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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후회남] 발췌 모음 (스압/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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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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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남 데뷔해✊✊✊
더 넣고 싶었으니 발췌하다가 내가 지쳐서.... 



1. 미로

“꼭 만나야 돼. 지수가 날 좋아한단 말이야. 지수는 나 때문에, 나 때문에 흉터 수술도 못 받았어. 그런데 나는 그 반지까지 뺏어다가…….”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른 채 유현의 팔을 붙잡고 정신없이 말을 쏟아내다 또 눈물이 왈칵 흘러넘쳤다.
유현은 조용히 물었다.

“전에 그, 장난감?”

분명 언젠가 자신의 입으로 말했던 단어가 귓가에 선뜩하게 내려앉았다. 장난감이라니. 윤은 차라리 제 입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부르지 마.”

윤은 울먹이며 말했다.

“그 애 이름은 김지수란 말이야.”



2. 임신계약

“평생 구걸하며 살면 안 될까.”

사랑 한 조각, 애정 한 줌만 얻어도 게걸스레 주워 먹을 거라고.

“예전 일이 생각날 때마다 나를 때려도 되고, 욕하며 미워해도 돼. 투명 인간 취급하며 살아도 되니까….”
“…….”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게. 일을 하라고 하지도 않고, 살림하라고 하지도 않을 거고. 정 못 믿고 싫으면 따로 살아도 돼. 이 집 명의도 네 걸로 바꾸고, 내가 나가면 되니까. 네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공부만 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어. 공부가 아니라도 다른 게 하고 싶다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다 할 수 있게….”
“…….”
“돈밖에 없는 인간이 이렇게 말해 봤자 가식적으로 느껴질까? 무엇으로 진심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무리 진심을 말하려 해도 하찮게만 들릴 것 같았어. 무작정 1년 넘게, 그저 기다리고 따라다녔어. 물론 앞으로 계속 기다리고, 따라다닐 수 있는데….”



3. 그러므로, 사랑


그는 밀면 밀리는 대로 다시 기어와 그녀의 발에 얼굴을 비비고 입을 맞췄다. 간절하게 애원하며 그는 그렇게라도 그녀에게 닿으려 애를 썼다.

“용서 못 한다고! 너 용서 못 한다니까!”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눈물이 뜨거웠다. 뜨거운 눈물이 하얗게 드러난 허벅지에 뚝뚝 떨어졌다.

“나쁜 새끼야. 이 나쁜 새끼야.”

그가 입을 맞추는 발등이 뜨거웠다. 그는 발등에 입을 맞추고 발목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그녀의 무릎에 입을 맞추었다.

“하지 마….”

예지가 울며 그를 밀었다.

“미안해….”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어느덧 그가 예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허벅지에 얼굴을 묻고 그는 울었다. 울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는 예지의 허리를 꽉 안았다. 하도 세게 안아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너무 강해서 부서질 것 같았다.

“사랑해. 미안해…. 널 사랑해.”



4. 파랑이 흐른다

태건이 매달렸다. 연수는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리는 그의 눈물을 닦았다. 태건은 본능처럼 그녀를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죽을지도 몰라. 네가 없으면 죽을지도 몰라. 죽어 버릴 거야. 태건이 억을 쓰고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연수는 커다란 남자를 꽉 끌어안았다. 빈틈없이 맞물린 상태가 되어도 그는 흐느낌을 멈추지 않았다.

연수는 부드러운 손길로 남자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사랑해. 사랑해. 연수야. 사랑해. 가지 마. 제발…….”

(중략)

“믿을 수 없어. 다른 여자를 사랑했잖아. 그 여자를 사랑하느라 나한테 당신이 어떻게 했는데. 사랑이 아니야. 당신이 나한테 한 건. 그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어.”

“아니야.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나는 네가…….”

태건이 울부짖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다 할 수 없었다. 뭘 먼저 말해야 할까. 뭘 먼저 잘못했다 용서를 구해야 할까. 연수야 사실은 내가 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좋아한다고 말해도 네가 안 믿어 줘서 나는……그래서 연수야.

“미안해. 잘못했어. 너한테, 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그래서…… 그래서……. 죽을 때까지 후회할 거야.”




5. 재가 된다 해도

“날 부숴도 좋아.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 엉망진창으로 휘젓고, 송두리째 쥐고 흔들어. 조각조각 분해했다가 원래대로 되돌려놓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러니, 그러니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줘. 내 앞에서 숨을 쉬어줘.”

(중략)

“당신이 보고 싶어.”

그가 나직이 읊조렸다. 내가 맞은편에 서 있는 한 양, 앞만 보면서.

“염치없다는 건 알아. 그래도 어쩔 수 없어.”

허공을 건너다보는 그의 눈빛이 잔뜩 꾸민 외양과 어울리지 않게 마모되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겐 당신이 필요해.”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금방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주 어렴풋한 미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모골이 송연했다.

“보러 갈게.”

(중략)

철컥, 쇠붙이 특유의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6. 다프네를 위하여

“네가 내 빛이 증오스럽다 하면 세상에 영원의 어둠이 내려앉게 하겠다. 다시는 태양이 눈을 뜨지 않게 하겠다. 내 껍데기가 싫다 하면 어느 천한 거죽이라도 뒤집어쓸 것이고, 내 목소리가 싫다 하면 혓바닥을 잘라 델포이가 어떤 신탁도 지껄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네가 바라는, 모든 것을 하겠다.”

“…….”

“네가 내게 무엇이든 바라주기만 한다면… 네가 바라는 바를 들어주는 것따위로, 네가 내 곁에 머물 수만 있다면.”

숭고하고도 천박한 애원이 고요한 숲을 에위는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신의 입으로 이따위 일을 바라는 것은 네 발로 개처럼 비는 일보다 비천했다.


(중략)


네가 영영,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나는 이곳에서 월계나무가 되어버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발 한 걸음 옮기지 못해 네가 사라지고 없는 것도 다시는 볼 수 없게, 네가 금방 이곳으로 나아오리라는 거짓 희망이나 품고서 이 자리에서 시들게.

그리되면 너는 나를 불쌍히 여길까.

나무 아래에, 한 번쯤은 찾아와 줄까.

비천한 애원, 아집, 증오도 기꺼웠다. 그러니 한 번만, 내게….




7. 연정을 품다, 감히

"가지 마."

그가 갈라진 목소리로 애원했다. 그녀의 손을 부여잡았다. 하얗고 보드라운 손에 수염이 까칠하게 올라온 얼굴을 비벼 대며 그가 중얼거렸다.

"가지 마, 연정아."

(중략)

"연정아, 제발……. 제발……. 아까는……. 아까는, 그래 내가 눈이 돌아서……. 잠깐 미쳐서 그랬던 거야."

연정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자그마한 여자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선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울부짖었다.

"하아, 나 좀 봐. 연정아.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나 좀 보라고, 제발!"

(중략)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거짓말처럼 목구멍을 꽉 막고 있던 것이 툭, 하고 터져 나왔다. 깨저 버린 어항처럼 터진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 안에 외롭게 살고 있던 금붕어 한 마리가 바닥에서 애처롭게 파닥거렸다. 그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여자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그리고 그것을 허무하게 놓쳐 버린 자신의 이기심까지도.




8. 늪과 개

"사랑해."

"그래."

"정말이야. 연조야. 정말이야. 정말로, 정말로……."

온몸이 발발 떨렸다. 오한이 나서 미칠 것 같았다. 한기조는 눈을 깜빡였다. 눈물이 떨어졌다. 그는 자신이 울고 있는 줄도 몰랐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처럼. 멱에 칼이 박혀 껄떡였던 놈들처럼. 그저 두려웠다. 그렇게도 두려운데 그는 정확히 무엇이 두려운 것인지도 몰랐다.

(중략)

"오래, 오래 좋아했어. 연조야 나는……."

미칠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차라리 연조가 울고 화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게 왜 이러냐고 발작하듯 화를 냈으면 좋겠다. 제발 그랬으면……. 그는 울었다. 무서웠다. 무서웠다. 무서워서 미칠 것 같았다. 그녀의 치맛자락을 잡고 매달리고 싶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 제발, 제발 뭐든지, 뭐든지 말해줄게. 내가 왜, 왜 그랬는지……."




9. 누흔

“가지 않을 것이오. 가지 않을 것이오. 미안하오. 난 여기 있을 것이오. 듣기 싫을 텐데 미안하단 말 계속해서 미안하오. 하나 나는 이 말도 멈출 수가 없소.”
“…….”
“그대의 아비를 살리, 아니, 죽여 미안하오.”
“듣기 싫사옵니다.”
“그대에게 뱉었던 내 모든 모진 말, 미안하오.”
“그만….”
“그대를 욕보여 미안하오. 내가 그대를 모욕하였소. 그대를 수치스럽게 하였소.”

오로지 할퀴겠다는 일념 하나로만 그녀를 대했던 제 모든 모습이 이제 와 이토록 후회스럽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초야 때 저를 기다리던 새색시는 분명, 두 눈에 연정을 가득 품고 있었다.
연모하는 임을 기다리는 눈빛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그 눈빛을 보면서도, 아, 이런 눈빛 가진 계집이라면 더 상처 줄 수 있겠구나. 더 아프게 할 수 있겠구나, 그따위 생각만 했었다.
그것을 뒤집어 없앨 수만 있다면, 없던 일로 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텐데.




10. 오월아 오월아

오월.

내가 어리석었어.

내가 다 잘못하였어.

그 모든 과오를 어찌 참회할까?

(중략)

이렇게 그대를 떠나보낸다면 난 다시 생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그대에게 지었던 이 막대한 죄를 나더러 어찌하란 말이야? 제발 이번 생에서 참회하게 해 줘. 죽지 말고 다시 살아나서 나의 참회를 받아 주어.

그대가 이번 생에 아무리 날 욕하고 경멸하고 증오한다 해도 좋아. 날 끝까지 괴롭히고 못살게 굴고 모욕한다 해도 좋아. 나의 죽음을 원한다 해도 좋아. 모두 내가 과거에 그대로 그대에게 한 짓이야. 이번 생에 겸허히 감당할게.

부디 살아만 줘. 오월.




11. 쏘 롱, 써머

“사랑해서 떠난다고, 그런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있어. 사랑하지 말고 그냥 있어. 나 싫어하면서, 미워하면서 그냥 그렇게 있어.”

“…….”

“내가 사랑하면 되니까. 내가 다하면 되니까 너는 그냥….”

“…….”

“나랑 있어줘. 희주야.”



12. 마리엘 이야기

“가지 마, 마리엘. 제발, 가지 마!”

모든 힘을 다해 쥐어짰는지 애원하듯 터져 나오는 이반의 목소리가 복도를 커다랗게 울렸다. 문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묻어있는 물기가 가슴을 쥐어짜듯 긁어내렸다. 문을 등지고 선 마리엘의 몸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마리엘, 가지 마. 날 버리고 가지 마. 제발, 제발…….”

(중략)

“정말, 정말 난 안 될까?”

“…….”

“동정이라 해도 좋아, 연민이라 해도 좋아…….”

“…….”

“죽을 만큼 미워해도 좋아, 미칠 만큼 싫어해도 좋아. 내 곁에서, 그냥 내 곁에서 날 미워하면 안 돼? 평생을 미워해도 되니 그냥 내 옆에서, 내 옆에서 있어주면 안 돼?”





13. 교활하지 못 한 마녀에게

“미안해.”

엄중하게 옭아매는 시선을 피할 수도 없었다. 그저 그대로 털어놓는 수밖에.

“내가, 널 좋아해서 미안해.”

둑이 터지듯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데……. 잘 아는데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아. 그냥 언젠가부터 네가 좋았어. 네가 날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멈춰지지가 않았어.”

뺨을 타고 연이어 눈물이 흘러내렸다. 턱 끝에서 아롱진 마음이 덧없이 낙하했다.

“언제는 네가 알아주길 바랐고, 언제는 네가 영영 모르길 바랐어. 내 마음인데 나도 갈피를 못 잡겠어. 그런데 지금은 겁이 나. 네가 날 미워할까 봐 너무 무서워서……”

세드릭이 서럽게 흐느꼈다.

“좋아해 달라고 하지 않아. 다만 미워하지만 말아 줘. 네가 부담스럽다면 다시는 말하지 않을게. 네가 신경 쓰지 않도록 할게, 그러니까.”
“…….”
“그러니까, 그냥 이대로 지내면 안 될까…….”




14. 흑야

“사랑해…….”

흑야는 은로를 올려다보며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사랑해…….”

나 같은 괴물이 이런 말 해봐야 끔찍하고 무섭고…… 싫기만 하겠지만. 널 사랑해……, 널 너무 사랑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미안해…….”

아프게 해서 미안해.

“제발…….”

그는 은로의 무릎에 엎드려 고개를 묻었다.

“제발…… 용서해줘…….”

용서해줘…….

“버리지 말아줘…….”



15. 청랑

그저 곁에 머물 수만 있다 해도 좋았다.
그동안 꼴사납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썼던가. 그런데 이 순간 가슴을 옥죄는 고통이 너무도 생생해서 선후는 더 이상 자신을 다잡을 수 없었다.
완전히 버려졌다.
이제는 그녀 없는 삶을 위해 매일같이 눈을 뜨고, 쓸모없는 이 몸뚱이를 움직이며 살아가야 한다.
감당할 수 없는 공포와 절망감이 그의 몸을 짓눌렀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져 버리지 않는 게 이상했다.
그저 숨만 쉬고도 살아지니까…… 그리 살아야겠지. 이미 한 번 했으니 두 번이라고 못할까.
아무리 되뇌어도 소용없었다. 갈라지고 터진 가슴이 차라리 죽어버리자고 울부짖었다.

(중략)

선후는 무릎을 꿇었다.

“떠나지 말아.”

쥐어짜듯 거칠고 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라는 딸을 외면했던 아버지를 다시 받아들였다.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친구들을 버리지 않았다. 그녀는 죽음의 문턱에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사로를 용서했다.
그러니 어쩌면 자신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 용서받을 자격 따위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라는, 그의 따뜻한 아내는 자신을 받아들여 줄지도 모른다.

“제발 날 놓아버리지 마. 부탁이야. ……용서는 바라지 않을게. 평생 날 미워해. ……제발 당신 곁에서 날 내치진 마.”




16. 신데렐라는 밤마다 오빠들의 개가 되는 꿈을 꾼다.

“너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어.”

“…….”

“그 어떤 누구도 감히 너에게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거다.”

“…….”

이본은 드물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알렉산더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에 입안이 타는 것 같았다.

“너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그날로 머리통이 날아갈 테니까.”

진심이었다. 알렉산더는 상대가 피 섞인 가족이라 해도 총으로 그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길 자신이 있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저따위 망발을 지껄이기 전에 제 혀를 잘라 버렸을 것이다.

(중략)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인생에 후회라고는 존재하지 않던 남자였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자책은 일상이나 마찬가지다. 이 형벌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리라.




17. 흰 사슴 잉그리드

“잉그리드, 제발, 부탁이야, 제발…… 나를 좀 봐봐. 응? 잉그리드, 내 얼굴 좀 봐.”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어떻게든 잉그리드와 눈을 맞춰보려 애쓰는 리건의 목소리가 떨렸다. 잉그리드는 리건의 손에 잡힌 제 손에 힘을 주었다.

지난 며칠 동안 이 사람이 너무나도 그리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는 자괴감에 이젠 얼굴조차 볼 수가 없었다.

“제발, 얼굴 좀 보여줘, 응?”

다시는 보여주지 않을 것처럼 꼭꼭 감춘 잉그리드가 무서웠다. 정리되지 못하고 부산하게 흩어진 잉그리드의 백금발이 여느 때보다 힘없이 늘어져 흔들렸다.



18. 당신을 완벽히 버리는 법

“연희 씨 곁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상상만으로 미칠 것 같아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중략)

“내가 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으니까… 제발 그러지 말아요… 한 번만 나 돌아봐 줘요…….”
그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구김 하나 없는 차림으로 더러운 땅바닥에 좌절하듯 무너졌다.

(중략)

“제발 기회라도 줘요. 제발… 제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




19.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 잘못이고, 네 인생에 끼어든 게 잘못이야.

‘신께서 직접 죽였다. 불경을 저지른 자를 왕으로서 대우해 장례를 치를 순 없지.’

어머니의 말이 맞았어.

내 존재 자체가 죄야.

‘신의 아들이 대륙을 통일했는데도 왕좌에서 내려오지 않고 자리를 빼앗으려 하니, 여신께서 직접 처단하셨지.’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아난케가 내 시간을 되돌려준다면, 너에게 칼날보다도 더 날카로운 말을 내뱉은 내 혓바닥을 뽑아버릴 거야.

네 손에 내 검을 쥐여 주고, 나 스스로를 죽일 거야.

‘다시 이 시대로 돌아온 너 따위는, 아주 까맣게 잊었을 거야. 넌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아 본 적이 없잖아.’

로즈, 넌 사랑받아 본 적이 없는 아이가 아니야.

단 한 번도 널 잊어본 적이 없어.

나는, 너를……. 정말, 너무…….




20. 매리지 앤 압생트

“너를, 너를 못 이기겠다.”
“…….”
“네가 두려워.”
“폐하.”
“나를 사랑하지 않는 네가.”
깊고 푸른 눈에 맺힌 물기가 볼을 타고 흘렀다. 무어라 항변할 생각으로 입을 벌리고 있던 스완이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틀리온은 팔뚝을 쥐었던 손을 풀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붉은 불빛이 닿은 그의 하얀 얼굴이 물기에 젖어 있었다.




21. 독애수

다친 손을 한 번이라도 보듬어 줄걸.
제 욕망에만 눈멀어 그리 가슴 아프게 보내지 말걸.
이 못난 사내는 여화가 힘겹게 털어놓은 유언도 알아채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흔들리며 허물어져 가던 그녀를 모르는 척했다. 다음 날이면 다시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언제고 지금과 같을 거라 어리석게 낙관했다.


(중략)

“나도, 너를 연모한다…….”
여화의 까맣게 썩은 몸은 과거 중독되었던 운처럼 비쩍 말라 있었다. 수일 동안 독을 마셔왔던 건 운이 아닌 그녀가 아니었을지.
운의 젖은 목소리에 한탄이 묻어났다. 너는 나를 죽이되 살렸다. 나의 독이되 해약이었다. 허나, 너에게 나는 무엇이었나.
그저 너를 말려 죽이던 독이기만 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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