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벨기에 주필러리그 RFC리에주에서 뛰던 보스만은 소속팀과의 계약기간이 곧 만료를 앞두고 프랑스의 됭케르크로 이적을 시도했다. 그러나 됭케르크는 리에주가 원하는 이적료를 맞춰주지 못했고, 외국인 선수 제한 등의 규정까지 발목을 잡으며 보스만의 이적은 무산됐다.
보스만이 소송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리에주의 처분 때문이었다. 됭케르크 이적이 무산된 직후 리에주는 보스만에 75%가 삭감된 연봉의 재계약을 제시했다. 이에 보스만은 이를 거절했고, 벨기에 축구협회로부터 자격 정치 처분을 받자 유럽사법재판소에 소송을 걸었다. 결국 보스만은 5년에 걸친 공방 끝에 1995년 12월 15일 승소했고, 보스만룰은 그렇게 탄생했다.
# 보스만룰의 영향
보스만룰의 탄생으로 선수들의 권리는 상승하게 된다. 계약 만료를 앞둔 선수들은 자유롭게 다른 구단과 협상을 하게 됐고, 이적료에 제한받지 않고 새로운 팀으로의 이적이 가능해졌다.
레반도프스키가 2년 전, 사전계약 체결로 뮌헨으로 이적할 수 있었던 이유도 보스만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유벤투스의 영웅으로 자리 잡은 안드레아 피를로도 2011년 보스만룰에 의거해 AC밀란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했고, 팀의 세리에A 4연패를 이끌었다.
그러나 보스만룰이 축구계에 가져다 준 악영향도 분명히 존재했다. 선수들의 이적이 보다 자유로워지자, 기존 구단과의 재계약에서 일부 선수들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고, 몇몇 선수들이 이를 악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일부 부유한 구단이 선수들을 싹쓸이해가는, 축구계에서의 ‘빈인빈부익부’ 현상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보스만룰을 만들어낸 보스만 역시 이에 대해 염려했다. 그는 과거 이탈리아 언론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와 인터뷰에서 “보스만룰이 왜곡되고 있다. 천문학적으로 돈을 버는 선수들이 생기고, 부유한 소수가 이득을 보고 있다”며 걱정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잡담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보스만룰. 이 규칙은 장 마르크 보스만이란 축구 선수에 의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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