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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부산 kt 소닉붐의 전신들 역사 돌아보기 (초장문 주의)

무명의 더쿠 | 03-18 | 조회 수 687
광주에서 부산으로, 나산 플라망스에서 kt 소닉붐으로
http://m.basketkorea.com/news/newsview.php?ncode=179526143309847

부산 kt의 역사는 광주 나산 플라망스까지 올라가야 한다. 나산은 이민형(현 대학농구연맹 부회장)-김상식(현 남자농구 대표팀 감독) 등 기업은행 농구단의 멤버를 국내 주축 멤버로 삼았고, 에릭 이버츠를 1옵션 외국선수로 삼았다. 원년 시즌(1997) 정규리그 5위(9승 12패)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이후, 단 한 번도 6위 안에 들지 못했다.
나산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홈 코트인 광주 염주체육관 대신 대관료가 저렴했던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더 많은 경기를 치렀다. 결국 모기업의 부도로 골드뱅크에 인수됐고, 2000~2001 시즌부터 여수 진남체육관을 홈 코트로 삼았다. 2000~2001 시즌을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로 보낸 이유다.
2001~2002 시즌부터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코리아텐더의 상황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코리아텐더는 2002~2003 시즌부터 KBL의 관리를 받아야 했다. 코리아텐더는 이상윤 감독대행 외에 단 한 명의 코치도 두지 않았다.
코리아텐더는 배고팠다. 그래도 농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에릭 이버츠-황진원-정락영-변청운-최민규 등을 앞세워, 2002~2003 정규리그 4위(28승 26패)를 차지했다. 연봉 1억원을 받는 선수 없이도, 끈끈한 조직력과 빠른 농구로 6강 플레이오프에 나섰다.
코리아텐더의 돌풍은 플레이오프에서도 지속됐다. 6강 플레이오프 상대는 서울 삼성. 코리아텐더는 1차전을 11-23으로 밀렸지만, 국내 선수들의 3점포로 삼성과의 간극을 좁혔다. 안드레 페리의 결승 득점으로 76-72, 역전승을 거뒀다.
2차전은 코리아텐더의 완승이었다. 코리아텐더는 3점슛 14개에 3점슛 성공률 70%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94-64로 삼성을 제압했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 김병철(고양 오리온 감독대행)-전희철(서울 SK 코치)-김승현(SPOTV 해설위원)-마르커스 힉스 등이 버틴 대구 동양에 3전 전패했지만, 코리아텐더의 투혼은 아직도 팬들에게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기아 엔터프라이즈가 모비스 오토몬스로 팀명을 바꿨다. 연고지 역시 부산이 아닌 울산으로 변경했다. 부산 연고 농구 팀이 없어졌다. 코리아텐더는 우선 부산으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2003년 11월 18일까지 코리아텐더 유니폼을 입었고, 그 후 ‘부산 KTF 매직윙스’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즌을 치렀다.
신임 감독이었던 추일승 감독은 2004~2005 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특히, 2006~2007 시즌에는 KTF 창단 처음으로 챔피언 결정전에 올리기도 했다.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맞대결에서 3승 4패로 아쉽게 준우승했다.
KTF는 2008~2009 시즌 종료 후 kt와 상호 합병했다. 농구단은 kt에 인수됐다. ‘부산 KTF 매직윙스’는 ‘부산 kt 소닉붐’으로 이름을 바꿨다. 추일승 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사령탑에서 물러났고, kt는 전창진 감독(현 전주 KCC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임명했다.
전창진 감독은 kt의 첫 사령탑이 됐다.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농구롤 kt를 다른 팀으로 바꿨다. kt를 맡자마자, kt를 정규리그 2위 팀(40승 14패)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2010~2011 시즌에는 kt를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41승 13패)으로 이끌었다. 박상오(고양 오리온)는 kt 선수 중 최초로 KBL 정규리그 MVP가 됐다.
kt는 2015~2016 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서동철 감독이 kt 지휘봉을 잡은 후, kt는 화끈한 공격 농구로 2018~2019 시즌 플레이오프에 나섰다. 현재 6위(21승 22패)로 두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도전하고 있다.

[부산 kt 소닉붐, 구단 명칭 변천사 및 주요 성적]
1. 1997.01~1999.08 : 광주 나산 플라망스
2. 1999.08~2000.05 :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
3. 2000.05~2001.07 :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
4. 2001.07~2003.09 :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5. 2003.09~2003.11 : 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
6. 2003.11~2009.06 : 부산 KTF 매직윙스
* 2006~2007 : 챔피언 결정전 진출 (vs. 울산 모비스, 3승 4패로 준우승)
7. 2009.06.~현재 : 부산 kt 소닉붐
* 2010~2011 :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41승 13패)

[부산 kt 소닉붐을 거쳐간 사령탑은?]
1. 황유하 : 1997.02.01.~2000.01.24.
* 광주 나산 플라망스 &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 감독 역임
2. 김태일 : 2000.01.25.~2000.05.17.
*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 감독대행 역임
3. 진효준 : 2000.05.18.~2002.05.31.
*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 &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감독 역임
4. 이상윤 : 2002.06.01.~2003.04.30.
*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감독 역임
5. 추일승 : 2003.06.23.~2009.04.22.
* 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 & 부산 KTF 매직윙스 감독 역임
6. 전창진 : 2009.04.23.~2015.03.19.
7. 조동현 : 2015.04.07.~2018.04.06.
8. 서동철 : 2018.04.06.~현재
* 이상 부산 kt 소닉붐 사령탑 역임

[부산 kt 소닉붐이 배출한 MVP는?]
1. 1998~1999 올스타전 : 워렌 로즈그린
* 광주 나산 플라망스 소속
2. 2009~2010 최우수 외국선수 : 제스퍼 존슨
3. 2010~2011 정규리그 : 박상오
4. 2018~2019 올스타전 : 마커스 랜드리
* 이상 부산 kt 소닉붐 소속

https://img.theqoo.net/bxaEc

코리아텐더의 4강 신화 ‘함께 할 때 우린 두려울 게 없었다’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m=search&p=151&b=bullpen&id=3259508&select=title&query=

2012-2013시즌 초반 복병들의 선전이 프로농구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모래알군단’이라는 오명에 시달린 서울 SK는 달라진 조직력으로 단독 선두를 질주 중이고, 시즌 개막 전 악재에 시달렸던 인천 전자랜드도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농구 역사를 통틀어 이들만큼 농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이들이 또 있었을까. 정확히 10년 전인 2002-2003시즌, 가난한 살림의 설움을 딛고 4강 신화를 달성한 코리아텐더다.

전신인 나산, 골드뱅크를 빼놓고 코리아텐더의 역사를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여성의류업체 나산그룹은 이민형과 김상식이 주축이 된 기업은행 선수단을 인수, 신생구단으로 KBL에 발을 들였다. 원년시즌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돌풍을 일으켰지만, 행복한 나날들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산의 모기업이 IMF 한파가 몰아친 1998년, 부도를 낸 것이다.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진 나산 기업은 몇몇 업체를 매각하며 근근이 농구단을 운영했다. 제 아무리 강도 높은 훈련을 극복해온 운동선수들도 동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997-1998시즌 초반의 상승세가 꺾인 나산은 결국 1경기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KBL에 진 빚을 상환하지 못해 연맹 회원 자격 박탈 위기에 놓인 나산은 1999년 인터넷 벤처기업 골드뱅크 커뮤니케이션즈에 매각돼 급한 불을 껐지만, 시련은 다시 농구단을 찾아왔다. 과거 나산처럼 재정난에 시달린 골드뱅크는 2001년 새로운 통신판매회사인 코리아텐더를 국내에 도입하며 주력사업으로 전환, 구단명을 코리아텐더로 바꾸며 농구단 운영 의지를 이어갔다. 연고지를 여수로 옮기며 재창단을 선언한 코리아텐더는 2001 신인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고려대의 특급가드 전형수를 지명,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 여기까지는 코리아텐더가 2002-2003시즌에 연주한 신화의 전주곡이다. 자, 이제부터 코리아텐더의 신화를 주도한 주역들을 만나 2003년의 향기로운 추억에 빠져보자.

카드값에 시달렸던 선수들

코리아텐더의 첫 시즌은 성공적이었다. 원년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의 주역 에릭 이버츠가 트레이드를 통해 돌아왔고, 정락영과 황진원은 부지런한 수비와 센스로 가드진을 이끌었다. 신인 전형수는 활력소 역할을 도맡았다. 비록 5라운드에 당한 6연패를 극복하지 못해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차기 시즌에 대한 희망만큼은 확인할 수 있던 시즌이었다. 하지만 2001-2002시즌 종료와 동시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코리아텐더는 시민구단으로 전환해 여수에 뿌리내리려 했지만, 척박한 스포츠마케팅 시장은 그들에게 또 한 번 ‘돈’이라는 시련을 안겼다. 벌써 이번이 몇 번째인가. 꽤 많은 연봉을 받던 진효준 감독은 그렇게 팀을 떠나야했고, 이제 막 초보 딱지를 뗀 이상윤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겨우 팀을 이끌어나갔다. 모양새만 갖췄을 뿐 실속은 전혀 없는 구단이었다. “선수들은 연봉계약이었지만, 나는 정식계약을 하고 감독대행을 맡은 게 아니었다. 월봉을 받는 신세였다. 한마디로 파리 목숨이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내 역할이자 처지였다.” 이상윤 감독의 말이다.

이상윤 감독은 사태 파악이 빨랐다. 선수단과 자신, 그리고 사무국까지 살아남기 위해선 인수기업이 나타나는 것 외에 방도가 없었다. 대기업에 코리아텐더를 어필하기 위해 필요한 건 단 하나. 바로 성적이었다. “선수들에게 매일 같이 얘기했다. ‘우리는 반드시 플레이오프를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농구를 못하게 되는 신세다’라고.” 선수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구단 재정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후 무려 6개월 동안 급여를 못 받았으니 말 다했다. 연봉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게 무색했다. 엄연히 프로선수인데 단 1원의 수입 없이 운동하며 시즌을 준비했다. 김용식과 김기만, 변청운과 정락영은 카드값을 메우기 위해 각각 맞보증까지 서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지금에서야 에피소드라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참으로 서럽고 서러운 일화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버스가 아닌 승합차를 타고 체육관, 웨이트 트레이닝장으로 이동해야 했고, 고기로 든든히 체력을 보충해야 할 선수들은 스팸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나마 여수에서 훈련을 할 땐 홈구장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숙소가 있는 수도권에선 운동을 할 전용체육관을 구하는 것조차 일이었다. 이상윤 감독대행이 대학팀에 연습경기를 부탁해야 겨우 체육관을 쓸 수 있었다. 월세 아파트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도 다행이라 여기며 버티고 또 버텼다.

정신력으로 2002-2003시즌을 준비하던 선수단에 패닉을 안겨준 일대사건이 일어났다. 2002년 10월 25일, 팀의 유일한 억대연봉선수인 전형수가 울산 모비스로 트레이드 된 것. 김정인을 반대급부로 데려왔다고 하지만, 사실상 현금 2억 5,000만원을 받기 위한 ‘선수 팔기’였다. 시즌 개막을 불과 하루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개막에 앞서 경희대와의 마지막 연습경기를 치르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던 도중 트레이드를 통보받은 전형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염없이 눈물만 흐를 뿐이었다. “양 구단의 사무국끼리만 합의를 본 것이다. 나나 선수들 모두 일방적으로 통보 받았다. ‘지금 당장 (전)형수를 모비스로 보내’라고 하더라. 울면서 짐을 챙기던 형수가 나를 보며 한 마디 했다. ‘감독님, 저 가기 싫어요’라고. 우리 팀에 남으면 뻔히 고생할 걸 알면서도 말이다. 형제처럼 지내며 플레이오프에 반드시 오르자고 각오를 다진 동료들과 헤어지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이상윤 감독의 말이다. 기억이 떠오른 듯 김기만의 눈가도 어느새 촉촉해졌다. 그때 심정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목이 메었는지 그는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전형수가 남긴 선물

코리아텐더는 전형수를 내주며 받은 2억 5,000만원으로 숨통이 트였다. 선수단에 밀린 급여를 적게나마 쥐어줄 수 있었다. 따뜻한 밥, 기타 구단 운영에 필요한 자금 모두 전형수가 남긴 선물로 해결했다. 무엇보다 큰 선물은 팀에 결속력을 안겨준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형수가 있을 경우 오히려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형수가 구단 사정 때문에 떠나면서 선수들은 똘똘 뭉칠 수 있었다. 부자구단의 지원을 받지 않더라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오기가 생겼다.” 변청운의 말이다.

변청운의 말대로 기적이 일어났다. 해외전지훈련은 꿈조차 꾸지 못한 코리아텐더의 선전은 프로농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인천 SK 빅스와의 시즌 첫 경기에서 승리하며 시즌을 시작한 코리아텐더는 시즌 내내 5할 승률을 유지했다. 강팀을 연달아 격파한 2라운드 막판에는 무려 보름 동안 1위를 지키기도 했다. “재정상태가 안 좋아 상대를 분석하며 시즌을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훈련을 할 수 있다는 현실에 감사했을 뿐이다. 그랬기 때문에 시즌 초반 선두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선전이었다.” 이상윤 감독의 말이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이상윤 감독대행은 확고한 신념을 갖고 팀을 꾸렸다. 스타플레이어가 없는 만큼 상대보다 한 발 더 뛰는 농구로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팀이 1번하고 마는 커트-인 또는 로테이션을 단 한 차례 공격에서 몇 번이고 시도했다. 상대가 먼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말이다. 수비 성향이 강한 선수들이 많아 조직력도 좋았다. 공격은 이버츠와 안드레 페리가 도맡으니 걱정할 일 없었다.

물론 시즌 중에도 위기는 몇 번이고 찾아왔다. 선수층이 얇아 체력에서 한계를 맛본 코리아텐더는 시즌 중반부터 중위권으로 추락했다. 실점도 시즌 초반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여전히 급여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다보니 사무국 직원도 하나 둘 떠나갔다. 공격과 수비를 넘나들던 살림꾼 김기만은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시즌-아웃됐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또 돈이 선수를 괴롭혔다. 김기만의 수술을 진행한 일본병원은 인터폴에게 김기만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자신을 프로선수라고 밝힌 이가 몇 달째 병원비를 못 내고 있으니 말이다.

기적을 노래하다

언론은 어려운 여건 속에도 희망을 놓지 않은 코리아텐더를 두고 ‘헝그리 정신’이란 표현을 썼다. 그들의 정신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이는 선수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표현이 됐다. 변청운은 “비시즌 동안 열심히 준비하며 기량을 쌓은 게 ‘헝그리 정신’이란 표현에 묻히는 게 안타까웠다”라고 당시 선수단의 반응을 전했다.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오기로 버텼다. 결국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28승 26패 정규리그 4위. 1997시즌 이후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달성한 플레이오프 진출이었다.

돌풍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6강에서 만난 ‘부자구단’ 서울 삼성을 상대로도 코리아텐더의 선전은 계속됐다. 베스트5의 연봉을 모두 더해도 4억 3,100만원으로 ‘연봉킹’을 고수한 서장훈의 몸값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코리아텐더는 경기력으로 당당히 가치를 인정받았다. 홈에서 열린 1차전. 3점차로 뒤져 패색이 짙던 코리아텐더는 경기종료 52초 전 림을 가른 황진원의 3점슛을 앞세워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결국 코리아텐더는 이후 페리와 황진원의 연속득점으로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분위기가 완전히 살아났다. 4강에 오를 거란 직감이 들었다”란 이상윤 감독의 말처럼, 시리즈의 주인공은 코리아텐더였다. 적지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차전은 압도적인 승리였다. 코리아텐더는 폭발적인 3점슛으로 삼성을 잠재웠다. 3쿼터가 종료됐을 때 격차는 이미 30점차였다. 성공시킨 3점슛만 무려 14개에 달했다. “벤치에서 목발을 짚고 경기를 봤다. ‘이게 뭐지? 우리가 이래도 되나?’란 생각이 들었다. 삼성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경기였다.” 김기만의 말이다.

그렇게 코리아텐더는 6강을 넘어 4강이라는 기적을 노래했다. 남들에겐 흔한 업적일 수 있지만, 시즌 개막 전 엄청난 위기에 처했던 코리아텐더로선 말로 설명할 수 없이 값진 결과였다. 비록 정규리그 우승팀 대구 동양과의 4강 플레이오프를 3전 전패로 마무리했지만, 그들은 박수 받기에 충분했다. 코리아텐더라는 이름으로 여수실내체육관에서 치른 마지막 경기인 4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는 연고지 이전 후 최다인 4,250명이 몰렸다. 이들은 경기 종료 후 시즌 내내 뜨거운 감동을 안겨준 코리아텐더를 향해 기립박수를 보내줬다.

마법날개를 달다

목표 이상의 성과를 달성했다. 금방이라도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 안정적인 환경 속에 운동을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구단 매각 작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했다. 어려운 시기에 놓인 팀을 훌륭히 이끈 이상윤 감독의 가슴도 타들어갔다. 정식계약을 맺지 못한 상태라면, 대기업이 새 주인이 될 경우 비주류 출신(성균관대)인 자신의 거취가 불분명해질 게 뻔했다. 그래서 새로운 기업이 나타나도 자신까지 끌고 갈 수 있게 사무국을 찾아가 정식계약을 부탁했다. “1년만이라도 좋으니 새 기업이 나에 대해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시간을 달라”라고 말이다. 1번, 2번, 3번을 찾아가도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건 새로운 기업에서 해결할 일이다.”

이미 두 팀으로부터 다년계약을 제시받은 차였던 이상윤 감독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낸 자식들과 헤어지는 건 싫었지만, 뚜렷한 대안이 서지 않았다. 결국 이상윤 감독대행은 3년 계약을 제시한 서울 SK로 떠났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극복했기에 좋은 환경에서도 함께 하고 싶었지만, 선수들도 감독의 선택을 존중해줬다. “어느 감독이었어도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팀을 떠나는 게 당연했다.” 김기만이 운을 뗐다. 변청운 역시 “선수들 모두 감독님이 SK에서도 성공하시길 바랐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선수단의 운명만 남았다. 2003년 7월, “인수가 안 되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면 공개 드래프트를 통해 선수들이 갈 길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란 구단의 입장발표가 있을 정도로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어렵게 2003-2004시즌에 참가하게 된 2003년 11월,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국내 최대의 통신사 KTF가 부산으로 연고지를 이전한 코리아텐더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한 것. 정식 명칭은 ‘부산 KTF 매직윙스’. 그야말로 코리아텐더의 신화를 이끈 영웅들 어깨에 마법의 날개가 달리는 순간이었다.

시즌 준비가 미흡했기에 2003-2004시즌까지 좋은 성적을 이어가지 못했지만, KTF는 이후 세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그간의 설움을 보상받았다. 2006-2007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의 챔피언결정전 진출까지 달성했고, KT 소닉붐으로 명칭을 변경한 이후에는 정규리그 최다승 기록을 새로 쓰며 우승트로피까지 들어올렸다. 하루아침에 농구를 포기할 뻔한 위기까지 몰렸던 코리아텐더의 영웅들. 그들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었다.

+
요즘 크트팬들이 이상윤 해설을 좋아하고 이 위원도 크트잘알이란 얘길 보니 왠지 이때의 역사가 오버랩되기도 함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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