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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펌]Addio, Vincenzo! _ 깔딱고개 넘은 리뷰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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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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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all.dcinside.com/mini/board/view/?id=vincenzo&no=6398

더는 빈센조가 없는 주말이 리뷰는 <빈센조> 19~20화를 복습/재탕하며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작성되었음.


# The End : 모두를 위한그러나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고대 페르시아의 캄비세스 왕은 부패한 판사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렸어가죽을 산 채로 벗겼지그러고는 어떻게 된 줄 알아그 부패한 판사의 아들도 판사였는데그 아들이 재판할 때 아버지의 가죽을 의자 깔판으로 쓰게 했어정신 차리고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게예전 같았으면 당신도 누군가의 의자 깔판이 됐을 거란 얘기야.”


남동부지검장이 된 한승혁은 허판사를 법조 카르텔의 최후방 수비수 스위퍼(sweeper)’로 여겼고빈센조는 자기 자신을 사적 판결로 쓰레기 치우는 청소부라고 여긴다-‘스페이스 스위퍼에서 빌런 스위퍼가 됐다는 배우개그인가?-. 법정드라마를 표방해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 만큼 법조인 캐릭터들을 잔뜩 포진해두고변호사는 변호사의 일을 하지 않고 검사는 검사의 일을 하지 않으며 판사는 판사의 일을 하지 않던 희한한 드라마.


강제수용소 같은 추악한 죄악의 소굴에서는 악의 최종적 결과만을 볼 수 있다실제로 악을 구상하고 지시하는 일은-기안검토결재기록의 절차를 거치는카펫이 깔린 깨끗하고 따뜻하며 환한 사무실 내부에서 흰색 와이셔츠잘 정리된 손톱매끈히 면도한 얼굴로 좀처럼 목소리 높일 필요 없이 묵묵히 일하는 사무직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C. S. 루이스


매일같이 영혼을 마모시키는 뉴스들에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수많은 픽션들허구한 날 거기서 거기인 법조인 캐릭터들클리셰라고 부르기도 지겨운 그 모든 요소들을 발로 차버리고웃어도 웃는 게 아닌 희비극으로 버무렸던 패기대한민국 사법에 대한 작가의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일까?-대동단결해 기립하지 않기로 했었지만 결국 법정의 권위에 눌려 일어섰던 금가 사람들(6)은 19화 법정 장면에서 존경하는 재판장님너무도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권위에 불복하고복종받지 못한 권위는 허무하게 사라진다-. 계속 지금 같은 방향으로 개선 없이 흘러간다면아마도 차기작에서 작가의 다음 타깃은 부패한 사법부가 될지 모르겠다.


변호사님 말이 맞았어요이 나라 전부 마피아짓 한다는 거요법피아모피아메피아세피아학피아... 뭐가 이렇게 많은지.”

유능하면 부패해도 된다이게 대한민국 대표 트렌드예요.”

부패하면 유능할 수가 있나?”

부패하면 오직 자신한테만 유능하고 타인에겐 무능하게 되죠.”


최종화까지 보고 나서야 새삼스럽게 떠오른 질문작가는 왜 하필 이탈리안 마피아를 대한민국에 소환했나뭘 말하고 싶었나주인공의 직업이 마피아 보스에게 충성하는 책사 역할 콘실리에리이니피렌체의 마키아벨리를 떠올리지 않았을 리 없다타인을 체스 기물처럼 조종하거나 쓰다 버리는 데 익숙하며인간에 대해 냉소적이고 윤리도덕보다 이해관계가 최우선인피도 눈물도 없는 모략가로서의 마키아벨리스트적 면모를 차용하기 위해?

그도 그렇겠지만 한편으론 궂은일을 성실하게 마치고 나서정갈하게 씻고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로마 고전을 읽으며 버림받은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었던우아하고 섬세한 르네상스적 인간’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브랄로 한정판 가운을 입고 와인잔을 기울이며 오페라를 감상하는 빈센조 까사노에 오버랩 된다. ‘공공선(common good)을 위해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정의를 위하기보다 상대를 철저히 짓밟는 데 쓰세요악당의 관점에서 얘기해줄게요내가 가장 두려워하지 않는 상대는 말로만 정의를 부르짖는 정치인정부 관리들이에요정의를 많이 부르짖는다고 정의의 양이 많아지는 게 아니에요가장 두려워하는 상대는 따로 있어요보호세 올렸다고 화가 나서 야구배트 들고 내 집 앞에 서 있는 피자가게 형제들.”


드러나지만 않으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부끄럽기는커녕 아주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타락한 카르텔이 지배하는 작금의 한국은 일종의 과두정공화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민적 동료애-탁발 나가는 두 스님을 걱정하는 금가 입주민들-와 정치 참여-청계천 재개발 공약에 맞서는 까사노 금가 패밀리-가 필수적타인에게 자신의 의지를 종속시키지 않으며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복수하는 공화국 시민의 집단적 덕성.


법은 거미줄과 같은 겁니다내구성이 정해져 있어요강한 말벌들은 뜯고 도망가지만 약한 파리들은 갇혀서 죽게 되죠그런데 여기 모인 파리들은 서로 힘을 합쳐 말벌거미줄다 물어뜯고 있어요오늘은 그걸 느끼는 날이 될 겁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절대적 선악 기준이 사라진 세계에서 원하는 나를 만드는 힘바라는 세상을 만드는 힘은 곧 주체성이다. “(대단한정의까진 바라지 않는다. (상식적인분노와 실천을 바랄 뿐.” 작가는 이를 피력하기 위해 작은 승리의 경험들을 쌓으며 각성한 예속되지 않은 자경단-마피아의 초기 발생 형태-’으로 금가프라자 사람들을 성장시켰다쪽수-승리의 근간인-에서 밀리지 않고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낼 줄 아는 사람들로.

그런 측면에서 바라보면 독자적인 시민병이 탄생하기 전 의존해야만 했던 동맹이자 용병으로서의 빈센조 까사노는 반드시 사라져주어야만 한다. “부탁이 있는데영원히 이 동네를 떠나줄래요?” 빈센조가 노숙자 길버트를 회유하며 던졌던 말의 진의를작가는 그대로 빈센조에게 돌려준다.


우상의 황혼은 저물고어느 날 갑자기 대한민국에 나타났던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는 변수의 신이 잠시 부린 변덕이 끝나자 제자리로 돌아간다하지만 기브 앤 테이크전리품도 잊지 않고 챙겨준다(“플렉스 해줄게!”).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무소유 정신을 찾아서라는 난약사 기도법회 캐치프레이즈로 관객을 낚을 때는 언제였나 싶게 금괴는 물론어떤 모습의 자신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까지(“나중에 꼭 갚아요마피아는 베푼 거 다 돌려받으니까”).


저는 제 일을 버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그리고 옳은 길을 갈 수도 없고요결국 저는 제자리로 돌아가겠죠영원히 후회만 하는 번뇌덩어리로요.”

변호사님께서는 지은 업이 많아 아무리 수양을 해도 부처가 되기는 힘들 겁니다대신 야차와 나찰을 데리고 중생들을 위해 싸우십시오부처는 되지 못하더라도 부처님의 칭찬은 가끔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괴물을 상대하다 보면 스스로 괴물이 될 수밖에 없고인생 자체가 전쟁의 연속이던 빈센조는 분명 환경이 만들어낸 괴물이지만그래도 누군가에겐 축복이고 행복이고 희망이 되기도 했다외톨이가 됐던 홍차영에게도태어나서 처음 사람 노릇한 장한서에게도무기력에 빠져 있던 금가 입주민들에게도-심지어 구심점을 잃고 붕괴되어가던 까사노 패밀리에게도-. 게다가 픽션 속에서라도 마구니 같은 것들 싹 다 처리하고 사라져줬으니, ‘신이 축복을 안 내리면 내가 축복을 내리고 싶어.’


홍길동로맨티시즘바로크, <빈센조>의 알레고리

빈센조를 마피아 킬러들로부터 구해줬던 인자기처럼빈센조 자체가 한국 사회에 허락된 치트키홍길동이나 다름없다. -마피아 가문의 동양인 입양아이며(고관대작의 얼자이며),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고(호부호형을 못하고), 욕망에 충실하는 과정에서 얼결에 사람들을 돕고 천극 배우처럼 변신하기도 하는 콘실리에리(입신양명을 위해 인민구제를 수단으로 활용하고 신출귀몰하게 도술을 쓰는 병조판서).- 결국 기존의 국가 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하고 몰타 인근 무인도(율도국)로 떠나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다.


한편 작중에서는 첩보로맨스를 찍던 라구생갤러리 에피소드를 제외하고 두 번의 미술관 장면이 나왔다첫 번째는 김려원 교수를 유혹하던 “Palette d’émotion : l’âge d’or du romantisme(감정의 팔레트 :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전)”. 뒤늦게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만큼 눈길이 가는 건 전시회 포스터에 쓰인 외젠 들라크루아의 <묘지의 고아>. -홍차영과 빈센조 둘 다무고한 양민을 대량 살육한 키오스 섬의 학살’ 이후 남겨진 묘지의 고아였다.-


두 번째는 만나고물들고사랑하다(Conscere, fondersi e amare) : 이탈리아 미술사”. 홍차영과 빈센조의 재회는 밀라노의 악마적인 천재몰타로 도망갔던 살인자 화가 카라바조의 <일곱 가지 자비로운 행동앞에서 이뤄진다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나그네에게 환대를병자에게 간병을수감자에게 면회를그리고 죽은 자에게 장례를.


왜 엔딩은 죽음에 집착하는 바로크인가어쩌면 빈센조도 3년쯤 뒤엔 수배당한 채 마흔 살이 되기 전 객사한 카라바조처럼 유예된 심판을 마주할지도언제 어디서 총 맞고 죽을지 모르는 남자지만그래도 이 매혹적인 살인자의 잔혹한 행보에 모처럼 대리만족한 1인으로서는 해피엔딩을 기원하겠다.

낭만의 세계-금가프라자-에서 머무는 동안 빈센조는 희생자를 위한 장례를 숱하게 치렀다부지불식간에 실천했던 선행의 대가는 은총. ‘묘지의 고아는 좋은 신호로서의 파국(eu-catastrophe)이다주인공을 행복으로 이끄는 재앙고군분투 끝에 찾아오는 행복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어버린 유디트 같은 홍차영도 있으니괜찮지 않을까 싶다.


빈센조 까사노는 밤어둠매일 밤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는 달태양이 없으면 빛나지 않는 참혹한 아름다움혼돈을 간직한 채 몰락하는 사랑스러움눈길로만 더듬다가 결국 온몸을 던지는 악당의 사랑.

싸우다 지친 사람들이 피할 수 있는 곳소중한 사람을 숨겨놓는 곳그리고 힐링의 섬 Pagliuzza(작은 지푸라기 or 작은 금덩이)에서 “Salute!”




+++

죄 짓는 기계인 주인공에 공감하며악당이 된 기분을 함께 느꼈던 두 달여간 몹시 즐거웠다모든 면에서 적당히 잘 만든 텐트폴 드라마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욕심도 생겼었다다시 돌아올 <빈센조>를 보고 싶었으니까하지만 힘들겠지쇼는 끝났고이야기는 완결됐다.

처음엔 스타일리시한 액션 정도를 기대하며 킬링타임용으로 시청했던 드라마가 점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더니 탁월함의 어떤 이름으로 남았다정말 좋은 배우들음악감독연출가작가를 알게 된 것으로 만족하고 그들 각자의 또 다른 이야기를 기다리겠다.

그래도 나한테 빈센조 까사노는 박제처럼 남진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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