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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하이큐 나쁜 욕망 2. 취향取香(上) [오이카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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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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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와 토오루가 연애를 시작했다.







그를 스치고 지나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그의 주변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가 그를 대신해 은은하게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어찔한 자극은 연애를 하지 않는 오이카와에게서는 결코 맡을 수 없는 향이었다. 과일 향 사탕을 입 안에 가득 물고 있을 때 나는, 딱 그 정도의 달콤함이었기에 누구든지 그 향기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향기의 정체를 놓고 혹자는 그의 여자 친구에게서 나는 향기가 밴 것이 아니냐고 추측했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그 향은 오이카와 토오루가 고의적으로 몸에 바르는 크림이나 립밤에서 나는 것으로서, 연애를 시작하면 화장품을 새로 사는 것이 그의 독특한 습관이었다. 한번은 누군가가 그에게 왜 그렇게 단내가 나는 것을 몸에 바르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오이카와 토오루는 ‘여자 친구에게 운동부라 땀 냄새가 날 거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운동부라는 이유로 어디선가 땀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여자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다. 오이카와의 몸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는 그의 연애가 끝날 무렵 함께 사라지곤 했다. 그것 역시 그의 독특한 습관 중 하나였다.








나쁜 욕망

取香








배구부 3학년 주장 오이카와 토오루를 존경하고 잘 따르는 후배들은 많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를 따라다니는 후배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나타나기 전까지. 이 잔망스러운 일학년은 어느 순간부터 제 머리통만한 배구공을 꼭 쥐고서 하루 종일 오이카와를 쫄쫄 쫓아다녔다. 무어라 종알거리는지 가만히 들어보니 서브를 가르쳐 달라고 그를 졸라대는 듯하였다. 키타이치 배구부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혹스럽다 못해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카게야마 토비오의 허벅지에는 검붉은 멍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 멍 자국을 만들어준 장본인이 바로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그는 3학년을 제외한 모든 배구부원들 앞에서 1학년인 카게야마 토비오를 주고 두들겨 팬 3학년 주장이기도 했다. 단지 선배들에게 함부로 ‘형’이라는 호칭을 썼다는 이유로.







그 정도로 얻어맞았으면 보통은 겁을 내고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이후부터 카게야마 토비오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새파랗게 총총거리며 그의 뒤를 쫓아다녔다. 짧은 반바지를 입고 체육관을 뛰어다니는 새하얀 허벅지 위로 보는 사람이 다 아플 만큼의 멍이 어른어른 스쳤다. 자신을 저 지경까지 만들어 놓은 3학년을 겁도 없이 쫓아다니다니, 그날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던 걸까. 오이카와 토오루의 성격 상 카게야마 토비오를 그렇게 때려놓고 그냥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서운 선배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니 어린 후배를 잘 달랬을지도 모르겠다. 키타이치 배구부원들은 그렇게 결론을 짓기로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야 일순간 변해버린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날 이후로 더 이상 선배들에게 ‘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오이카와 토오루는 더 이상 카게야마에게 선배로서의 위엄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의 보챔을 밀어내며 카게야마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 진짜 짜증나! 꼬맹이 주제에 천재이고, 천재 주제에 들러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구?”

“‘토비오쨩’ 말이구나.”

“미안한데 ‘카게야마’라 불러주지 않을래. 마유쨩이 ‘토비오쨩’이라니까 기분이 묘하게 나빠.”

“헤- 질투하는 거야? 1학년한테?”

“아, 몰라! 마유쨩의 무릎이라도 베고 있음 좀 나아질지도~”

“좋아, 오늘은 특별히 어리광을 받아주겠어요! 이리 와.”







오이카와와 연애를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가 된 마유는 다정하게 웃으며 자신의 허벅지를 그에게 내어주었다. 그는 강아지처럼 그녀의 허벅지에 뺨을 비비며 배시시 웃었다. 연하고 부들부들한 그의 갈색 머리카락이 그녀의 허벅지를 간질였다. 햇살이 뺨에 스민 그의 미소는 참으로 아름답고도 해사했다. 마유는 그의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으며 오이카와의 어리광을 받아주었다. 그는 자신의 뺨에 닿는 살갗의 감촉에 취한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리 부드럽네.”

“아직 대낮이거든요? 야해!”

“허벅지를 만지면 야한 거야?”

“허락도 받지 않고 만지면 범죄까지 가는 거지.”

“듣고 보니 그러네.”







오이카와는 그녀의 다리를 베고 누운 채 자신의 양 손을 바라보았다. 손끝이 간질거렸다. 눈을 감고 어떤 날의 낯선 감촉을 떠올린다. 마치 그의 손 위로 촉촉하고 말간 연유가 흘러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폭우가 쏟아졌던 그 밤에 허락도 받지 않고 누군가의 어린 허벅지를 만졌었다. 그 작고 연한 피부는 울긋불긋한 멍이 번져 제 색을 잃은 지 오래였고, 무릎 위로는 붉게 피가 번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작았던 토비오는 새파랗게 젖은 채 벌벌 떨고 있어서 약이라도 발라주지 않으면 금세 망가질 것만 같았다. 겁에 질린 채 싫다고 하는 그 아이의 말을 자르고 몇 번이나 바지를 벗으라고 했었다. 바들거리며 무서워했었지.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것인지 스스로에게 몇 번씩 자문해보았다. 결과적으로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대답만이 반복해서 돌아왔다. 왜 그래야만 했는가? 그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가슴이 답답하고 복잡하게 얽어졌다. 눈앞이 캄캄하게 젖어갔다. 다시금 그 빗물에 손을 적시고 싶다. 빗물에 미끄러지듯 어리고 연한 피부를 다시 손끝에 얽어보고 싶다. 손끝이 스칠 때마다 차갑게 식은 피부 위로 열이 차오르는 감각, 불안하게 떨고 있는 두 손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어깨를 붙들었던 그 때, 어깨에 닿는 작고도 보드라웠던 손가락의 감촉. 그리고 그의 몸에서 깊게 배어나오던 피비린내가 섞인 여린 살갗의 체향. 그는 눈을 감은 채 바짝 타들어가는 입술을 적셨다. 오이카와의 복잡한 표정을 읽으려는 듯, 그녀는 웃으며 오이카와의 뺨을 어루만져주었다.







“걱정하지 마. 난 허락해 줬으니까.”







다정하고 따뜻했다. 오이카와는 생각을 멈추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충동이 찰나처럼 스쳤을 뿐이다. 이 예쁜 여자를 두고 그날의 카게야마 토비오를 떠올리다니. 그 낯선 감촉을 어떻게 이 향긋한 살갗과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비에 젖은 어린 짐승처럼 발발 떨면서 내뿜던 온기를 어떻게 그녀와 맞고 있는 햇살과 비교한단 말인가. 한 순간의 충동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충동은 다른 것으로 얼마든지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두 눈을 열어 잔잔하게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살을 베어버릴 듯한 붉은 눈과 마주친 순간 그녀는 살짝 몸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오이카와가 몸을 일으켜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고개를 틀어 입술을 마주치려 할 때였다. 오이카와는 숨을 멈추고 그녀에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마유는 조금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 입술 터서 지금 감촉이 별로야. 잠시만.”

“아, 뭐야~”







그녀는 김빠진 얼굴로 웃어버렸다. 오이카와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앞에서 립밤을 발랐다. 그리고 손가락에 남아 있는 그것을 그녀의 입술에도 발라주었다. 그제야 오이카와는 그녀에게 짧게 입을 맞추었다. 달큰한 향기였다. 입술에 닿는 말랑하고 찐득한 감촉은 그에게 낯선 것이 아니었다. 익숙한 옷을 껴입듯 그는 타인의 입술을 매만졌다. 아,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한 가지 있었다. 분명 카게야마 토비오에 대한 이야기 역시 조금씩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밤 있었던 일은 좀처럼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알 수 없다. 이유를 모르겠다.







“근데, 립밥 너무 많이 바른 거 아니야? 엄청 끈적거리잖아.”

“그래서 난 더 좋은데.”

“아, 정말...!”







키스할 때 립밤으로 입술이 찐득거리는 것이 좋다. 

코를 마비시킬 만큼이나 강한 화장품 냄새가 좋아. 

그런 스킨십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면 좋겠어.







그가 연애를 시작하면서 몸에 화장품을 바르기 시작하는 시점은 결국 관계가 깊어지면서 스킨십으로 발전하는 바로 그 시점이었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스치고 지날 때 나는 그 어찔한 자극은, 결국 누군가와의 스킨십이 이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에게서 향기란 그런 의미였다.








2.








“응? 토비오쨩이 안 보이는데? 부 활동 빠지는 녀석 아니잖아.”







몇 번을 둘러보았지만 알감자 같은 머리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블로킹을 연습하고 있던 킨다이치가 공을 바닥에 한 번 튕기고는 오이카와 쪽으로 달려왔다.







“수학 쪽지시험을 다 틀려서 오답노트 만들고 있을 겁니다. 타무라 쌤이 빵점 받은 애들 오늘 안에 교무실에 안 내고 가면 엄마한테 전화 한다고 하셨거든요.”







아, 타무라 쌤? 오이카와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쪽지시험에서 커트라인을 넘지 못하면 무조건 남아서 오답노트를 만들게 하기로 유명한 선생이었다. 하지만 쪽지시험이라고 해 봤자 그렇게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니어서 웬만하면 남아서 그것을 만드는 일은 없었다. 일부러 풀지 않은 게 아니라면 찍어서라도 하나는 맞혀야 정상일 것이었다. 어우 쪽팔려, 어우 부끄러워! 그 쪽지시험을 다 틀리다니, 토비오쨩이 그 정도로 바보였던 거야? 오이카와는 장난스럽게 얼굴을 구기며 그 바보멍청이 알감자를 비웃었다.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의 얼굴에 이와이즈미의 눈초리가 매서워진다. 그제야 오버스러운 표정을 거둔 오이카와가 눈을 가늘게 뜨고 체육관을 둘러보았다.







“쿠니미쨩도 없는데. 쿠니미쨩 공부 잘하잖아.”

“카게야마가 너무 못해서 공부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럼 둘이 같이 있어?”

“그럴 걸요.”







아주 짧은 순간의 일이었다. 오이카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킨다이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어떤 표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오이카와 토오루의 얼굴이었다. 킨다이치는 자신의 얼굴에 열이 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말을 실수한 건 아닌지 당황한 것이었다. 일순간의 정적이 흘렀다.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무어라 말을 해야만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때 오이카와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1학년들 이번에 연습시합 하기로 했잖아. 토비오쨩은 그렇다 쳐도 쿠니미는 데려와야겠네.”







이상했다. 여전히 부드럽고 나긋한 목소리였으나 굴곡 하나 없는 차가운 억양이었다. 그 기묘한 냉기에 킨다이치는 어깨가 바짝 굳어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는 팔을 떨며 재빨리 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제, 제가 가볼까요?”

“아니, 연습하고 있어. 내가 갔다 올게.”







그리고는 말없이 체육관을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불안했다. 킨다이치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이 한 말 중에 오이카와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것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했을 뿐이었다. 그럼 카게야마나 쿠니미 둘 중 하나가 오이카와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것인데, 그가 카게야마의 사정을 이해했다면 역시 쿠니미 때문에 오이카와는 저렇게 정색을 했다는 말이 된다. 킨다이치는 불과 일주일 전 있었던 사건을 떠올렸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대걸레로 두들겨 맞았던 일. 이번에는 쿠니미가 그 대상이 되는 건 아닌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두 손을 쥐었다 폈다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체육관 문 앞에서 누구라도 하나가 오길 간절히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멀찍이 인영 하나가 보였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체육관으로 오고 있는 그림자에 초점을 맞추었다. 쿠니미였다. 그는 멀쩡했다. 그런데 오이카와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오이카와 씨 엄청 무서워 보였다고!”

“아- 그거.”







그는 묘한 얼굴로 두 뺨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표정을 본 순간 킨다이치는 긴장을 풀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 그가 생각했던 위험한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말에 킨다이치는 다시 한 번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땡땡이를 들켜버려서.”

“그, 그럼 오이카와 씨는...?”

“나 대신 토비오 공부 봐주신다던데.”

“...엉?”







오이카와 씨가 왜...? 또 카게야마가 뭘 잘못했어?! 킨다이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쿠니미의 팔을 흔들어댔다. 그러나 쿠니미는 그를 떼어내며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카게야마를 그토록 무섭게 다루던 오이카와가 ‘그렇게’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단 말이다. 쿠니미는 손등으로 열이 오른 자신의 뺨을 두어 번 식혔다. 어째서 얼굴에서 이렇게 열이 오르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교실에서 카게야마와 단 둘이 있었을 때 느꼈던 오이카와의 시선은 무서우리만치 이상했다.







오이카와는 복도 창문으로 자신과 카게야마를 들여다보면서 한참을 들어오지 않았다. 놀란 마음에 창문 쪽을 바라보았지만 오이카와는 자신이 그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낯선 표정으로 카게야마 토비오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치 그를 발가벗기듯 찬찬히 관찰하고 있었다. 카게야마 토비오를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그래서 그는 오답노트 베끼기에 정신없던 카게야마를 톡톡 건드렸던 것이다. 오이카와 선배가 왔어. 카게야마가 그를 알아차리고 복도를 바라보았을 때, 오이카와는 웃는 얼굴을 한 가면을 쓴 사람처럼 문을 열고 들어왔다.







-쿠니미쨩은 금세 요령을 피우려 한다니까.

-엣, 들켰나요.

-다른 날 땡땡이는 괜찮지만 오늘은 1학년들 연습 시합이 있는 날이라구?







쿠니미는 그때부터 얼굴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자신을 나무라는 오이카와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위압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교실을 떠나줄 것을 말하고 있었지만, 단 한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입만 벙긋거리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게야마는 멀뚱하게 연필을 쯉쯉 빨며 쿠니미와 오이카와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바보멍청이. 그것을 본인이 의식하는지 의식하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쿠니미는 당장이라도 이 교실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 카게야마가 쿠니미의 손목을 붙들었다. 그리고 인상을 팍 쓰고 부루퉁한 얼굴로 말했다.







-쿠니미가 가면 혼자서 이거 다 못 푸는데요...







아, 제발. 제발 카게야마. 쿠니미는 이 눈치 없는 조그만 입술을 틀어막아버리고 싶었다. 쿠니미는 눈을 열어 오이카와의 눈치를 보았다. 어찌 되었든 그는 연습을 가야만 했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토비오쨩 진짜 못됐네.

-.....?

-시험 말아먹은 건 네 잘못인데 왜 쿠니미쨩이 자기 연습할 시간까지 빼줘야 해? 오늘 1학년 연습시합이 있어서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아주 곤란한데, 전체에게 피해를 주겠다는 거야?







카게야마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간을 찌그러트린 채 불만스러운 얼굴로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사실 이번 연습시합을 기대했던 건 카게야마 토비오 쪽이 더욱 컸을 것이었다. 그것까지 꾹 참으면서 남아서 오답노트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게는 크나큰 불만이었다. 그 와중에 오이카와 토오루로부터 비난을 들었으니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카게야마에게는 짜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건 아니었는데... 빨리 끝내고 같이 연습하러 가고 싶어서...

-그래서 쿠니미쨩이 네 뒤치다꺼리를 해줘야 하겠다?

-아닙니다. 혼자 해보겠습니다...

-쿠니미쨩, 들었지? 이만 가봐.







쿠니미는 오이카와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교실을 나갔다. 하지만 얼굴이 뜨거워진 것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 사실 이 상황에서 혼나야 하는 것은 카게야마가 아닌 자신 쪽이었다. 연습이 하기 싫어서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겠다고 빠진 것은 그 누구도 아닌 그였으니 말이다. 그것을 오이카와 토오루가 모를 리 없었다. 요령을 피운다는 말은 거기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이 상황에서 야단을 맞고 있는 것은 카게야마 토비오였다. 빨리 오답노트를 다 쓰고 연습을 하러 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을 테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만을 나무랐다. 몰아붙이고 괴롭힌다. 누구라도 그 장면을 본다면 오이카와 토오루가 카게야마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을 것이다. 카게야마 토비오 본인을 제외하고. 복도 밖으로 들려오는 오이카와의 목소리에 쿠니미는 귀까지 뜨거워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토비오쨩, 연습하러 가고 싶지.

-...네.

-보니까 혼자서는 다 못하게 생겼네.

-쿠니미가 불러주는 대로 답을 쓰고 있었는데... 솔직히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부탁해봐.

-....?

-가르쳐 주세요.

-...가르쳐 주세요.

-형.

-...형.







카게야마가 자그마한 입술을 열어 아주 천천히 ‘형’이라고 말했다. 오이카와는 웃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본 순간 쿠니미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온 몸이 떨렸다. 일주일 전 오이카와가 카게야마 토비오를 그토록 두들겨 팼던 것은 2,3학년 배구부원들에게 ‘씨’나 ‘선배’라는 호칭이 아닌 ‘형’이라는 호칭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두 번 다시 카게야마 토비오는 선배들에게 ‘형’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습관처럼 붙어버린 말을 강압적으로 고쳐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이 광경은 대체 뭐란 말인가. 쿠니미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꾹 감아버렸다. 심장이 엉망으로 뛰었다.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에도 계속해서 그의 웃는 얼굴이 떠올라 좀처럼 얼굴이 식지 않았다. 그 사정을 알 리가 없는 킨다이치로부터 몇 번이나 무슨 일이냐고 질문을 받았지만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이상했다고.









카게야마 토비오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도 야했다고.














3.







다른 이유는 없다. 그는 3학년 주장이었고, 그날은 1학년들이 처음으로 선배들의 도움 없이 연습 시합을 해야만 했던 날이었다. 배구에 능숙한 카게야마보다는 막 배우기 시작한 쿠니미에게 배울 것이 많은 시합이 될 터였다. 그래서 쿠니미의 역할을 대신 해주고 있는 것뿐이다.







쿠니미를 데리러 교실 앞에 도착했을 때 오이카와는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 교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빈 교실에 남아 있는 카게야마 토비오의 표정이 낯설었고, 책상 앞에 웅크린 작은 몸의 모양이 손에 만져질 듯하였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뚜렷한 확신을 가지고 공을 바라보는 그 새파란 눈동자는 늘 위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그 시각, 노을 아래 카게야마 토비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연필을 물고, 오만상을 찌푸려 두 눈을 흐리게 뜨고 있었다. 노을을 받은 카게야마 토비오의 얼굴에 진 그림자는 그의 둥근 뺨과 입술의 윤곽을 뚜렷하게 그려내었다. 주홍빛을 받은 입술이 연필을 꼭 문 채 부드럽게 오물거렸다. 마치 연필이 달콤한 사탕인 양 쪽쪽 빨고 있었다.







카게야마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쿠니미 아키라는 녀석의 어떤 얼굴을 보고 있을까. 그 바보 같은 정수리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한 대 쥐어박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오이카와는 자신의 손끝이 간질거려 옴을 느꼈다. 노을이 어루만지고 있는 저 둥글고 연한 뺨의 감촉을 상상한다. 머릿속으로 연필을 빨고 있는 저 입술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본다. 젖어있겠지. 말캉하고 촉촉할 것이다. 그의 다리 살만큼이나 부드럽고 매끄러울 것이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두 눈동자가 불에 덴 듯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카게야마 토비오와 눈이 마주쳤다.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며 몸에서 열이 돌았다. 그는 웃었다. 카게야마 토비오의 곁에 앉아야만 했다.







카게야마의 노트에 빼곡하게 들어가 있는 숫자들은 아무런 확신도, 방향도 없이 너저분하게 노트를 메우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중학교 수준이라기보다는 초등학교 수준의 사칙연산들로 보인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버린 카게야마 토비오의 손은 금방이라도 연필을 부숴버릴 것처럼 그것을 꽉 쥐고 있었다. 어디에서 막혔나를 보고 있으니 제 딴에는 열심히 풀었다고 한 답과 객관식 문항의 그 어떤 숫자와도 일치하지 않아서 당황했고, 결국 5번 옆에 6번을 그려서 자신만의 답을 쓰려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내놓고 보자는 방향으로 생각을 고친 것 같았다.







“토비오쨩, 혹시 곱셈 할 줄 몰라?”

“고.. 곱하기 정도는 할 줄 압니다.”







하지만 노트에 들어가 있는 두 자릿수 곱셈들은 숫자라기보다는 발자국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소학교 과정에서 마치고 올라왔어야 하는 사칙연산을 전혀 풀지 못하는 것이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두 자릿수를 넘어선 곱셈들은 하나같이 같은 자릿수끼리만 곱해놓고 끝을 내고 있었다. 예를 들어 13과 25를 곱할 때에 1과 2를 곱하고 3과 5를 곱한 후 그대로 그것을 왼쪽부터 써버렸다. 즉, 13과 25를 곱해서 나온 답을 215라고 적어버린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오이카와는 헛웃음을 지어버렸다. 이 바보를 어떡하면 좋을까. 코트 위의 카게야마 토비오는 훨훨 나는 천재로만 보였는데, 책상 앞의 카게야마 토비오는 소학생들도 쉽게 해낼 곱하기조차 하지 못하는 바보멍청이가 맞았다. 제 나름대로는 문제를 풀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애꿎은 앞머리만 그의 손가락 사이로 구겨질 뿐이었다. 손가락이 하얗게 질릴 만큼 연필을 꼭 쥐고 있는 연한 손톱이 귀여워 보일 정도다.







“연필 줘 봐.”







카게야마는 풀이 죽은 얼굴로 자신의 연필을 그에게 건네었다. 연필에서는 향긋한 나무냄새가 났다. 그러나 그 뒷부분은 무수한 이빨자국으로 가득했다. 짐승이 이갈이를 하듯 나무를 몇 번이나 씹어댄 흔적이었다. 저 작고 통통한 입술로 몇 번이나 빨아댔던 연필일까. 더럽다고 생각해야만 하는데 흉하게 일그러진 연필의 몸통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카게야마의 입술 사이로 보이는 저 철없고도 자그마한 송곳니들이 이 연필을 엉망으로 헤집어놓았으리라.







“곱하기를 할 때 숫자들 사이에 그림을 그려봐. 숫자 하나하나가 다른 숫자들을 전부 다 만난다고 생각해.”

“하나씩만 만나면 되지 왜 전부 다 만납니까?”

“그게 곱해준다는 의미거든.”

“?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게야마는 숫자들 사이에 선을 그으며 겨우 겨우 곱하기를 했다. 서툴고 느리지만 제 힘으로 하려고 애를 썼다. 책상에 이마를 박을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몸을 책상 앞에 바짝 붙였다. 짧은 반바지로 드러난 보드라운 무릎이 오이카와의 단단한 무릎에 닿았다. 오이카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맨살에 와 닿는 카게야마 토비오의 감촉이 다시 한 번 그의 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오이카와는 시선을 옮겨 그의 정수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귀밑머리와 이어진 귀와 그의 둥근 턱 선을 바라보았다. 귀부터 턱 선까지 나 있는 하얀 솜털과 그 사이에서 나는 은은한 체향이 그대로 전해진다. 숨을 내쉴 때마다 그의 몸에서 내뿜어져 나오는 어린아이 특유의 체온. 그리고 비오는 날보다 더욱 강하게 흘러들어오는 살냄새. 다시금 손가락 끝으로 부드럽고 달콤한 연유가 흘러내리는 감촉이 그를 간질였다.







“토비오쨩.”

“?”

“얼굴에 뭐 묻은 것 같아.”

“뭐가 묻었습니까.”

“이리 와 봐.”







카게야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그의 귓불과 턱 그리고 뺨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간지러움을 느낀 듯 카게야마가 어깨를 움츠리며 한 쪽 뺨을 오이카와의 손바닥 위로 올렸다. 그의 손바닥 위로 향긋하고도 매끄러운, 그리고 상아색을 띨 만큼 새하얀 살결이 흘러넘친다. 오이카와는 몸을 바짝 가져가 자신의 다리 사이로 카게야마의 무릎을 끼워 넣었다. 다리 사이로 느껴지는 허벅지 안 쪽의 살갗, 그리고 온 몸을 녹여버릴 것만 같은 온도, 더욱 깊이 파고들고 싶은 감촉. 눈앞이 캄캄하고 축축하게 젖어갔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고 작은 입술을 살짝 열었다.







“지워졌습니까?”

“아니.”

“뭐가 묻었는데요?”

“잘 모르겠어. 그냥... 잉크 같은 거.”







어딘가에 몰두한 듯 오이카와는 그의 얼굴을 계속해서 매만졌다. 볼록하고 말캉한 볼살이 오이카와의 손가락 사이에서 귀여운 형체를 갖추며 몽글거렸다. 카게야마는 분홍빛이 나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느 순간 자신의 뺨을 주무르는 오이카와의 손길이 아팠는지 눈을 꾹 감아버리는 것이었다. 으핫, 오이카와가 웃어버렸다.








“언제 지워집니까?”
“조금만 더.”

“얼굴 아픕니다.”

“그러니까 왜 얼굴에 뭘 묻히고 다녀, 바보야.”







오이카와는 손에 힘을 빼고 그를 어르듯 뺨을 살살 매만져주었다. 인상을 푹 쓴 채 오이카와의 손길을 견디는 카게야마 토비오의 얼굴은 참으로 못생겼고, 웃겼다. 하지만 그의 피부에 맞닿은 그 살결은, 그 체향은, 그 살냄새는 그의 전신을 홀릴 만큼이나 묘하고도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이렇게 작은 것에게 닿고 싶다고 느끼는 기분은,


이 투명한 살결과 섞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 욕구는.







“...이렇게 만지면 아픈 거구나.”







찰나의 충동으로는 결코 끝나 보이지 않았다.







“네가 아파도 난, 계속 만져야만 하는 거구나.”







그러나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제 얼굴에 무엇이 그리 묻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거울 쪽으로 달려갔기 때문이다.









“다 지워졌습니다!”



















발개진 뺨으로 기뻐하는 얼굴이라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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