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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air [사생대회] 좋아해라는 자존심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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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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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이 살갗을 파고 들었다. 코끝이 시렸다.
어린아이가 올리는 막연한 기도는 다른 기도들에 막혀 제대로 올라가지도 않았다. 어쩌면 당연할 일이었다.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 어린아이는 꿋꿋이 겉옷을 여미며 미련하기 짝이 없을 기도만 할 뿐이었다. 이젠 희미하게 잊혀져가는, 오래전 어느 겨울날의 기억이었다.

-

무묭이 침대에서 일어나 미약하게 인상을 구겼다.
어차피 잊어도 될 기억들이였다. 평소라면 퍽 달가웠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니었다. 무묭은 떠오른 기억들을 깊은 심해 어딘가에 묻어두고는 머리맡에 줄을 당겨 종을 울렸다.

"기침하셨습니까."

종을 울린지 1분도 채 되지않아 곧바로 시종이 문을 열고 무묭에게 인사를 건냈다. 무묭은 고개를 한 번 까닥이고는 시종의 손에 몸을 맡겼다. 곧 무묭의 몸에는 치렁치렁한 예복과 휘장이 격식에 맞춰 둘려지고, 어깨 밑에 흩트려져있던 무묭의 머릿칼 또한 시종의 손에서 하나로 곱게 묶여졌다.

하루 중 무묭이 제일 싫어하는 시간이었다.

-

바깥에는 시끄러운 폭죽들이 터저댔다. 귓가를 때려대는 폭죽소리와 웃음소리가 달갑지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따라오는 감탄과 경외의 시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묭은 괜스레 쓰고있는 베일을 아래로 더 잡아당겼다.
그래봤자 얼굴이 더 가려지진 않았으니, 말그대로 정말 괜스레였다.
아마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무묭과 달리 웃고 있을 뿐이지 교황도 이 상황이 달갑지 않으리라.
자기 앞에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교황을 본 무묭은 멋대로 그리 짐작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었다.

천천히, 격식에 맞춰, 꽃잎이 잔뜩 뿌려진 황궁으로 가는 길을 걷고 또 걸어 이윽고 목적지에 다다랐다. 오늘은 1황자의 황태자 즉위식이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즉위식이 시작하는 연회장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했다. 곧 그 놈도 오겠지. 무묭은 애써 구겨지는 미간을 폈다. 중요한 날이니만큼,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선 안 됐다.

안에 들어온지 얼마 안 돼 황궁의 시종이 무묭을 휴게실로 안내했다. 벌써 교황은 휴게실 안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무묭은 천천히 시종의 뒤를 따랐다. 머리끈에 달려있는 방울이 살짝씩 흔들리며 내는 짤랑소리는 사람들의 수다소리에 묻혀들리지않았다. 그 것조차도 마음에 들지않았다.


"무묭."


누군가 무묭을 불렀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깨달은 무묭은 인상을 구겼다

"우리가 서로 이름 부를 사이는 아니지 않니."

무묭이 방어적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남자는 전혀 신경 안쓴다는 듯 그저 부드럽게 조소할 뿐이었다. 뻔뻔한 놈. 무묭이 손을 꽉 말아쥐었다. 늘 느끼는 거였지만, 겉껍데기만 번지르르한게 삼대가 망할 상이었다. 그전에 이단이니 저주를 받아 자손을 낳을수도 없겠지만. 그렇게 한참 남자를 노려보던 무묭이 입을 열었다.

"이단이랑은 말도 섞기 싫으니 저리 꺼져."
"지금 나랑 섞는 건 말이 아닌가 보지?"
"말꼬리 잡지 마."

무묭이 당장이라도 목을 조를 것처럼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발뒷꿈치가 저절로 들려졌다.

"너를 살려두고 있는건 어디까지나 신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지 네가 예뻐서 그러는게 아니야."

섬뜩한 어조였다. 여기서 좀 변질된다면, 저주라 이름 붙일 수 있을 거 같을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와는 반대로 그녀의 머리끈에 달린 방울은 청아하게 딸랑거렸다. 순식간에 목을 움켜잡힌 남자는 그저 활짝 웃을 뿐이었다. 발끈하는 그녀가 우습다는 듯한 태도였다. 남자가 안타깝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무묭을 내려다 보았다.

"이런, 난 내가 예뻐서 그런 건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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