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에서는 과묵하지만 누구보다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고, 회사에서는 책임감 있는 팀의 리더로 인정받으며 살아가지만 세상은 그를 꼰대라고 부른다"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부럽다. 질투가 난다. 이런 말에 공감하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립다. 세상 말들 속 아버지라는 존재가 갖고 싶다.
나는 존경이라는 단어를 알기 전부터 그를 존경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선 것처럼 보였다. 누구에게나 자랑할 수 있을 법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보다 더 권위가 있고 무서운 사람을 나는 알지 못했다.
도시 것들에게 고향은 지명이 아니라 단지다. 내 고향 한신2차 아파트는 외가에서 마련해준 것이었다. 나중에 알았다. 남이 얻어준 성 안에서 그는 왕이었다. 어머니만이 홀로 가끔 맞설 뿐었다. 그녀가 고개 숙이지 않고 척추를 펴는 걸 보았다. 나와 내 동생은 한심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확실히 그랬다. 훗날 그는 세상의 진리라도 깨달은 듯 내 동생에게 말했다. 너는 돈보고 결혼하지 말아라. 나는 그 말을 전해들었다. 어떤 말들은 칼침과 같다. 흉터를 남긴다. 나는 그의 말을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개새끼는 되지 말자.
어머니는 늘 약자였다. 내가 알지 못할 죄라도 진 줄 알았다. 절대적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아버지의 얼굴이 따라온다. 그는 집 안에서 홀로 유일했다. 아버지 식사하세요, 라는 말을 하기 위해 문 앞에 얼마나 머뭇거렸던가. 강한 사람이었다. 되레 맞서는 사람이 미웠다.
어머니는 별거를 선택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일종의 인정투쟁이었던 듯 하다. 남편이 가족을 염려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계산 착오였다. 그녀는 평생 계산에 밝지 못했다. 아버지는 명의의 편의를 들어 아파트를 팔아 치웠다. 나는 중학생이고 동생은 국민학생이었다.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닌 걸 팔아서 자기가 가졌다. 나는 그게 소위 남자다움의 논리를 따르더라도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나이에 이르러서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찌됐든 그는 그렇게 했다. 대단한 박력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던 밤을 떠올린다. 대학생이었다. 다음 날 밥값이어야 할 돈으로 소주 두 병을 샀다. 그리고 한 번에 다 마셨다.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여전히 부탁이 서툴고 싫다. 아버지 등록금 좀 내주세요. 효도할게요. 그는 돈이 없다고 대답했다. 누군가 내어놓은 짜장면 빈그릇에 밥을 비벼 먹었던 날이었다. 하루에 아르바이트 두개를 하다 버거워 다리가 떨렸던 날이었다. 고시원 방에는 창문이 없었다. 옆방에서 등 긁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대답은 메아리가 되었다. 가장 힘들고 고되었던 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했던 날,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상할 수 없는 말을 들었던 날. 나는 늘 아버지의 대답을 떠올렸다. 니들이 뭐라 하든 씨발 나는 살 수 있다.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가 있나 보다. 그런 뜨거움이 내게도 있으면 좋겠다. 부럽다. 질투가 난다. 나도 같이 뜨겁고 싶다. 맘 편하게 엉엉 울면서 떠올릴 수 있는 아버지가 있으면 좋겠다. 나도 아버지일 수 있을까. 하지만 좋은 아버지일 수는 없겠지. 추운 날 밤 거울 속에서 아버지를 보고 문득. 니들이 뭐라 하든 씨발 나는 살 수 있다.
엄마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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