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스뜨로헤리츠 - 프로미스따
몰랐는데 난 피곤하면 잠버릇으로 웅얼거리면서 혼잣말을 한대..
쪽팔린거보다 민폐인 걸 아니까 그게 더 걱정되었음ㅜ
6시 반이면 늦은 시간은 아니었는데 자전거 순례자 아저씨와 나를 제외하고 모두 출발했더라
오리온 알베르게에서 준비해준 아침

알베르게 아침은 처음인데 제법 괜찮았어
간단하게 먹고 출발함
마침 내리던 비도 그쳤어

마을이 길어 벗어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오늘 넘어야 하는 모스텔라레스 고개가 보인다
1km요..?
역시 순례길. 보이는 오르막길을 다 오르면 새로운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어제 같이 축구 본 잉글랜드 아저씨와는 고개를 오르다가 헤어졌어
잘 올라가시더라..ㅎ
고개를 넘는 건 힘들었지만 발이 많이 아프지 않아서 좋았어
평지만 걷는 거랑 다른 근육을 사용해서 약간 편했던 것도 있었어
고개 정상에 도착해서 바라보는 까스뜨로헤리츠

고개 정상에서 쉬다가 홍콩에서 온 소녀 순례자를 만났어
디카 들고 다니면서 순례길의 아름다움을 담고있는 아주 낭만있는 순례자였어
고개 정상에도 순례길이 펼쳐져있다
어제 비를 쏟아내던 하늘이 맞나요?
오르막길이 있다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
내리막길 경사가 거의 30~40도 되는 것 같아 (물론 체감)
우다다다 하면서 내려오지말고 지그재그로 걸으면서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내려오면 좋을 것 같아
미처 마르지 않은 흙길은 진창길이 되었다

사진 속의 브라질 가족 순례자들과는 제법 오랜 기간동안 일정이 겹쳤어
오늘도 다른 순례자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면서 피수에르가 강을 건너면
팔렌시아 지방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표지석을 만나게 된다
물방울이 바람에 싣려 나에게도 닿길 바라면서 길 좌측에 붙어서 걸었어


까스뜨로헤리츠부터 이떼로 어쩌고 마을까지는 2시간이 걸렸어
아침을 먹고 출발하길 잘했음
마을에 진입하면 바로 보이는 바르에서 커피타임

아마 내일 즈음엔 순례길 절반이 지나겠구나




고개를 넘으며 하루를 시작하니 내 예상보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음ㅜ
보아디야 델 까미노에 도착하니 더는 못 걸을 것 같아서 빠르게 쉴 곳을 찾아다녔어
포토스팟 같은데 좀 나와보소
순례길을 함께 하느라 고생이 많은 백팩들
마을의 알베르게랑 바르를 돌아다니는 데 다 닫은거야ㅠ
진짜 가는 곳마다 다 닫아서 너무 당황했는데 열려있는 호텔바가 있어서 에어컨을 쐬며 음료수 두 개 조졌어
가방 내부반입이 금지였는지 기억은 안 남ㅋㅋㅋ
그래도 이 날은 가끔 그늘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

까스띠야 운하에 도착한다

순례자들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는 유람선 승객들
체력이 고갈되어서 죽을 것 같은데 그냥 태워줬으면 좋겠..ㅋㅋㅋㅋ
메세타에 진입한 후로 자전거 순례자가 많아졌다
공사 중이라 약 1km 돌아갔던 길
가지밭(?)을 지나
다시 운하 옆길을 걷다보면
로크에 도착한다



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를 포함해 각종 도크랑 로크는 건너봤는데
이렇게 작고 오래된 로크는 처음 봐서 신기했어
굴다리를 건너면
목적지 프로미스따에 도착한다
오늘의 알베르게 Luz de Fromista. 프로미스따의 별이라는 뜻이다
체크인하니 내가 다섯 번째로 도착했고 전날 저녁을 같이 먹은 한국인 순례자 네 분이 나보다 앞서있었어
내가 보아디요에서 쉴 때, 안 쉬고 14km를 스트레이트로 걸어오셨대ㄷㄷ
알베르게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조명이 있었다
순례자를 기다리는 동키로 보내진 백팩들
방음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세제가 있다는 사실만은 큰 감동이 된다
알베르게의 마스코트 고양이
참을 수 없어서 마구 쓰다듬는 데도 얌전히 자더라ㅎ
빨래하는 데 다시 땀이 날 정도로 더운 날씨였어
낮잠자다가 아버님이 맥주를 사주셔서 즐겁게 마심
ㅋㅋ나태지옥 프리패스할 듯
어느새 순례자들의 노고로 가득 차버린 신발장

저녁은 대충 먹으려했는데 다른 한국 순례자들이 프로미스따에선 폭립을 반드시 먹어야한다고 꼬셨어
나헤라에서 만났던 발이 아프다던 한국인 여자 순례자분도 점프하려다가 여기 폭립은 꼭 먹어야한다고 점프를 반려하셨대...ㅋㅋㅋㅋㅋㅋ
이 분은 순례길 2회차셨거든
얼마나 맛있길래 그러실까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프로미스따의 모든 순례자들이 이 식당으로 모이더랔ㅋㅋ

한국 모금통만 있어서 웃겼음
퍽퍽하지도 않고 너무 맛있어서 간만에 포식함
햄버거도 존맛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홍콩 남자 & 대만 여자 순례자 둘이서 치킨윙을 만들었다며 나누어주셔서 치킨윙 파티를 했음ㅎ
홍콩 순례자는 어린 10대 순례자였는데 혼자 순례길에 올랐다더라
타지에서 홀로 씩씩하게 걷는다는 게 존경스러웠어
프로미스따 이후에 사하군까지 추천 일정을 따라가면 3일이 걸리지만
까리온(19km) / 레디고스(23km) / 사하군(15km)의 일정이라 조금 꺼려졌어
20km 밑으로는 걷고 싶지 않았거든ㅠ
절반으로 나눠서 적당한 마을에서 끊어가도 됐지만 까리온의 노래하는 수녀원이 유명해서 가보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까리온에 갔다가 다음 날 38km 걷기를 도전하기로 했어
ㅡㅡㅡㅡ
프로미스따 - 까리온
까리온까진 20km, 4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짧은 일정이야
알베르게 내부가 더워서 창문을 열어두었는데 벌레가 다리를 계~속 물고 간지러워서 잠을 설쳤어
여름의 순례길은 순례자들의 달콤해야 할 휴식을 괴롭히는 밤의 더움이 더 힘들었어
베드버그 방지용으로 침낭에서 자기 vs 시원하게 자는 대신 베드버그의 위험을 안기
순례길 내내 둘 사이에서 갈등함
나중에는 침낭이고 뭐고 그냥 긴바지 입고 자긴했엌ㅋㅋㅋ
6~8월에 순례길을 걷고자 하면 뭔가 방법을 강구해봐,,
생장에서 출발할 때는 선선한 밤에 경량 침낭이면 딱 좋았는데 어느새 더위와 싸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니
순례길에서 계절의 변화를 체감되어서 무척 신기했어

일어나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5시 40분
여유를 부리며 아침을 먹고 하루를 준비하니 6시 반이 되어서야 출발했어
출발할 때 한국인 부자 순례자분들이 계시길래 별 생각없이 따라갔어
걷는 페이스가 나랑 비슷해서 너무 좋았어
시속 6km 정도로 걸음ㅋㅋ
파스텔빛의 하늘

까리온으로 가는 길의 대부분은 찻길 옆에 있다



시트러스와
서양배가 자라고 있다

숨은 고양이 찾기 (난이도 하)

우시에르사 강 부근에서 두 가지 루트가 존재하는데 나는 더 짧은 길로 갔어
물론 따라간거긴 함ㅎ
아버님이 엄청 잘 걸으셔서 덕분에 나름대로 페이스 조절하면서 잘 걸었어
두 분이 거의 쉬지도 않고 착착착착 걸으셔서 뭔가 걷는 기계같았음ㅋㅋㅋㅋ





유럽에선 딸기로 만들어진 무언가를 먹는 게 아니라는 걸 항상 망각한다
순례길 2회차+(아마도 거의 확실한) 파워 J이신 아들 순례자분이 쉴 곳까지 정해놓고 걸으셔서 마을들이 순식간에 지나감ㅋㅋㅋ
더워지기 전에 후딱 빠르게 걷는 게 이 분의 모토셨어
출발한 지 약 2시간, 휴식을 위해 들른 비야르멘떼로의 바르에서 주스를 한 잔씩 돌렸음
항상 실패할 걸 알면서도 딸기를 시키는 나란 사람ㅜ
간단하게 목만 축이고 다시 출발

동물 표지판마다 장난감 눈알이 붙어있었는데, 이거 하려고 눈알을 들고다녔을 순례자를 생각하니 너무 귀여웠음ㅋㅋㅋ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 마을에 도착했다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바르에 들렀다
메론 ㅈㄴ 맛있음
내 사랑 까까오랏
스페인 음료니까 제발 보일 때마다 마셔줘
진짜 크리미하고 달콤해ㅠㅠㅠ
피냐콜라다도 맛있었어

1시간 정도 쉬다가 다시 출발했어
길 자체가 작은 자갈길+평지 쭉~이라 너무 쉬운 길이었어
알베르게가 달라서 부자 순례자분들과 헤어져 앞질러서 걸었어
살다가 귀리를 보는 날이 다 오다니


개미자리라는 들꽃이래




까미노 프란세스의 한가운데 위치한 마을로 순례길에 심장이라고도 불리는 까리온에 도착했어
생각보다 엄청 큰 마을이더라

바르에서 1시간 넘게 쉬다가 왔는 데도 도착하니 11시 반..!
까리온 수녀원 알베르게에는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어
이 때쯤 알베르게에 빨리 도착하는 데 재미가 들렸엌ㅋㅋ 왜 그랬는지 모를
체크인은 12시부터였지만 수녀님께서 짐을 안에 둘 수 있게 친절을 베풀어주셨어

시원한 차를 제공해주셔서 무려 3잔이나 해치움
이 알베르게에는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가득했는데 다들 밝고 활기찼어
몽가 다들 러쉬직원 같아서 약간 힘들었음..ㅎ




체크인하고 나오니까 동네 꼬맹이들이 몰려와서 같이 기념 촬영도 함ㅋㅋㅋ;
재잘재잘 부엔까미노를 외치는데 안해줄 수가 없었어
알베르게 바로 앞에 장이 들어섰길래 폭풍 과일 쇼핑함
납작복숭아 넥따리나 흑자두 등등 맛있어보이는 과일들을 샀는데 진짜 개맛있어
특히 넥따리나 존ㄴㄴ나 맛있어
순례길에서 내 입에 들어간 음식물 중에 단연코 1등임
천도복숭아라는 것 같은데 내가 알던 복숭아가 아니라 한 차원 위의 맛이었음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개ㅐㅐ맛있어서 내 뒤에 일정의 순례자들한테 전파하고 다님ㅋㅋ
장은 13~14시쯤 닫는 것 같아 오후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아쉽게도 장을 못 봣대


순례자 협회에서 추천하길래 사먹어본 빵. 맛은 그저 그랬다

큰 거리에 홍합 타파스 전문점이 있길래 불가항력적으로 맥주도 한 잔 해줌
알베르게 체크인, 샤워빨래까지 다 해도 13시가 채 안 된 시간
이런 여유는 순례길에서 처음 느껴보는 거라 너무 좋았어
그래서 까리온부터는 오후 늦게 도착하지 않게 일정을 조절하며 걸었어
솔직히 혼자 걷는 거라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도 할 게 없어서 걷는 시간을 길게 잡는 것도 있었는데
그냥 낮잠자고 마을 산책하고 맥주도 한잔하고.. 하는 것도 좋더라
다행히(?) 나는 순례길 절반에 위치한 까리온을 기점으로 유형 전환을 했으니 딱 고된 일정 반, 여유로운 일정 반을 걸은 셈


다른 한국인 순례자분들이 묵는 알베르게에도 놀러갔어
나빼고 다 거기있더랔ㅋㅋㅋㅋ
확실히 넓고 깨끗하고 좋았어
알베르게 정보를 잘 모르겠다면 한국인을 따라가는 걸로
부부 순례자분은 둘 다 먹는 걸 좋아하고 빵집을 운영하고 계셔서 먹는 쪽 정보는 빠삭하게 꿰고 계시더라구
덕분에 즐거운 점심시간이었어ㅎ
마요네즈 러버로써 마요네즈빵 존맛이었음


마을 구경을 하고 알베르게에 돌아가니 자원봉사자들이 나한테 도움을 요청했어
순례자들이 알베르게에 남기고 간 수많은 쪽지에서 한글 쪽지를 구분해줬어
자원봉사자들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스페인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
일종의 좋은 경험으로 여기는 친구도 있었고 정말 신실한 친구도 있었고 각양각색이었어

까리온은 노래하는 수녀님들의 미사로 유명해
수녀님의 노래와 함께하는 미사가 궁금해서 18시에 있는 미사에 참여했어
30분 정도로 길지 않으니 궁금하면 참여해봐

18시 반에는 알베르게에서 노래했음;;
내가 묵은 알베르게는 이 노래하는 시간으로 유명해ㅋㅋㅋ
당연히 강제 참여는 아니고 굳이 이 알베르게에서 묵지 않아도 참여할 수 있어! 다른 알베에 묵는 한국 순례자 두 분도 놀러오셨어
두 번째 까미노라며 다큐를 촬영하고 있다고 스스로 소개한 한 순례자분은 기타까지 들고오셔서 직접 만든 까미노 노래를 불렀어
너무 멋있더라
수녀님들이 기타를 치며 나라별로 노래를 권유하시는데 꼭 부르지 않아도 괜찮다며 넘어가셔서 약간 안도했어
그렇게 방심하면서 있다가 한국인 차례가 오자 나를 빤히 바라보시는 거야
수십 개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니 너무 당황해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녀님들이 아리랑을 안다며 냅다 기타를 치셔서 어쩔 수 없이 불렀어..ㅠㅠ 한국인 특혜 이런건가요ㅠ
심지어 다른 한국인 순례자들은 외면해버려서 독창함ㅋㅋㅋㅋ큐ㅠ
19시 반에는 본미사가 있었는데, 미사가 마칠 무렵에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순례자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까리온의 별을 하나씩 나누어주셔
이 때는 수녀님들께서 노래하지 않으시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
알베르게에 돌아와서는 저녁을 만드려고 하는데 자원봉사자들의 주도로 쉐어 커뮤디너가 있다고 참여를 권유받았어
처음에는 참여할까 했는데 뭔가 서양 하이틴 드라마 & 연프 느낌이 느껴져서 숨어서 짜빠게티 끓여먹음ㅎ
실제로도 자정을 넘겨서까지 왁자지껄했지만 나는 다음 날 갈 길이 멀어서 애써 눈을 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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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 405.7 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