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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빈센조> 17~18화를 복습/재탕하며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작성되었음.
# 배부른 고양이의 ‘쥐를 잡자’
17화 도입부에서 악인들의 본진에 침투한 빈센조는 한 명 한 명을 향해 총구를 겨누며 반응을 관찰하다가 장한석 양 옆의 꽃병과 테이블 위의 로열살루트 술병, 그리고 화면 밖 어딘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타깃은 마치 메이저피스인 룩과 퀸, 킹(로열), 심판대에 오르긴 전 가까스로 발을 뺀 누군가를 상징하는 듯하다.
“내 어머니를 죽인 건 악한 짓이 아니라 최악의 바보짓이었어. 니들이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나까지 죽이려 했단 걸 알면서도 내가 왜 너희를 안 죽였는지 알아? ...귀찮아서.”
“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괜히 너희를 죽이면 성가신 일이 너무 많이 생기거든. 저런 작은 벌레새끼들 죽이는 건 상관없지만. 아무튼, 너희 이제 죽어야 돼.”
Gatto sazio, ‘배부른 고양이’란 별명을 가진 마피아. 하찮은 쥐새끼들의 재롱과 도발에 짜증을 느끼면서도 애써 장단 맞춰준 권태로운 사냥꾼. 연쇄살인마 죽이는 연쇄살인마 덱스터처럼, 악마 잡는 대악마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빈센조 까사노.
“앞으로 너희에게 두 가지를 줄 거야. 죽음보다 더한 수치심, 그리고 고통의 단계를 천천히 느끼는 죽음.”
“(먼저 죽음보다 더한 수치심을 주기 위해) 난 오늘부터 너랑 체스를 둘 거야. 그리고 니 말들을 하나씩 없애버릴 거고. 너 혼자만 덩그러니 남은 체스판, 상상만 해도 창피하고 무섭지 않아?”
금가즈를 총동원한 폭탄테러 작전으로 지역 유력인사들의 굴복을 받아내고, 무려 대외안보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 국제조직범죄대응국장을 스파이로 활용해 법조계/언론계/금융계 카르텔의 중심축들을 게임에서 탈락시키는 과감한 행보. 앞서 생수테러의 재현으로 바벨 회장직에 오르도록 유인했듯이, 이번에는 괴한들의 자택 침입과 주차장 총격전으로 장한석의 구치소행을 유도한다.
“그 안에 있어서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이 모든 게 다, 너희들 계획대로인 것 같아? 널 그 안에 가둔 건, 바로 나야.”
“내가 지금까지 널 살려둔 진짜 이유는, 쥐처럼 갖고 놀기 위해서야. 이게 내 진짜 모습이거든. 잡아먹기 전 마지막으로 갖고 노는 단계. Testa di cazzo. 유리방 안에서 잘 지켜봐. 바벨타워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홍유찬 살인청부를 대행했던 사냥개를 폭살시키고, 유민철을 죽였던 또 다른 사냥개는 옛 주인에게 던져줘 격살시키는-군고구마로 목 막힐 때 사이다도 건네줬는데 얄짤없...-, 난폭한 고양이의 유희. “악마가 악마를 괴롭힌다.”
근과거 국정원 심리전단이 기획했던 ‘모욕을 주는 3단계 방법’은 1)권위 훼손하기, 2)주변사람 떠나가게 만들기, 3)고립시키기. 클래식을 사랑하는 마피아, 언제나 고전에서 답을 찾는다.
# 까사노 패밀리, 금가 패밀리, 빈센조의 파밀리아
“Ombra mai fu (그 어디에도 없을 나무 그늘)
Frondi tenere e belle (부드럽고 아름다운 잎이여)
Del mio Platano amato (나의 사랑스런 플라타너스)
Per voi risplenda il Fato (너를 위해 운명은 반짝이네)
Tuoni, Lampi, e Procelle (천둥, 번개, 폭풍우라 할지라도)
Non vi oltraggino mai (그대의 아늑한 평화를 범하지 말라)”
작중에서 빈센조는 몇 번이나 어머니를 잃었다. 금방 데리러 온다고 했지만 (실은 말기 암 때문에) 자신을 보육원에 맡겼던 어머니, 20여 년 만에 찾았으나 살인 누명을 쓰고 사회에서 격리된 어머니, 아들에게 부담이 될까 감옥 면회실에서 모자관계를 부인하던 어머니. 그리고 이제 진짜 ‘고아’가 돼버렸다. 살아생전 다시 ‘엄마’라고 불러보지도 못한 채.
“30년 만에 만난 아들이 어머니에게 준 건 죽음뿐이었어요.”
후회라는 지옥, 참혹한 자기파괴적 예언의 적중.
“잠시였지만 변호사님은 어머니에게 영원한 천국을 줬어요. 어머니도 변호사님에게 천국을 줬고요.”
괴로움이 걷히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천국도 느껴질 거라는 홍차영의 다독임.
“제일 지옥 같은 건, 벌써 보고 싶은 거예요. 어머니가.”
그리움이 후회가 되지 않게 하라던 홍유찬의 염려는 현실이 됐지만,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은 딸이 어이 없이 어머니를 잃은 아들에게 전하는 마음.
“너는 누군가에게 축복이었고, 행복이었고,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다고.”
손뜨개 목도리와 함께 남겨진 어머니의 편지. 과거, 그리고 현재도 유효한.
악몽 속 핏빛 장면들에 추가된 어머니와의 기억. 이탈리아 빈센조의 집에는 크고 화려한 나비 그림들이 박제처럼 벽에 고정돼 있었지만, 한국에 와서는 추억으로 남은 사진들이 여기저기 엉성하게 흩어져 있다. 오래도록 곱씹을 기억을 소환해주는 노스탤지어의 세계.
“우는 자와 함께 울라.” 어머니의 장례식장을 지켜준 사람들. 모친상을 마친 빈센조를 향한 금가프라자 사람들의 위로는 바벨제약 피해자 유가족의 감사인사와 포옹에 어색해하며 아주 조금 마음을 열던 장면과 비교된다. 차갑게 거절하지도 흔쾌히 받아들이지도 않지만 천천히 스며드는. 뒤돌아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에 숨긴 건 선혈이 낭자한 전장에 평범한 시민들을 동참시키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이 아니라 ‘패밀리’에 대한 새로운 정의. 붕어빵과 막걸리처럼 소박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제일세탁소 탁홍식이 직접 만든 와이셔츠와 어설픈 사과 각서, 영호분식 곽희수의 떡볶이와 고추장과 무말랭이, 운명피아노 서미리의 고들빼기 장아찌, 아저씨전당포 이철욱 & 장연진 부부가 건넨 행운의 회중시계, 난약사 적하스님 & 채신스님의 장례식 열반독경, 금가동 뉴트리아 박석도의 바이바이벌룬 스페셜 편도 티켓, 토토와 래리강과 전수남과 미쓰양, 안기석과 조영운의 신뢰, 남주성 사무장의 눈물, 그리고 어린 왕자의 장미꽃처럼 모이를 기다리는 파란 리본의 인자기.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밥 잘 챙겨먹고, 조심히 다녀오라는, 아주 일상적인 인사. 법무법인 지푸라기의 다 찌그러진 주전자 스티븐슨부터 알록달록 사랑방선물 캔디 연필꽂이까지. 어느 하나 눈길과 손길 가지 않는 것 없고, 그 모든 것의 한가운데 만년필과 악수와 서툰 고백의 홍차영이 있다. 남을 해치거나 상처를 주는 사람은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했었지만, 더 이상 사랑은 장식품이 아니다. Der Mond und die Sonne. 그는 달, 그녀는 태양. “나도 같이 아프니까, 절대 다치지 말아요.” Amigo mio, amore mio.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
# 빈센조가 ‘내 사람들’을 아끼는 방식
-- 슈퍼리치 필수템 블랙카드로 단체복 풀세팅, 플렉스 해주기
-- 충실한 마키아벨리스트다운 따뜻한 조언 건네기
“내가 가진 상대의 약점을 흉기처럼 사용하세요.”
“마치 내 부모의 원수를 대하듯 하세요.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적의 지위가 높다고 절대 주눅 들지 마세요. 강하고 만만하게 대하세요.”
-- 투항한 적군에게 해줄 듯 말 듯, 호형호제(呼兄呼弟) 허하기
“회장 시켜준다는데, 왜 날 배신 안 했어?”(to. 장한서)
“나한테 그렇게 당했는데도, 왜 날 돕는 거냐?”(to. 박석도)
# “당신은 마피아입니다”, <빈센조> 월드의 거대한 상승나선
드라마의 전반부는 “순 마피아 같은 것들(바벨 & 우상)”이 시민(바벨제약 피실험자들/연구원들, 홍유찬 변호사/유민철 연구원, 바벨화학 산재피해자들)들을 죽이는 ‘밤’, 시민의 편인 경찰(지푸라기즈)이 마피아(바벨의 진짜 보스)를 색출하는-동시에 반대편에선 바벨 & 우상이 진짜 이탈리안 마피아인 빈센조의 정체를 알아내는- ‘낮’, 즉 마피아게임의 큰 틀 안에서 진행됐다.
이후 바벨제약 피해자 유가족 살해, 세 명의 킬러 처형, 오경자 살해, 청부살인범 강호철 처형 등으로 낮과 밤 턴이 교차하다가 17화부터는 빈센조가 공언한 체스게임으로 본격 전환된다. 사실상 장준우(장한석)의 정체가 밝혀지고 빈센조가 원래 계획을 변경한-바벨 보스 개인의 말살에서 후환이 없도록 바벨그룹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직후(11화)부터 체크메이트를 향한 게임은 시작된 것이다.
‘오프닝’에서는 그간 잘 길들여온 적의 사냥개(화이트폰)를 이용해 바벨타워 분양권 파티를 망치고 건설 인허가 재검토를 받아냈다(블랙폰-구청장/구의원/경찰서장). ‘미들게임’에서는 약점 잡힌 적진의 유력자들(블랙 룩/비숍/나이트)을 체스보드에서 밀어내고, 민사소송(바벨타워 손해배상)과 형사고발(페이퍼컴퍼니 역외탈세/자금세탁)의 더블체크를 통해 장한석(블랙킹)을 구속 상태로 고립시켰다.
한편 마리오네트에서 벗어난 장한서는 빈센조의 패밀리로 전향했으며, 남동부지검장으로 위치 이동한 한승혁은 문어발(장한석/빈센조/김실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최명희는 아직 장한석의 옆을 지키고 있지만 퇴로가 봉쇄된 상태. ‘엔드게임’인 19~20화에는 움직일 말이 남지 않은 장한석이 직접 공격에 참여해 반전을 노릴 것이다. 홍차영과 장한서와 정인국의 행마(行馬), 적진 끝에 도착해 퀸으로 승급(퀴닝)할 의외의 인물-화이트폰이든 블랙폰이든-은 누가 될지도 관전 포인트.
종반전에 이르러 게임은 한 번 더 중첩됐다. 코리안 마피아(정계/재계/법조계 카르텔)의 콘실리에리 역할이자 정치권의 스페이드킹(권위 또는 죽음을 상징) 김실장과 조커 빈센조의 플레잉카드게임. -스페이드에이스는 대선후보 ‘박승준’. “바벨타워, 기요틴 파일, 전부 다, 내 목을 향해 있는 칼들이구만.” 현재진행형 부산 LCT 사태와 국정원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집요한 저격.-
권력은 정보를 가진 자에게 있다. 정보가 통제되지 않으면-진실이 확산되면- 기득권은 무력해진다. 마피아라는 정체와 금괴의 존재를 금가즈에게 들킨 빈센조는 동등한 시민의 위치로 내려와 그들의 편에 섰고, 바벨의 진짜 보스라는 정체와 숨겨왔던 치부(기요틴 파일에 담긴 범죄이력)를 빈센조에게 들킨 장한석은 최후의 심판을 앞두고 있다.
“(절대반지를 가지면) 빈센조가 대한민국을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과연 최명희의 우려는 작중 현실이 될 것인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바로잡아 볼까요?”
홍유찬의 바람과 홍차영의 결심대로 독하고 매서운 시민의 반격이 이루어질까.
“그동안 우리가 약자인 줄 알았는데, 약자가 아니라 강해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었어요. 같이 싸우게 해줘요.”
Alea iacta est. 주사위는 던져졌다. 애초 바벨만이 타깃이었지만 번외의 흑막을 상대하게 된 빈센조가 기요틴 파일이라는 도깨비방망이를 활용해 자신의 전문 분야인 교섭-‘친절한 말과 총’-으로 문제를 단독 해결하고 시즌2를 기약할지, 아니면 완벽한 스크럼을 짠 금가즈와 함께 정공법-다소의 폭력/협박/협잡이 가미된-으로 위기를 넘기고 모범적인 엔딩을 맞이할지.
“약자들의 최고 무기는 짱돌 아니면 최후엔 박치기.”
드라마의 시작은 지극히 비관적이었으나,
“우리가 생각한 대로 우리가 된다. 내가 날 강하게 생각하면 강자가 된다.”
드라마의 끝은 몹시 낙관적.
“이거 너무 만화 같은 스토리 아냐? 정치든 인생이든, 드라마틱한 일이 참 많아.”
아, 너무 재밌다, <빈센조>... 끝을 바라기도, 바라지 않기도. 만감이 교차하는 막방 D-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