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잡담 하이큐 나쁜 욕망 1. 폭우暴雨[오이카게/글]
3,346 4
2016.12.18 23:25
3,346 4





계절이 변할 때마다 비가 내린다. 마치 투명한 수직선으로 시간을 그어 내듯 아름다운 형태로 하강한다. 봄과 여름의 그 사이 어디쯤, 어중간한 습도를 이기지 못한 살갗이 열을 내며 옷깃을 땀으로 적시기 시작할 그 무렵, 그 날, 그 순간에도 비가 왔다. 시간을 헤집어 놓은 어설픈 경계선이었다.








폭우

暴雨









일학년, 다시 한 번 복창합니다. 선배는 신처럼, 훈련은 개처럼, 실전은 매처럼, 동료는 피처럼, 똑바로 못합니까. 일어섭니다. 누가 지금 다리 주무르라고 했습니까. 일학년, 일어납니다. 다시 복창합니다. 선배는- 신처럼-, 훈련은- 개처럼- 실전은- 매처럼-......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기합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폐쇄적인 규율에 반기를 드는 이는 없었다. 배구의 명문으로 불리는 키타이치중학교 운동부에서 규율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 어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해야만 하는 그런 것 말이다. 삼월 초, 배구부에서는 부원을 구성하고 난 뒤 기초 체력을 기르기 위해 전원이 운동장에서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차고 달리는 훈련을 했다. 특히 갓 소학교를 졸업하고 새롭게 올라온 신입 부원들은 나머지 부원들과 체력과 체격의 차가 극도로 심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 기초 체력을 기르는 것에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일학년들의 기초 체력 훈련을 담당하고 지도하는 것은 삼학년 주전들이었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동안 일학년들은 몇 번이고 같은 구호를 외쳐댔다. 그것도 목소리가 갈라지거나 일치하지 않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것을 외치며 반복해야만 했다. 개중에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볼멘소리 하나 하지 못한 채 이를 꾹 물고 일어나 다시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그들에게 주전 선배의 존재는 그 누구보다 어렵고 무서운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실수를 할 때마다 정수리를 주먹으로 얻어맞으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할 정도였다. 명문 키타이치의 배구부에 입부하였다는 것은 곧 전국 체전의 대표를 목표로 운동에 임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자신이 선배들로부터 받고 있는 훈련-이는 곧 폭력과도 직결되는-은 이 명문 학교의 오랜 전통이자 스스로를 강하게 만드는 명패와도 같은 것이라 여겼다. 그들의 자랑스러운 선배들이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들 역시 선배들이 걸어온 길을 같이 걷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열 두 살의 어린 피부에 피딱지를 붙여 가며 천천히 중학생으로서의 몸을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기초 체력 훈련이 얼추 끝나고 시험기간이 지나면 슬슬 반팔 소매의 체육복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그맘때 삼학년들은 다시 한 번 신입 부원, 아니 일학년 부원들의 군기를 잡기 위해 단체 기합을 주었다. 시험기간이라는 명목으로 부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데다가, 학교에 적응하기 시작한 일학년들이 하나 둘 씩 자신의 성향이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아마 그맘때였을 것이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배구부 부원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을 무렵이.







체력 훈련을 할 때까지만 해도 카게야마 토비오는 크게 눈에 띄는 녀석이 아니었다. 그저 무슨 훈련이든 앓는 소리 하나 없이 묵묵하게 견뎌온 아이 중 한 명이었다. 뛰라면 뛰고 기라면 기고 그 모진 훈련을 다 견디면서도 뒤처지는 모습 한 번 보인 적이 없었기에 그 누구도 카게야마 토비오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부활동을 마치고 나면 꾸벅 인사를 하고 주먹밥을 먹으며 집에 돌아가는 것을 봤을 정도였을까. 그러나 오월 초, 본격적으로 코트에서 공을 주고받는 연습을 하면서부터 카게야마 토비오는 발광생물이 된 것 마냥 반짝거리며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언제나 입을 꾹 다물고 작고 보드라운 손끝으로 공을 퉁겨내면서도 정확하게 올려내는 실력. 삼학년 주전인 오이카와 토오루와 일치하는 포지션을 선택한 그 아이. 그에게 괘씸한 버릇 하나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뒤부터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에게 불편한 존재로 자리 잡히게 되었다.







“아, 형, 그게 아니고요!”

“형...?”







일순간 주변의 모든 배구부원들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모든 이들의 시선에도 카게야마 토비오는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두 눈만 꿈뻑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런데 그 ‘형’이라는 호칭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선배라는 말을 쉽게 입에 붙이지 못했다. 그리고 선배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도 못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지껄인다는 것이 ‘형’이라는 단어였던 것이다. 이학년들은 그것이 귀엽다고 곧잘 받아주었다. 그것은 사실 소학교 때부터 이어져 온 습관이 다시 되살아난 것에 불과했다. 소학교 때 스포츠 클럽 배구부에서는 선후배관계를 따지기보다는 같은 부원이라면 ‘형. 동생’ 정도로 불러가며 함께 시합을 꾸려나갔기 때문이었다. 키타이치 중학교로 올라와 기합을 받는 동안에는 따로 상급 학년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으며, 운동부가 아닌 경우 상급 학년들과는 따로 교류가 없었던 그였기에 사실상 ‘선배’라는 단어가 지극히 낯설었던 것이기도 했다. 카게야마가 상급 학년 배구부원들에게 ‘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에 대해 지적을 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주장인 오이카와만은 달랐다. 키타이치 중학교가 견고하게 만들어 온 단단한 규율에 생겨버린 아주 작은 균열. 그 균열에 그는 민감하게 반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날은 오월 중순이었을 것이다. 교복의 옷깃에 땀이 배고 습기 찬 흙냄새가 사방에 진동하는데, 아침부터 시작된 폭우가 좀처럼 가라앉질 않던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춘추복에서 하복으로 갈아입는 이들이 늘어나고, 체육복은 짧은 소매와 짧은 바지를 이루는 것으로 바뀌었을 때 즈음이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대걸레의 자루를 뽑아 코트 위에 내리꽂고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1, 2학년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들 중 그 누구도 어째서 서로가 남아 있어야만 했는지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주전이자 주장인 오이카와 토오루가 남으라고 했다면 이유를 막론하고 남아서 그의 침묵이 깨지기만을 기다려야만 했다. 죽었다 생각하고 그의 폭력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카게야마 토비오 나와.


엎드려.







그리고 난 뒤에 이어지는 거센 마찰음이 강하게 코트를 울렸다. 그러나 그 마찰음은 폭우 소리에 묻혀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몇 번이고 허벅지를 두들겨 맞으면서 두 팔을 후들거렸다. 그는 자신이 왜 맞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배구부 전원이 다 보는 앞에서 두 팔로 온 몸을 지탱한 채 어마어마한 굵기의 몽둥이로 허벅지를 내리 쳐 맞는 것밖에는. 오이카와가 말을 끊을 때마다 몽둥이질이 이어졌다.







너네 형은, 너네 집에서나, 찾으세요.

여기는, 운동부고, 형 동생, 그런 말은, 안 쓰거든요.

이따위로, 물 흐릴 거면, 당장 꺼지시든가, 똑바로 하든가,


복창한다, 선배는-


“....신처럼...”


다시, 선배는-


“신처럼...!”


다시, 선배는-


“신처럼.....!”








콰당, 하는 소리와 함께 코트 위로 몽둥이가 날아갔다. 그리고 두어 번 거센 소리를 내며 몇 번을 회전하더니 벽에 처박혀 두 동강이 나버렸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 자리에서 바닥에 엎드려 이마를 박았다. 바닥에 고꾸라진 그의 두 허벅지는 새파랗게 찢어져 피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카게야마를 부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매를 맞는 그 순간부터 키타이치 배구부 전원은 그들 자신 역시 그 자리에서 몽둥이질을 당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형’이라는 단어를 거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저 자리에서 매를 맞아야 할 사람이 굳이 카게야마 토비오가 아니라도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그저 남들보다 더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다음부터 ‘형’이라는 단어가 배구부에서 들리게 되면 카게야마 토비오는 죽는다. 전원 해산.


감사합니다!







배구부 전원이 빗소리와 함께 물이 빠져나가듯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카게야마 토비오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그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체육복을 갈아입었다. 새파랗게 젖은 허벅지를 가리기 위함 같았다. 그리고는 여느 때처럼 주먹밥을 입에 꼭 물고는 우산을 챙겼다. 작은 체구였지만 움직임은 신속했다. 그 작은 머리통을 들고서 통통거리며 체육관을 곧장 나서는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우산을 들고 천천히 그가 걸어가는 길을 따라갔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던 것이, 슬슬 통증이 온 몸을 저미는 듯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만 맨홀 뚜껑에 미끄러져 다시 나자빠지고 말았다. 다리에 힘이 빠진 탓이었다. 우산 위로 넘어져 우산살이 망가졌다. 비를 쫄딱 맞은 채 그것을 두어 번 열어젖혔으나 결국 우산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흐느적거렸다. 카게야마는 우산을 접어 전봇대 밑에 버리고는 빗속을 뛰어가기 위해 운동화 앞을 통통 두드리며 달려갈 태세를 취했다. 벌써 자신의 무릎에서 찔끔찔끔 피가 새어나오는 것도 잊은 듯했다.







“토비오-쨩.”







몽둥이를 내리칠 때와는 사뭇 다른 억양이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흠뻑 젖은 몸이었지만 그 작은 몸에서는 폴폴 열이 나는 듯 생생했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그에게 인사했다. 불과 십분 전 자신을 두들겨 패던 사람 앞에서 겁 하나 먹지 않고 참 야무지게도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 우산을 씌어주었다. 그는 고양이 같은 커다랗고도 깊은 두 눈을 꿈뻑이며 오이카와를 올려다보았다.







“안 가?”

“...어... 고맙슴다.”







카게야마는 처음으로 그의 앞에서 몸을 움츠렸다. 비를 맞고 자신의 몸이 흠뻑 젖었다는 것을 오이카와와 나란히 섰을 때 비로소 알아차린 것이다. 걸음을 옮길수록 몸이 자꾸만 오이카와 쪽으로 붙으려 했다. 차갑게 식은 몸이 비를 피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오이카와의 온기를 찾았다. 그럴 때마다 카게야마는 자신의 몸을 바짝 움츠리며 손끝이 하얗게 질릴 만큼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결국 몸은 스치고 말았다. 오이카와는 나직하게 말했다.







“토비오쨩, 붙지 마. 나 젖는 거 싫어.”

“그냥 비 맞고 가셔도 되는데요.”







카게야마는 그 말을 하고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차피 젖어버려서 비를 맞고 뛰어가면 그만인 일이었다. 오이카와가 우산을 씌어주고 난 뒤부터는 걸음도 더욱 느려지고, 허벅지도 저려왔다. 그리고 무릎도 함께 욱신거렸다. 오이카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걷기만 했다. 그러다가도 카게야마의 몸이 조금이라도 붙어려 하면 짜증을 내듯 그에게서 떨어지려 했다. 스칠 듯 스치지 않는 그 거리에서 카게야마 토비오의 차갑게 식어버린 체온과 오이카와의 온기가 미묘하게 뒤섞였다. 우산이 갈라놓은 빗줄기의 소리는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내리쳤지만, 이상스럽게 카게야마 토비오가 내쉬는 색색거리는 어린 숨소리만큼은 크게 들려왔다. 가방을 꼭 쥐고 오이카와에게 닿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 어설픈 거리, 이 어색한 온기의 경계선.







그 경계선을 헤집어놓은 것은 다름 아닌 자동차의 물세례였다. 차가 물웅덩이를 치고 지나가면서 일순간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그들에게 뿌려버린 것이었다. 차도 쪽을 걷고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카게야마였다. 그러나 카게야마가 눈을 뜬 순간 자신이 걷고 있던 방향이 그 반대로 돌아가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이카와가 몸을 돌려 물을 맞아버린 것이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우산은 모두 카게야마 쪽으로 기울어졌다. 오이카와는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우산 역시 카게야마에게 모두 준 채 아래위로 모두 물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 특유의 머리 모양이 비에 젖어 낯선 형태를 이루고, 그의 햐얗고 투명한 뺨과 매끄러운 턱선 위로 빗방울이 끝도 없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카게야마의 두 눈에 오이카와의 속눈썹이 젖어 있는 것이 들어왔다. 그만큼 가까운 거리, 그들 사이에 미묘하게 뒤섞이던 온기가 어느 순간 제 형태를 잃은 채 일그러져버린 그 거리! 카게야마의 두 눈에 오이카와의 연한 홍채와 그 사이를 누비는 여린 빗방울이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어둠이 내린 도시 위로 반짝거리는 야경의 일렁임과 같이 무슨 형태인지 뚜렷하게 알 수는 없었으나 눈부시게 반짝이는 것이었다.







“짜증나.”

“......”

“옷 다 버렸잖아.”







제 잘못은 아닌데요. 카게야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가 하는 양을 보기만 했다. 오이카와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털어내고는 우산을 고쳐 썼다.







“토비오쨩 때문이야. 책임져.”

“...어떻게요.”

“너 때문에 다 버렸으니까 네가 집까지 데려다 줘.”







그리고는 그에게 우산을 쥐어주었다. 카게야마는 그의 우산을 쥔 채 팔을 높이 들었다. 자신의 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오이카와에게 우산을 씌어주려니 팔을 힘껏 들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다리는 아프지, 몸은 다 젖었지, 한기는 들지, 게다가 자기보다 훨씬 큰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우산을 씌어 주어야 하니 힘에 부친 카게야마의 온 몸이 후들후들거렸다. 그러다 중심을 잃고 오이카와에게 부딪치면 오이카와는 그의 몸을 잡아 바로 세워주고는 다시 우산을 들게 했다. 그것은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힘이 빠져가는 카게야마의 팔목을 꼭 잡고 우산을 받치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 오이카와의 젖은 몸과 그에게서 느껴지는 온기는 낯설고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계속해서 마주해서 차가운 자신의 체온보다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다. 오이카와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카게야마는 인사를 하고 돌아설 참이었다. 한순간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팔을 붙들고 그를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였다. 얼떨결에 그의 집안에 들어온 카게야마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끝까지 책임 안 질 거야?”

“? 데려다줬잖습니까.”

“니 무릎, 더러워서 기분 나빠졌다고.”

“다쳐서 그렇습니다. 빨리 집에 가보겠습니다.”

“피 전부 닦고, 반창고 붙이고 가.”

“.....”

“다쳐서 너덜너덜한 거 보기 싫어.”







그렇게 카게야마는 젖은 양말로 그의 집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양말을 벗고, 젖은 두 발로 그의 마루를 밟았다. 그의 집 안에 가까이 들어설 때마다 물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집 안이 주는 온도는 그의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오이카와는 마른 수건을 꺼내 그의 머리에 툭, 던졌다. 카게야마가 그것을 받아들고 슥슥 자신의 머리와 몸을 닦아냈다. 오이카와는 젖은 몸을 한 채 구급상자를 꺼내어 그의 앞에 가져갔다. 그리고 말했다. 바지 내려. 카게야마는 일순간 멈칫하며 주먹을 꼭 쥐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바지 내려. 카게야마는 두 주먹에 쥔 힘을 풀고 천천히 바지를 내렸다. 차갑게 얼어서 빨개진 허벅지 뒤로 선명하게 남아 있는 멍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오이카와는 수건으로 그의 허벅지를 닦아내고 그 위로 약을 발라주었다. 그리고 그의 무릎 위에 생긴 생채기 위에는 소독약을 뿌렸다. 그것이 아팠는지 카게야마가 몸을 틀며 그를 밀어내려 했다.







“가만히 있어.”

“읏....”







오이카와는 그의 몸을 단단히 붙잡아 그의 무릎에 약을 발랐다. 

그것이 아팠는지 카게야마가 짧은 비명처럼 웅얼거렸다.







“아, 형...!”








오이카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카게야마가 자신의 입을 가렸다. 

그러다 손을 떨며 다시 허벅지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죄송합니다.”







“비밀로 해 줄게.”

“......”

“비밀로 해 주겠다고.”







카게야마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허벅지는 욱신거리고, 무릎은 따끔거리는데 아까까지 찬 비를 맞아서인지 온 몸에 열이 올랐다. 어깨가 떨렸다. 이상하게도 아까까지만 해도 오르지 않던 열이 온 몸을 차고 흐르며 곧장 찔끔찔끔 물이 새어나왔다. 두 눈을 깜빡일 때마다 두 뺨에서 눈물이 똑 똑 흘러내렸다. 오이카와는 그의 앞에 마주 주저앉아 말없이 그 얼굴을 보기만 했다. 그러나 그의 붉은 두 눈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게 흔들렸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색채로 젖어가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숙인 채 작게 흐느꼈다. 비가 내렸다. 빗소리는 너무나도 커서, 열 두 살의 카게야마 토비오가 우는 소리를 그대로 묻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계절이 변하고 있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그 시간의 경계를 내리긋듯 수직으로 빗줄기가 떨어지는 어느 계절이었다. 낯설었던 체온이 섞이고, 익숙지 않았던 타인의 체온에 적응하고, 낯설었던 사람과 비밀을 만들었던 어느 계절, 두 눈에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았으나 분명 무언가가 크게 뒤틀리듯 변하고 있었다.







이 어스름한 시간의 경계를 지나고 나면 온 몸이 펄펄 끓는 열병을 앓아야만 할 것이다.










곧 여름이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폭우, 마침.


목록 스크랩 (0)
댓글 4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 VDL X 더쿠 💜] 세레니티가 새로워졌어요, 톤스테인 컬러 코렉팅 프라이머 #세레니티 #클리어 체험 이벤트 409 05.16 25,223
공지 공지접기 기능 개선안내 [📢4월 1일 부로 공지 접힘 기능의 공지 읽음 여부 저장방식이 변경되어서 새로 읽어줘야 접힙니다.📢] 23.11.01 3,762,355
공지 비밀번호 초기화 관련 안내 23.06.25 4,501,595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0.04.29 20,877,836
공지 성별관련 공지 (언급금지단어 필수!! 확인) 16.05.21 22,048,043
공지 알림/결과 💖✌️2️⃣2차방 설문조사 결과(스압주의)2️⃣✌️💖 13 23.04.06 9,075
공지 알림/결과 경2️⃣제 1회 2차방 인구조사 2️⃣축 114 21.02.01 15,197
모든 공지 확인하기()
618 잡담 하이큐 보쿠아카파는(파던) 덬 있니...? 지금 실트다 1 23.05.15 242
617 잡담 하이큐 다시보니까 카게른이 존맛이네 2 23.04.20 239
616 잡담 하이큐 하이큐 영화화 잘됐으면 좋겠다 2 23.04.14 230
615 잡담 하이큐 오늘 보쿠아카데이다!!!!!!!!!! 2 23.04.05 117
614 잡담 하이큐 작가가 그 누구보다 보쿠아카에 진심임 2 23.03.27 427
613 잡담 하이큐 보는 중인데 여긴 파트너조 잡으면 굶을 일은 없겠다 3 23.03.27 206
612 잡담 하이큐 여기 코어 진짜 대박인듯 4 23.03.23 353
611 잡담 하이큐 하이큐도 영화개봉하면 소소하게라도 반응오겠지... 8 23.03.22 260
610 잡담 하이큐 칵히덬인데 뭔가 풋풋한...! 열정...! 노력....! 그리고 사랑!!이 보고싶으면 3 23.03.22 106
609 잡담 하이큐 카게히나는 왜 갈수록 더 뽕차지 3 21.09.09 361
608 잡담 하이큐 요즘 2차판 어떤지 아는 덬? 5 19.12.05 1,155
607 잡담 하이큐 슈퍼RTS 커플링 1~30위 4 18.04.28 3,467
606 잡담 하이큐 간만에 뽕차서 낙서했다 2 18.03.28 287
605 잡담 하이큐 갑자기 오이른에 치여따 ㅠ퓨ㅠㅠㅠㅠㅠㅠㅠㅠ 5 18.03.11 294
604 잡담 하이큐 츠키시마 형은 2차물 잘없지??ㅎ 1 18.02.11 237
603 잡담 하이큐 오이카게 외치고 갑니동 1 17.12.16 166
602 잡담 하이큐 다들 파는 커플링 적고 가자...ㅠ 10 17.12.15 322
601 잡담 하이큐 안경벗은 츳키 그려봄ㅋ.. 2 17.11.19 182
600 잡담 하이큐 ㅎㅎ..세상 귀찮아보이는 켄마그려봄-펑 8 17.11.11 254
599 잡담 하이큐 이번 화 좋은데 좋아할 수 없는 미묘한 기분이다 (당연히 스포 있음) 13 17.08.07 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