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덬으로서의 글. 불편할 수 있음
먼저 작가의 말부터 시작해본다 2017년 방영된 드라마 김과장 대본지에서 발췌한 작가의 말이야
"이렇게 나 자신에게 주체적, 윤리적 압박을 가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드라마는 예술작품이자 콘텐츠임과 동시에 심리적인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물리적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 소비되어진다.
그래서 되도록 편안함과 긍정적인 상상이 주가 된 ‘소비’가 되게 해야 한다.
이것은 [드라마 공급자]로서의 최소한의 직업윤리라고 생각한다."
김과장 대본집, 작가의 말. 발췌
(더 긴 글은 여기 https://theqoo.net/1923810429)
이 작간, 자신이 쓰는 글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아는 작가야.
재미와 자신의 메세지가 잘 섞이길 바라며 언제나 따숩게 메세지를 전하지
그 방향은 이 사회가 좋아졌으면 하는
그런데 빈센조의 방향과 전혀 다르지 않아? 이러던 작가가 5년만에 바뀌었다고?
빈센조는 휴먼드라마 요소를 다른 작품에 비해 한줌이야.
잔인하지만 이렇게 사람을 몰살시키지 않았어
왜 이렇게 작가가 잔인해졌지 왜 이렇게 작가가 미쳐가지
뒤도 없이 달려가는 나는 내 갈길을 가겠다라는 나씨나길이 느껴지고 말야
사회비판적인 작품을 20년 동안 써온 박재범의 박탈감이
드라마 빈센조라는 괴물을 탄생시킨게 아닐까
이 작가의 메세지는 항상 부조리한 사회와 기득권과 사회 악습이었어.
드라마만 살펴보자.
희귀병 환자를 상징한 사회적 약자를 향한 공동체의 무관심
장애인을 향한 사회의 끝 없는 편견
자신의 권력이라면 타인의 생명도 기꺼이 거둬내는 괴물들
사원을 기계로 아는 기업의 문제점과 비자금 비리, 탄핵 전이었던 503과 거대기업의 비리를 직저격하고
지역의 카르텔, 그리고 버닝선, 사람의 존엄을 무시하는 현상을 직저격하고
이 작가는 매 작품마다 사회를 향한 비판은 언제나 동일하게 떨어졌어
시청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유쾌함과 휴먼드라마를 기반으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심지어 갱생이 가능한 악들은 갱생할 수 있다는 메세지까지 넣어놨어
너넨 돌아올 수 있어. 제발 그 강을 건너지 말고 돌아오자라는 메세지까지/
세상에 비관적인 작가지만 따수운 작가였어
그래도 세상은 바뀌지 않을까요 라는 자기 소망을 항상 넣었거든
이 작가가 20년간 글을 써왔지만 사회는 바뀌었나?
아니 절대 네버 전혀 아무것도 바뀐게 없어
생각해보면 이 작가가 글을 써오는 20년동안 사회는 결코 변하지 않고 악해지기만했어
수 없는 장르와 소재로 사회를 비판해왔지만
그것도 20년동안 그걸 써왔지만
장편 드라마만 봐도 10년동안 사회비판 드라마를 써왔는데
사회는? 변함이 없고 악은 가득차있어
그 증거가 빈센조 속 풍자야. 그 어느 때보다 악행들이 가득 차여있어
시간이 지나는 사이 또 현실의 악행들이 쌓여버렸고 새로운 악행들과 지나쳐온 악행들로 극을 구성하고 있지
자신의 웃기는 코미디의 감과 사회를 바라보는 따수움으로 사회를 향해서 외치던 한 작가가
자신의 따수운 글로는 더는 세상에 통하지 않는다는 박탈감이 오히려 느껴지는거야
그래서 더 독한 블랙코미디로
더 독한 스릴러로
더 독한 누아르로
더 독한 빌런들도
더 독하고 더 미친 사회를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의 분노와 염원을 담아서 빈센조를 데려왔다고 .....
어쩌면 작가의 이전 세계관을 홍유찬에 담아 죽이고
빈센조라는 거대한 악을 불러와 이 드라마를 쓰고 있는게 아닌가...
필요에 의해 원칙을 바꾸는 홍차영의 말처럼
그간 나의 부드러운 펜이 하지 못했다면
이렇게라도 사회의 빌런들을 부셔주겠다는 작가의 박탈감...
작가의 자의식 과잉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팬의 과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작간 언제나 자기 작품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 바람은 입봉 때부터 보여왔기에...
16화를 보고나니 더 느껴지는거야. 블랙코미디 작가로서의 박탈감.
조금이라도 사회의 따수움을 보듬고 싶었던 한 작가의 박탈감
따수운 옆집 수다쟁이 아저씨 같았던 한 작가의 박탈감에
갑자기 눈물이 나서 이 글을 써봐
자신의 그 간 분노를 다 털어내는 듯한 이 작품을 바라보며
이제서야 작가가 왜 빈센조를 썼는지 이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