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 포인트 2!
제목 그대로임 ㅋㅋㅋㅋ
초기 커리어가 거의 공란임에도,
투트모세 2세 치세에서 공주의 가정교사 + 집사 겸
+왕비(하트셉수트)의 집사로 발탁이 돼!
그것도 하트셉수트의 외동딸이자 당시 이집트 왕실의 유일한 적통,
네페루레(Neferure)공주의 가정교사였음!
아마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쌓은 거 같아.
실제로도 역사에 세넨무트의 이름이 등장하는 게 이 시점부터임!
(왜, 어떻게 채용된 건지는 아직도 안 밝혀짐...
전공을 엄청나게 쌓았다는 말이 있기는 한데
싸움 잘하는 병사를 공주의 가정교사
+왕비의 집사로 들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제고
+내세울 만한 가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전에 뚜렷한 족적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대체 뭘 보고 등용한 건지는 여전히 물음표임)
와중에 세넨무트 본인이 가정교사 일을 잘 해냈고,
네페루레도 세넨무트를 꽤 잘 따랐던 걸로 보여!
이 때 당시 둘을 묘사한 조각상이 지금까지도 꽤 많이 남아 있거든.
(궁금한 덬들은 구글에 Senenmut - Neferure 치면 돼 ㅎㅎ)
그리고 여기서 왕비의 집사까지 맡으며 세넨무트는 서서히 존재감을 키워가기 시작함!

(참고용으로 다시 넣는 18왕조 가계도)
TMI 1) 사실 이 ‘가정교사’라는 포지션이 네페루레 공주+세넨무트한테는 꽤 중요했을 거야.
세넨무트라는 이름 자체가 네페루레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거든.
*이건 다른 글에 따로 쓸게!
투트모세 2세가 세상을 떠난 시점은 투트 3세가 만으로 고작 1-2살,
많이 쳐 줘도 2-3살이던 시기임.
이건 네페루레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
투트모세 3세와 1-2살 차이였을 거라고 보고 있거든.
(물론 네페루레가 이복 누나! 하트셉수트가 정비이므로)
즉 아버지는 네페루레가 얼굴도 기억하기 전에 떠났고,
양육이랑 교육은 전부 하트셉수트 + 가정교사 몫으로...
(같은 이유로 투트 3세도 하트셉수트가 키웠을 거라고 보고 있음)
여기에 네페루레는 적통 공주였기에,
성장하면 ‘아문 신의 최고 여사제’ 직책을 맡을 예정이었음.
하트셉수트가 공주-왕비 시절에 그러했듯이.
한마디로 ‘종교에서의 최고 사제직을 맡을’,
‘적통 공주’의 가정교사로 세넨무트를 중용한 거임.

대충 나덬 표정.
대체 어떤 이유로 발탁을 했던 건지는 여전히 물음표... ㅎㅎ
+) 실제로 네페루레는 어머니의 즉위 이후 사실상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함!
TMI 2) 고대 이집트의 여권(女權) + 하트셉수트의 한계
공주의 가정교사 이야기가 나와서 ㅎㅎ
이집트는 사실 그 시대에서 여권이 굉장히 높은 축에 속하는 국가였어!
- 스스로 법률상의 주체가 될 수 있었음 (남자 보호자 필요 없음!)
- 개인 재산 소유 + 관리 가능 (결혼 후에도!)
- 이혼 가능. 이혼 후에는 남녀 모두 맘대로 재혼 가능
- 사별 시 여자가 부부 재산 관리 + 유언장 남기고 재산 분배 가능
- 18왕조 9대 파라오의 ‘티이 왕비’는 아예 외교 업무의 한 축을 담당
- 귀족 가문의 여자들은 다들 글 읽고 쓰는 걸 배웠음
+) 누비아도 이집트와 비슷했을 것으로 보임! 애초에 워낙 가까웠어서 ㅎㅎ
단, 보이지 않는 선은 분명히 있었어.
여자는 관직에 오를 수도 없었고,
귀족이 아닌 이상 정치에 참여할 수도 없었거든.
왕위를 계승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음.
하트셉수트도 이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어.
당시 부조를 보면 ‘왕비’였을 때에는 여성으로 묘사되던 하트셉수트가
‘파라오’의 자리에 오르면서 점차 남성의 모습으로 묘사되었거든.
서명도 ‘왕’으로, ‘파라오’로서 했음.
(그러나 장제전 신화에서는 ‘신의 딸’로서 자신을 선언했음!)
아무튼 하트셉수트가 즉위하면서 세넨무트도 권력의 전면에 나서게 됨!
(계속 승진만 거듭하는 세넨무트 ㅋㅋㅋ)
여기부턴 다음 글에서 ㅎㅎ
+) 다음글 링크(14편) : https://theqoo.net/theatermusical/3672713239
#이집트의_대재상 #글은_어떻게_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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