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우승을 못했다면 ‘선수들에게 휘둘리고 장악력 부족한 감독’으로 비판 받았겠죠. 요즘 세대에 ‘닥치고 뛰라’고 지시하면 역효과만 나지 않았을까요. 제가 못 보는 걸 코트 위 선수가 느꼈다면, 마음에 담아두기보단 오히려 적극 소통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18일 경기도 용인 훈련장에서 만난 이상민(54) 감독은 프로농구 부산 KCC를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끈 뒤 후련함을 느끼는 듯했다.
개성 강한 스타들이 모여 ‘수퍼팀’으로 불린 KCC는 작전 타임마다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는 ‘작전 토론’으로 주목 받았다.
고양 소노와의 챔프전에서 가드 허훈(31)이 광고판에 걸터앉아 “쟤들 스페인 픽앤롤(스페인농구대표팀 특유의 이중 스크린 플레이 전술)만 한다니까”라고 소리친 장면이 대표적이다. 챔프 3차전 종료 2초 전 1점 뒤진 상황에선 허훈이 “우리 그거 하던 거 있잖아”라고 제안하자 이 감독이 “백도어 하자고?”라며 수용했다. 이후 상대 수비가 앞쪽으로 쏠린 틈을 타 허훈이 절묘한 골밑 패스를 시도해 KCC의 역전승을 이끌었다.
단기전 승부에서 감독이 결정권을 내려놓고 선수 의견을 수용하는 건 모험에 가깝다. 이와 관련해 구단 안팎에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키를 잡은 선장(이 감독)은 결국 배를 산 대신 꼭대기(우승)로 이끌었다.
허훈은 “감독님이 작전 ‘100’을 짜주면 그 틀 안에서 ‘20’ 정도 바꿔보자고 의견을 내는 수준이었다. 우리의 의견을 존중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허훈은 경기 중 “람머스!” “말파이트!” 같은 뜬금없는 단어를 외쳤다. 이 감독은 “패턴 플레이를 단순히 ‘하나, 둘, 셋’으로 부르지 말고, 선수들이 즐겨하는 롤(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LoL) 캐릭터 이름으로 바꿔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와 흔쾌히 수용했다”고 털어놓았다. 감독이 선수들의 눈높이로 내려가 소통한 흔적이다.

올 시즌 KCC의 남다른 소통 방식이 화제가 되면서 이 감독이 선수 시절이던 2008~09시즌 서울 삼성에서 뛸 당시의 영상이 팬들 사이에 소환됐다. 안준호 당시 삼성 감독이 작전타임 때 “돼? 안 돼?”라고 묻자 선수 이상민이 “안 돼”라고 반말로 답하는 장면이다.
이 감독은 “이게 인과응보인가 싶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훈은 “그 땐 혼자 의견을 내셨지만, 우리는 (허)웅이 형, 초이(최준용)까지 한 마디씩 거들어 더욱 정신 없으셨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감독은 “우리 팀에 애가 둘이라, 막대 사탕 5개쯤 들고 다녀야 했다”고 올 시즌을 되짚었다.
자존심 강한 허웅과 숀 롱을 어르고 달래가며 최고의 기량을 이끌어낸, 이른바 ‘막대사탕 리더십’이다. 이 감독은 “나 때와 달리 최근 가드 포지션의 패러다임이 공격지향적으로 완전히 바뀌었는데, 훈이가 욕심을 버리고 수비와 패스에 집중해 팀에 시너지를 창출했다”고 칭찬했다.
이상민 감독은 서울 삼성 사령탑을 맡은 지난 2014~22년 무관에 그치며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부활을 바란 연세대 농구 후배이자 방송인 서장훈이 “KCC에서도 성적을 못 내면 지도자 커리어에 오점이 남을 수 있다”며 걱정했을 정도다. 이 감독은 “장훈이가 매 경기 챙겨보며 피드백을 해줬다”면서 “참 고마운데, 한 번 통화하면 한 시간 반씩 붙잡혀 있어서…”라며 복잡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시즌에도 KCC의 시끌벅적한 작전 토론이 이어질까. 허훈이 “아직은 모르겠다”며 장난기 가득한 눈빛을 보내자 이 감독은 “훈이 혼자 참는다 한들 나머지 선수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면서 “지금처럼 선수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면서 통합 우승과 동아시아수퍼리그 우승까지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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