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스노 고교가 여름합숙에 들어간 날의 첫 번째 밤이었다. 죽을 만큼 뛰고 난 뒤 그대로 곯아떨어졌어야 했지만, 잠이 많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강호들과 만나 여한 없이 뛰어다녔던 탓인지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히나타는 공을 끼고 앉아 켄마와 메일을 주고받는 듯 구석에서 휴대폰을 눌러댔고. 카게야마는 이불 위에 누워서 공을 매만지다가 갑자기 윗몸일으키기를 하기 시작했다. 일순간 히나타가 그것을 발견하고는 그 옆에서 빛의 속도로 윗몸일으키기에 합세했다. 그때부터 쓰잘데기 없는 대결이 시작되어 버렸다. 잠이 들어야 할 시각임에도 훅훅거리는 소리와 이불이 스치는 소리, 그리고 점차 숨이 가빠서 우아아아아아 괴성을 질러대는 소리에 타나카가 베개를 집어던졌다.
“아, 조용히 좀 하라고! 애들 자는 거 안 보이냐!”
일순간 방안이 조용해졌다. 다이치의 헛기침소리가 들린다. 츠키시마는 혀를 차며 이불을 뒤집어써버렸다. 베개에 얻어맞은 두 사람은 ‘죄송함다...’ 작게 말하고는 팔다리를 대자로 뻗은 채 누웠다. 타나카는 한숨을 내쉬고 베개를 다시 가져갔다. 그러다 문득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카게야마와 눈이 마주쳤다.
“다시 씻어야 하는 거 아니냐.”
“어차피 또 흘릴 거라서 괜찮슴다.”
“그, 그러냐...”
카게야마는 온 몸에 열을 나는지 그 자리에서 웃통을 까버렸다. 그의 허리춤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팬티라인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말이야, 너 의외로 트렁크 안 입는 것 같다.”
“? 뭐 말입니까?”
“팬티. 옷은 막 입는 것 같은데 의외로 속옷은 삼각이구나 싶어서. 그것도 꽤 몸에 달라붙는 거. 나도 그쪽 파라서 말이야. 노얏상은 몸에 붙는 거 절대 안 입거든.”
“아아...”
한숨이 섞인 대답이 나직하게 퍼졌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카게야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팬티 하나에 이렇게 험악한 표정이 될 수도 있구나. 타나카는 말실수를 했나 싶어 화제를 돌리고자 했다. 카게야마는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꽤나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각은 위험합니다.”
“어....?”
“함부로 입을 게 못 돼요.”
그리고 그는 심각한 얼굴을 펴지 못한 채 고개를 꾸벅 하더니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저렇게 일찍 잠들 거였으면서 아까까지 뭐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있어 사각 팬티는 위험한 존재라고 한다. 타나카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딱히 남자의 팬티에 얽힌 사연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알아서도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누웠다. 곧 잠이 든 것만 같았던 카게야마의 눈이 씁쓸한 빛을 띠며 조용히 빛났다.
<팬티 이야기>
키타이치에 입학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카게야마 토비오는 트렁크 파였다. 소학교 3학년 때까지는 이름이 적힌 브리프를 입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엄마가 4학년에 올라가면서부터 트렁크만 사왔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입어야 하는 속옷이 트렁크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입고 다녔던 것일 뿐이었다. 속옷에 대해 신경 쓸 만큼 그는 세심하지 않았다. 밤톨처럼 동그란 머리 속에는 온통 배구, 배구, 배구밖에 없었다. 그날도 그랬다. 배구공을 다리 사이에 끼운 채로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수학 선생님이 그를 깨우기 전까지 말이다.
“카게야마!”
“.....”
“카게야마 토비오! 일어나서 칠판에 문제 풀어본다.”
그의 어깨를 마구잡이로 흔들어대는 통에 그는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툭, 하고 배구공이 바닥에 떨어져 통통 굴러갔다. 공이 굴러가는 걸 보고서야 카게야마는 잠이 깨어 맹한 얼굴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는 두 눈을 꿈뻑이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칠판 앞으로 나갔다. 부스스한 얼굴을 소매로 한번 훔치고 그 특유의 입술을 삐죽 내민 채로.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헐 떴다.’
‘떴다. 떴다.’
‘쌤, 카게야마 떴어요!’
주변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지만 카게야마는 일단 분필을 집어 들고 자신이 풀어야 하는 문제를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애초에 무슨 의미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나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푼다는 개념보다는 멍하게 칠판 앞에 서있었던 것이었지만 말이다.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집합을 모르면 어뜩하냐! 들어가라.”
그는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주변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다가 걸려서 야단맞은 일이 너무나 잦았기 때문에, 그래서 주변 녀석들이 웃어대는 소리도 너무나 자주 들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애초에 책상으로 돌아가면 바로 엎드려 자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으므로,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그 참사를 알 리가 없었다.
쉬는 시간이었다. 주변 녀석들이 카게야마를 둘러싸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야, 니 떴대매. 존나 변태네ㅋㅋㅋㅋㅋ”
“? 무슨 뜻이야.”
“떴다고. 뭔 뜻인지 모르냐?”
그는 뚱한 얼굴로 주변 녀석들을 바라보다가 부스스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다시 주변에서 우하하하하 웃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와 카게야마 또 떴어! 미친ㅋㅋㅋㅋㅋ”
“야한 생각밖에 안 하냐? 어후 변태~”
배를 잡고 웃어대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카게야마의 하반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
그제야 그는 자신의 하반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뜨긴 떴다. 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자율신경계 하나가 자신의 의사표현을 확실하게 하고 있었다. 배구공을 만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멍한 상태인 카게야마와는 전혀 다른 의식체계를 구사한 존재 같았다. 그는 이것이 왜 고개를 들고 서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왜 주변 녀석들이 그렇게까지 좋아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떠 있는구나 싶었을 뿐이다. 오줌이 마려워서 그런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화장실로 갔을 때 즈음에 그 녀석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그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일순간 고개를 들었다가도 자기 자리를 알아서 잘 찾아가는 녀석이었고, 자신과는 전혀 다르게 제법 팔팔한 이 꼬마 녀석에 대해 딱히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으며, 어떻게 하고 싶다고 해도 그 방도를 몰랐으니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날 이후 카게야마는 ‘무라야마’로 불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는 ‘무라야마’가 자신을 지칭한다는 것도 몰랐다. 하지만 카게야마의 옆에 앉아 있던 녀석들은 카게야마의 책상 밑으로 지우개를 집어던지고는 ‘무라야마, 좀 주워줘!’ 따위의 말을 걸면서 그를 불러댔다. 보통은 잠을 잔다고 그것을 못 들을 때가 많았지만 워낙 집요한 부름 탓에 그 무라야마라는 이름이 자신을 지칭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무라야마’의 ‘무라’가 ‘무라무라(むらむら-불끈불끈)’에서 온 말이라는 것을 알 리 없었다.
그 별명이라는 것이 참 발이 빠르다. 한 번 이름이 붙여지니 주변에서 그를 불러대는 녀석들이 순식간에 늘어난 것이다. 같은 반 녀석들을 포함해 다른 반 녀석들까지 카게야마가 ‘무라야마’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지나가다가 그를 툭 건드리며 ‘어, 무라야마 미안!’이러고는 사라지는 일이 허다했다. 이 정도면 거의 이지메 수준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카게야마는 제법 온순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맹하고 배구바보에 지나지 않는 말수 적은 아이’가 당시의 카게야마 토비오였다. 그러니 그것을 폭력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씹어버리는 쪽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카게야마는 위잉거리며 자신의 곁에 날아오는 모기를 탁 때려잡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뒷머리를 긁적이며 합숙소의 복도를 빠져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자신은 분명 이지메를 당하고 있었는데, 크게 불쾌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그였다면 그렇게까지 괴롭힘을 당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당장 트렁크 팬티를 바꿔 입었을 것이었다. 당시의 그는 그 ‘뜨는’ 현상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굳이 ‘야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팬티 한 장만 바꿔 입어도 해결될 일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는 이를 꽉 물었다. 그가 이토록 사각팬티에 대한 위험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는 것은 결코 당시의 이지메에 대한 경험 때문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것을 이지메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니 그에게 있어 그 날의 기억은 희미하다 못해 거의 남아있지도 않은 시간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팬티에 얽힌 사연을 속 쓰리게 받아들인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뜨는’ 현상에 대한 해결책을 알게 된 ‘계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