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대한항공의 트로피 사수를 이끈 ‘언성 히어로(unsung hero)‘, 바로 곽승석(34)이다.
대한항공 레프트 곽승석은 이번 시즌 정규리그 35경기에서 총 137세트를 소화했다.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한 후 최종전에만 결장했을 뿐 나머지 경기에서는 교체 없이 모든 세트에 출전했다. 토미 틸리카이넨 대한항공 감독은 라이트, 세터 등 여러 포지션에 걸쳐 폭 넓게 로테이션을 실시했지만 곽승석만은 절대 교체하지 않았다. 이번 시즌만 따지면 대한항공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였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 덕분에 그는 이번 시즌 MVP 후보로 거론된다. 화려한 공격수 케이타(KB손해보험)가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인 것은 틀림없지만 곽승석도 우승팀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13일 경기도 용인 체육관에서 만난 곽승석은 “8대2 정도, 많이 쳐야 7대3 정도로 케이타가 유리하다고 본다. 2등만 해도 좋을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영광스럽다. 케이타는 정말 미친 것 같다. 그렇게 때리는데 생각도 못한 높이, 각도가 나온다. 삼성화재 시절의 레오 다음으로 힘들었던 선수”라며 케이타에 비해 자신의 수상 확률이 낮다고 전망하면서도 “그래도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다. 내심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가족, 특히 아내도 내가 받길 원하는 것 같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라며 수상 욕심을 숨기지는 않았다.
많은 득점을 책임진 것은 아니지만 이번 시즌 곽승석은 MVP 후보로 거론될 만큼 팀에서 비중이 컸다. 특히 1~2라운드 정지석이 빠진 상황에서는 40%가 넘는 리시브 점유율을 책임지며 수비적으로 헌신했다. 그가 없었다면 대한항공의 통합우승 가능성은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곽승석도 “정말 힘든 시즌이었다. 1~2라운드에는 2인 리시브 시스템이라 커버할 부분이 많았다. 티는 안 냈지만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담도 있었다”라고 털어놨다.
덕분에 MVP 후보로 이름이 거론되는 등 스포트라이트도 받고 있다. 곽승석은 “우리 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안 받는 선수는 없다. 내가 무조건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는 사람이 내 가치를 인정해주면 된다”라고 겸손하게 말하면서도 “그래도 솔직히 나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긴 하다. 가끔은 다른 팀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면 어떨까 생각은 해본다. 공격도 더 하고 더 많은 득점도 기록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상상한 적은 있다”라며 언성 히어로 이상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실제로 곽승석은 이번 시즌의 셔터를 내린 주인공이었다. 대한항공은 마지막 경기 5세트에서 23-21로 승리하며 극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케이타의 마지막 공격을 막으며 러닝타임 177분짜리 영화 같은 경기를 끝낸 선수가 바로 곽승석이었다. 그는 “아직도 여운이 남는다. 보는 사람마다 이렇게 우승할 수도 있다면서 감탄한다. 내가 세 번 우승해봤는데 이렇게 극적인 우승은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아내는 결과를 알고 다시 봐도 긴장된다고 할 정도”라며 “내 손에 걸려 끝난 게 행운이다. 운이 따랐다. 그렇게 힘든 경기는 또 하고 싶지 않다. 평생 한 번밖에 나오지 않을 경기다. 졌으면 며칠간은 잠도 못 잤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두 시즌 연속 통합우승을 이룬 곽승석은 자유계약(FA) 신분이 됐다.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대한항공과 협상을 하는 상황이다. 1988년생으로 30대 중반을 보내는 곽승석에게는 마지막 FA 계약이 될지도 모른다. 곽승석은 “그래도 우승을 두 번 했으니 좋은 대우를 해주시지 않을까”라며 “12년이나 있었다. 이 팀에서 데뷔했으니 은퇴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프랜차이즈로서 좋은 기억이 많다. 좋은 마무리까지 하고 싶다”라며 큰 이변이 없는 한 대한항공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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