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0일 저녁 밴쿠버 겨울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비공개 만찬장에 잠입했다. 샴페인을 홀짝이는 IOC 위원들은 왕자·공주 또는 국가원수급.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까 고민하다 먼저 정공법을 택했다. 명함을 내밀고 소개를 했건만 투명인간 취급만 당하며 실패. 1차 퇴각 후 상황을 살피니 규칙이 하나 보였다.
‘얼굴=명함’인 이들은 자신들이 신뢰하는 사람의 소개가 없으면 인사 자체를 안 받았다. 마침 안면을 터놓은 미국인 IOC 전문기자 A가 보여 SOS를 쳤다. 그가 “한국에서 온 친구”라고 소개해주자 상황은 급변했다. 공주마마 IOC 위원은 샴페인을 권했고 왕자폐하 위원은 악수를 청했다. A는 “비밀주의 클럽에 온 걸 환영해”라며 “옆 동네에 비하면 우리는 친절한 편이야”라고 귓속말을 했다.
A가 말한 ‘옆 동네’는 국제축구연맹(FIFA)이다. FIFA 윤리위가 지난 9일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에게 ‘6년 자격정지’ 치명타를 날리는 걸 보고 A에게 의견을 물었다. “6년은 심했다”는 내게 그는 “FIFA가 마피아인 거 몰랐다면 순진한 거지”라고 답했다. 이어 “FIFA를 20년 가까이 지켜보며 내가 내린 결론은 ‘스포츠 정신을 강조하는 FIFA야말로 페어플레이 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비리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에겐 ‘90일 자격정지’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내린 것도 “지극히 FIFA스러운” 조치라고 풀이했다.
IOC·FIFA 전문 컨설턴트인 영국인 B는 이런 의견을 들려줬다. “FIFA 회장이 되고 싶다면 FIFA처럼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지금 정 명예회장에겐 FIFA의 마음을 살 전략이 안 보인다.” 정 명예회장 측이 ‘피해자 코스프레’에만 매진하는 모습은 결국 본인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이어 “정 회장은 ‘아시아계 첫 FIFA 회장’이라는 것 외에 어떤 메리트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FIFA는 뼛속까지 비밀주의로 움직이며 남들의 눈이 아닌 자신들의 주머니를 중시하는 집단이다. 이런 생리를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로비를 펼쳐도 모자란다. 6년 자격정지의 부당함을 호소하기보다 지금까지의 전략 부재를 자성하고 앞으로의 전략을 촘촘히 손질할 때다. 오는 20일 FIFA 임시 집행위원회를 앞둔 지금, 정 명예회장이 “FIFA 회장은 정의의 사도가 되는 게 아니다”라는 B의 말을 되새겼으면 한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18875347
요새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예전 기사들 많이 봐서 가져옴
축판도 결국 다 인맥인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