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길 것도 많고 신경 쓸 것도 많고
어떤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쇼핑한 물건들 이고지고 오느라 집까지 오는데 혹시 그게 망가질까 어서 가서 캐리어 풀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뿐이었던 적도 있었음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같지만 그런 때도 있었어
그러다 어느날 일하다가 무거운거 들면서 허리디스크가 터지는 사건 발생.. ㅜㅜ
난 이제 비행기따윈 탈 수 없겠구나 내인생에 미국 유럽은 없겠구나 이런 생각만 들고 아파서 밤마다 울었음 ㅠㅜㅜㅜ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좀 회복한 뒤에 내 허리가 어느 정도 나았나 실험 차 비행기를 타보기로 했어 가능한 아주 단시간에 갈 수 있는 곳으로
난 부산에 살기 때문에 대략 가능하겠다 싶은 곳을 뒤져서 그렇게 제주도를 갔어
그때 내 짐은 내 등보다 작은 백팩과 이동 때 지갑과 폰만 넣어다닐 수 있는 아주 작은 크로스백이 다였어
좋아하는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고 최대한 여행의 만족도는 높이고 싶었기 때문에 허리가 아프지 않게 줄일 수 있는 짐을 무조건 최대한으로 줄이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어
허리가 다시 아파오면 이 여행은 거기서 끝이었어
이전의 나였으면 백팩은 무슨 당연히 캐리어에 이것저것 잔뜩 넣고 매일 매일 새로 갈아입을 옷을 다 챙겨서 넣어갔을건데 그때 내가 가져간건 잠옷과 갈아입을 속옷 그리고 상의 1개, 세면도구가 다였음
정말 딱 필수품만 가지고 떠나게 된거야
짐이 없으니 공항에서 짐 옮겨주는 서비스 이용할 필요도 없고 캐리어 끌고 무겁게 가지 않아도 되고 버스를 탈 때도 수월해서 기동성이 아주 좋았음ㅎㅎ
그렇게 여행하면서 알았지
아 그동안의 여행에서 내가 챙긴 짐들은 다 나의 욕심이고 이 욕심이 내 고통이었구나 내가 가져온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여행을 할 수 있구나
그걸 허리디스크가 터지고 나서야 깨닫게 된거야
사실 여행에서 챙길건 오직 나 하나 뿐이었는데
거기 가서 아 노을이 이렇게 예뻤지
바다가 이렇게 투명했구나
세상이란게 이토록 아름다웠네 이걸 느끼는 나
이 시간들이 참 소중하다는걸 알고 다시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는 나
허리를 다친 후에도 이렇게 제주도까지 비행기를 타고 다시 여행을 올 수 있다는 그 사실에 감사하는 것
이게 가장 중요했는데 난 대체 그동안 그 소중한 시간들 속에서 뭘 하고 있었던거지? 여행가서 쓰지도 않고 먹지도 않을 것들 사오느라 이걸 다 못하고 있었네 하는 생각이 그때서야 든거야 바보같이.. ㅠㅠ
이걸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이전의 여행에서 난 더 많은 걸 보고 경험하고 무거운 짐에 질리지도 않고 거기에 억눌리지도 않았을텐데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