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는 여전히 타카야마가 훌쩍거리고 있었고, 목덜미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은 습기가 가득한데다 미지근하기까지 했다. 끈적거리고 우울했다. 타카야마의 우울이 옮아온 것이 분명했다.
“내일, 쉬어?”
“쉬잖아. 너도 나도. 그런 생각도 하는 걸 보니까 다 울었나 봐? 괜찮아?”
“으, 으응.”
“가자.”
타카야마가 머뭇거리며 일어섰다.
“타, 데려다 줄게.”
“…….”
얼른, 하며 아즈마가 타카야마의 손에 헬멧을 쥐어주었다. 타카야마는 헬멧을 쓰고, 벤치 밑에 놓인 신발도 신었다. 바이크의 뒤에 앉아 아즈마의 허리를 건성으로 붙잡았다.
“죽기 싫으면 제대로 잡아.”
“…….”
“얼른. 얼른 집에 가자, 좀.”
아즈마의 허리를 끌어안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름이라는 것이 뜨끈한 체온과 함께 확 다가왔다. 이렇게 된 거, 될 대로 되라지. 타카야마가 목소리를 높였다.
“선배 집에서 자도 돼?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뭐라고 하지, 그냥 그…….”
“알았어.”
.
.
.
흰 천장이 익숙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원룸의 천장은 아니었다. 여기가 어디지. 타카야마가 머리를 긁적였다. 가끔 귀소본능이 잘못 작용해서 극장의 대기실로 기어들어간 적이 있기도 했지만, 눈앞에 있는 천장은 극장 대기실의 천장도 아니었다. 발자국 소리. 문이 열렸다.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즈마였다.
타카야마가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전화를 걸었었다. 갈게, 라고 하는 말에 갑자기 취기가 확 올라왔었다. 얼굴을 보고 마음을 놓다 못해 기억까지 놓아버린 모양이었다. 내가 미쳤지.
“일어났어?”
“응.”
최대한 자연스럽게 돌아누웠다. 차마 얼굴을 볼 자신도 없었다. 정말로, 미쳤지.
“어디까지 기억해?”
“…….”
“나한테 선배 집에서 자도 되냐고 했던 건 기억해?”
엎드려있는 타카야마의 고개가 아주 약간 옆으로 흔들렸다.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귀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덕분에 네 상태를 이해했어. 그냥 자. 필요 한 거 있으면 알아서 찾아 쓰고.”
“침대…….”
“그냥 거기서 자.”
침대 옆 탁자에 자리끼가 놓이고, 몸 위로는 얇은 여름용 이불이 난폭하게 떨어졌다.
“너는?”
“소파. 대본도 써야 하고, 할 거 많아. 너 밝으면 못 자잖아.”
“미안해.”
“됐어. 잘 거면 커튼 치고. 에어컨 리모컨은 침대 근처 어디 있을 거니까 알아서 해.”
“……응.”
“자.”
.
.
.
건물 밖에 서 있는 가로등의 빛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방 안은 잠이 들기에 적절한 곳은 아니었다. 어디더라도 쉽게 잠 들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았다. 커튼을 치기 위해서 일어나는 것조차 귀찮을 만큼 취했다며 몸을 달래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억지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지만 가로등의 빛이 신경 쓰였다.
생각해 보면 가망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차마 고백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몇 번의 짝사랑과 다르기는 했다. 괜찮은 상대였다. 얼굴도, 성격도, 취향까지도.
“안 되나.”
-평생 둘이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거 아냐? 남의 애인을 뺏어 온 것도 아니고, 미성년자도 아니고, 알고 보니 피가 섞여있다는 것도 아니었고, 그러니까 아무 문제없잖아.
팬이었던, 열두 살이나 어린 여자와 결혼하던 선배가 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도둑놈이 따로 없다는 짓궂은 농담에 생글생글 웃으면서 잘도 대답했었다. 팬한테 손을 대는 게 말이나 되느냐고, 타카야마도 한 마디 했었다. 좋았는데 어떡하라고. 진짜 종소리가 들렸다니까? 라며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대답하는 게 부럽기도 했었다. 연애 좋지. 사랑도 좋지. 그걸 지금 내가 못 해서 문제인 거지. ……아까 운 걸로 모자랐나. 울까.
피는 안 섞였다. 둘 다 이젠 서른에 가까우니 나이도 문제 될 부분은 없을 거다. 거기에 동갑이니까 나이 차이가 이러니저러니 하는 이야기를 듣지도 않을 것 같다. 남의 애인……. 아직 모르는 일인가? 같이 나갈 것 같긴 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뭘 어떻게 할 것 같진 않은데. 아무리 그래도 번호 따고 그 날 바로 우리 사귑시다 하진 않겠지.
“어쨌든 실연이라는 건, 달라지는 게 없나.”
여름은 해가 기니까 밤은 짧아야 하는데, 어째 시간이 흐르질 않았다. 거실에서는 뭐가 잘 안 되는지 종이를 찢는 소리, 타자 소리, 펜 굴러가는 소리가 아무렇게나 섞여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생각도 종이 위의 안 웃긴 개그처럼 찢어서 내 버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
1년 전(!) 주제였던 밤(
http://theqoo.net/131608308)의 뒷 이야기.더워서 머리가 안 굴러가서 살짝 지각ㅠㅠㅠㅠ
행여나 하는 이야기지만 아즈마 쨩이랑 타카야마 쨩이 연애할 일은 없어.
더워ㅠㅠㅠㅠ를 살려서 좀 더 늘어지게 써 보고 싶었는데......... 타카야마 쨩의 삽질은 앞으로도 쓸 수 있을테니까 하면서 그냥 열 두시와 동시에 글도 뚝 잘랐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지만 덬들이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읽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