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헌재 시립대 교수, '저출산의 경제학' 보고서
소득 상위 20%, 자녀 0.8명, 하위 20%(1.1명)보다 적어
소득 높을수록 자녀에 대한 투자 욕구 더 커져
둘 낳아 비용 나누기보다는 한 자녀에 양질 투자
"소득 높여주기 보단 양육비 감소 정책이 출산율 제고에 더 효과적"
【세종=뉴시스】이예슬 기자 = #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송모(34)씨는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부인과 맞벌이를 해 소득은 비교적 많다고 볼 수 있지만 아직 아이를 더 낳을 생각은 없다.
대신 한국의 빈약한 양육 정책과 경쟁 위주의 입시 교육을 피해 호주 등 외국에서 교육을 받게 하는 선택지를 고려 중이다.
이렇게 되면 양육비가 일반 가정보다 많이 들게 되는데 아이가 둘이면 맞벌이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뿐 아니라 아들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지 못할 것이란 점이 둘째를 낳지 않은 이유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정책으로는 가구소득을 높여주는 것보다 양육비용을 낮출 수 있는 정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19일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득이 증가하는데 출산율이 감소하는 까닭은?-저출산의 경제학'이라는 보고서에서 이 같이 밝혔다.
경제는 크게 발전했는데도 출산율은 하락하는 현상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보이고 있다. 소득이 늘었지만 자녀양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크게 증가해 결과적으로 가구당 자녀 수가 감소하는 것이다.
송 교수는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게리 베커(Gary Becker) 시사코대학교 교수의 모형을 들어 이 같은 저출산의 경제학을 설명했다.
베커는 인구변화의 고전적 이론인 맬서스(Malthus)의 인구론과 자연선택으로 유명한 다윈(Darwin)의 진화론을 종합해 가구의 출산에 관한 경제모형을 처음으로 제시한 학자다.
베커는 두 가지 이론을 결합해 부모가 몇 명의 자녀를 출산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경제적 능력 및 자녀 양육비용을 고려해 자질과 능력이 뛰어난 자녀를 낳고 싶어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경제적으로 풀어볼 때 만약 자동차 2대를 사려고 한다면 첫 번째 자동차는 고급 외제 승용차를, 두 번째 자동차는 비교적 저렴한 중고 소형차를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모든 자녀들의 자질이 뛰어나기를 바라는 만큼 첫째는 우수하게, 둘째는 열등하게 자라길 원하진 않는다.
가구 소득이 증가하고 있는, 한 자녀만을 둔 부모는 둘째를 낳고 싶지만 경제적 여유가 생긴 만큼 지금의 자녀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해주고 싶은 마음도 생길 것이다.
문제는 자녀 한 명을 더 낳고 싶지만 그 자녀에게도 기존 자녀와 똑같이 투자를 해 줘야 한다는 데 있다. 당연히 자녀 수의 증가는 경제적 부담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녀 수가 줄어들면 자녀의 자질을 높여주기 위한 총비용은 하락한다. 이 때문에 부모는 자녀를 더 낳지 않고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며 기존 자녀의 자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적용한다면 우리나라 가구의 육아비용이 증가하고 출산율이 하락하는 현상은 가구소득이 증가하면서 자녀의 자질을 높여주기 위한 부모의 투자 수요 증가가 반영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송 교수의 설명이다.
이는 통계로도 증명된다. 지난해 통계청이 공공 인구·주택통계와 민간 신용정보회사의 부채·신용 통계를 연계해 내놓은 '신혼부부 통계'에 따르면 고소득일수록 한 자녀 비중은 높았지만 두 자녀 이상 비율은 낮았다.
2014년 소득 기준 상위 20%를 뜻하는 5분위의 출생 자녀 수는 0.8명으로 1분위(하위 20%) 1.1명보다도 적었다.
가구의 소득을 늘려 고소득층으로 진입하게하기보다는 중저소득 가정도 아이를 기르는데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지 않도록 양육비용을 줄여주는 편이 출산율 제고에는 더 효과적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송 교수는 "베커의 이론에 따르면 출산율 제고를 위해 가구소득을 높여주는 정책은 그다지 효과가 없어 보인다"며 "그렇지만 양육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정부의 자녀양육 정책이 마련된다면 출산율의 반등이 이뤄질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ashley85@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