

(이어서 계속)


서로 다른 우주가 만나는 순간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순간들이 있어. 그리고 우리는 나중에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내 인생은 어땠을까 고민해보기도 하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쪽의 운명은 그대로 멈춰있는 걸까. 아니면 그 운명이 이쪽으로 방향을 틀어 하나로 이어지고 있는 걸까.


“너를 만나지 않았고 너를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내가 저 우주 어딘가에 살아.” (중략) “나는 잠이 들면 그 우주의 내가 되어 계속 너를 모르고 살아가. 잠에서 깨어나면 네가 곁에 있지만 어쩐지 네가 있다는 게 의심스러운 거야.”


<밤의 징조와 연인들> 중에서


“눈꺼풀을 내리감았다가 다시 뜨는 찰나의 순간 깜빡, 그 애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버린 게 아닐까. 보라색 목도리를 처음으로 목에 두르던 다른 세계의 기억을 가진 채 말이에요. 물론 그 애는 그냥 거짓말이 하고 싶었을 수도 있어요. 불현듯 튀어나온 말일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런 거짓말을 하는 기분과 두 우주가 겹쳐지는 순간이 정말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기분에 이르는 유령들> 중에서


작가는 우리가 가지 않은 쪽의 운명도 또 다른 우주에서 존재한다고 믿기로 했어.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갈림길의 모든 운명이 각각 별개의 우주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거야. 보통 이런 평행우주이론은 똑같은 세계가 동시에 여럿이 존재한다는 설정으로 사용되지만 이 책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우주에서 각자의 운명을 살아간다고 해석할 수 있을 거 같아. 인간의 운명이라는 거대한 줄기 안에 개개인의 삶이라는 지류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각자의 운명이라는 우주를 살아가면서 때때로 그 우주들이 서로 만나는 순간이 있는거지.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로 예를 들어볼게. <크림>에서 황은 좋아하는 후배와 함께 스시를 먹은 이야기를 들려줘. 후배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황은 후배의 물수건을 들춰보게 되는데 거기엔 먹다 버린 스시가 있어. 후배는 스시를 못 먹는 사람이었던 거지. 그 순간 황은 여태까지 함께한 시간이 후배에게는 억지로 견뎌야 하는 끔찍한 시간이었단 걸 깨닫고 더 이상 후배를 만나지 않아. 하지만 후배가 황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스시를 못 먹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고 이제와서 후배에게 묻는다 한들 진실은 알 수가 없어. 


하나의 사실을 두 사람이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면 그것은 두 개의 진실, 두 개의 우주가 존재하는 거야.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우주,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거야. 이 책의 표제작인 <밤의 징조와 연인들>이 연애담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 관계라는 건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함께 살아가려고 하는 거잖아? 그래서 나에게 당연한 것도 그 사람에겐 당연하지 않은 거야. 이수가 보기에 석은 늘 가장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미리 낙담하면서 불필요하게 힘을 빼는 사람이지만, 어릴 때부터 버려지는 것에 익숙한 석은 기대를 품었다가 실망하는 것이 더 불필요하게 힘을 빼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연말의 혼잡한 도로 위에서 택시는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었다. 거리는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왼편 창가에 앉아 노란 조명이 반짝이는 호텔과 균일한 가로수와 매끈하게 솟은 고층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중략) 석이는 오른편 창밖으로 낙후한 가게들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곳이 너무 어두워서 나는 깜짝 놀랐다. 석이는 내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동시대에 대한 고민


우다영 작가는 90년생이야. 이 책에서는 현실적인 느낌을 최대한 배제하려 했기 때문에 어쩌면 같은 세대라는 공감대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이 시대의 문제를 건드리는 부분도 분명히 있어. <기분에 이르는 유령들>에서 현철의 딸은 백화점 한복판에서 어떤 남자에게 얼굴에 염산을 맞아. 일상을 영유하는 공간에서도 안심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겐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되었지만 누군가는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말해. 모두가 각자의 우주에 살며 내가 아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해. 


또 현철은 정기적으로 딸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있었어. 그래서 딸에 대해 잘 아는 편이라고 믿었지. 하지만 딸이 사고가 난 이후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작 딸에 대해서 그가 알고 있는 건 별로 없었어.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서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던 거야. 오히려 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건 딸의 지갑 속 영수증인 것처럼 보여. 우리는 점점 하나의 인간으로 존재하기 보다 어떤 데이터로서 더 뚜렷하게 존재하는 것 같아. 수량화 되지 않는 가치에 대해서 더 많이 얘기하지 않는다면, 디즈니가 아테네를 인수하고 나라의 역사 대신 기업의 역사를 공부하는 <미래와 밤> 속 세상이 어처구니 없는 상상은 아닐 것 같아.



작가는 이 책에서 서로 다른 우주에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은 것 같아. 그래서 난 이 작가의 다음 소설이 더 기다려져. 다만 어떤 힌트를 발견할 수는 있었는데 우리도 같이 고민해보면 좋을 거 같아.



“고개를 들려고 하면 가라앉을 거야. 귀가 물에 잠기도록, 몸의 반은 물에 내줘야 해. 그럼 잠기지 않은 나머지 몸이 뜰 거야.” 


<밤의 징조와 연인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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