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반쯤 농담인데 진심임
왜냐면... 콜린이 본인 입으로 말하길 자기는 이번 여행을 가서
사교계가 원하는 남자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벗어나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고 했는데
정작 우리가 (그리고 펜이나 콜린의 사교계 친구들이) 본
'여행지의 콜린' 그리고 '여행지에서 돌아온 콜린' 은 방탕하게 즐기고 다닌 모습이잖아
펜이 훔쳐본 일기 속에선 경치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성들 ㄷㄷ 하면서 끈적한 분위기를 즐기고
사교계 친구들에게는 백작부인과의 썸씽이 있었다고 은근하게 과시를 하고 ㅇㅇ
여행지에서 진정한 자기를 깨달았다는 게 말이 안 되게 여행도 이상했던(?) 것 같고
돌아와선 결국 '사교계가 원하는 남자' 의 모습을 다시 연기하고 있는 건데 (그리고 펜에 대한 자각 때문에 몇 주만에 와르르맨션 된 건데)
아마도 여행지에서 콜린은 자기가 '사교계가 원하는 남자' 와는 부합하지 않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던 것 같음
플러팅 하고 다니면서 여러 여자를 꼬드기고 이성적 텐션을 즐기고 해봐도 결국에는
펜이나 가족들한테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고, 그러면서 그게 편안하고 행복하단 걸 알았겠지
근데 자기가 그런 사람이란 건 알았어도 '사교계가 원하는 남자' 의 역할을 포기할 자신은 없었던 거야
입으로는 남들 눈치 보며 사는 삶은 족쇄 같은 거라고 펜한테 조언하지만
정작 보면 본인은? 여전히 사교계 완벽남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음
심지어 이제 나는 한층 성숙해져서 그런 것마저 즐길 수 있다는 듯이 굴면서 말야
이건 아마 여행지에서의 깨달음(나 자체는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이 있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여행지에서의 시간들을 '숨 돌리는 시간' 으로 명명했을 때 온 결과이지 않을까 싶음
여기선 이렇게 연기를 하고 사교계 완벽남으로 살지만 여행길에 올랐을 땐 진정한 자신으로 잠시 살 수 있고 숨통이 트이는 거지
그렇게 충전하고 돌아와선 다시 가면 뒤집어쓰고 살 수 있는 거고
그러니까 그렇게 스위치 온오프 해가면서 그런 역할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성숙한(?) 남자가 되어 돌아왔다고 스스로 생각할 만도 함
그런데 문제는 이제 펜이 답장을 하지 않으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함
숨 돌리면서 여행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다정한 펜은 내내 꼬박꼬박 답장을 해주고
그 편안함이 다 무너졌을 거임
결국 지난 여행에서 콜린은 자기가 사교계에 딱히 적성이 맞지 않는 사람이란 건 알았어도
자기가 평생 연기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까지는 몰랐던 것 같음
돌아와서 펜을 만나 하는 첫 마디가 그러잖아
"Pen, It's good to see you." (Is it?) "Truly, It has felt like l've been absent years instead of months."
왜 원문을 썼냐면 저 말이 한국어 번역으로는 '몇 달이 아니라 몇 년 만에 돌아온 기분이야' 라고 나오는데
의미상 맞는 말이긴 한데 실제로는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이나 자리를 비운 느낌이야' 가 더 정확한 거라서
(콜린 본인이) (여행지보다 사교계를 더 그리워해서) 몇 년 만에 돌아온 것 같다는 게 아니라
(내가 떠나 있는 동안 무언가가 너무나 많이 변해버려서) (내가) 몇 년이나 자리를 비운 느낌이라는 거거든
뒤에 이어지는 말도 난 그저 옷만 변한 건데(When all is said and done, it is merely clothing)
여긴 너무 많이 변했다, 그러면서 펜과 엘로이즈가 멀어진 것에 대해서 물어보잖아
그가 모든 게 변했다고 느낀 것의 근본은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펜이 답장이 없었던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