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FM의 DJ 핑크블러드 | ‘덕질’은 경험이고 '덕후'는 그 경험에 뛰어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분야는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의 얘기가 중요합니다. [포토카드의 기쁨과 슬픔]은 한결같이 nn년째 'SM 덕질'을 고집해 온 핑크블러드의 포토 카드 체험기입니다.
이 연재를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제일 많이 언급한 건 아마 ‘랜덤’이 아닐까. 불확실성에도 기꺼이 돈을 지불할 만큼 충성스러운 마음을 가진 덕후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는 기획사의 상술은 거의 매번 성공한다.
가장 보편적이고 흔한 앨범 속 포토카드가 랜덤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저 행운을 바란다. 내 최애가 우리집에 무사히 도착해 내 손 안에 들어오길 원한다. 기획사가 깔아놓은 ‘랜덤 포카판’은 포카 구매를 모 아니면 도라는 뽑기의 영역, 간절히 기도하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품게 하는 샤머니즘의 영역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팬들은 아예 부적을 만들었다. 내 최애가 도착하게 해 주세요,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포카 부적이라고 치면 수많은 (주로 아이돌) 가수들의 부적이 뜬다. 나름대로 부적의 꼴을 갖췄다. 노란색과 황토색 계열 바탕에 빨간색으로 글씨가 쓰여 있다. 얼굴이나 캐릭터가 들어가기도 한다. 문구는 자유롭다. 꼭 와 달라는 절절한 마음이 다채롭게 표현돼 있다.
포카 부적은 효과가 있을까?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부적이 있어도 없어도 최애 포카를 뽑을 수 있으니. 그냥 내 마음에 선사하는 소소한 테라피 정도로 여기면 좋다. 포카 부적은 온라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금손인데 부지런하기까지 한 이들이 본인의 개성이 묻어나는 귀엽고 기발한 부적을 만들어 올려둔 덕이다. 뭔가 좀 더 본격적인 ‘기분 내기’를 위해 그걸 뽑아서 쓸 수도 있겠다.
나는 앨범 공구(공동 구매) 탔을 때 선착순 특전으로 두 번 정도 받았다. 확실히 컴퓨터나 스마트폰 안에 있는 디지털 이미지보다는, 그저 얇은 종잇조각일지라도 물성이 있는 게 더 내 취향이어서 이렇게 특전을 공략하는 편이다.
운 좋게 뽑든, 누군가에게 사든 마음에 드는 포카를 얻었다면 거치는 필수 과정이 있다. 바로 ‘포카 예절샷’이다. 음식점에 가서 먹을 걸 시킨 후, 음식이 나오면 으레 사진을 찍지 않나. 그때 덕후들은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낸다. 포카다. 화려한 탑꾸(탑로더 꾸미기) 버전도 있고 투명 비닐에 넣은 포카를 가져오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 매번 포카 예절샷을 찍는 편은 아닌데, 내가 덕후라는 것을 공개해도 되는 사이거나, 마음 먹고 맛집에 왔거나, 나 말고 다른 덕후가 낀 모임일 때는 기꺼이 포카를 꺼낸다. 127번을 봐도 언제나 귀엽고 예쁜 내 최애를 보면 기분이 조크든요.

예절샷을 음식 먹기 전에만 찍을 필요는 없다. 마음이 내킬 때 언제나 포카를 꺼내고 사진을 찍어도 된다. 콘서트장 가는 길에 현수막 앞에서, 앨범 사고 나서, 덕질 관련 전시회에 가거나 굿즈를 샀을 때 등등. 꼭 덕질과 관련돼 있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올해 치른 선거 때 최애 포카를 종류별로 가져가서 사진을 찍었다.
궁금해서 검색을 해 보았는데도 솔직히 왜 ‘예절샷’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아이돌 덕후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의식처럼 여겨져서 비슷한 의미로 작명한 것 같다고 추측할 뿐이다.
사진으로 남길 만큼 기념하고 싶은 순간이니까 최애 생각이 나고, 최애 포카로 예절샷을 찍는, 어떻게 보면 무척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머글(덕후가 아닌 사람)이 볼 때는 ‘굳이?’ 싶을 수 있어도 예절샷을 찍을 때 나는 내 일상 속 어떤 장면을 최애와 함께한다는 기분이 든다. 덕후의 소소한 행복 도모 방법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 DJ 핑크블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