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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하이큐 미친 연애 (상편/오이카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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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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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 오이카와 x 형사 카게야마

* 범죄/미스터리

* 살인현장에 대한 약한 묘사 주의


















기괴한 날이었다. 바로 옆 사람의 눈동자마저도 새빨갛게 보였던 날이었다. 노을 속에 갇힌 것은 몇 년 만이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피비린내가 온 몸에 스미는 듯, 자색 안개에 숨통이 조이는 듯 어찔하고 역겨운 기분이다. 뒤통수를 쨍하게 짓누르는 감각에 현기증이 났다. 그는 세 개의 손가락에 힘을 주고 오른 쪽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피로감이 깊어질 때마다 펄떡거리는 맥을 진정시키는 습관 같은 것이었다.






‘오이카와 씨, 저...’








미간을 왈칵 찌푸렸다. 역한 기분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헛구역이 나왔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언제나 그 기억의 시작은 어설픈 얼굴로 남자를 부르던 앳된 그 자신이었다. 남자는 노을을 등에 지고, 타는 듯 붉게 반짝거렸다. 그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노을이 그의 눈동자에 반사되어 물비늘처럼 일렁이는 것이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감정을 견디기 위해 얼굴을 엉망으로 굳히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었다.







‘오늘 고백 받았습니다.’
‘흐응, 그래?’







가슴 속에서 알알하게 멍울이 맺혔다. 오만하고 무심한 눈길 하나에도 눈알에 핏발이 서는 듯했다. 감정이 팽팽해져 갔다. 본래 그는 감정에 무딘 아이였다. 그 둔한 감정을 계속해서 긁어내고 할퀴어서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든 것은 그 남자 쪽이었다. 가슴 속에서 단단한 딱지가 앉기 시작하면 그것을 다시 잡아 뜯어서 피를 내고, 그리고는 핥아주었으니까.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그의 살갗에 닿는 말캉한 혀의 감각은 언제나 그를 나약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날처럼 말이다.







미친 연애







[카게야마, XX구역에 신고가 들어왔어. 당장 이쪽으로 와야 할 듯싶다. 위치 전송할게.]







허억,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크게 떴다. 동료인 타나카의 전화이다. 그는 숨을 깊게 내쉬면서 조심스럽게 차에 올랐다. 휴대폰으로 지도가 전송됐다. 수사하면서 몇 번 스치고 지나갔던 시장 통의 식육식당이었다. 해가 저물기도 전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사고가 났던 것일까. 계속해서 이어지는 편두통에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었다. 어서 빨리 타나카를 만나야 할 것 같다. 카게야마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노을에 벌겋게 젖어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겨우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타나카가 그의 등짝을 팡 치며 허공에 욕설을 내뱉었다.







“모양만 봐도 존나 의도적인 느낌이 나잖아! 이게 약으로 나올 형상이냐고!”







카게야마는 타나카의 욕설에 고개를 끄덕인다. 두통은 여전했지만 현장을 보면서 차차 냉정함이 돌아왔다. 카게야마는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형사님, 이쪽은 이미 감식반에서 촬영 다 끝냈는데요. 그러나 그는 제대로 들리지 않는지 표정을 지우고 계속해서 셔터를 눌렀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다. 그런데 이 사람, 기괴한 형태로 몸을 꼰 채 누워 있다. 카게야마는 촬영 모드를 확대시켜 차갑게 식어 있는 그녀의 얼굴을 찍었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 속을 들여다보았다. 액정 속의 그녀는 생선 눈깔처럼 멀건 눈동자를 위로 깐 채 기묘하게 웃고 있었다. 그 기묘함은 마치 굳어버린 그녀의 얼굴을 누군가가 잡아 뜯어놓은 것처럼 섬뜩한 이질감을 풍겨댔다.







“결과 나와 봐야 알겠지만 사흘 전 사건과 비슷해. 사후경직의 형태가 거의 똑같아.”







지금까지 이와 같은 기이한 형태의 시신은 총 두 구가 더 발견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앞의 두 사람은 어떤 공통점도 없었으며, 동선動線부터 거주지, 생활습관 어느 하나도 일치하는 것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결정적으로 사인은 호흡곤란에 의한 질식사였다. 이번 시신이 발견되기 전까지 피해자는 각각 20대 초반의 남성과 여성이었다. 한 명은 클럽에서, 다른 한 명은 술집에서 발견되었는데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술을 잘 마시다가 잔뜩 취한 상태에서 몸이 아프다며 통증을 호소하였는데, 어느 순간 관절이 뒤틀리고 목이 꺾인 채 죽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피해자가 그렇게 되기까지 주변 사람들은 팔다리를 주물러주기도 하고, 바닥에 눕혀서 마사지를 해주기도 하였으나 삼십 분 만에 몸이 굳으며 숨이 끊어졌다고 한다.






타나카는 혀를 찼다. 시신의 신원을 찾는 와중에도 그는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놓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팀장의 생각은 달랐다. 감식 결과에서 나타난 ‘특정 약물’이 호흡곤란을 유발했고, 이로 인해 질식을 하게 되었다는 가정을 세운 것이다. 그는 피해자의 사망과 그 약물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즉시 살인이 아닌 약물오남용에 의한 사망으로 판단하고 사건을 다른 팀에게 넘길 심산이었다. 사실 전체적인 정황을 봤을 때에도 그의 가정에는 일리가 있었다. 그가 주목한 부분은 바로 두 사람이 클럽과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도중에 사건이 발생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만약 두 사람이 자발적으로 약물을 구하고 술에 섞어 마셨다면? 그로 인해 부작용이 생긴 것이라면?







직감을 중시하는 타나카로서는 이 일련의 사건을 의도적인 타살이라고 결정짓고 싶어 했다. 시신들에게서 발견된 공통된 이질감이 영 찝찝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질감은 사실 약물과 호흡곤란의 연관성을 찾는 것보다 증명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세 번째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이 피해자의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이번 사건은 그들이 속한 팀에서 다른 팀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부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시신의 형태는 비슷해도 전혀 다른 사건일 수도 있고요.”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에!”







아오 진짜, 타나카는 민머리를 박박 긁어대며 짜증 섞인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덤덤한 얼굴로 사망한 여성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하여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을 조사할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번 사건 말고도 수사해야 할 사건들이 몇 개나 더 쌓여 있는 상황이었다. 사건 하나가 다른 팀에게 넘어간다면 일이 줄어드는 것이니 카게야마의 입장으로서는 딱히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장점인지 단점인지 타나카는 늘 자신에게 배당된 사건은 자기 손에서 끝내고 싶어 했다. 사건을 조사하면서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금세 몰입을 하곤 했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열혈인지라는 것이다.







“선배는 공무원이랑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도 늘 그렇게 생각해.”
“경찰도 공무원이지 않습니까.”
“엣? 나 경찰에 어울리지 않아?”
“아뇨. 굳이 따지자면 제 쪽이 안 어울리는 것 같긴 합니다.”
“실없게 무슨 소리야. 일 잘 하면서. 너는 그냥 신중한 거야. 확신이 들면 개처럼 달려들면서 뭘 그래.”







타나카의 ‘개처럼’이라는 말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카게야마는 귀가 살짝 붉어졌다. 그가 피해자의 지갑을 조사할 때였다. 그 안에는 몇 장의 지폐와 영수증 두 장, 그리고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명함 한 장이 나왔다. 카게야마는 조심스럽게 영수증을 펴보았다. 한 장은 바로 시신이 발생한 식육식당의 것이었으며, 다른 한 장은 ‘엘리트 신경정신과 의원’이라는 병원에서 발행된 것이었다. 카게야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와 함께 꽂혀 있는 명함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그의 동공이 수축하며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언제부터인가 진정되었던 관자놀이의 맥이 빠르게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두통을 일으켰다. 그는 잠시 숨을 멈추고 저릿거리는 눈동자로 다시 한 번 명함에 새겨진 이름을 더듬어 보았다.







‘원장 / 신경과 전문의 / 오이카와 토오루’







온 몸이 벌벌 떨리는 것을 느끼며 파들거리는 이를 꽉 물었다. 어째서 10년 동안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이름을 여기에서 본단 말인가. 그는 명함을 찍은 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같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가 모르는 다른 사람일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그가 아는 ‘오이카와 토오루’는 지금 서른을 갓 넘었을 뿐이다. 그런 사람이 한 병원의 원장일 리 없지 않은가. 그 생각을 마쳤을 때에야 비로소 그는 겨우 냉정을 찾을 수 있었다. 가슴 한 쪽이 뒤집어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이미 해는 지고 스멀스멀 어둠이 기어오고 있었다. 노을은 사라졌다. 그리고 여기 이 오이카와 토오루는 그 사람이 아닐 것이다.







“환자로부터 알게 된 건?”
“지갑에서 신분증이 나왔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먼저 연락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는 어제 신경정신과에서 진찰을 받은 것 같습니다. 영수증이 발견되었어요.”
“나쁘지 않네. 방금 스가 씨에게 연락이 왔거든. 약물 성분 중 하나를 알아냈나 보더라고. 

난 그쪽에 갈 건데, 어떡할래? 병원에 다녀올 거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만약 검시관인 스가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타나카는 무조건 자기가 가보겠다고 했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자기답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잘 알았다.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이름을 본 순간부터 카게야마는 스스로도 알아차릴 만큼 동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운전을 하면서도 그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늘 그랬다. 10년이나 지나버린 기억임에도 퇴색되기는커녕 선명하고 날카롭게 그를 들쑤셨다.







‘누구한테 받았는데.’
‘...히나타.’
‘아, 치비쨩?’







히나타를 ‘치비쨩’이라고 불렀던 것은 그 특유의 습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그가 히나타를 히나타라고 부르지 않은 것에 아주 조금 기대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바싹 말라가는 입술을 겨우 다물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어쩐지 낯설고도 두려운 것이어서 카게야마는 잠시 숨을 멎은 채 그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그는 카게야마에게 얼굴을 바짝 가져갔다. 그리고 시선을 피하는 그의 턱을 잡아 억지로 눈을 맞추었다.







‘내가 맞춰볼까. 토비오, 너 아무 대답도 못했지.’







눈을 감고 싶었다. 그 붉은 눈이 한 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자신의 눈을 바라보면 그대로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히나타는 나중에 대답을 들어도 되겠냐고 말하며 제법 씩씩하게 손을 흔들었는데.







‘착한 아이니까. 

그렇다고 나와 이런 관계라는 것도 말 못했겠지.

 애새끼들처럼 깜찍하게 사귀는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말도 못할 만큼 부끄러운 짓 많이 했잖아? 

그러니 제대로 대답했을 리가 없어.’







그는 열여섯의 어렸던 카게야마를 너무나 잘 알았다.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었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단 한 번도 두려움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그는 언제나 대단한 사람이었고, 그의 머리 꼭대기에 있던 사람이었으며 그가 동경했던 사람이자 영원히 그보다 연상인 사람일 테니,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부끄러운 짓’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카게야마는 눈앞이 새카매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팔다리에서 쥐가 나고 아래턱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아니요. 그래서 대답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진짜 몰랐기 때문에. 

히나타에게 제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었기 때문에 말문이 막혀버렸노라고.







그러나 그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이상했다. 이전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상황이 두려웠다. 카게야마는 그제야 오이카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오이카와에 대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이카와는 그의 어깨를 꽉 붙잡고 꼼짝도 할 수 없는 그의 몸에 자신의 몸을 바짝 붙였다. 그리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토비오, 오이카와 씨는 말야, 토비오의 속마음이 전부 다 들려. 

치비쨩에게 고백 받은 걸 그대로 말해주는 이유 역시 오이카와 씨는 아주 잘 알아. 

니가 만약 히나타랑 만날 생각이었으면 헤어지자는 말부터 했겠지.’







‘너, 내가 히나타를 질투하고 붙잡아주길 바라고 있잖아.’







병원 앞에 차를 세웠을 때 카게야마는 머리가 펄펄 끓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운전대를 콱 치고 머리를 박아버렸다. 얼굴에서 열이 올랐다. 어쩜 그리도 못났었단 말인가. 지금 생각하면 두 살 차이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열여섯의 그는 열여덟의 남자가 너무나도 어렵고 두려웠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정말 아니었다. 중학교 때 배구부를 하면서 처음 그를 알게 되었고 선배라 부르며 그를 동경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가 갈라지고 몸을 섞는 관계가 되면서 무언가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평범하게 옷을 갖추어 입고 있는 반면, 카게야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발가벗겨진 채로 거리를 걷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자의이든 타의이든 솔직한 것은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그는 카게야마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그런 불공평한 관계 속에서 정작 카게야마는 그것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그와 헤어진 바로 그날을 제외하고.







‘한번이라도...’
‘뭐? 잘 안 들려.’
‘한번이라도 저를 좋아하신 적, 있습니까?’  
‘뭐라고 대답하면 대줄래?’
‘......예?’
‘사실 말야, 난 토비오가 지금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알고 있어. 

그럼 토비오는 당장 여기서라도 다리를 벌려주겠지.’







운전대를 꽉 쥔 그의 눈에 시큰한 눈물이 고였다. 온 몸을 두들겨 맞는 것보다 더한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절대 들려주지 않을 거야.’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통증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커져만 가서,







‘니가 평생 모른 채로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의 말처럼 평생 이렇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인가. 카게야마는 눈을 꾹 감았다. 꽉 다문 입술 사이로 눈물이 비집고 새어나왔다. 손끝이 하얗게 질려갔다. 쥐가 난다. 침을 삼켰다. 휴지를 아무렇게나 뽑아 코를 풀었다. 양 손으로 눈을 꾹꾹 누르고 얼굴을 찰싹찰싹 때렸다. 그 오이카와 토오루일 리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주문을 외듯 몇 번이나 그 생각을 반복하고 나서야 차에서 내렸다.







병원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여러 병원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건물의 한 층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모든 것이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상아색의 타일 위로 그의 전신이 비칠 정도였으며 병원답지 않게 은은하고 기분 좋은 향기가 났다. 접수처에서 베이지 색의 옷을 입은 간호사가 인사를 했다. 카게야마는 그녀의 앞에 경찰수첩을 보여주며 말했다.







“카게야마라고 합니다. 

오늘 사망한 키노시타 씨가 어제 이곳에서 진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어서요, 조사 가능할까요?”







경찰이라는 말에 그녀는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보다 카게야마의 험상궂은 얼굴에 겁을 먹은 듯 자신의 옆에 있는 간호사의 옷자락을 꼭 잡는 것이었다. 옷자락을 잡힌 간호사는 그녀보다 연륜이 있어 보이는 듯했다. 그녀는 차분한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원장님이라면 지금 진료 중이신데, 조금만 기다리시겠어요? 이번이 마지막 환자분이시거든요.”
“아... 네.”







차 한 잔 드릴까요?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었다. 긴장을 한 건 오히려 카게야마 쪽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한 쪽 다리가 덜덜 떨렸다. 자신의 눈치를 보는 두 명의 간호사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빨리 조사를 끝낸 후 타나타 선배와 합류하고 싶었다. 이 침묵을 견디는 동안 저들에게 병원장에 대해 물어보는 건 어떨까. 생각을 마친 카게야마가 몸을 일으키던 차였다. 진찰실에서 마지막 환자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문을 열고 나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간호사 한 명이 다급하게 진찰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나왔다. 들어가 보세요. 그리고는 도망치듯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그는 아닐 것이다. 애초에 그가 의사를 할 리도 없고, 이렇게 가까이 살고 있었을 리도 없다. 문을 열면 모든 것이 진정될 것이다. 문을 열면-







“카게야마라고 합니다. 키노시타 씨가 이곳 환자라고 들었습니다만...”
“아! 토비오쨩, 오랜만이야.”







이럴 땐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만 하는 것일까. 카게야마는 3초 정도 굳은 상태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눈높이가 조금 달라졌다. 좀 더 키가 큰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보다 인상이 날카로워졌다. 두 뺨을 감싸던 볼 살이 빠졌기 때문인가. 선하고 아름다웠던 눈매는 그때보다 좀 더 깊고 오묘하게 빛나는 듯했다. 검은 셔츠의 카라 위로 언뜻 보이는 검은 선은 무엇일까. 문신인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익숙하도고 낯선 오이카와 토오루의 앞에서 카게야마는 모든 것이 사고가 멈춰버린 듯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오이카와는 손님을 응접하듯 거리낌이 없다. 기분 좋은 얼굴로 그의 몸을 몇 차례나 훑어보며 그의 얼굴에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못 본 사이에 더 잘생겨졌네?”







카게야마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쳐냈다. 단단한 뼈 두 개가 투박한 소리를 내며 맞부딪쳤다. 그 통증에 냉정이 돌아온 그는 얼굴을 굳히며 그녀의 사진을 오이카와에게 내밀었다.







“키노시타 씨입니다만, 알고 계십니까?”
“당연히 알지. 내 환자인걸.”
“이번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약 한 시간 전 사망했고요. 어제 진찰받은 기록이 있어서 조사차 들르게 됐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헤에~ 형사가 된 건가. 영장 없이는 함부로 이야기 못하는데, 어쩌지? 영장 가지고 있어?”
“아뇨, 오늘 막 발생한 사건이라서...”
“토비오쨩은 바보예요? 담당의가 어떻게 환자 이야기를 어떻게 해주니. 그것도 신경정신과에서 말야. 기본적으로 내담자에 관한 건 비밀이라고.”
“...알겠습니다. 그럼 영장 신청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사건이 다른 팀으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요.”







이렇게 나온단 말인가. 카게야마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당장 스가 씨에게 가서 부검 결과를 붇고 싶었다. 피해자로부터 나온 약물 성분과 사인의 인과관계가 밝혀져서 이대로 이 사건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으면 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 남자와 함께 있는 공간이 미치도록 불편했다. 오이카와는 그 특유의 눈을 빛내며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얼굴로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카게야마는 이맛살을 콱 구기며 시선을 피했다. 오이카와가 웃었다.







“참고로 카운슬링에 대한 기록은 병원 컴퓨터에 남기지 않아. 개인 컴퓨터가 따로 있는데, 거기에 저장을 하거든. 그런데 그게 지금 오피스텔에 있네.”
“?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시간 외 근무를 해드리겠단 소리예요, 토비오쨩.”







괜찮습니다. 피해자의 가족을 만나서 들을 수도 있고, 다음에 다른 형사가 올 수도 있는 거니까.







그렇게 대답을 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은 궁금했다. 그 피해자에 대해서 도대체 어떤 상담을 받았는지, 아니, 정확히 오이카와는 그녀와 어떤 상담을 했는지, 그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어떤 집에서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저 셔츠 속에는 어떤 형태의 문신이 있는지, 사실은 알고 싶었다. 미친 짓이다. 그를 따라가서 대체 무엇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카게야마는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그때와 같은 얼굴로, 촛불처럼 일렁이는 묘한 눈빛으로 웃고 있었다. 그 눈을 본 순간 그는 열여섯의 어린아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미친 것이다. 그토록 싫었는데, 그를 닮은 노을을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두통을 느낄 만큼, 카게야마에게 있어 그는 언제나 고통일 뿐이었는데, 궁금해서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의 목을 감싸는 문신의 형태가 보고 싶어서, 만져보고 싶어서.







‘...내가... 내가 형 사랑하는 거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해...?’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니가 내 생각만 했으면 좋겠거든.’







Rrrrrrrrrr.........Rrrrrrrrr..........Rrrrrrrrrr.........Rrrrrrrrrrr.........







그때였다. 카게야마의 손에 쥔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액정에는 ‘타나카’의 이름이 떴다.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카게야마의 눈은 여전히 오이카와를 향하고 있었다.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는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예, 선배. 앞으로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지금 그는 일을 잘 하지도, 신중하지도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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