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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하이큐 Inside Out(글/오이카게/디즈니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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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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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합작에 제출했던 글이야~ 열심히 쓴 글이라 덬들하고고 나누고 싶어서 가져왔어ㅎㅎ











  






  이야~☆ 오늘은 굉장히 운이 좋은 걸! 이렇게 예쁜 눈동자 색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건 오랜만이라. 아, 운이 좋은 건 오히려 그쪽일지도 모르겠네. 이 오이카와 씨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거든. 오늘만 허락해 줄게. 그러니까 아무리 바빠도 어디 가면 안 돼. 오늘은 오이카와 씨에게 아주 중요한 날이고, 그쪽은 오이카와 씨의 일생일대에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하게 될 거니까.







  뒤를 돌아봐 줄래? 혹시 옆에 가족이나 룸메이트 혹은 친구가 있어? 그럼 어서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꼭 닫고 혼자서만 보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아주 곤란한 일이 생길지도 몰라. 내가 말했잖아. 그쪽은 지금부터 오이카와 씨의 깊은 곳을 보게 될 거라고. 다시 말하지만 그쪽은 눈이 예뻐서 특별히 허락해 주는 거라는 거 잊지 마.







  내가 누구냐고? 난 ‘조이카와’라고 해. 어원이 어떻게 되는지는 그쪽 센스에 맡길게. 오이카와 씨의 즐겁고 기분 좋은 감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어. 난 오이카와 씨에게 아주 특별해. 왜 내가 특별한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쭉 나와 함께하다 보면 알게 될 거야. 내 왼쪽에 있는 애는 ‘피어카와’. 파들파들 떨고 있지. 오늘만큼 피어카와가 마음고생을 한 날도 없어요. 미안한데, 그쪽이 나 대신 옆에 가서 어깨 좀 주물러 줘. 내 오른쪽에 있는 애는 ‘앵거카와’. 얼굴이 빨갛지. 평소에는 크게 나대는 애가 아닌데 천재들을 만나면 이성을 잃고 계기판을 박살내버리는 녀석이야. 오늘은 천재 꼬맹이 한 명을 만날 건데 아직까지는 멀쩡해서 다행이네. 그 옆에서 턱을 괴고 심드렁하게 엎어져 있는 애는 ‘까칠카와’야. 얘 이름은 왜 영어랑 섞이지 않았냐고? 이름을 굳이 영어로 쓸 필요가 없는데 왜 영어를 써야 하냐면서 따졌거든. 오늘 일로 얼마나 피어카와를 흔들어댔는지 모르겠어. 마지막으로 저쪽에 구석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파란 애가 바로 ‘새드카와’. 오이카와 씨가 가장 잘 다루는 애 중 한 명이야. 새드카와는 오이카와 씨가 꿈을 꿀 때 주로 활동하는 녀석인데 요즘 들어 내 옆에 자꾸 앉으려고 하지. 이유는 잘 모르겠어.  







어쨌든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야.

바로 이 오이카와 씨가 고백을 하는 날이거든.

INSIDE OUT









1.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 하나를 말해 줄게. 바보 토비오쨩이 짐승처럼 달려들어 오이카와 씨에게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었어. 그때 까칠카와가 계기판을 탁탁 퉁겨대며 탐탁지 않은 초록색 얼굴로 고 녀석을 밀어내고 있었지. 옆엔 타케루가 있었기 때문에 제법 유리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토비오는 만만치가 않았어. 미야기 뒷산에 출몰하는 멧돼지마냥 험하게 달려들어서 “부탁합니다앗-!”라고 소리를 빽 질러버렸다고! 그 순간 피어카와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튀어나와 까칠카와의 몸을 붙들고 그대로 백드롭을 해버렸지. 그리고는 정신을 잃은 까칠카와를 대신해 손을 떨면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며 벌벌 떨었어. 벌떡 일어난 까칠카와가 겨우 피어카와의 멱살을 잡고 흔들면서 진정시켰지만 말이야. 그때 난 기똥찬 생각을 떠올렸어. 고개 숙인 요 녀석을 사진으로 남겨서 두고두고 놀려먹으면 겁나 재밌겠다! 사실 180이나 되는 바보 꼬맹이의 동그란 정수리를 볼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가 않거든.







  “타케루, 사진 찍어줘. 여길 들고, 여기 눌러.”


  “…크흐ㅁ…”

 

  “토비오, 움직이지 마.”







  타케루를 시켜 인증샷을 찍어줬다고.  







  “예이~ 토비오는 오이카와 씨에게 꼼짝도 못 한닷즈-☆”







  그거 지금 봐도 웃기다니까? 짜증이 밀려와서 앵거카와가 폭발할 때 즈음 한 번씩 틀어주면 일순간 평화가 찾아올 레벨이었지. 토비오가 원래 좀 못생긴 표정을 자주 짓잖아. 내 앞에서 고개도 못 드는 상황도 좋아 죽겠는데 머리를 숙이면서 앞머리가 까진 건 진짜 웃겼어. 봐바. 여기 사진 보이지. 나는 흔들렸다손 치더라도 이 사진에 토비오 진짜 못생기지 않았어? 으하, 미치겠다! 그 동그란 머리통이 내 앞에서 꼼짝도 못하고 팍 숙이고 있으니까 온 몸에 저릿저릿 희열이 들었단 말이지.







  오이카와 씨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날이면 종종 꿈 공작소에서 틀어주는 영상이 있어. 일명 토비오 괴롭히기 시리즈라고 해. 이 시리즈의 주연은 항상 오이카와 씨고 조연은 항상 토비오야. 첫 번째 편은 뿅망치를 들고 가위 바위 보를 해서 꿀밤을 때려주는 설정인데, 그때마다 항상 토비오가 가위 바위 보에서 주먹만 내거든. 애가 꿈에서 그렇게 또 바보짓을 해요.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당연히 오이카와 씨가 이겨줘야지! 그런 다음에 머리에 혹이 날 만큼 계속 쥐어박아주는 거야. 사진 속에 고개를 팍 숙인 토비오쨩처럼 될 때까지 말이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울컥울컥 하면서도 계속 주먹만 낸다니까? 그 바보가.







  두 번째는 레슬링 시합장에서 토비오가 엎어져 있는 상황인데, 오이카와 씨가 끝에서 팍 점프를 해서 그대로 토비오를 깔아뭉개는 설정이야. 토비오는 꽥 소리를 내면서 오이카와 씨 밑에 깔린 채 버둥거리지만 좀처럼 빠져나오질 못해. 그럼 오이카와 씨는 토비오를 엉망진창으로 두들겨 패주는 거야. 토비오는 나름대로 반항을 하지만 오이카와 씨는 레슬링 기술을 꽤 많이 알고 있어서 건방진 토비오를 단숨에 제압해버리지. 그 시리즈를 오이카와 씨가 얼마나 좋아하던지 그 꿈을 제대로 꾼 날은 지각을 할 정도라니까.







  세 번째는 항상 배구코트 위에서 현실과 똑같이 시합을 하는 거야. 아슬아슬한 순간에 카라스노와의 시합에서 세이죠가 승리를 하고, 내가 서브를 넣은 공을 아무도 잡지 못해서 다 내 앞에서 엎어지는데 토비오는 분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면서 “제가 졌습니다!”라고 아주 큰 소리로 외치고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는 설정이야. 그럴 때면 항상 오이카와 씨가 엎어진 토비오를 위에 올라타서 두 뺨을 쭉 늘리면서 “혼자서는 역시 아무것도 안 되지?”라고 비웃어주는 걸로 결말을 맺어. 물론 이 설정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쉽게 상영을 하진 못해. 일단 첫 번째, 두 번째 시리즈는 배우가 두 명만 있으면 되는데, 세 번째 시리즈는 배우가 열 명은 넘게 필요하니까 꿈 제작소에서 잘 촬영해주지 않거든.







  저 시리즈는 오이카와 씨가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을 때 치유용으로 틀어주는 꿈들인데, 그 외에는 토비오를 배우로 꿈을 잘 만들지 않아. 토비오 괴롭히기 시리즈에서 토비오 역을 맡은 배우가 사실 대사를 잘 못 외우거든. 진짜 본인 같지. 그래서 몸으로 때우는 촬영을 전문으로 맡는 거야.







  그런데 말이지, 그날 여름에 찍었던 사진 말이야, 그 사진을 찍고 난 뒤에 이 배우에게 또 다른 촬영 제안이 들어왔어. 아주 은밀한 제안이었지. 아, 이 말을 하려니까 너무 신나. 너무 좋아.







  자, 지금부터는 방문을 잠가야 할 때야.







2.




  꿈 제작소에서 만드는 꿈들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다양한 장르를 연출할 수가 있어. 사춘기에 접어들면 우리도 난리가 나지만 꿈 제작소도 난리가 나. 그맘때 바로 몽정을 하거든. 그때부터 꿈 제작소 애들은 대목이 되는 거야. 먼저 호르몬이 바뀌면서 꿈 제작소에서는 몽정스튜디오를 새로 제작하는데, 다른 스튜디오와는 달리 암막을 쳐놓고 촬영을 진행해. 평소 제작비용의 몇 배를 들여가면서 그 어떤 꿈보다 사실적이고 감각적으로 촬영을 해야 하지. 혹시 내가 그 이유를 따로 설명해줘야 하니.







  다른 꿈은 큰 스트레스가 아닌 이상 신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 물론 신체의 자극이 꿈에 반영이 되기는 하지만 몽정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지. 몽정은 섹… 아니, 성적인 욕구가 만들어내는 허상이고, 신체의 변화와 함께 운영돼야하기 때문에 꿈의 디테일이 아주 중요해. 윗분들이 수시로 제작소를 방문해서 이게 정말 몽정을 유발할 수 있는 수위인지 검열까지 하신다고. 건전하고 담백한 것들이 하나라도 나오잖아? 그럼 모조리 컷 해버리고 불건전하고 단백질 유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걸로 당장 교체하라고 난리가 난단 말이지. 어쨌든 오이카와 씨의 몽정스튜디오는 규모가 어마어마 해. 알잖아! 이분 정자왕이라는 거☆







  다시 그날 여름의 일로 돌아가자면, 이 몽정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낸 신작이 바로 그날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들어졌다는 거야. 이 영상이 재생되었던 날 오이카와 씨와 여기 애들 난리도 아니었어. 진짜 육성으로 소리를 질렀다니까? 하복을 입은 토비오가 험악한 얼굴로 달려들어서는 “오이카와 씨, 섹* 가르쳐 주십시오!”이러고 덤벼드는데, 한 번도 오이카와 씨를 눌러본 적이 없던 녀석이 제 스스로 옷을 벗고는 오이카와 씨 위에 올라타서 몸을 막 비벼대는 거야. 몽정스튜디오에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냐면, 오이카와의 몸을 누르고 있는 살갗의 감촉부터 온도까지 생생하게 재현을 했다고!







  솔직히 오이카와 씨는 좀 기뻐했어. 조이joy카와의 이름을 걸고 말하는데, 좀 많이 기뻐했다고. 그 위에 올라타서 앙앙대며 조르는데, 우리가 아는 그 사진 속 못생긴 토비오쨩이 아니었다니까? 인간적으로 토비오쨩이 바보 같은 표정을 많이 지어서 그렇지 제법 잘 생긴 축에 속하잖아. 그 얼굴로 살짝 우는 표정을 지으면서 섹*를 조르는데 안 갈 수가 있겠니? 그대로 갔지. 비행기도 없이 그날 몇 번을 홍콩까지 가버렷-!어.







  혼돈에 빠진 오이카와 씨가 토비오를 성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어. 그도 그럴 것이, 몽정스튜디오에서 주구장창 틀어대는데 사람이 어떻게 견딜 수가 있었겠어. 그날 우리는 긴급회의를 열어야만 했어. 오이카와 씨가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구글 창에다 검색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야. 가장 먼저 의견을 낸 건 앵거카와였어.







  “아니 어떻게 그 바보 같은 애새끼랑 *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어? 이건 말도 안 돼! 당장 토비오쨩을 불러다가 확인해야 한다고! ‘너 같은 애새끼랑 *스하면서 *스도 하고 자세를 바꿔가면서 하루 종일 *스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거든!’하고 멱살을 잡고 마구잡이로 쏴 붙이면서 엉덩이를 때려줘야 해! 젠장, 진짜 때려주고 싶어!”


  “아, 완전 짜증! 그러니까 내가 그 사진 당장 삭제하라고 말했었지. 어차피 그 사진 오이카와 씨 얼굴이 제대로 나온 것도 아닌데 조이카와 니가 짜증날 때마다 그걸 틀어주는 바람에 몽정스튜디오에서 이상하게 받아들인 거 아니니?”


  “그만해… 어우, 어떻게… 어떻게… 어우 어떻게 미성년자랑… 어우… 어우, 두통이… 그것도 중학교 후배… 여자도 아니고 그… 그 커다란 남자애… 어우… 어떡…어떡하니…”


  “그게 문제라는 거야! 오 맙소사, 미친 듯한 슬픔이 갑자기 밀려와… 명절 특선 영화로 틀어줬던 브로크백마운틴이 생각난다고…! 그때 단단히 결심했었는데… 절대 남자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게다가 토비오는… 토비오는 오이카와 씨가 언제든 눌러줘야 할 경쟁 상대인데… 그런 애를… 그런 애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이건 해피엔딩이란 있을 수가 없잖아… 오이카와 씨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 거야… 흐흡……!”







  난리도 아니었지. 정말 난리도 아니었어. 앵거카와는 *스가 입에 붙었는지 계기판을 두드리면서 계속 *스, *스 했단 말이야. 머릿속에선 이미 브로크백마운틴이 재생되고 있었지. 오이카와 씨가 그 영화를 검색하기 시작했단 말이야. 핵심기억까지 생길 것 같은 순간이었어. 하지만 그 순간 오이카와 씨는 검색을 도중에 멈추었어. 그리고 내 눈 앞에 아주 환한 형광등이 켜졌지. 이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오는 신호였어. 그랬어! 오이카와 씨는 자신의 상황을 납득할 만한 아이디어를 찾아낸 거야. 난 회심의 미소를 지었어. 오이카와 씨는 책상을 탁 치고는 벌떡 일어나 양 손을 허리에 얹고는 등을 젖히고 크게 웃었지. 그게 뭐냐고?







  “고민할 필요 없지. 이 오이카와 씨가 토비오와 섹*하면서 키*하고 싶은 건 단지 토비오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니까! 아하하! 실력으로는 내가 압도적으로 뛰어나니 다른 영역에서도 내가 토비오를 눌러주고 싶다, 이것밖에 없는 거야. 암, 그렇지. 그것 말고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어? 토비오를 레슬링 판에서 깔아뭉개든, 침대에서 깔고 박든 뭐가 다르냐고! (헐, 아니, 그거, 음, 엄연히 다른 것 같은데.-피어카와) 아하하하하! 난 아주 떳떳해! 당당하다고!”







  합리화.







  하지만 합리화의 가장 큰 단점은, 허를 찌르는 반박이 들어왔을 때 쉽게 무너진다는 점이었지. 물론 그 순간 오이카와에게는 딱히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 계속되는 토비오의 꿈을 설명할 수 있는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했을 뿐이었으니까. 나 역시 그랬어. 단지 오이카와가 그 순간 직면한 위기를 모면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에 대한 쾌감을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했지. 바로 그날이 되기 전까지 말이야.







3.




  여름방학 막바지가 되었을 때의 일이야. 연습을 마치고 학원에서 집으로 가던 길이었어.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목에 아주 익숙한 그림자를 보았지. 어떤 맨션에서 나오는 토비오쨩을 말이야. 그 정도로 키가 큰 녀석은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기 때문에 오이카와 씨는 그가 토비오쨩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어. 오랜만에 보는 동그란 뒤통수라 난 실실 웃음이 났어. 그런데 그 순간 새드카와가 내 옆으로 다가오더라. 내가 깜짝 놀라서 왜 오냐고 물었더니 녀석이 또 다른 그림자에 손가락을 가리키더라고. 그 아파트에서 함께 나온 자그마한 여자애의 그림자를 말이야. 일순간 오이카와 씨의 몸이 크게 흔들리면서 우리 쪽에서도 난리가 났어. 일순간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빽빽 울리면서 애들이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녔지.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앵거카와였어. 머리에 불을 뿜으면서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나오더라. 그리고는 두 주먹으로 계기판을 박살내버렸어.







  “발랑 까진 애새끼가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여자애네 집에서 나온다는 거야! 다른 곳도 아니고 집에서 나온다는 거, 그거는 그거를 의미하는 거지 다른 게 더 있어?! 그것도 자기 머리통 하나만큼이나 작은 여자애라고? 심지어 카라스노 치비쨩보다도 작은 애라고? 토비오 주제에 어디서 벌써부터 딱지를 떼겠다는 말이야! 괘씸해서 안 되겠네, 한 대 줘 패고 와야겠어! 이유는 모르겠는데 열 받아! 창자부터 부글부글 끌어 오르는 것 같은데 저기 토비오를 때리면 좀 나을 것 같단 말이야! 나 말리지 마!”


  “아오, 미치겠네. 여기서 당장 저 둘에게 *스했나고 묻기라도 하겠단 말이니? 애초에 그게 무슨 상관? 사실관계는 정확히 해야지. 오이카와 씨가 콘돔을 산 게 중3때였다고. 그때 그냥 하겠다고 하는 걸 내가 겨우 뜯어말려서 콘돔까지 쥐어줬는데 결국 못했잖아. 그게 중3이라고. 누가 봐도 발랑 까진 애새끼라고 욕할 수가 없는 입장이거든요. 그래놓고 따진다고? 무슨 자격으로? 오이카와 씨를 꼰대로 만들 생각이야? 완전 구려!”


  “아니… 잠깐만. 그거 아닌 것 같아… 지금 오이카와 씨가 동요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잖아… 이거 좀 이상해… 오이카와 씨 좀 이상하다고… 두려워. 뭔가… 뭔가 가슴 속에서 이상한 게 파삭 하고 부서지는 기분이야. 조이카와, 이거 뭐지. 이상해. 뭔가 인정해서는 안 될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올 것 같은데… 오이카와 씨 지금 손 떨고 있다고… 왜 이렇게 겁이 나는 거야…”







  아아,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 이럴 때일수록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하는데, 무슨 생각을… 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달려가서 인사해버릴까. 토비오-쨩☆ 혹시 매니저양이랑 사귀는 거? 이런 식으로 물어보면 알아서 술술 부는 거 아닐까. 그래, 그렇게 하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때였어. 바닥에 엎어져 울고 있던 새드카와가 기어와 내 발목을 잡고 겨우 일어났어. 아주 얼굴이 퉁퉁 붓도록 울고 있더라. 난 이유를 알 수가 없었어. 하지만 얼마 전 급하게 쌓아올렸던 합리화의 벽을 무너뜨려야 할 순간이 왔다는 것을 직감했지. 어떻게든 새드카와를 말려야만 했어. 합리화의 벽을 무너뜨리기엔 아직 이르다고. 거대한 반박이 들어온 순간에도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오이카와 씨를 안정시키고 난 뒤에, 그때 무너뜨려도 늦지 않았다고. 하지만 새드카와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어. 그리고 자꾸만 가로등 아래 걸어가는 두 사람의 그림자를 비추는 거야. 오이카와 씨의 시야가 푸르게 변하고 말았어. 이상했어. 너무 이상했어.







  “여기서… 두 사람에게 무슨 관계냐고 물으면… 그래서 사귀는 사이라고 하면… 그땐 어쩔 거야… 사귀는 사이든, 사귀는 사이가 아니든… 그 관계를 궁금해 한다는 것 자체가 오이카와 씨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다고… 오이카와 씨는 토비오를 좋아하는 거야… 어째서 다들 그걸 납득하지 못해…? 아니, 난 그걸 알아…”







  일순간 사고가 멈추고 말았어. 새드카와가 계기판 위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어.







  “…행복해 질 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잖아…”







  나는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어. 오이카와 씨의 모든 감정이 새드카와의 색으로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어. 오이카와 씨는 이미 알고 있었어. 자신이 그토록 동요한 이유는 카게야마 토비오를 이미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노력했어.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부정해야지만이 오이카와 씨가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때였어. 까칠카와가 계기판에 나와 새드카와의 옆에 서더라. 그리고 인상을 찌푸린 채 말을 이어갔어.  







  “어. 이 관계, 절대 안 돼.”







  단호한 목소리였지. 새드카와가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엎어졌어. 하지만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은 말을 이어갔어.







  “토비오가 오이카와 씨를 좋아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꼴사납게 혼자 좋아하시겠다고? 웃기지 마. 설사 좋아하게 된다 하더라도 두 사람은 모두 남자고, 오이카와 씨는 곧 졸업이고, 결국 살을 부비면서 만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 그래, 그게 가능하다고 치자. 그럼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는 대체 어떻게 말할 건데. 오이카와 씨나 토비오나 모두 결국에는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꿈인 사람들인데 그럼 어떻게 관계를 이어갈까. 모든 것들을 통틀어 봐도 토비오와의 연애는 힘든 것들 투성이인데 그걸 어떻게 다 감당해.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답이 나오잖아. 결국 헤어지게 되어 있어.”


  “그게 너무 슬프다는 거야…! 이미 좋아해버린 걸 어떻게 물릴 수가 있어. 게다가 토비오에겐 이미 여자 친구가 있잖아… 꿈속의 이야기들은 모두 산산조각이 나버렸어… 결국 모두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야. 토비오는 그렇게 사랑스럽게 오이카와 씨를 보고 다가오지 않는다고… 그거 알고 있었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오이카와 씨도 다 알고 있었는데, 토비오를 볼 때면 언젠가 그렇게 될 수는 없을까, 혼자 생각했었어…


  하지만 이제 확실해졌어… 토비오와 오이카와 씨는 결국 코트 너머로 대결해야 하는 경쟁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천재는 결국 멀리 떠날 것이고… 결국 갈라서게 되겠지… 꿈은 진짜 꿈일 뿐이고… 이룰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그래, 아무것도 없지. 그래서 오히려 잘 된 거야. 지금 깨달았으니 잊는 것도 쉽다고. 그래서 넌 길바닥에서 꼴사납게 울기라도 해야겠다는 거야? 이 오이카와 씨가? 웃기지 마. 오이카와 씨를 원하는 사람은 저기 카게야마 토비오를 제외하더라도 아주 많아. 조이카와, 당장 머릿속에 세이죠 여자애들 사진 좀 틀어줘. 졸업생들도 가끔 연락하잖아. 그쪽 얼굴도 좀.”







  그래, 되돌려야 했어. 어떻게든 오이카와 씨를 진정시켜야 했어. 이미 시야에서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가는 토비오를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말했지. 오이카와 씨가 가장 잘 다루는 감정은 슬픔이라고. 그 슬픔을 다루기 위해서 가장 새드카와의 옆에 자주 서는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냉정해진 까칠카와였어. 난 다급하게 오이카와 씨의 머릿속에 있는 아름다운 여학생들의 사진을 쭉 정렬했어. 그런데 이상하게 손이 떨렸어. 그 사진들이 모두 푸르게 변색되어가는 거야. 헛것이겠지. 잘못 본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오이카와의 기억 속 그녀들을 재생시켰어. 그런데 그 화사한 사진들은 얼마 가지 않아 모두 잿빛에 가까운 푸른색으로 젖어 흐려지고 말았어.







  그래, 좋아. 내 역할은 말이지, 아주 특별하다고. 모두가 특별한 감정이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특별하단 말이야. 그 이유가 뭐냐고? 다른 감정들은 보통 어떤 현상이나 행동의 결과로 유발되는 경우가 많아. 나 역시 마찬가지고. 그런데 난 말이야, 나 자신을 위해서 어떤 행동을 역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 기쁨이 곧 목적이 되도록 일부러 어떤 행동할 수 있다는 거야. 결국 나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일반적으로는 하지 않는 행동을 해버릴 수 있다는 거야. 지금처럼.







  오이카와 씨를 달려가게 만들어서.


  나중이 어떻게 되든, 지금 당장의 불안이나 슬픔을 해소하기 위해서.


  계산기를 두드렸을 때 이윤이 나오지 않는 마이너스적인 행동을 일부러 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그게 내 존재의 이유거든.







4.




  “와~ 카라스노의 매니저양!”

 

  “허, 헉…. 세, 세, 세, 세, 세, 세이죠, 세이죠 주장님!”


  “이렇게 밤중에 둘이서 데이트하는 거야? 완전 부럽네, 토비오쨩.”


  “데, 데, 데이트라니요! 무슨 그런 큰일 날… 아니에요! 진짜 아니에요! 아까 히나타 군도 같이 있었는데 히나타 군이 들를 데가 있다고 먼저, 먼저 가버린 것이지 절대! 절대 아니에요!”







  그때 내 귓가에 대고 까칠카와가 속삭였어. 이렇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뜻 아니니? 라고. 하지만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격렬하게 고개를 흔들며 부정하는데 저걸 강한 긍정이라고 할 수 있겠어? 카게야마의 반응은 제법 솔직했어.






“? 방학숙제 하고 나오는 길인데요.”


“아… 방학숙제.”







  일순간 새드카와의 울음이 멈췄어. 들었어? 방학숙제래. 방학이니까 방학 숙제를 같이 할 수도 있지. 아까 치비쨩도 같이 있었다고 했잖아. 그럼 방학숙제 아니야? 까칠카와를 제외한 모두가 마음에 일단 안정을 찾았어. 하지만 까칠카와는 납득하지 못했어. 히나타를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사귀는데 같이 방학숙제를 할 수도 있는 거지. 라고 말이야. 오이카와 씨는 까칠카와의 생각에 동의하는 듯했어. 그래서 개구진 얼굴로 카게야마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지. 물론 오이카와 씨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지만 말이야.







  “우와, 둘이서 방학숙제까지 같이 하는 사이야? 오이카와 씨는 항상 숙제는 혼자 해서 여자 친구네 집에서 숙제하는 사람을 오늘 처음 보는 것 같네. 물론 여자 친구가 없었던 적은 요즘 말고 없었지만!”







  그리고는 토비오의 반응을 살폈어. 하지만 그 사이를 치고 들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매니져양이었어.







  “그, 그런 거 진짜 아니에요! 살려주세요. 이런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 돌기라도 하면 허위사실 유포 죄로 잡혀갈 수도 있어요. 그러면 앞날이 창창한 카게야마 군은 국가대표도 못되고 앞으로 혼삿길도 막히고 저출산 시대에 인구절벽을 맞아서 결국 고령화 사회가 아주 심각해질 거라고요! 그런 무서운 말씀 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러지 마세요. 제발 부탁드ㄹ…헙!!! 제가 무슨 말을… 으아,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고령화 사회는 정말 요즘 심각하거든요… 흐엉…!”







  얼굴이 더욱 새파랗게 질려서 울 것 같은 얼굴로 강력하게 부인을 하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놀리겠니. 눈앞의 토비오는 이미 멍청한 얼굴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데 말이지.







  “수학 프린트가 어려워서 야치 씨 걸 조금 봤습니다. 다른 애들은 다 못했다고 보여주지도 않고, 히나타도 하나도 모르겠다고 하고. 암튼 그래서 히나타랑 같이 베끼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바보 주제에 제법 논리적으로 대답을 하는 걸 보니 이건 사실이네. 까칠카와는 그제야 납득을 했어. 오이카와 씨는 방긋 웃으며 아, 그래? 라고 대답했지. 그렇다고 해서 오이카와 씨의 기분이 나아진 건 아니었어. 여전히 계기판의 중앙에는 새드카와가 서 있었고, 나는 비스듬히 그 광경을 볼 뿐이었지. 앵거카와는 새드카와의 옆에서 슬슬 열을 낼 준비를 하는 것 같았어. 그리고는 스멀스멀 새드카와의 옆으로 다가갔지.







  “그럼 그렇다고 진작 말을 하란 말이야! 사람 헷갈리게 왜 여자애를 배웅하게 만드는 거야, 이 매너 따위라고는 찾아보지도 못할 애새끼가!”







  갑작스러운 일이었어. 오이카와 씨는 앵거카와의 반응을 받아들인 듯 “자, 그럼!”이라고 말하고는 토비오의 손목을 낚아채갔어. 장신의 꼬맹이였지만 오이카와 씨에 비해서는 체구가 작아서 어린애처럼 끌려갔지. 매니저 양은 도망치듯 사라져버렸고, 거리를 걸어가며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우리들 역시 숨을 죽인 채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지만 앵거카와는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 그냥 화가 났던 거야. 이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애새끼 때문에 아주 일순간이라도 엉망진창으로 흔들렸던 것이 미치도록 화가 났어.







  “오이카와 씨! 잠깐만! 왜 그러십니까?”


  “숙제도 혼자 못하는 바보라서 화가 나거든!”


  “? 수학 프린트를 다 풀어야 수행평가 감점이 없다고 하는데 하나도 모르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근데 왜 오이카와 씨가 화를 냅니까?”







  나도 모른다!







  앵거카와가 불을 내뿜으며 소리를 버럭 질렀어. 그리고 그 옆에서 까칠카와가 계기판을 마구잡이로 눌러댔지.







  “수학? 오이카와 씨가 그 매니저 양보다 수학 10배는 더 잘하거든요!”







  아주 앵거카와와 둘이서 쿵짝이 잘 맞을 때가 바로 이럴 때인데, 뭐라고 해도 말릴 수가 없어. 진짜 웃긴 대화를 해버린다니까. 한번 볼래? 여기 카게야마 토비오가 바보 같은 얼굴을 하며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살짝 짜증을 내고 있잖아.







  “오이카와 씨가 가르쳐주실 거 아니잖습니까.”







  라고 말이지. 사실 이게 맞거든. 가르쳐주고 싶은데 화가 나고 쪽팔리니까 절대 그렇게 말 못하거든. 그러니까 결과적으로는 완전 웃긴 대사를 내뱉어버린다니까?







  “내가? 내가 왜. 내가 왜 같은 학교도 아닌 애를 가르쳐줘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네. 물론 토비오쨩이 간절하게 부탁을 하면 들어줄 용의는 있는데, 보시다시피 지금 나 엄청 바쁘거든.”


  “…그럼 가보겠습니다.”







  토비오는 슬쩍 손을 떼어 내고는 가방을 고쳐 멨어. 여전히 뚱한 얼굴이었지만 상당히 짜증스럽다는 표시가 드러날 만큼 미간이 찌그러져 있었지. 그대로 가버릴 것 같았어. 그때 피어카와가 튀어나오면 더 웃긴 대사를 내뱉는다?







  “저기요, 참 사람이 그렇게 성질이 급해서 되겠어? 내가 지금 바쁘다고 했지 내일 바쁘다고 했니. 내일은 다행히 조절할 수 있는 스케줄이어서.”







  이렇게 말이지. 진짜 꼴이 웃긴 게 되어버렸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그럼… 내일 좀 도와…주세요.”







  약속을 잡게 되었잖아.







  새드카와는 구석에 앉아서 슬픈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어. 하지만 오이카와 씨는 이미 카게야마 토비오와의 약속을 잡은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하고 있어. 본인이 그토록 꺼렸던 꼴사나운 짓은 제법 많이 해놓고 말이지. 나중 일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오이카와 씨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 이렇게 해야만 했어. 왜냐하면 오이카와 씨와 우리 감정은 지금 당장,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야. 감정이란 그런 거야.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은 답답하고 우울한 감정을 어떻게든 풀어내고, 저기 저 남자를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 그래서 난 말이야, 지금 당장 나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서 남들이 보기에는 꼴사나운 짓을 종종 하게 만들어버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지. 수많은 감정이 연쇄적으로 연결되면서 결국 끝은 나, 기쁨으로 맺어지게 되어 있거든.


다음날 오이카와 씨는 토비오를 집에 초대해서 친절하게도 숙제를 모두 가르쳐줬어.






  그날 몽정 스튜디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  







5.




  그리고 지금, 당신은 오이카와 씨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함께하고 있어. 지금은 겨울. 전국체전이 끝나고 모든 것들을 정비하고 있는 이 시점에 오이카와 씨는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고백을 하려고 하고 있어. 피어카와는 개거품을 물며 극구 반해댔고, 까칠카와 역시 짜증을 내며 고백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 3984752가지를 늘어놓았지만 오이카와 씨는 고백을 해야만 했어. 새드카와의 결정이었거든. 오이카와 씨는 카게야마 토비오가 자신을 받아줄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 그리고 이별의 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오이카와 씨는 한 달 뒤에 도쿄로 상경하게 되어 있었지. 이루어지리라 생각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어. 단지 어떤 형태로든 카게야마 토비오의 가슴 속에 남고 싶다는 바람뿐이었지.







  토비오는 추위로 벌개진 얼굴이었지만 운동하는 녀석답게 옷을 두껍게 입지는 않았어. 오이카와와의 약속장소에 뛰어서 온 것 같은 얼굴이었는데, 머리카락이 차가운 바람에 얼어서 좀 뻣뻣해 보이기도 했던 것 같아. 새드카와는 그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눈여겨보았어. 어쩌면 이렇게 만날 수 있는 날이 오늘로 마지막일지도 모르잖아. 귀여웠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도, 찬바람에 얼어버린 두 뺨과 코도, 뻣뻣하게 얼어버린 머리카락도. 오이카와 씨는 그의 목에 목도리를 둘러주었어. 피어카와는 계속해서 말렸지만, 오이카와 씨는 몇 번을 망설이다 바짝 타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어.







  “좋아해.”


  “…예?”


  “좋아한다고.”







  모두가 숨을 죽이고 카게야마 토비오의 반응을 관찰했어. 여전히 잔뜩 굳은 험상궂고 바보같은 얼굴이었지만 입술을 꾸물거리며 뭐라 말을 할 것 같은 분위기였지. 오이카와 씨는 입을 꾹 다물고 그를 바라보았어. 우리의 시야에는 카게야마 토비오의 얼굴만이 비춰졌지만, 그의 푸른 눈동자에 비친 오이카와 씨의 표정은 생각보다 담담해 보였어. 카게야마 토비오는 고개를 푹 숙이고 뻣뻣하게 얼은 머리카락을 탁탁 털어냈어. 그의 손 사이로 하얀 입김이 번졌고, 그 순간은 마치 여러 장면으로 쪼개진 후 이어지는 영화 필름처럼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만 같았어.







  “미야기에서 도쿄로 몇 번 가봤는데 별로 안 멀었습니다.”







  순간 오이카와 씨와 우리는 당황했어. 싫다, 좋다도 아니고 고맙다도 아니고 이상하다도 아닌 그냥 사실을 말할 뿐이었으니까. 앵거카와가 슬슬 머리에서 열을 내고 있었어.







  “저, 전국도 매년 나갈 거고 어차피 국대가 될 거니까 자주 도쿄로 갈 겁니다.”







  앵거카와가 발을 쿵쿵거리며 계기판 앞으로 나왔어. “그래서 앞으로도 존나 잘 나갈 거라 이 소리냐 건방진 애새끼야!”라고 외치면서 말이야. 하지만 오이카와가 이맛살을 찌푸리고 한 마디를 하려고 한 순간, 토비오가 성큼 그의 앞으로 다가왔어. 그리고 오이카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어.







  “뽀뽀하고 싶습니다.”


  “응?”


  “뽀뽀하고 싶은데요.”







  오이카와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할 말을 잃은 얼굴로 토비오를 바라보았어.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이건 뭐지. 토비오가 뽀뽀하고 싶다잖아! 이 의미가 뭐야. 자기도 좋다 이 소린가? 아니면 오이카와 씨를 가까이서 보니까 그냥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 말인가? 앵거카와는 역시 발랑까진놈이라고 난리고, 피어카와는 갑작스러운 토비오의 행동에 식겁을 했고, 까칠카와는 길거리에서 어떻게 뽀뽀를 하겠냐면서 난리를 쳤으며, 새드카와는 이게 작별의 뽀뽀냐면서 울음을 터뜨렸어. 하지만 나는 지금이야말로 내가 계기판 앞으로 다가가야 할 때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어. 지금을 놓치면, 아마 평생을 후회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야. 하지만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았어. 확신이 필요했어. 토비오는 오이카와 씨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서 작고 얇은 입술을 열었어.  







  “지금 못하면 앞으로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곧 졸업하시고…”







  그 말을 한 순간 토비오의 얼굴이 찌그러졌어. 완전 못생겼어. 그런데 울 것 같은 얼굴이 아플 만큼 사랑스러웠어.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나는 가장 중앙에서 토비오의 입술이 가까워지는 걸 보았어. 몽정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낸 카게야마의 감촉과는 무척이나 달랐어. 그는 잔뜩 얼어서 차가웠고, 입술은 찬바람에 터서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까끌까끌했거든. 하지만 입술이 마주했다 떨어지는 순간 입술에 와 닿던 숨결만큼은 녹아내릴 만큼 뜨거웠어. 지금 못하면, 그 말이 계속해서 오이카와 씨를 부추겼어. 그리고 토비오의 허리를 안고 그대로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지.







  토비오의 입술은 무척이나 얇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자꾸만 어설프게 떨었어. 그 움직임이 너무 귀여워서 오이카와 씨는 그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번갈아가며 달콤한 카라멜을 녹이듯 빨았어. 까칠하게 텄던 입술이 차츰 부드럽게 녹아내렸고, 어느 순간 살살 부풀어 오르면서 사랑스러운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어. 그 사이를 파고들어 토비오의 혀를 섞고, 입천장을 간질이면서 정말 두 번 다시 키스를 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처럼 토비오의 입술을 마구잡이로 헤집어놓았지. 그 어린 입술 때문에 정말 온 몸이 저릿저릿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꽉 차버렸어. 심장이 엉망진창으로 뛰어다니며 계속해서 키스를 부추겼지. 이미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오래, 더 깊이, 더 많은 곳에 입술을 마주하길 갈망하는 것이었어. 와, 설 것 같다. 진짜 아랫도리까지 저리는 느낌에 여기가 길바닥이라는 사실도 잊고 토비오의 몸을 더욱 힘주어 껴안게 되는 거야. 다리 사이에 슬슬 힘이 들어갈 때 즈음 까칠카와가 튀어나오더니 난리를 치며 말리더라.







  “진짜 길바닥에서 할 셈이야?! 야외플 할거냐고!”







  엣, 하면 안 되나. 그 정도로 이미 오이카와 씨의 이성이 날아가버릴 참이었는데.







  “여기 카라스노 애들 로드워크 뛰는 경로란 말이야! 여기서 진짜 하겠다고?!”







  카라스노 애들이 무서워서 이걸 그만두란 말이야? 나중에 돌을 맞더라도 지금은 해야 할 것 같은 순간인데-







  “이 겨울에 야외플하다가 얼어 죽을 일 있어!? 게다가 전체관람가로 하겠다고 약속했잖아! 이미 15세는 훌쩍 넘는구만 어디서 더 가려고 하니? 혹시 미친 거야? 지금 손가락에서 쥐가 나기 시작했다고!”







  그래, 이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가 되긴 했지. 야외플까지 하게 되면 이거 연재로 넘어가야 하거든. 오이카와 씨의 감정은 기쁨으로 가득 찼지만, 까칠카와 덕분에 그 이상을 이곳에서 할 수는 없었어. 그렇다고 오이카와 씨가 키스를 멈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오이카와 씨와 키스를 하다 숨이 차서 헥헥거리는 토비오를 안고, 오이카와 씨가 물었어.







  “그럼 토비오는, 지금 못 하면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게 뽀뽀밖에 없어?”


  “…예?”


  “오이카와 씨는 아주 많은데.”








  그리고 반질반질해진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주었어. 영문을 모른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토비오의 눈꺼풀에 입을 맞추고, 오이카와는 그의 몸을 놓아주었어. 그리고 그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갔어. 그가 걷는 방향은 토비오에게도 무척이나 익숙한 곳이었는데, 그곳이 어딘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거라 생각해.







  여기서는 당장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두 사람은 앞으로 아주 은밀하게, 찐득하게, 깊이 나누게 될 테니까.














Inside out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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