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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과거가 좋았다는 말 따위는 듣지 않겠다. AKB48이 20년의 세월로 증명한 지속의 광기, 그리고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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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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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많은 '돌아온 덬'들과 비슷하게 오랫만에 에케비의 20주년 라이브에 갔다온 어떤 일본인의 감상문 
번역은 잼민이 

https://note.com/kanasawa9420/n/n480624841eb1

 

사실 얼마 전에, 『AKB48 20th Year Live Tour 2025』에 다녀왔어.

 

솔직히 말할게. 티켓을 끊을 때 내 기분은, 뭐랄까 동창회에 가는 기분이었어. 그리운 노래나 들을 수 있을려나. 아는 멤버, 아직 남아 있으려나. 그런 얄팍한 향수와,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흥미 위주의 마음.

 

우리에게 AKB라고 하면, 역시 그 '카미7(神7)'이 있던 시절, 온 일본이 열광했던 그 시대가 너무 강렬하잖아? 부활동 끝나고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서 흘러나오던 <헤비 로테이션>. 수험 공부 틈틈이 친구랑 노래방에서 목청껏 질러대던 <이이와케 Maybe>.

 

그 시절의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 최근 몇 년간은 멋대로 거리를 두고 있었지. 지금의 AKB는 잘 모르겠어. 역시 전성기가 최고였지. 라면서, 다 아는 척, 어른인 척했었어.

 

하지만 말이야. 라이브가 끝나고 공연장 밖으로 나왔을 때. 난 그런 내가 죽을 만큼 부끄러워졌어.

거기에 있었던 건, 단순한 동창회 따위가 아니었어. 과거의 유산을 갉아먹는, 뒤를 돌아보는 쇼도 아니었어.

 

거기에 있었던 건, 20년이라는 터무니없이 긴 시간을, 단 한 번도 끊어내지 않고 지켜냈으며, 심지어 더 진화시키려고 하는, 광기 어린 다큐멘터리의 도달점이었어.

 

오늘은, 그날 밤 내가 받은 충격과, 거기서 보였던 '계속한다는 것'의 위대함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 볼게.

 

이건 아이돌 이야기지만, 아이돌 이야기가 아니야. 한때 무언가에 열광했고, 지금은 사회의 한구석에서 적당히 작아져 버린, 우리네 인생의 재방송에 대한 이야기야.


라이브가 시작되고, 오버처(Overture, 그 유명한 도입부 음악 ㅋ 모르는 사람은 검색해 봐)가 흐르는 순간. 공연장의 볼티지가 단숨에 올라갔어. 나도 소름이 돋더라. 조건반사 같은 거지, 이건.

 

하지만 막이 오르고 그곳에 서 있던 건, 내가 알던 그 시절의 그녀들이 아니었어. 이름도 모르는, 훨씬 어린 멤버들. 하지만 그 눈빛은 이글거리고 있었고, "우리가, 지금의 AKB다" 라는 강렬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어.

 

난 거기서 헉했어. 그녀들은 항상 '거대한 망령'과 싸우고 있구나, 싶어서.

 

옛날이 더 좋았어. 모르는 애들 투성이네. 세상은 무책임하게 그렇게 말해. 나도 그렇게 말하던 사람 중 하나였고.

위대한 역사를 가진 팀이나 조직에 있어 본 사람이라면 알 거야. 전성기와 비교당하는 괴로움을. 아무리 노력해도 '과거의 영광'이라는 필터 너머로 평가받는 불합리함을.

 

하지만 그녀들은 도망치지 않았어. 그 거대한 망령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 역사를 전부 짊어진 채, 그럼에도 "지금이 제일 최고다"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문자 그대로 생명을 깎아가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어.

 

우리가 아는 명곡들이, 새로운 안무, 새로운 목소리, 새로운 해석으로 차례차례 펼쳐져. 그건 과거의 재현이 아니었어. 과거의 갱신이었지.

 

선배들이 만든 길을 지키기만 하는 게 아니야. 우리가, 이 길을 넓혀 나간다. 그런 기백이 땀방울 하나하나에서 전해져 오더라.

 

우리도 마찬가지잖아. "옛날엔 대단했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 과거의 나라는 망령에게, 지금의 내가 이기지 못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무대 위의 그녀들은 가르쳐 줬어. 과거는, 뛰어넘을 수 있다고. 비교하며 비굴해지는 게 아니라, 과거를 연료 삼아 지금을 전력으로 태우면, 그 불꽃의 색은 그 시절과는 다른 아름다움으로 빛난다는 것을.

 


20주년이라니, 말로 하기는 쉽지. 하지만 아이돌 그룹이 20년을 이어간다는 건, 비정상적인 일이야. 멤버는 바뀌고, 시대는 변하고, 트렌드는 흘러가. 그 격류 속에서 단 한 번도 간판을 내리지 않고 계속 달린다. 이게 얼마나 가혹하고, 잔혹하고, 그리고 고귀한 일인지.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해도 금방 그만두잖아. 적성에 안 맞아서, 바빠서, 질려서. 그만둘 이유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아무도 그걸 비난하지 않아.

 

하지만 AKB는 그만두지 않았어. 폭풍우가 치는 날도, 맞바람이 부는 날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겨울의 시대도. 바통을 이어받고, 땀을 흘리고, 흙탕물을 뒤집어쓰며 우직하게 앞으로 계속 나아갔어.

 

라이브 중반, 역대 의상들이 쭉 늘어선 연출이 있었어. 그걸 봤을 때, 나는 그게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거기에 배어든 수많은 땀과 눈물의 양이 상상돼서 할 말을 잃었어.

 

수백 명의 소녀들이 청춘의 전부를 바치고, 고민하고, 상처받고, 그러면서도 웃으며 무대에 계속 섰던 역사. 그 방대한 에너지의 집적(集積)이, 지금의 AKB라는 거대한 성을 떠받치고 있는 거야.

 

나는 깨달았어. '계속하는 것' 이상의 엔터테인먼트는 이 세상에 없는 게 아닐까 하고.

반짝 히트도 대단해. 천재적인 번뜩임도 훌륭해. 하지만, 너덜너덜해져도, 촌스러워 보여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서 있는 모습. 그것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가장 깊고, 길게 울리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더라.

 

우리가 그녀들에게 끌리는 건, 거기서 인간이 가진 강인함의 극치를 보기 때문이야. 불합리한 사회,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그런 속에서 이를 악물고 '지속'이라는 무기 하나만으로 싸우는 그녀들의 모습은, 그대로 사회라는 황야에서 싸우는 우리를 향한, 최강의 응원가가 되어 있었어.


라이브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공연장 전체가 대합창으로 뒤덮였을 때. 내 눈에서, 영문 모를 눈물이 쏟아지더라. 슬픈 것도, 단순히 그리운 것도 아니야. 좀 더 근원적인, 영혼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듯한 눈물.

 

그 정체는, 아마 '긍정'이었던 것 같아.

 

사회에 나오고 나서 우리는 효율이라든가 가성비라든가 정답만을 쫓아왔잖아. 쓸데없는 짓은 안 해. 실패는 피해. 감정은 죽여. 그렇게 스마트하게 사는 게 어른이라고 믿어왔지.

 

하지만 눈앞에서 땀범벅이 되어 노래하는 그녀들은, 그런 내 가치관을 정면으로 부정해 줬어.

"촌스러워도 괜찮아." "땀투성이가 돼서 필사적으로 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전력으로 산다는 건, 이렇게나 멋진 일이야."

그렇게,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어.

 

그녀들을 통해서, 과거에 부활동으로 흙투성이가 되었던 시절의 나를 떠올리고 있었어. 그 시절의 나는, 스마트하지 않았어. 요령도 없었고, 실패만 했지. 하지만, 틀림없이 '살아' 있었어.

 

어른이 되고, 똑똑해진 척하면서, 나는 열광하는 것을 촌스럽다고 잘라내고, 상처받지 않는 안전지대로 도망쳐 있었던 것뿐 아닐까? 무대 위 그녀들의 빛은, 그런 나의 식어버린 마음을 강렬한 열기로 녹여주었어.

 

"그러니까 너도, 더 뜨거워질 수 있잖아?" "아직 끝내기엔 너무 빠르잖아?"

그녀들의 노랫소리는, 아이돌 노래라는 틀을 넘어서 내 인생을 향한 강렬한 격문처럼 울려 퍼졌어.

 

흔히 '오시카츠(推し活, 덕질)'라는 말을 듣는데, 이번 라이브로 그 진짜 의미를 알 것 같았어. 그건, 아이돌을 응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열광할 수 있는 자신을 확인하는 작업이구나 하고.

 

평소 생활에서 목이 쉬도록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일은 없어.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할 일도 없지. 우리는 감정에 뚜껑을 덮고, 가면을 쓴 채 살아가니까. 하지만 라이브라는 비일상의 공간에서, 펜라이트를 흔들고, 소리 지르고, 눈물 흘리면서, 우리는 감정의 뚜껑을 열 수 있어.

 

"아, 나는 아직 이렇게 뜨거워질 수 있구나." "내 심장은, 아직 죽지 않았구나."

 

그 안도감. 그 해방감. 그게, 내일을 살아가는 활력이 돼.

 

그녀들은 우리에게 꿈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열정'이라는 불씨에 바람을 불어넣고, 기름을 부어 다시 한번 타오르게 해주는 착화제인 거야.

 

그러니까, 다 큰 어른이 아이돌에 빠지는 걸 현실 도피라며 비웃는 놈이 있다면, 난 전력으로 부정할 거야. 저건 현실 도피 따위가 아니야. 현실이라는 차가운 세계에서, 얼어 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영혼의 온기를 취하기 위한 절실하고도 신성한 행위라고.

 

이번에 오랜만에 그 모닥불을 쬐고 나서, 난 정말로 구원받은 기분이 들었어. 차갑게 식어있던 손발에 피가 돌기 시작한 감각이 있었거든.

 

라이브가 끝나고 공연장 밖으로 나오니, 밤바람이 평소보다 기분 좋게 느껴졌어. 축제가 끝난 뒤의 쓸쓸함은 있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가슴 깊은 곳에 묵직하고 따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어.

 

그녀들은 내일부터 또 혹독한 레슨을 받고, 압박감과 싸우며 무대에 계속 서겠지.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도, 내가 있는 곳에서 싸워야겠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생각이 들었어.

 

나의 무대에는 화려한 조명도 없고, 환호성도 없어. 수수한 사무직이나, 흙내 나는 영업이나, 고독한 작업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녀들이 20년간 바통을 이어왔듯이, 나도 내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끊기지 않게 엮어 나가야지.

 

누구에게 평가받지 않아도 좋아. '옛날이 좋았지'라며 뒤돌아보지 말고, 지금의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오늘이라는 하루를 전력으로 퍼포먼스 하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우울했던 일이 조금은, 기대된다고 생각 들지 않냐? ㅋ

 

혹시 옛날에 AKB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멀어진 사람이 있다면. 혹은 무언가에 미친 듯이 빠져본 경험이 있지만 지금은 식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기회가 된다면 지금의 그녀들을 한번 봐줬으면 해. 거기에 있는 건, 낯선 아이돌의 모습이 아니야. 우리가 정말 좋아했던 그 '한결같음'의 결정체가, 더욱 순도를 높여서 거기서 빛나고 있으니까.

 

그리고, 떠올려 줬으면 해. 네 안에도, 아직 그 한결같음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청춘이라는 건, 특정 시기를 말하는 게 아니야. 지금, 이 순간을, 열량을 가지고 살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거야.그렇다면 우리의 청춘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오히려 여러 경험을 하고 아픔을 안 지금이기에, 더 깊고 더 진한 청춘을 시작할 수 있을 거야.

 

라이브 마지막에 멤버들이 외친 말이 지금도 귀에 맴돌아.

 

"저희는 멈추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달려가겠습니다!"

 

그 말에 대한 내 답은 하나.

"그래, 나도 지지 않고 달릴게."

그것뿐. 그때까지, 서로 각자의 필드에서 흙투성이가 되어 계속 싸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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