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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미노 버닝 플래닛 후기(스포있음/스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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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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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디에 거창하게 게시하려고 쓴 건 아니고 전시 사진이나 감상들 갈무리해두고 싶어서

개인 계정에나 좀 올려둬야지 하고 적어뒀던건데 쓰다보니

전시 내용이나 그런게 스포가 되는거 같아서 전시 마지막 날이라 놓고 가.


중간 중간 나오는 민호의 말에 따르면, 이 부분은 내가 초반에 갔을때(후기는 이후에 몇번 더 가서 적어둔거지만)

브랜드 담당자랑 같이 라운딩 하면서 전시 설명을 들었어서 그때 메모해둔걸 바탕으로 적어둔거야.

전시 다 관람하고 담당자가 전시 어땠는지 잠깐 이야기할 일이 있어서 들은 것들도 더러 있고.

사실 내 감상문에 가깝긴한데 첫주차 빼고는 담당자 라운딩 하면서 민호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 이런 말을 해주는게 없는거 같더라고.

민호가 어떤 부분에 대해 무슨 아이디어를 냈고 어떻게 진행됐다 이런거 같이 공유하면 좋을거 같아서.


+ 첫주차에 갔을때 담당자분이 신나서 먼저 말거시고 그러셔서 들은 이야긴데

민호랑 봄부터 작업했는데 팬미팅, 콘서트, 투어 돌면서도 진짜 한결같이 열심히 하더라고

매번 먼저 연락 와서 아이디어 주고 잠 쪼개서 자면서까지 스케치를 한권이나 다 채워서 그려서 보내고 그랬다고

정말 열의가 넘쳐서 같이 일하는데 재밌으셨대-


너무 긴 것 같아서 줄인다고 줄인건데 무슨 레포트 수준이지만(눈 아플 수 있어.. 미안 쿼카들T-T)

간만에 좋은 전시도 보고 이런 생각들을 갖게 해준 미노에게 고맙고 협업해준 브랜드도 새삼 고맙다.

막날이라 가는 쿼카들 찬찬히 잘 들여다 보고와!


-


BURNING PLANET

GENTLE MONSTER X MINO


01. 원트, 가치의 바람.

전시장 입구, 버닝 플래닛을 방문한 모든 이들에게 버닝 플래닛의 화폐인 원트가 주어진다. 네개의 심볼이 그려진, 빛의 3원색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는 형형색색의 화폐를 들고 버닝 플래닛으로의 여행의 첫 걸음이 시작된다. 민호가 단번에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샘플링을 거쳐 만들어졌다던 원트는 버닝 플래닛의 시작부터 함께 하는 만큼 큰 의미를 갖고 있는데, 화폐가 무언가를 살 수 있는 교환 수단임을 미뤄 짐작했을 때 버닝 플래닛에서 어떠한 이야기를 사게 될지 기대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want, 그리고 우리가 결국 손에 쥐고 있을 무언가.


02. 시계방, 그리고 노인.

셀 수 없이 많은 시계와 그 한가운데를 지키고 서 있는 노인. 그 노인의 곁을 지키는 것들은 제 각기의 기준으로 흐르고 있는 시간들뿐이다. 시간에 쫓겨 주변과 자신을 둘러볼 여력이 없는 현대인의 '번아웃'을 역설적으로 많은 시계를 보여줌으로써 상기 시키고 싶었다던 민호의 아이디어로 시계방이라는 공간을 탄생하게 했다고. 이렇게나 많은 시간들 틈 속에서 우리가 흘러보내고 있는 것은 있지 않은지, 버닝 플래닛을 마주하기 전 이 물음이 제일 먼저 공간을 메웠다.


03. 타조, 유일한 생명체.

버닝 플래닛의 단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타버린 모습 그대로 앉아있는 인류와 그 앞을 굳건한 두 다리로 서 있는 타조. 민호의 이야기를 따르면 극한의 상황에서도 오랜 생존력을 자랑하는 타조의 개체 특성을 생각해 버닝 플래닛의 유일한 생명체로 타조를 택했다고. 버닝 플래닛의 현재, 과거, 그리고 방금 지나쳐온 시계방의 이야기와 함께 민호의 나래이션이 굉음과 함께 쉼없이 반복된다. 모든 것은 타버렸고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허공을 바라보며 움직이고 있는 타조뿐, 마치 폐허 속에서 오롯이 숨쉬는 우리를 들여다 보는 순간이었다.


04. 타버린 숲, 감은 눈.

숲의 울창함은 이미 다 타고 난 후였다. 검게 물들어 바싹 말라버린 잎사귀, 이것들을 숲으로 불러도 될지 의아할 정도로 검게 변해버린 나무들이 서로 저마다의 몸을 기대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군데 군데 떨어지는 빛은 그들의 어둠을 더욱 어둡게 할뿐, 일말의 생동감도 없는 공간. 그 숲의 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버닝 플래닛의 인류의 고통이 고스란히 물들어 있다. 민호는 이 그림을 통해 크게 눈을 뜨고 있지만 눈에 짙게 그어진 X 모양의 표식이 보여주듯 번아웃으로 인해 진심을 읽을 수 없는, 진심을 전할 수 없는 소통의 창구로써의 눈이 모두 망가진 상태를 표현했다고. 곳곳에 드리워진 희망의 파랑새의 눈에도 함께 그어진 X 모양의 표식은 인류의 희망과 미래를 상징하지만 그마저도 보지 못하는, 정말로 모든 것을 태워버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희망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진심이 있어도 읽지 못하는 현대인의 심리상태. 그러나 우리에겐 희망이, 나의 작은 파랑새가 있음을 잊지 말 것.


05. 숲의 한 켠, 피아노.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그 어떤 생동감도 느끼지 못하는 숲의 틈엔 끊임없이 연주되는 피아노가 한 대 놓여져 있다. 모든 것은 불탔고 망가졌으며 암흑뿐인 이 공간에서 한 뼘 남짓의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은 검은 숲과의 강렬한 대비를 보여주는데, 이런 극한의 대조를 통해 검은 숲의 비극과 초라함을 가시적인 것 뿐만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스산한 기운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피아노 연주는 파랑새와 같은 또 다른 인류의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모든 것이 소멸한 것들 위로 피어나는 대비적인 현상이 제법 흥미로웠다.


06. Too dark to live, too bright to die.

버닝 플래닛으로 들어가는 통로의 한 켠, 두 눈을 가린 채 허공에 손을 뻗은 마네킹 위로 반복적인 문구가 지나고 있다. Too dark to live, too bright to die. where is your blue bird? 전시의 번아웃 현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오브제들이 아닐까 싶은데, 앞서 보았던 X 표식을 상징하듯 라이트로 가려진 눈과 이미 번아웃되어 타버린 인류의 씁쓸함이 하얀 공간 안에 빼곡히 들어 차있다. 반복되는 문구 아래, 마네킹처럼 단단히 굳어버린 현대인의 삶의 조각이 그렇게 버려져있었다.


07. 버닝 플래닛의 현재, 그리고 미래.

어두운 통로의 끝, 비로소 마주한 버닝 플래닛의 인류는 어떠한 표정도 눈빛도 읽을 수 없는 검은 형체로 우리를 맞이한다. 마주하지 않고 서로의 등을 바라보고 나란히 앉은 인류, 끝도 없이 밀려나와있지만 정작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지 못한 수많은 콘센트 선, 그리고 책상 앞의 무기력한 타자기 소리가 공간을 더 없이 허무하게 만든다. 버닝 플래닛의 인류는 이렇게 일상에서 천천히 소모되어 내가 무엇을 하는지, 행위가 갖는 목적성에 대한 고민 없이 단순한 행위만을 반복하는 처참한 '현재'를 보여준다. 그리고 수동적으로 움직여지는 삶의 한 가운데, 그들의 등 뒤로 쏟아지는 한줄기 빛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태양. 여러 갈래로 구성된 전구가 천천히 제 몫의 빛을 내며 그들을 소리 없이 비추고 있다. 모든 것이 타버렸으며 버닝 플래닛의 인류는 망가졌지만 앞서 우리의 곁을 맴돌던 파랑새, 그 현신 정도가 되는 오브제가 아닐까. 현재보다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끔 하는 오브제. 민호는 이 오브제를 통해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아 보이지만 에너지원인 태양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그 안에 또 다른 결의 희망이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버닝 플래닛의 희망이자 생명을 품고 있는 오브제 위로 쏟아지는 분주한 타자기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08. 버닝 플래닛, 영혼이 길을 잃은 사람들.

잔뜩 쏟아지는 태양을 뒤로 다시 한 구석에서 마주한 버닝 플래닛의 인류는 이전의 그것보다 더욱 비참하고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꺼져버린 텔레비전 앞에 채 넘기지도 못할 신문을 얹고 덩그러니 놓여져 있거나, 똑같이 생긴 옷장을 의욕 없이 뒤적거리다 다리미 판 위에 늘어진 옷가지들을 하염 없이 바라보고 있거나 마작판을 두고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 채 바닥만 보고 앉아만 있는, 버닝 플래닛의 인류라고 하지만 되려 그들을 통해 지금의 우리를 적나라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했다. 저마다 특정 공간에 놓여져 있지만 그 공간에서 으례 행해지는 행동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갖는 의미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의미 없는 행동들이 마치 지금의 당신은 안녕한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기분이었달까.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퍼포머는 단연 미용실 의자 앞에 앉아 있던 씬이었는데, 가끔 회사를 나가기 전에 한참을 거울 앞에서 내가 정말로 잘 살고 있는지,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는지 그런 생각들들 종종하게 되는 편이라, 의자 앞에 초점없이 앉아있는 퍼포머를 보고는 흠칫 내 모습이 비춰져서 제법 많이 슬펐던 것 같다. 아마도 이런 일련의 장면들을 나열함으로써 우리는 모두 다 타버리진 않았는지, 내 안에 당신 안에 타버린 일상이 여기 있지 않은지 분명한 물음을 던지고 싶었던 것 아닐까. 나의 영혼이 길을 잃지 않았는지, 내가 나를 속이지 않기 위해 참 오랫동안 이 공간에 머물렀던 것 같다.


09. nevertheless,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그러니 놓여진 버닝 플래닛 인류들의 참담한 현실과 대조적으로 입구 쪽에 놓여져 있던 의자들과 단상. 지금까지의 텔링과 약간은 이질적으로 느껴질 법 한 종교적인 색채가 강했던 공간이 전시의 끝에서 다시 한번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민호의 이야기를 따르면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 놓여져 있거나 혹은 좌절했거나, 어디론가 방향을 잃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찾게 되는 것이 신이라는 존재라고 생각했고 그러한 발상의 연장선상에서 해당 오브제와 공간을 구성하게 되었다고. 사실 어떤 좌절 앞에서 우리가 기댈 곳은 절대자의 존재일 때가 많기도 하니까. 아마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그리고 앞서 보여주었던 민호가 숨겨두었던 파랑새, 태양을 나타내는 희망의 정점을 이 곳에 둔 게 아닐까 싶었다. 퍼포머들 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그 공간이 텅 비어있을 때도 더러 있었고 한 퍼포머는 그 곳에서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기도 했는데, 그 동그랗게 굽은 등이 마치 내 뒷모습 같아서 어느 날의 관람에서는 옆에 조용히 앉아보기도 했었더랬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그 자리에 앉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가장 먼저 머릿속에 콱 하고 박혔는데, 버닝 플래닛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다 타버려 남겨진 현재가 아닌, 모두 타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잿더미 위에 우리의 삶을 계속해 나가자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고.


10. "I want you to be happy."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시작부터 함께 했던 원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전시장을 다 나와 손 안에 들린 원트의 동그란 공간 안엔 작게 이 문장이 쓰여져 있다. "I want you to be happy." 우리의 삶에서 어쩌면 가장 크게 바라고 소망하는 것, 행복. 버닝 플래닛의 화폐 그것으로 사고자 했던 것, 그건 아마 우리의 행복이었으리라. 다 타버린 삶, 번아웃 현상은 사실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데서 오는 소모가 분명하니까. 더 행복해지고 싶고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하나 둘 현재를 포기하면서 얻게 되는 병, 다 타버린 그들을 대신하여 행복을 바라주는 원트, 그리고 그 마음 한 가운데에 민호가 있었고. 이 전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이야기 했던 원트 안에 민호가 가장 크게 바라는 것이 적혀 있어서, 아마도 네 삶에 있어서 너의 행복이 가장 우위일 것만 같아 전시와는 별개로 안도하게 되던 순간이기도. 누군가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민호는 이 전시를 꾸린 게 아닐까 싶어 괜히 아주 많이 고마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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