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만 하면 이렇게 시간이 먼저 가요. 분명 오전 10시였는데 벌써 어둑한 저녁이네요.
오늘 되게 빨리빨리, 원활하게 진행되어 그런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끝났잖아요!
'칼퇴'의 기쁨이 여기까지 느껴지는데요.
그래요?(웃음) 집에 가서 저녁 시키고, 얼른 <최강야구> 보려고요. 오늘 촬영하는 내내 <최강야구> 이야기만 했네요.
잘 지냈나요. 보니까 여행도 다녀온 것 같던데.
맞아요. 거의 하나 둘 셋… 한 7년 만인 것 같아요, 그렇게 쉬었던 적이. 연습생 때부터 합치니 정말 그러네요. 한 2주 동안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쉬었거든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거 실컷 다 했어요?
제일 먼저, 그냥 일 생각 안 하고 놀기가 첫 번째였어요. 저도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요. 제가 스케줄 외에도 항상 수업이나 운동 같은 일정을 쉼 없이 잡는 편이거든요. 주변에서 다들 '휴가 때도 이럴 것 같은데'라고.(웃음) 그래서 휴식의 목표가 그런 스케줄을 안 잡는 거였어요. 이뤄서 너무, 정말 만족스러워요.
맑고 좋은 에너지가 느껴지네요. 사진 속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이 편안해 보이더라고요.
풀, 바다를 충분히 많이 보고 왔어요. 여행지를 고민하다 그때 서울이 너무 추워서 '좀 따듯했으면 좋겠다. 근데 가까워야 할 텐데' 이러다 오키나와를 다녀왔어요. 가깝고 날씨도 좋아서요. 늘 크고 바쁜 도시에만 있다가 내내 잔잔한 곳에 있으니까 또 다르더라고요. 가족 여행을 오신 관광객들도 엄청 화목해 보이고. 그런 풍경들을 보면서 힐링한 것 같아요. 스노클링도 하고.
물 좋아해요?
물을 무서워해요. 그래서 그게 약간 포인트였어요. '극복!' 이런 느낌으로.
'극복!' 했나요.
낯선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니까 새롭더라고요. 좋았어요. 극복!(웃음) 저는 제가 무서운 게 없었으면 좋겠거든요.
노력과 의지가 묻어나는 말처럼 들려요. 가장 최근에 발매한 <시대유감> 리코딩 비하인드를 봤는데, 고음을 어려워하던 시절도 있었다면서요.
맞아요. 그때 그래도 피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팬분들께서 칭찬을 해주실 때마다 쑥스럽고 그래요. 너무 고맙고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저 스스로는 '나 잘했구나' 안심할 수만은 없더라고요.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윈터가 보여준 라이브 무대를 생각하면 여러모로 의외네요.
기준이 좀 높은가 봐요.(웃음) 그래서 저 스스로 '저번보다는 는 것 같다', '조금씩 늘고 있다' 느낄 때야 기분이 조금 좋고요.
그럼에도 노래할 때 어때요?
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노래할 때 그 순간 제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종종 좋아하는 노래를 말할 때 '벅차다'라고 표현하더라고요. 듣기 좋았어요. 음악으로 뭔가 채우고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졌거든요. 또 누군가에게 그런 벅참을 전달하는 사람일 테고요.
어! 맞아요. 요즘엔 숀 멘데스Shawn Mendes나 에드 시런Ed Sheeran 음악을 들으면 그래요. 엄청 몰입하거든요. 벅차다…. 근데 아직 제가 그런 존재라는 게 그다지 실감이 나진 않아요.(웃음) 저도 학교 다닐 때 늘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음악이 있었거든요. 팬심도 강했고요. 음악 방송하는 날이면 등교할 때부터 벌써 기분이 좋았어요. '그랬는데, 이젠 나를 보고 많은 사람이 그런 감정을 느낀다니!' 아직 이런 느낌이에요.
저도 윈터의 목소리를 좋아해요. 늦은 밤 라이브 방송으로 혼자 두 시간을 꽉 채워 노래하는 걸 봤어요. 무대 위에서와 달리 조곤조곤 말하듯 부르더라고요.
감사합니다.(웃음) 리드미컬하고 경쾌한 노래를 부를까도 생각했는데 방송 시간도 그렇고, 아마 다들 집이나 직장에서 보실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대부분 좀 잔잔하게 불러봤어요.
에스파는 데뷔 초부터 특별한 세계관이 있었잖아요. 그게 막 낯설기도 했는데 지금은 자꾸 궁금한 게 생겨요. 에스파의 SNS를 보면 4명이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재밌을까 싶고요.
캐릭터가 모두 다르죠. 으하하. 저는 연습생 때만 해도 늘 흰 티에 청바지 입고, 머리는 올백으로 묶었거든요. 프로필 찍을 땐 흰 원피스를 주로 입고요. 연습곡도 소녀시대 선배님들의 '다시 만난 세계'랑 레드벨벳 선배님들의 '러시안 룰렛' 같은 곡이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블랙 맘바'가.(웃음) 그 당시엔 저도 낯설어서 되게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저는 에스파가 솔직할 때 특히 좋더라고요.
맞아요. 할 말은 솔직하게 해요.(웃음) 한 곡에 여러 버전이 있잖아요. 자신감 넘치고, 당찬 곡도 있지만 또 따듯한 위로가 되는 곡도 있고요. '이런 말 들으면 되게 감동적이겠다' 느낄 때도 많아요. 세계관의 뚜렷한 곡도 있고, 무엇보다 에스파만의 캐릭터가 분명하잖아요. 그게 큰 장점 같아요. 캐릭터를 풀어가면서 한 단계 한 단계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큰 행운이고요.
흰 티를 좋아하는 윈터라 이렇게 뭐든 잘 어울릴 수 있나 봐요.
오, 저는 뭐든 무에서 시작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없을 무無. 그리고 백지에 포인트를 하나씩 주는 걸 좋아해요. 과하지 않은 선에서요.
오늘 입은 폴로 랄프 로렌 컬렉션과도 통하네요.
정말요? 폴로 랄프 로렌의 고유한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왔거든요. 오늘은 메이크업부터 많이 덜어냈는데, 되게 오랜만이었어요. 그런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니 재밌더라고요.
또 달리 보이기도 했어요. 클래식한데 쿨하고.
오늘은 윈터와 민정 사이의 민터?(웃음) 민터 정도였던 것 같아요.
엄격하던 윈터가 갑자기 천진한 민터가 됐네요.(웃음) 친해지면 윈터는 어떤 사람이에요?
저요. 일할 때랑 다르게 막 과몰입도 하고, 감성적인 데가 있어요. 뭐 하나에 깊게 잘 빠지는 편이라 일할 때는 객관적이려고 노력하고요.
뭐가 그렇게 마음을 울려요?
그냥 살아 있는 모든 것에요. 원래 강아지 영상만 봐도 막 울거든요. 키워본 적도 없으면서.
일할 때와 하지 않을 때의 균형을 잘 잡는 것도 중요하겠어요.
맞아요. 요즘 서예를 배우고 싶더라고요. 할아버지께서 한자를 쓰시는 분이었거든요. 집에 서예 방이 있었는데, 그래서 어릴 때부터 서예에 친숙했어요. 공부를 제대로 해보진 못했지만.(웃음) 획을 그으면 마음이 느긋해지고 평화로워지잖아요. 그런 시간도 필요하다고 느껴요.
평소엔 스스로를 어떻게 다스려요?
다스리는 방법이요? 사실 바쁜 와중에 그냥 휩쓸려 사는 것 같아요. 바쁘면 바쁜 대로 살고, 여유로우면 여유로운 대로 살고요.
저는 너무 바쁠 때 난장판이 된 방을 보면 그렇게 무너져요.
맞아요. 가끔씩 '나를 안 돌보고 있는 건가' 싶잖아요. 어쩌면 이게 진짜 나인데. 그럴 땐 뭐든 아무 생각 안 하려고 노력해요. 굳이 거기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그냥 단순하게 '내가 귀찮아서 안 치우는 거지' 이렇게 생각해요.
깊게 빠져도, 빠지지 않아도 결국 다 지나가니까요. 윈터의 이름은 윈터인데 <데이즈드> 3월호의 주인공이 됐어요. 3월은 영락없는 봄이죠.
너무 기대돼요. 언제일지 정확히 모르지만 에스파가 새로운 곡으로 또 찾아온다면 많이 사랑받았으면 좋겠고, 뭐든 파릇파릇하게 살아나는 계절이잖아요. 꽃도, 풀도, 봄이니까 그런 모든 게 다 기대돼요.
그나저나 윈터라는 이름으로 맞이하는 네 번째 봄이네요.
맞아요. 시간이 훌쩍 지났어요. 그런데 아직 내가 모르는 윈터도 너무 많을 것 같은 거 있죠? 저도 궁금해요. 이번 봄은 또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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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볼수록 더 좋다,, 민정이 너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