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한인 : 1940년대~일제 패망까지 강제로 러시아 사할린에 끌려간 징용 피해자와 그 후손들 (고려인X) 그 수가 수만명에 이름
https://img.theqoo.net/ncDqc
https://img.theqoo.net/TBpjW
(사할린에 끌려가 벌목작업과 탄광 작업에 동원된 한인들)
고려인과 사할린 한인을 정확히 설명하자면
고려인 : 1860년대부터 이주 시작, 주로 한반도 북부에서 만주 중국 러시아 등지로 이주한 뒤 정착한 조선인. 러시아로 이동해 독립운동에 투신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도 고려인에 포함.
https://img.theqoo.net/hgDJv
1920~30년까지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까지 퍼짐.
https://img.theqoo.net/fCaON
사할린 고려인 : 러시아 북사할린 정착 후 스탈린 강제 이주를 면한 조선인, 1945 해방 이후 소련 다른 지역에서 사할린으로 이주한 고려인
사할린 한인(조선인) : 1940년대 주로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령 남사할린에 강제징용된 사람들. 일제에 의해 학살 등을 겪기도 함. 스스로를 한인, 남한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고려인이라 불리는 것을 원치않음
https://img.theqoo.net/mNYPD
(남사할린에 강제징용되어 광부 교육을 받고있는 조선인들)
https://img.theqoo.net/IMnHM
(서천 사할린 한인회 회장님의 설명)
러시아 내 다른 한국계와 비교해서 사할린한인은 유독 민족정체성을 강하게 지키기로 유명함
고려인과 사할린 한인의 가장 큰 차이는 "자발적으로 한반도 땅을 떠났느냐" 임
자발적 = 고려인 / 비자발적, 강제징용 = 사할린 한인
따라서 고려인과 사할린한인의 지향점도 다름
고려인=정착 / 사할린한인=귀국
고려인은 이미 1910년에 이주역사 50주년을 맞이했고
소련에 적성민족으로 구분되어 강제 이주를 당하는 등 차별을 받자
1940년대 세계대전 중 독일-소련 전쟁에 참전해 공적을 쌓아 소련 사회의 구성원으로 정식 편입하고 정착함
https://img.theqoo.net/AnhJr
('대조국전쟁(세계 2차대전) 시기 고려인동포들의 참전과 노동협력’ 을 주제로 모스크바 시립 민족회관에서 열린 학술회의 포스터)
고려인의 관심사는 성공적인 정착이었고, 남북으로 갈라진 조국과 구분하기 위해 중립적인 고려인이라는 명칭을 널리 쓰기 시작함
https://img.theqoo.net/VFgNu
(1979년 노동절 기념행사를 벌이는 고려인들 모습)
반면 사할린 한인들은 비자발적 이주였으므로 소련에 정착할 생각이 없었음
해방 뒤 매일 귀환선을 기다리며 고향인 남한으로의 귀국에 관심을 뒀음
https://img.theqoo.net/JJHFl
당시 한반도 북쪽은 공업지대라서 일제는 남쪽에서 징용을 많이했음 - 경상 전라 충청 서울경기 등 / 고려인은 함경도 등 주로 이북 출신
바로 배태워보내기 쉬웠던 경상도지역 조선인 징용수가 압도적..
따라서 사할린한인은 이북언어 영향이 짙은 고려말이 아닌 우리 귀에 익숙한 표준어나 남한 지역 사투리를 구사하여 서로간 이질성도 있었다함
고려인협회 및 구 소련지역에서 사용하는 고려인 명칭에도 사할린 한인은 포함 안됨
공식적으로 우리 정부도 고려인과 구분하여 '사할린 한인'으로 부름
일제 패망 후 일제는 일본인만 데려가고 조선인을 버리고 감
https://img.theqoo.net/lDvdw
(사할린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일본인들)
https://img.theqoo.net/zfTCH
“귀국선은 오지 않았다.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사할린에는 ‘이제 곧 귀국한다’, ‘조선인이 먼저 떠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다. 1949년 7월 23일 마지막 일본인들을 태우고 간 귀국선 ‘운센마루’는 돌아오지 않았다.”
https://img.theqoo.net/NBhfZ
미군정과 소련군정이 서로의 대결에 신경 쓰느라 강제징용 피해자를 방치하는 사이 전쟁이 터져 냉전에 접어들고 남한-소련 국교가 단절되며 한인들은 소련에서 무국적자로 고통받으며 살아감
https://img.theqoo.net/UVTQw
소련과 북한이 한인들을 회유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남한지역 출신이라 거부하고 수십년간 무국적을 유지함. 소련/북한국적을 취득하면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까봐서. 고향에 돌아갈 날을 그리면서...
심지어 2세들까지 아직까지 무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음
일부 사람들은 남북이 통일되면 남한의 고향집에 가장먼저 갈 수 있을것을 기대하고 북한국적을 선택해 북한으로 갔지만 북한의 선전은 거짓이었고 90년대 고난의행군이 시작되며 굶어죽기도 함
https://img.theqoo.net/EffaM
(화태(사할린)귀환 재일한국인회의 활동노트. 2012년 국가기록원 전시회)
사할린 한인들이 일본, 한국, 소련 정부에 귀국 탄원을 하고 시위를 열었음
사할린 한인은 민주진영 국가인 남한 귀환을 희망했기에 소련에게 정치적 반동분자 취급당함
여기에 임금차별, 인종차별, 취업차별, 은행이용불가, 거주이전불가 등의 차별을 당함
그래서 소련은 사할린 개발 및 한인 통제를 위해 소련사회에 완전히 편입된 고려인과 북한 사람들을 보내 이들을 통제함
이 과정에서 원흉인 일본은 물론이고 조국도 이들을 외면함...
이렇게 소련은 고려인-사할린한인을 같은 민족인데 지배-피지배 관계로 만들어 통제하려했음
https://img.theqoo.net/jejjJ
한인들은 고려인을 '큰땅배기'라고 부르면서, 적어도 한인들이 사할린에 더 먼저 왔는데 나중에 큰땅(소련)에서 온 조선인들이 우릴 억압한다며 서운해하기도 함
비록 역사의 아픔으로 민족끼리 감정의 골이 있었지만 이건 소련이 조장한 것이었기에
사할린의 고려인과 한인은 감정을 서로에 대한 미움이나 혐오로 발전시키는 대신 같은 민족으로 공생하였고 이후 같은 한국계 민족으로 잘 지내게 됨
https://img.theqoo.net/zzBHJ
(일본에서 가족재회를 위한 초청절차. 2012년 국가기록원 전시회)
일본으로 탈출에 성공한 몇몇 한인들이 재일조선인 사회의 도움을 얻어 재산을 탈탈털어 사할린 한인들을 사할린→일본→남한 으로 귀국시키기도 했지만 그 수는 소수였음
보다시피 절차가 매우복잡하고 재일한인과 혈연관계가 있어야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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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kbs에서 사할린을 찾아가 귀국을 간절히 원하는 한인들을 인터뷰하면서 잊혀졌던 사할린 동포의 존재가 널리 알려짐
참석자는 극적으로 귀환한 옛 사할린 동료들과 남한에 있던 자식, 손주, 형제들임... 가족의 귀환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관심이 적었음
(이후 비밀문서가 공개되며 밝혀진바에 따르면 냉전시기라서 우리 정부가 소련정부에 비밀접촉을 시도하기도 했다함, 또 이분들에 대한 보상 문제로 일본정부와도 갈등이 생기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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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할아버지는 남한에 두고온 처자식 생각에 새 가족도 이루지않고 45년간 단칸방에서 홀로 버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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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지역 한인방송국이나 남한의 라디오 전파를 잡아서 고국언어를 듣는게 유일한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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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 아들, 손주가 와있음. 가족이 한국에 있는데도 제도 미비로 귀국 못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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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딸을 두고 끌려온 아저씨와 어느덧 중년이 된 딸이 스튜디오에 나와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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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대신 장남인 자신이 18세에 징용으로 끌려와 한평생을 보낸.. 아래는 스튜디오에 나온 한국의 동생
그 와중에도 자신이 동생들 보살피지 못한것을 미안해하는...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일본어로 말하시는 분들도 계심... 정말 시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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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방치되는 가운데 수많은 한인들이 한을 품은 채 타국에서 눈을 감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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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와 가족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드디어 92년 처음으로 사할린 한인 귀국사업이 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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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귀국자를 해방일인 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로 한정하면서 자식들을 못데리고 가는 상황이 발생
자식을 두고갈 수 없어 귀국을 포기한 사람도 많았고, 귀국해도 한국-사할린 이산가족이 발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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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들도 부모님을 따라 무국적을 유지한 채 자신들을 한인으로 생각하며 컸는데 국적회복 대상에 포함이 안된데다 또다른 이산가족을 만드는 거임
문제점이 계속 지적된 끝에 작년 2021년 자녀 1인까지 포함하는 법이 제정되기도 하였음
수십년 기다림끝에 백발의 노인이 되어 귀국하는 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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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금까지 한국으로 영구귀국한 사할린 동포는 약 4500여명
아직 많은 한인이 사할린에 남아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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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과 사할린 한인을 정확히 설명하자면
고려인 : 1860년대부터 이주 시작, 주로 한반도 북부에서 만주 중국 러시아 등지로 이주한 뒤 정착한 조선인. 러시아로 이동해 독립운동에 투신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도 고려인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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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까지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까지 퍼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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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고려인 : 러시아 북사할린 정착 후 스탈린 강제 이주를 면한 조선인, 1945 해방 이후 소련 다른 지역에서 사할린으로 이주한 고려인
사할린 한인(조선인) : 1940년대 주로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령 남사할린에 강제징용된 사람들. 일제에 의해 학살 등을 겪기도 함. 스스로를 한인, 남한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고려인이라 불리는 것을 원치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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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할린에 강제징용되어 광부 교육을 받고있는 조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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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사할린 한인회 회장님의 설명)
러시아 내 다른 한국계와 비교해서 사할린한인은 유독 민족정체성을 강하게 지키기로 유명함
고려인과 사할린 한인의 가장 큰 차이는 "자발적으로 한반도 땅을 떠났느냐" 임
자발적 = 고려인 / 비자발적, 강제징용 = 사할린 한인
따라서 고려인과 사할린한인의 지향점도 다름
고려인=정착 / 사할린한인=귀국
고려인은 이미 1910년에 이주역사 50주년을 맞이했고
소련에 적성민족으로 구분되어 강제 이주를 당하는 등 차별을 받자
1940년대 세계대전 중 독일-소련 전쟁에 참전해 공적을 쌓아 소련 사회의 구성원으로 정식 편입하고 정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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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국전쟁(세계 2차대전) 시기 고려인동포들의 참전과 노동협력’ 을 주제로 모스크바 시립 민족회관에서 열린 학술회의 포스터)
고려인의 관심사는 성공적인 정착이었고, 남북으로 갈라진 조국과 구분하기 위해 중립적인 고려인이라는 명칭을 널리 쓰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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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노동절 기념행사를 벌이는 고려인들 모습)
반면 사할린 한인들은 비자발적 이주였으므로 소련에 정착할 생각이 없었음
해방 뒤 매일 귀환선을 기다리며 고향인 남한으로의 귀국에 관심을 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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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반도 북쪽은 공업지대라서 일제는 남쪽에서 징용을 많이했음 - 경상 전라 충청 서울경기 등 / 고려인은 함경도 등 주로 이북 출신
바로 배태워보내기 쉬웠던 경상도지역 조선인 징용수가 압도적..
따라서 사할린한인은 이북언어 영향이 짙은 고려말이 아닌 우리 귀에 익숙한 표준어나 남한 지역 사투리를 구사하여 서로간 이질성도 있었다함
고려인협회 및 구 소련지역에서 사용하는 고려인 명칭에도 사할린 한인은 포함 안됨
공식적으로 우리 정부도 고려인과 구분하여 '사할린 한인'으로 부름
일제 패망 후 일제는 일본인만 데려가고 조선인을 버리고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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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일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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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선은 오지 않았다.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사할린에는 ‘이제 곧 귀국한다’, ‘조선인이 먼저 떠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다. 1949년 7월 23일 마지막 일본인들을 태우고 간 귀국선 ‘운센마루’는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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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과 소련군정이 서로의 대결에 신경 쓰느라 강제징용 피해자를 방치하는 사이 전쟁이 터져 냉전에 접어들고 남한-소련 국교가 단절되며 한인들은 소련에서 무국적자로 고통받으며 살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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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과 북한이 한인들을 회유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남한지역 출신이라 거부하고 수십년간 무국적을 유지함. 소련/북한국적을 취득하면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까봐서. 고향에 돌아갈 날을 그리면서...
심지어 2세들까지 아직까지 무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음
일부 사람들은 남북이 통일되면 남한의 고향집에 가장먼저 갈 수 있을것을 기대하고 북한국적을 선택해 북한으로 갔지만 북한의 선전은 거짓이었고 90년대 고난의행군이 시작되며 굶어죽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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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태(사할린)귀환 재일한국인회의 활동노트. 2012년 국가기록원 전시회)
사할린 한인들이 일본, 한국, 소련 정부에 귀국 탄원을 하고 시위를 열었음
사할린 한인은 민주진영 국가인 남한 귀환을 희망했기에 소련에게 정치적 반동분자 취급당함
여기에 임금차별, 인종차별, 취업차별, 은행이용불가, 거주이전불가 등의 차별을 당함
그래서 소련은 사할린 개발 및 한인 통제를 위해 소련사회에 완전히 편입된 고려인과 북한 사람들을 보내 이들을 통제함
이 과정에서 원흉인 일본은 물론이고 조국도 이들을 외면함...
이렇게 소련은 고려인-사할린한인을 같은 민족인데 지배-피지배 관계로 만들어 통제하려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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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들은 고려인을 '큰땅배기'라고 부르면서, 적어도 한인들이 사할린에 더 먼저 왔는데 나중에 큰땅(소련)에서 온 조선인들이 우릴 억압한다며 서운해하기도 함
비록 역사의 아픔으로 민족끼리 감정의 골이 있었지만 이건 소련이 조장한 것이었기에
사할린의 고려인과 한인은 감정을 서로에 대한 미움이나 혐오로 발전시키는 대신 같은 민족으로 공생하였고 이후 같은 한국계 민족으로 잘 지내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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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가족재회를 위한 초청절차. 2012년 국가기록원 전시회)
일본으로 탈출에 성공한 몇몇 한인들이 재일조선인 사회의 도움을 얻어 재산을 탈탈털어 사할린 한인들을 사할린→일본→남한 으로 귀국시키기도 했지만 그 수는 소수였음
보다시피 절차가 매우복잡하고 재일한인과 혈연관계가 있어야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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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kbs에서 사할린을 찾아가 귀국을 간절히 원하는 한인들을 인터뷰하면서 잊혀졌던 사할린 동포의 존재가 널리 알려짐
참석자는 극적으로 귀환한 옛 사할린 동료들과 남한에 있던 자식, 손주, 형제들임... 가족의 귀환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관심이 적었음
(이후 비밀문서가 공개되며 밝혀진바에 따르면 냉전시기라서 우리 정부가 소련정부에 비밀접촉을 시도하기도 했다함, 또 이분들에 대한 보상 문제로 일본정부와도 갈등이 생기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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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할아버지는 남한에 두고온 처자식 생각에 새 가족도 이루지않고 45년간 단칸방에서 홀로 버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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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지역 한인방송국이나 남한의 라디오 전파를 잡아서 고국언어를 듣는게 유일한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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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 아들, 손주가 와있음. 가족이 한국에 있는데도 제도 미비로 귀국 못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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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대신 장남인 자신이 18세에 징용으로 끌려와 한평생을 보낸.. 아래는 스튜디오에 나온 한국의 동생
그 와중에도 자신이 동생들 보살피지 못한것을 미안해하는...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일본어로 말하시는 분들도 계심... 정말 시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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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방치되는 가운데 수많은 한인들이 한을 품은 채 타국에서 눈을 감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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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와 가족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드디어 92년 처음으로 사할린 한인 귀국사업이 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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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두고갈 수 없어 귀국을 포기한 사람도 많았고, 귀국해도 한국-사할린 이산가족이 발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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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들도 부모님을 따라 무국적을 유지한 채 자신들을 한인으로 생각하며 컸는데 국적회복 대상에 포함이 안된데다 또다른 이산가족을 만드는 거임
문제점이 계속 지적된 끝에 작년 2021년 자녀 1인까지 포함하는 법이 제정되기도 하였음
수십년 기다림끝에 백발의 노인이 되어 귀국하는 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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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많은 한인이 사할린에 남아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