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한뼘의 해가 드는 고시원 방에서부터 방음 안 되는 낡은 연립주택에서의 자취 생활까지는 하하 그래 나도 저랬지 하고 미소 띠고 봤는데
가난이 문틈 사이로 스며들어오고 인내심이 얕아지고 성격이 닳아갈 때 사람의 바닥이 드러나는 그 상황 그 기분을 너무 현실적으로 묘사를 잘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더라
특히 대학 친구 집 놀러간 장면 너무 와닿았어
대학 때 철없이 술 마시고 노래방 가며 같이 놀아서 나랑 비슷한 줄 알았던 친구들이 취준하고 사회 생활 시작하고 20대 후반 즈음이 되면
사실은 나와 출발선 자체가 다른 애들이었다는 게 확 체감이 되잖아
아빠가 첫 직장은 아무데나 가는 거 아니래 라고 말하며 알바 하나 안 뛰고도 취준 1~2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친구
알고 보니 교수 집안이어서 난 그냥 대학원 갔다가 유학 가고 교수 루트 탈래 하는 친구
4~5년 고시 준비하는 동안 집에서 원룸비 학원비 체력단련비 다 대주는 친구
좀 일찍 결혼하게 됐는데 집에서 강남은 너무 비싸서 못해준대 라며 본가에서 강 건너인 금호동 아파트에 신혼집 자가로 잡는 친구
나는 밤늦게까지 알바 뛰며 시험 준비하는데 나랑 비슷하게 놀던 같은 학교 같은 과 친구들은 어느순간 훌쩍 저 앞에 서있고 나만 홀로 초라해진 그 기분
경제적 난관에 부딪쳐 꿈도 포기하고 일단 취업했는데 하필 그게 블랙기업이어서 마지막 남은 인간성까지 쪽쪽 빨리고 번아웃 와서 넝마처럼 쓰러지는 그 상황
근데 그 기분을 혼자 삼켜내지도 못하고 상황을 극복할 힘도 내지 못하고
결국은 내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고야 마는 미성숙함까지
연출이며 연기며 미칠듯이 현실적이어서 영화 보다 말고 얻어맞는 느낌이었어
부끄럽지만 난 패악질을 부리는 쪽이었거든...
메인 스토리는 사랑 얘기고 장르는 멜로가 맞는데
이와는 별개로 20대 중후반 청춘들이 부딪치는 삶의 애환을 정말 잘 그려냈더라
그리고 만약 거기서 그쳤더라면 고통으로만 기억되었을 관계였을텐데
두 주인공이 이별의 슬픔과 함께 인생의 고난도 극복하는 것까지 다 보여줘서 넘 좋았어
한때 집이 되어줬던 사람들이 서로가 그 다음 시기로 넘어가는 구름판이 되었다는 거
이거야 말로 진정 로맨틱한 관계가 아닌가 싶어
평소에 로맨스 영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부분 때문에 점수를 높게 줬고
내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멜로라기보다는 청춘들의 성장담으로 오래 기억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