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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한 편의 동화처럼 너무나 현실적인 상상( 시사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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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6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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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동화 같은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값싼 위로를 던지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환대하는 사회’를 동화 속 몽상으로만 남겨둘 것이냐고,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https://img.theqoo.net/tOsfP

흔히 ‘동화’라고 하면, ‘현실’의 냉혹함과 대비되는 ‘아름답기만 한 세계’라는 의미로 이해되곤 한다. 동화 속 주인공도 시련을 겪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훈훈한 마무리’를 더 돋보이게 해주는 장치일 따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실제로도 동화가 그런 것인지 혹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닌지를 제쳐놓는다면,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이런 통념에 지극히 부합하는 그야말로 ‘한 편의 동화’이고 그 정체를 애써 숨기려 들지도 않는다. 지도 위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 ‘성진시’라는 배경, 아예 이름부터 현실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한 ‘괜찮은 병원’과 설마 현실에 저런 의사가 있을까 싶은 괴짜 원장, “공주보다는 마녀가 되라”며 ‘동심 파괴’를 서슴지 않는 동화작가가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라는 믿기 어려운 설정 등 의도적인 환기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도 시청자들이 눈치를 채지 못할까 봐, 아예 주인공들이 집필하는 동화 〈진짜 진짜 얼굴을 찾아서〉의 줄거리에 드라마 전체의 서사를 압축적으로 자기복제함으로써 좀 더 분명하게 못 박아두는 배려까지 베푼다.

이 동화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캐릭터는 ‘깡통공주’ 고문영(서예지)이다. 멀리는 김삼순(〈내 이름은 김삼순〉, 2005)으로부터 가까이는 고혜란 (〈미스티〉, 2018)이나 배타미(〈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2019) 혹은 장만월(〈호텔 델루나〉, 2019)에 이르기까지 기존 관성을 탈피하는 전향적인 여성 캐릭터의 계보를 잇는 흡인력을 지닌 인물이다. 어떤 권위에도 주눅 들지 않고 인습을 거스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위악적인 도발은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매개한다.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아동학대의 트라우마로 인한 자기방어의 소산이라는 배경이 드러나지만, 그동안 이와 비슷한 설정의 인물들이 대개 어딘지 위태로워 보이는 불안정한 캐릭터였던 데 반해 고문영이 두른 갑옷은 송곳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만큼 촘촘하고 견고해서 ‘아프다’기보다 그저 놀라울 만큼 ‘독특해’ 보이기만 한다. 그래서 흔한 치유·성장 서사에서처럼 갑옷을 벗겨 무장해제시켜놓고는 ‘행복한 결말’로 포장하는 뻔한 스토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드라마가 끝나도 문영은 그저 조금은 ‘온기’를 풍길 줄도 느낄 줄도 아는, 그러나 여전히 제멋대로여서 멋지고 강렬한 ‘마녀’일 테다. ‘치유’는 개성의 삭제가 아니며, ‘성장’은 결코 ‘교정’이 아니다.
https://img.theqoo.net/drdwr

그림자마녀가 앗아간 것은 용기였다


‘세 보이지만 실은 여린’ 문영의 반대편에는 ‘여려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센’ 상태(오정세)가 있다. 상태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자폐 스펙트럼이지만 내가 할 일은 알아서 합니다”라는 말에는 조금의 거짓이나 과장도 없다. 동화 안에서 그림자마녀에게 붙들린 깡통공주와 가면소년을 구해내는 것도 ‘박스 아재’(상태)이고,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에서 동생들을 공격하는 도희재(장영남)를 가격해 제압한 것 또한 그다. 그에게서 〈굿닥터〉(2013)의 박시온이 포개져 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실은 그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캐릭터다. 시온은 장애를 안고 있는 ‘천재’였던 데 반해, 상태는 그림에 소질이 있지만 웬만한 사람은 엄두도 못 낼 만큼 엄청난 재능도 아니고, 개성 있는 화풍을 지닌 작가로 성장하기 위한 분투의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애를 지닌 형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이 내면화된 ‘가면소년’ 강태(김수현)가 오히려 형에게서 보호받을 수도 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이 성장·치유 서사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형의 보호자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고 싶게 만드는 연인을 만났다거나, 싫은 내색 한번 못하던 형과 주먹다짐까지 불사하며 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사건’만으로 거저 얻어진 결말은 아니다. 달리 말해 “그림자마녀가 앗아간 것은 진짜 진짜 얼굴이 아니라 행복을 찾으려는 용기였다”라는 동화의 마지막 문장은 이 드라마의 주제를 또렷이 드러내지만, 실은 ‘용기’만이 유일한 관건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다는 데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이 있다. 예컨대 ‘환대하는 사회’를 상징하는 순덕(김미경)을 비롯해 주요 등장인물 어느 누구도 상태를 향한 혐오 발언을 입에 올리지 않는 참으로 ‘동화 같은’ 배경을, 또는 의료기관으로서 ‘공적 시스템’을 상징하는 ‘괜찮은 병원’을 매개로 형성되는 연대의식 충만한 커뮤니티의 존재를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돌이켜 고백하자면, 15년 전 〈내 이름은 김삼순〉이 화제가 되었을 때 꽤 열광적인 분위기를 불편해하며 “수많은 현실의 ‘삼순이’들을 여전히 삼순이인 채로 남겨두고 혼자서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운명인 드라마 속의 김삼순은 과연 ‘삼순이’인가”라고 이의를 제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다면 똑같이 질문할 수 있다. 동화는 어디까지나 동화일 뿐, 여전히 ‘환대’받지 못하고 적절한 ‘공적 지원’에서 배제되기 일쑤인 현실의 수많은 상태들, 문영들, 강태들도 과연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가 고작 값싼 위로나 던지는 동화라고 폄훼할 생각이 전혀 없다.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에서 ‘나’만 동화 속 주인공이 된다면 허망하지만, 이미 ‘우리’가 존재하는 동화적인 배경이라면 전혀 다른 시야가 열릴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는 모두에게 묻는다. ‘환대하는 사회’를 동화 속의 몽상으로만 남겨둘 것이냐고, 학교나 병원 또는 그와 유사한 공공기관들이 ‘괜찮은 병원’처럼 운영되지 못할 까닭이 뭐냐고, 이런 ‘조건’들은 하나도 갖추지 못한 채 냉혹한 현실에 상처 입은 개인들에게 ‘용기’만 부추긴다면 그건 또 얼마나 잔혹한 짓이겠느냐고.

그리고 어쩌면 바로 이렇게 ‘있는 세상’에 체념하지 않고 ‘있어야 할 세상’을 향해 질문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야말로, 현실이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동화를 찾아 읽고 동화 같은 드라마에 탐닉하는 까닭일 것이다. ‘박스 아재’가 ‘그림자마녀’를 물리치는 무기가 하필 ‘명작동화집’인 건 우연이 아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308/0000027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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