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글에 이어 다시 올리는 세넨무트 초상화
- 누비아의 흉터
누비아 사람들에게는 얼굴에 인위적으로 흉터를 내는 관습이 있었어.
이걸 ‘난절(scarification)’이라고 하는데,
당시 누비아-이집트 문화권을 가르는 차이 중 하나였음.
(지금까지도 수단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풍습임!)
당장 18왕조 전후시절로 쓰여진 누비아인의 용모 묘사가 이렇거든.
- 어두운 피부톤
- 뺨과 눈썹의 난절
- 머리띠 등으로 짧게 손질한 머리카락
- 고리형 귀걸이
- 뺨과 눈썹의 난절
- 머리띠 등으로 짧게 손질한 머리카락
- 고리형 귀걸이
헤어스타일은 바꾸면 되고,
귀걸이는 뺄 수 있지만 흉터는 아니었겠지.
즉 난절은 저 시대에도 ‘누비아인인가, 이집트인인가’를 구분하는 주요 수단 중 하나였음.
여기에
- 투트 1세가 누비아의 수도 쿠시를 잔혹히 유린했던 점
- 쿠시도 ‘활의 땅’이었던 누비아 북부에 속해 있었던 점
- 당시 이집트가 정복지에서 포로를 끌고 왔던 정황이 벽화 등으로 남아 있는 점
등으로 종합해 봤을 때 일각에서는 이렇게 보고 있어.
“누비아의 귀족이 이집트로 끌려오거나 피난해 정착했고,
이들의 자식이 세넨무트이다” 라고.
이 경우 세넨무트는 누비아계 이집트인,
혹은 누비아+이집트 혼혈이 됨!
어떻게 보면 앞뒤가 맞는 게,
- 세넨무트가 글을 알았던 것
- 군대와의 접점
(’활의 땅’ 출신 + 가족이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옮김) - 가족을 한번에 모두 잃어야 했던 것
(상황이 여러모로 불안정했을 가능성이 크니까)
전부 ‘누비아 출신 귀족가문’이라고 보면 이야기가 맞거든.
이 경우 아버지가 농부/소규모 지주였다 해도 이상할 건 없어.
당시 끌려온 포로들은 주로 농업+건설과 같이 노동집약적인 분야에 투입되었었거든.

*당시의 포로들을 그린 18왕조 벽화. 밝은 피부톤은 시리아에서 끌려온 걸로 추정됨
즉 같은 누비아계 주민이 많았을 곳에 정착했다고 보면 됨!
(이 트렌드는 하트셉수트 이후 투트 3세의 정복사업 때도 다르지 않았어)
+) 다음글 링크 (17편): https://theqoo.net/theatermusical/3674499751
#비명의_여인 #왜_이곳에 #71번_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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