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덬은 멜뮤 보고 담 시리즈 Speak Yourself 같다고 생각했는데,
눈알 안 걸길 다행인거 같아.
왜냐면 아닌거 같거등 -_- 사실 걸 눈알도 없음요 ㅠ
사실 Speak 이게 5글자라써 좀 찜찜했었어.
강박증까진 아니지만, 뭔가 줄 맞추는 거 좋아하는 나덬으로썬
뭔가 삐긋한 느낌이었거든.
근데 그 글에 어떤 덕이 싸이퍼4 가사 언급했거든.
(근데 그 댓글쓴 덬아~ 아웃트로 her 아니고 싸이퍼4야ㅎㅎ 그나저나 덬 덕분에 힌트 얻었어. 고맙!)
거기에 보면 I love myself, I know myself 나오자나.
이거다 싶었지. WHO
ARE YOU랑도 맥락이 이어지니까.
게다가 know는 4글자야. 줄이 딱 맞잖아?
그러니 Speak Yourself는 일본 앨범 Face Yourself 처럼,
중간에 티저 느낌이라고 보는게 맞단 생각이 들었음.
암튼, 나덬의 지난 주장 고칩니다~ 담 시리즈는 Know Yourself이지 않을까 하는 느낌?
서론이 길었다.
이제 원래 이 글을 쓰려던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가서,
이번엔 그동안 방탄 세계관에서 자주 등장하는 ‘나비’라는 메타포에 대해서 써볼까 함.
일단, 방탄 노래 Butterfly.
솔직히 나덬은 이 노래가 과연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인가… 모르겠더라고 -_-
사실 내가 방탄의 노래를 첨 좋아한 이유는 비트? 라고 해야하나.
암튼 난 댄져 악개로 시작했으니까.
근데 점점 방탄 다른 노래를 듣다보니 노래 가사들이 왠걸.
시라고 해도 손색 없을 정도여서
솔직히 ‘이것봐라? 좀 하네?’ 란 심정으로 스며들었거든. -_-
그런 의미에서 버터플라이 가사도 뭔가 싶었지.
암튼, 다시 얘기 돌아와서.
첨엔 ‘나비 (Butterfly)’ 와 ‘꿈,’ 이 두 단어에 장자의 호접지몽인가 싶었다.
(위키에서 긁어옴)
昔者莊周夢為蝴蝶,栩栩然蝴蝶也,自喻適志與!不知周也。
俄然覺,則蘧蘧然周也。
不知周之夢為蝴蝶與,蝴蝶之夢為周與?周與蝴蝶,則必有分矣。此之謂物化。
옛날에 장주(장자의 이름)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훨훨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것이 스스로 기뻐 제 뜻에 맞았더라! (그래서) 장주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깨어, 곧바로 뚜렷이(혹은 놀라서 보니) 장자가 되었다.
알지 못하겠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가?
장자와 나비 사이에 반드시 구분이 있다. 이것이 만물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다.
이거 학교에서 배울땐, 단순히 일장춘몽, 그니까 한낱 꿈이라고 배웠던 거 같은데
나중에 대학와서 누가 그랬어. 그런 단순한 해석은 하지말라고 -_-
암튼, 새롭게 접했던 해석은
장자의 이 일화는 자아의 인식에 관한 문제라고 했음.
뭐냐면, 장자가 본연의 본인인가, 아님 나비가 본연의 본인?인가. 이 문제라는 거지.
장자가 꿈에선 본인이 나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게 과연 꿈이라서?
아니면, 지금 장자라고 생각하는 본인이 나비가 꾸는 꿈에 나타나는 것인가?
더 나아가,
장자와 나비를 구분하려면, 내가 누구인지 먼저 확실히 알지 못하면 구분을 못하게 되지.
다시 말해, 본인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본인을 다른 주체들과 구분을 할 수 없다는.
하지만 주체들은 각자 구분이 되는 존재. 그러니, 본인에 대해 인식해라..
뭐 이게 저 일화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는 거야.
근데 이거 방탄 세계관에서 우리가 접하는 ‘자아 성찰’ 문제와도 닿아있지.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가사에서 등장하는 ‘해변의 카프카’는 내가 읽지 않아서 의미를 모르겠는데,
카프카만 두고 보자면, 떠오르는 그의 대표작 ‘변신.’
갑자기 벌레로 변한 세일즈맨의 이야기.
뭔지 모르겠는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바퀴벌레가 떠올라서 너무 괴로웠어 ㅠ
암튼 그 ‘변신’이란 작품을 보면
어제까지 사람이었던 주인공은 갑자기 벌레로 변하게 되지.
그렇다면 뭔가 진짜인가. 사람이었던 주인공 아니면 벌레?
또 굳이 가져다 붙이면, 이 스토리 또한 자아에 대한 인식 문제로 연결이 된다고 생각했지.
그렇다면, 방탄 세계관에서 등장하는 ‘나비’는
장자의 호접지몽 스토리랑 카프카의 변신과 비슷한 맥락에서
자아에 대한 인식 문제가 아닐까 싶었어.
근데 자아 인식 문제로 끝나기엔, 나비란 메타포는 다른 곳에서도 많이 쓰였어.
뭔지 모르지만 그런 느낌이었어.
암튼 뭔가 더 있지 않을까 싶던 와중에
‘나비’에 관한 궁예를 모아놓은 게시물을 보다가
이 인스타 포스팅을 봤어. (참고: https://theqoo.net/bts/934176105)
갑자기 등장한 불어,
Papillon. 빠삐용. 나비란 뜻이지.
빠삐용이 나비긴 한데, 빠삐용 하니 여러 가지가 떠오르더라고.
먼저 귀가 나비처럼 생긴 강아지 종류 빠삐용.
그담엔 그 유명한 감옥 탈출 스토리 빠삐용.
마지막으로, 내가 가져다 쓸라고 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 (원제: Le
Papillon des étoiles, 별들의 나비).
한때 베르나르의 ‘개미’에 폭 빠져서 한동안 이 사람 책 열심히 읽었는데.
암튼 그 옛날 읽었던 이 책이 떠올랐어.
대강 스토리를 말해보자면,
인류가 지구에서 멸망을 향해가자,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서 (새로운 지구?) 파피용이란 우주선을 타고 떠나는 사람들의 얘기야.
“마지막 희망은 탈출이다”라고 외치면서.
근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떠났지만,
예전 지구에서 일어났던 안 좋은 일들이 반복되어 일어나게 되지.
그래서 결국엔 태초의 아담 이브 스토리처럼, 비슷하게 다시 reset되는 느낌으로 이야기는 끝나.
이 책을 읽으면서
좋지 않은 과거를 단순히 reset하려고 하는 거 자체가 사실 바람직한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
그 과거의 안 좋은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고찰이 없으면 말이지.
무조건 새로운 시작이 해피엔딩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는 교훈.
사실 이런 뉘앙스의 이야기는 많은 시간여행 스토리에서 나타나기도 하잖아?
근데 이 책 표지 보면 뭔가 낯익지 않아?
나비, 그리고 우주.
그리고 이 책에 나온 몇 구절을 인용해 볼까?
나덬이 방탄 세계관과의 접점이 있다고 생각한 구절들이야.
인간이 자기 내부의 공간도 정복하지 못하면서 외부의 공간을 정복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우리 가슴 속에 있는 별에 다가 가지도 못하면서 멀리 있는 별을 찾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구절은 자아 성찰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는 거 같고..
고통은 왜 존재하는 거죠?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란다.
불에서 손을 떼게 하려면 고통이라는 자극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희귀병 중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 있단다.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상처를 느끼지 못하는 거지.
뜨거운 불판에 손을 올려놓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다가
살이 타는 냄새를 맡고 나서야 비로소 깜짝 놀라는 거야.
이 《무(無)고통》이라는 병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오래 살지 못하지.
이건 조셉 캠벨도 말한 영웅의 역경 극복 스토리랑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어.
뭔 소리냐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
그게 과연 의미가 있냐...에 대해선 진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했거등.
근데 캠벨은 내 삶의 영웅이 될려면 필연적으로 고통은 따라온다 (지난 과거를 관찰해 본 결과)고 했어.
그리고 베르나르는 이 책에서 '행동의 변화'는
고통이 수반될 때 좀더 적극적으로 나타난다고 본거고.
그러니까 종합해 보면,
방탄 세계관에서 쓰였던 ‘나비’란 메타포는
자아의 인식문제를 논할 때도 쓰였고,
고통을 겪음으로 인해 성장하는 이야기에도 쓰였단 말이지.
또한 고통을 무조건 회피하다보면 그 고통은 무의미하게 반복될 뿐이지만,
내가 그 고통에서 어떤 교훈을 얻는다면
그 고통은 내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에도 나비는 메타포로 쓰였어.
사실 나비가 등장하는 Nevermind 가사도 볼까?
“NEVER MIND 쉽진 않지만 가슴에 새겨넣어
부딪힐 것 같으면 더 세게 밟아 인마
Come on
NEVER MIND NEVER MIND
그 어떤 가시밭길이라도 뛰어가
NEVER MIND NEVER MIND
세상엔 네가 어쩔 수 없는 일도 많아
You better
NEVER MIND NEVER MIND
부딪힐 것 같으면 더 세게 밟아 인마
NEVER MIND NEVER MIND
포기하기엔 우린 젊고 어려 인마
NEVER MIND
부딪힐 것 같으면 더 세게 밟아 인마
부딪힐 것 같으면 더 세게 밟아 인마
NEVER MIND”
결국 같은 맥락 같아.
내게 주어진 현실이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그걸 받아들여야 하고,
그렇다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며 괴로워하기보다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의지.
이게 방탄이 ‘나비’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건 아닐까 싶었지.
그리고 말야...
이 나비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거 같아.
어제 잠이 안와서 다시 복습한 달방에서도 펜션 벽장식에 나비그림이 3개 있었단 말이지...
원래 있었던 걸까, 아니면 걸어놓은걸까.
나야 모르지만. 그냥 그랬다고.
암튼
뭐 여러 가지 갖다 썼지만,
사실 가장 기본적으로, 나비가 되려면 누에고치를 거쳐야 하잖아.
'고통' 즉 누에고치 상태를 거쳐야 아름다고 이쁜 '나비'로 재탄생한다는 면에서
'나비'는 자주 고통을 통한 성장을 의미하지.
그러니 결국 다른 이야기들에서도 이 의미를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르게 표현한거고.
결론적으로, 방탄 세계관에 등장하는 나비란 메타포는
방탄이 이야기 하려는 큰 그림과 일맥상통하는 거 같아.
우리는 고통을 통해 성장하고, 그 성장 과정 중에 자신에 대한 성찰은 필연적이다.
암튼 여기까지가 나덬이 생각한 나비의 의미야.
그리고 슼에 올려보는데, 아니다 싶음 말해줘. 바로 돌릴게.
난 이만 자러 간다~ 덬들은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